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6)화 (6/99)

-6화-

“……우리 이름을 우리가 어떻게 알아.”

“나도오…… 이름 가지고 싶어.”

자꾸 날 선 반응만 보이는 로헨과 달리 라리즈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제 품에 있는 걸 꼬옥 껴안았다.

“모르는구나, 이름은.”

“왜. 너는 알아?”

“그럼, 알지.”

“아, 알아?”

고양이처럼 샐쭉하니 날 경계하기만 바쁘던 로헨이 순간 커다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정말 우리 이름을 알아?”

“어떻게? 수상한데?”

“수상할 거 없어. 나는 특별하거든.”

다행히 아이들이라 그런지 내 말을 쉽게 믿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난 이때다 싶어 한껏 으스댔다.

“너희가 있는 이곳을 찾아온 건 나밖에 없잖아. 그렇지?”

“어!”

인형처럼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이는 라리즈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하지만 로헨은 매우 불만스럽게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난 네가 그 인간의 수족인 줄 알았어.”

그 순간 들려온 건, 어린아이가 아닌 날 선 짐승의 목소리였다.

아직도 나를 온전히 믿지 못하는 듯, 로헨은 눈길은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했다.

“와…… 그건 좀 끔찍한데? 수족이라니. 아니, 어떻게 보면 수족이 맞겠지만.”

“역시.”

그 말 한마디에 로헨이 라리즈를 품에 안고 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러더니 잔뜩 으르렁대며 날을 세운다.

“아니,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뜻 아니야. 알지 모르겠지만, 여긴 보육원이야. 가족도, 집도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키워 주는 곳이지. 그 여자는 여기 보육원장이고, 나는 보육원 아이니까. 어떻게 보면 수족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

“그리고 나는 누구보다 그 여자가 증오스러워.”

그제야 라리즈는 로헨의 품에서 벗어나 내 앞으로 폴짝 뛰어왔다.

“너는 나쁜 사람 아니야?”

“아니야, 적어도 너희에게는.”

“……그럼 우리한테 뭘 바라는 거야?”

“너희들이 평범하게 사는 거.”

물론 나중에 대공이 찾아왔을 때, 너희를 학대했다는 이유만으로 여길 불태우는 일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지만.

“그거 말고 바라는 거 없어.”

아이들 자체에게는 정말로 바라는 게 없다.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안도하는 라리즈를 보며 난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선 말하자면 나는 언니야. 너희는 나보다 어리니까.”

“언니야?”

“응. 언니야. 아, 네가 동생이고 저 위에서 날 노려보는 놈이 오빠 맞지?”

“오빠?”

“응응. 너희 둘 중에 먼저 태어난 거, 저놈이지?”

그 말에 라리즈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응! 그럼 오빠! 그렇구나. 오빠구나.”

“그래. 그리고 네 이름은 라리즈야.”

“라리즈……?”

“저기 있는 저놈은 로헨.”

난 소설 속에 나오는 이름을 차근히 알려 주었다.

“라리즈의 애칭은 라리.”

“라리……! 언니야. 이쁘다!”

제자리에서 핑그르르 돌았던 라리즈가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환히 웃으며 폴짝폴짝 뛰었다.

“나도 이름 있다! 오빠도 어서 와! 오빠 이름도 있대!”

“……왜 그 여자가 지어 준 이름을 우리가 써야 하는 거지?”

“그게 너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이름이야, 내가 지은 게 아니라. 난 특별해. 그래서 너희 이름을 알아.”

이곳은 소설 속이고, 너희는 소설 속 흑막과 악녀야. 지금은 너희들이 어린 시절이고, 이게 트라우마가 되어서 너희는 나이를 먹고 더 나쁜 놈들로 변한단다.

그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었기에, 난 가만히 그들을 바라봤다.

“믿기지 않으면 믿지 않아도 돼. 하지만 난 너희에게 단 한 번도 거짓을 말한 적 없어.”

“……말만 잘하는 사람은 더 믿을 게 못 돼.”

“그래, 믿지 않아도 돼. 하지만 여기 있는 신발이라도 신어. 맨발로 걸어 다니면 발에 상처 나.”

하지만 내 말에도 로헨은 내려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너희가 금방 마음을 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 너희뿐만 아니라 보육원 애들은 다 그래. 매번 상처받거든. 상대를 믿어 봤자 얻을 거라고는 상처밖에 없다는 걸 알아서 마음을 열지 않아.”

“언니야…….”

“그러니까 그렇게 날 세워도 괜찮아.”

난 보따리를 풀어 아이들 앞에 물건들을 꺼내 놨다.

“구해 온 것들은 여기 둘 테니까 둘이 편하게 써. 난 다음에 또 올게.”

“언니야. 벌써 가?”

“응. 내가 오래 자리를 비우면 보육원장이 의심할 게 분명하거든.”

눈치 빠른 보육원장은 다른 이들보다 특출할 정도로 똑똑한 날 이미 파악해 버린 후였다. 그 때문에 유난히도 내게 여러 일을 시키곤 했다.

그러니 오래 자리를 비우는 건 그리 좋지 않은 일이다.

