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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7)화 (7/99)

-7화-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들을 불렀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날 선 행동을 하는 로헨도, 은근슬쩍 내게 달려 나오는 라리즈도 보이지 않았다.

“너네 어디 있어……?”

차라리 나와서 날 선 반응을 하지. 왜 오늘은 나오지도 않는 거야.

무거운 발을 겨우겨우 움직여 아이들이 항상 있는 구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엔 가뜩이나 해져 있던 옷이 더 볼품없게 찢어진 아이들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아아…….”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쌍둥이들 앞에 주저앉았다.

“너희들…….”

심지어 찢어진 옷 너머로 괴롭힘의 흔적이 명확하게 보였다.

“……언니야다.”

“…….”

힘없게 날 보며 웃는 라리즈와 말없이 나를 쳐다보는 로헨.

“하…… 설마설마했는데. 아니길 바랐는데. 그 망할…… 그…… 하.”

차마 나오지 못하는 욕들이 입에서 튀어나오려 한다.

어떻게 같은 인간으로서 저렇게 어린애들을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지?

“그 여자지. 그 여자가…… 너희들을…….”

그 모습이 너무 처참해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오빠. 봐봐. 언니야는 아니랬잖아. 우리 보고 울어 주잖아.”

“……네가…… 아니야?”

“내가 아니냐니?”

“……아닌가 보네.”

“맞잖아. 언니야는…… 그럴 사람 아니야.”

눈물을 급히 닦아 내고 쌍둥이에게로 다가갔다.

“보지 마.”

그게 싫은지 로헨은 급히 몸을 더 수그렸다.

“하…… 정말…… 정말, 미안해. 내가 너무 안일했어.”

모든 게 다 내 잘못이다. 내가 너무 오만했다. 다 잘될 거라고, 내 생각대로 흘러갈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언니야 탓 아니다.”

“맞아. 네 탓 아냐. 그러니까…… 뭐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굴지 마.”

툭툭 내뱉는 로헨의 말에도 조금의 상처를 받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의 상처가, 마음의 상처가 걱정될 뿐.

그래서 난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는 못 참겠어.”

“언니야. 못 참아?”

“이런 상황이 또다시 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 상황에 너희들을 둔…… 내 잘못이야. 당장 여기 불이라도 지를까. 그렇게 하면 너희들이 조금은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그런 본능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보육원장이 아이들을 찾는 일은 없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애들이 지낼 곳이 없어진다. 비참하기는 하나 창고는 적어도 비는 안 맞을 수 있으니까.

“언니야. 언니야. 울지 마. 응? 우린 괜차나!”

해맑게 웃는 라리즈는 내 품에 와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바바. 이제 안 아파. 그러니까 걱정 마!”

“……그래도, 그래도 상처가 낫는다고 정말 괜찮아지는 게 아니잖아.”

그 말에 내내 웃어 보이던 아이의 얼굴에 짙은 음영이 드리워졌다.

“정말이야…… 언니야. 그러니까 아까처럼 라리라고 불러 줘. 언니야가 불러 주는 이름이 좋아……!”

“……라리.”

이러니까 너희들이 내게 마음을 열지 못한 거였어.

이러니 지독한 트라우마에 휩싸였지.

내가 음식을 가져다주고, 옷을 가져다주고 노력해도 결국 보육원장이 애들을 한 번 찾아오면 모든 게 다 쓸모없는 일이 된다.

지금처럼.

라리즈는 이 일로 인해 내게 더 마음을 연 듯싶었지만, 로헨은 경계심만 더 심해졌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난 웃고 있는 라리즈를 바라보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심했어. 너희들을 여기서 꺼내기로.”

“응?”

그래야 다신 이런 일 따윈 없을 테니까. 또 그래야, 너희의 부친인 대공이 나중에 정상 참작을 해줄 테니까.

내가 착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그냥 나 자신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그냥은 아냐. 이대로 나가면 분명 또 금방 붙잡혀서 갇히게 될 테니까.”

“그럼 우리 언제 가? 언니?”

“내가 생각해 놓은 날이 있어. 그날까지 당분간만 여기 있자.”

“응!”

“아마도…… 한 번 왔으니 한동안은 안 올 거야. 내가 오지 않게…… 계속해서 보육원장 비위를 맞출게. 며칠만 더 참아.”

“응! 언니야.”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라리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일 하지 마.”

그때. 내내 내게 거리를 두던 로헨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어……?”

“……본인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어차피 너도…… 우리와 다를 거 없잖아.”

“그래도 내가 더 나아. 그러니 내가 구해 줄 거야.”

“…….”

“그리고 로헨. ‘너’가 아니라 누나야, 나는.”

“……누나는 무슨.”

하지만 로헨은 입만 꾹 다물 뿐 나를 피하지 않았다. 난 두 아이들을 빤히 바라보다가 애써 미소 짓고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원래 소설 속에 과한 개입은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을 위해.’

제대로 나서야겠다.

‘다행히 며칠 남지 않았어. 우연이라 해야 할지…….’

제국 수도에서 1년에 두 번씩 신녀들이 와서 보육원을 살피곤 한다. 그날은 보육원 아이들이 묵은 때도 빼고, 광도 내는 날이다.

입어 본 적 없는 귀한 옷을 입고,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

난 바로 이날을 노릴 것이다.

***

그날부터 한동안 보육원장의 기분은 꽤 좋았다.