‘특히 요새처럼 기분이 왔다 갔다 할 때에는 더더욱…….’

내가 잘해야 나머지 애들이 피해를 입지 않는다.

그 때문에 난 아쉬워하는 라리즈를 잠시 바라보다가 개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또 올게. 그때까지 무사히 잘 있어!”

그 말을 남긴 채.

그렇게 난 아이들을 두고 그곳을 벗어났다. 쌍둥이들이 말을 할 줄 안다는 것과 그 또래의 아이들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안 것만 해도 충분했다.

그 때문에 난 걸어갈 때마다 멀어져가는 창고를 바라보다 싱긋 웃었다.

‘얼른 마음의 문을 열면 좋겠다.’

해맑은 라리즈의 목소리와 경계하면서도 처음보다 나를 보는 시선이 한결 보드라워진 로헨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리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

살다 보면 꼭 그런 날이 있다.

유난히도 운수 좋은 날.

아침 일찍 외출하고 나갔다 들어온 보육원장은 유난히도 성질을 냈다.

평소 참여도 하지 않는 아침 식사 시간에 나와서 아이들의 버릇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라도 난 건지 보육원장은 기다란 회초리로 아이들의 손등을 때리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던 그녀가 사라지자 느낀 건 안도였다. 눈치 보느라 제대로 밥도 못 먹던 아이들은 원장이 사라지고 나서야 식사다운 식사를 했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지켜 주기 위해 망을 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아침 식사는 그럭저럭 끝났다.

묘하게 기분이 찝찝했지만, 모두가 다 보육원장이 사라져 다행이라 했기에 나도 그들에게 호응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원장이 다시금 돌아온 건 수실을 만들 즈음이었다.

혹시나 또 화를 낼까 싶었지만, 도리어 원장은 예상치 못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해.”

“네, 네?”

평소와 달리 과할 정도로 친절한 상태로 돌아온 보육원장은 아이들을 너무 부려 먹는다며 보육교사들에게 뭐라 할 정도였다.

심지어 아이들을 너무 괴롭히지 말고 쉬게 해주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했다.

선생님들도 손바닥 뒤집듯 휙휙 바뀌어 버린 원장의 모습에 질린단 표정을 했지만, 그걸 표출할 수는 없었기에 그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원장의 말에 호응했다.

“그, 그런가요.”

“그래. 오늘은 아이들을 쉬게 해줘. 언제까지 이 어린애들을 무리시킬 거야.”

“네. 아, 알겠습니다. 원장님 말씀 들었지? 오늘은 가서 모두 쉬도록 해.”

“네!”

쉰다는 그 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언제 원장이 말을 바꿀지 몰랐기에 보육교사들은 끝까지 그녀의 눈치를 봤지만, 아이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그녀는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참 오랜만에 쉬게 되었다.

‘그런데 묘하단 말이지.’

유난히도 운수 좋은 날. 아침 식사를 할 때만 해도 미친 사람처럼 굴던 그녀가 왜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나타난 걸까. 그렇게 시작된 불편감이 유난히도 내 가슴을 뒤흔들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내가 그 불편감의 원인을 알아차리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샤, 아이샤. 오늘은 자유 시간이니까 우리 시장 가자!”

엘은 신난 듯 폴짝거리면서 뛰어와서는 팔짱을 꼈다.

“엘, 나중에.”

“오늘도 또 안 가?”

“응. 나중에 가자. 대신 엘, 간 김에 뭐 하나만 사다 줄 수 있어?”

“뭐?”

보육원 아이들 중에 손재주는 심히 없는 편에 속했지만, 제일 똘똘한 편에 속한 엘은 아이처럼 나를 잘 따랐다.

그 때문에 난 엘에게 모아 두었던 쌈짓돈을 쥐여 주었다.

“인형 좀 사다 주라.”

“와! 아이샤도 드디어 인형의 세계에 입문하는 거야?”

“응. 대신에 털이 포슬포슬한 양 인형으로.”

“양? 사람 인형이 아니라?”

엘은 어느 때보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응, 양 인형으로. 그럼 부탁해.”

“우, 웅. 아이샤가 원한다면 사다 줘야지.”

“사고 나머지 돈으로는 먹고 싶은 거 먹어.”

그 말에 엘은 혹여나 돈을 빼앗길까 싶어서 내게서 빠르게 멀어져 갔다.

“어어! 걱정 마. 대신에 나중에 남는 돈 이야기 하기 없기다!”

“응응.”

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보육원 아이들은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시장으로 달려 나갔다. 난 그런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보육원에 아이들이 거의 남지 않게 되자마자 난 그들과 반대로 뛰었다.

갑자기 떠오른 이 추측이 제발 틀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발 내 이 불편한 기분이 과한 착각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난 뛰고 또 뛰었다.

혹여나 다른 사람이 볼까 봐 주변 눈치를 살피며.

그리고 숨이 헐떡일 때쯤, 창고에 도착했다.

평소와 아주 미묘하게 달라진 창고 문. 그 때문에 개구멍으로 가는 내 손이 덜덜 떨렸다.

불안감을 잠식시키며 겨우 안으로 들어섰다.

“얘들아…… 로헨, 라리. 너네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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