하지만 밖에서의 일이 잘 안 되는지 외출하고 들어올 때면 과한 성질을 부리곤 했다.

그때에 맞춰 난 보육원장의 방을 찾았다. 건들 거면 차라리 나를 건들라는 느낌으로.

그 덕분에 몇 번 위험한 순간이 오긴 했지만, 그 정도면 굉장히 무난히 지나가는 편에 속했다.

다행히 보육원 아이들을 위험하게 만들어 후원금을 늘리려 했던 계획도 신녀가 오는 그날까지 실행되지 않았다.

신녀의 방문은 보육원의 제일 큰 행사 중 하나였고, 그걸 준비하느라 원장도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평소라면 입을 수도 없는 데다가, 혹여나 아이들이 망가뜨릴까 봐 한곳에 따로 보관되어 있던 귀하고 좋은 옷을 입었다. 다 같이 씻고, 머리도 예쁘게 묶어 리본까지 달고. 거기에 새 신발을 신은 우리는 신녀를 태운 마차가 올 그 앞에 서서 신녀를 기다렸다.

오전 10시쯤.

드디어 신전 마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창문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녀는 마차가 보육원 안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벌컥 열고 내렸다.

“요새 잘 지냈니?”

“네! 신녀님!”

아이들은 혹여나 뭐라도 더 떨어질까 싶은 건지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밥은 잘 먹었고?”

“네!”

“부족한 건 없니?”

“……네!”

아주 조금 틈이 생겼지만, 신녀 뒤에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보육원장 탓에 아이들은 조금 떨다가 급히 목소리를 냈다.

“다행이로구나. 걱정했는데. 그런데 아이들이 전체적으로 조금 마른 것 같네요. 보육원장님.”

아이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고 안아 주며 웃어 보이던 신녀의 얼굴이 조금씩 어두워진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었다. 무언가 못마땅한 듯 한숨을 내쉬던 그녀는 나를 보며 볼을 쓰다듬다 원장과 눈을 마주쳤다.

“특히 아이샤는 눈여겨보던 아이 중 하나였는데…….”

그동안 똘똘함으로 신녀들의 관심을 받고 있던 나는 걱정 어린 신녀의 얼굴에 조금은 쓸쓸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럴 리가요. 아마 요새 밥을 잘 챙겨 먹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그런가요?”

하지만 신녀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불편감이 실렸다. 난 그런 신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신녀님. 신녀님!”

“그래. 아이샤.”

보육원장이 말리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난 신녀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원래라면 하지 않을 일이었다. 이곳 사람들이 나를 좋게 봐준 건 모두 아이 같지 않아서였다.

떼를 쓰는 것도 아니고, 자기 할 일도 알아서 하는 데다가 관심도 원치 않았다.

보육원의 아이들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쏠리는 관심을 원할 수밖에 없었기에, 보육원 사람들을 비롯해 신녀들은 날 참으로 좋아했다.

떼를 쓰지도 않았고, 그렇다 해서 섭섭해하지도 않고. 그건 모두 내 미래를 위한 거였다.

하지만 오늘 난 그걸 완전히 깨고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잠시만 저랑 같이 가주세요!”

그때 뒤편에 서 있던 원장이 성큼 다가와 내 손목을 억세게 잡았다. 아플 정도로.

표정이 절로 굳어졌지만, 난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샤. 신녀님들은 바쁜 분이야. 그러니 떼를 쓰는 건 그만하도록 해.”

“아…… 죄송해요. 귀찮게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평소보다 더 시무룩한 얼굴로 신녀를 올려다봤다.

“원장님, 그러실 필요까지 있을까요.”

“하지만…….”

“아이샤는 단 한 번도 우리를 이리 부른 적이 없는걸요.”

“그럼 저와 함께 가주시는 거예요?”

눈을 반짝이며 신녀를 바라봤다.

다른 신녀들도 있지만 특히 내 눈앞에 있는 이 신녀는 자애롭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보육원에서 여덟 살까지 살면서 여러 신녀들을 매번 봐왔지만, 그녀는 다른 신녀들과 달랐다.

오늘도 함께 온 다른 신녀들에 비해 이 신녀는 누구보다 우리를 신경 쓰고 있었다.

멜로디아 신녀. 그 때문에 난 그녀가 오늘도 오길 간절히 바랐고, 그녀는 실제로 왔다.

적어도 내가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간이다.

“당연하죠. 아이샤. 내게 보여 주고 싶은 거라도 있는 거예요?”

“네!”

“그럼 가도록 하죠. 나머지 신녀들은 다른 아이들을 살펴보도록 해요.”

“네, 멜로디아 신녀님.”

“성기사 중 두 명만 날 따르도록 해요.”

“네.”

이곳에 오는 신녀들 중에 제일 선임자인 멜로디아는 한 명, 한 명에게 임무를 맡기고선 내 손을 잡고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고 나서야 다른 신녀들은 마차에 싣고 왔던 물건들을 하나둘 내렸다.

“그보다 참 이상한 날이네요. 아이샤가 이렇게 투정을 부리다니.”

“헤헤. 죄송하고 감사해요. 멜로디아 신녀님.”

쌍둥이들아. 너희들은 잘 알아야 한다. 내가 이 한 번을 위해 그동안 얼마나 애를 썼는지를.

그 소중한 기회를 너희에게 쓴다는 것을.

그녀는 내게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감사하기는요.”

“신녀님을 너무 귀찮게 하지 말거라. 아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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