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어어, 나도 봤어!”
아이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그건, 그놈이 헛소리하니까 그런 거 아냐!”
어차피 다 같이 버림받은 신세에, 자기는 엄마가 찾아올 거라는 둥 자기는 급이 다르다는 둥 헛소리를 하고 다녔으니까. 그러면서 다른 보육원 애들을 무시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 아주 조금 혼내 준 것뿐이었다.
“지난번에는 아칸의 다리도 찼어!”
“그건 잘난 체…… 하여튼! 말 잘 듣는 너희는 절대 안 때려.”
“알았어, 말 잘 들을게!”
“아이샤가 우리 대장님이니까.”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환하게 웃는 아이들을 보다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맞아, 내가 너희 대장님이야. 그리고 지금 하는 이건, 작전이야.”
“작전!”
“멋지다!”
“그러니까 너희는 이제부터 평소처럼 행동하는 거야!”
“막 멋있는 거 안 해? 멋있는 거 하고 싶은데.”
“이게 엄청 멋있는 거야. 너희들이 아니면 아무도 못 할 일들.”
순박한 아이들은 각자 다른 표정을 짓다가, 무언가 엄청나게 큰 결심을 한 사람처럼 이내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후에야 난 꽤 짐이 많이 들어찬 보따리를 둘러메고선 창고로 향했다. 물론 그사이 보육교사들에게도 필요한 물건들을 받아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기다려, 짐승…… 아니, 쌍둥이들아! 내가 간다!’
보따리는 무거웠지만, 어쩐지 산타클로스가 된 기분으로 히죽 웃으며 걸어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그렇게 도착한 창고는 몇 번이나 왔음에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잠시 그 앞에서 주저하다 작은 개구멍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안에 있으면 이것 좀 받아 줘.”
보따리 상인처럼 커다란 보자기에 이것저것 챙겨 온 나는 개구멍으로 그것부터 끼워 넣기 바빴다.
“…….”
“저기, 내 말 듣고 있어?”
당연히, 쌍둥이가 안에서 도와주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세 번째 방문쯤 됐으면 조금은 경계를 풀지 않을까 생각한 건 내 오산이었다.
결국 혼자 손으로 발로 짐을 밀어 가며 난 겨우 개구멍을 통과했다.
물론 이해는 간다. 오죽 사람들에게 호되게 당했으면 아직 어린 아이들이 이렇게 경계가 심할까.
‘소설 속에선 분명 보육원장이 주기적으로 와서 이 아이들을 괴롭혔다고 했어.’
어차피 아이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관심일 뿐이니까. 이런 마음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너희를 가만둘 수는 없는걸.’
나 역시 힘없고 별거 없는 아이일 뿐이라서, 어린 시절을 통째로 들어내고 좋은 기억만 남긴다거나 당장 이 아이들을 탈출시켜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 할 수 있는 게 있다.
이렇게 짐승처럼 살지 않게 해주는 것.
그래서 조금 섭섭한 티를 지워 내고선 아이들 앞에 보따리를 턱, 하고 내려놨다.
“봐, 이게 다 너희 거다?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없지만.”
보따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쌍둥이가 우물쭈물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아이들은 지금 일곱 살일 것이다. 학대받고 자랐다고는 하나, 그 피에 흐르는 대공가의 힘 덕분에 먹지 않아도 제 나이 정도로 자란 것이다.
큰 이변이 없다면 앞으로도 쑥쑥 자랄 테니 신발을 종류별로 준비한 참이다.
“으음, 어떤 게 맞으려나?”
보육원 애들도 신다가 버리거나, 작아서 더는 신지 못하는 것들이라 상태가 좋진 못했지만 안 신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 전에 발톱이랑 손톱을 깎자!”
“……으릉?”
“개나 고양이도 발톱 관리는 잘하는데, 너희는 너무 안 되어 있어. 이렇게 길면 자다가 얼굴 다 긁어 먹는다?”
내가 보따리에서 물건을 꺼내는 내내 옆에 있던 동생 라리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여워라.”
꼭 강아지 같은 그 모습에 난 피식 웃고 말았다.
“벌써 얼굴을 꽤 긁었나 봐.”
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부끄러운 듯 급히 뒷걸음치던 라리즈가 제 옆에 있는 오빠를 손으로 가리켰다.
“오빠가 그랬다고?”
“…….”
“그럼 오빠부터 잘라 줄까? 손톱이랑 발톱부터 자르고, 우리 머리도 조금씩 자르자. 둘 다 앞머리가 너무 길어서 눈 찌르겠어. 보육원장이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니까, 당장 옷은 못 바꿔 입겠지만…….”
다짐한 나는 손톱깎이를 가지고 로헨에게 다가갔다.
“이리 와.”
“……으르!”
“우쭈쭈. 내가 이래 봬도 동네 고양이들 손톱도 잘 깎아 줘.”
그럼에도 로헨은 가까이 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사이 우물거리던 라리즈가 나와 최대한 거리를 둔 채 손을 내밀었다.
“네가 먼저 깎으려고?”
뭔지 모를 보따리를 품에 안은 아이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로헨이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나와 라리즈 사이를 막아서려 했지만, 그럴 새도 없이 난 아주 빠른 속도로 아이의 손톱과 발톱을 잘라 냈다.
무섭긴 했는지 눈까지 찔끔 감고 있던 라리즈는 몇 분 되지도 않아 손톱과 발톱이 짧아지자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떠 보였다.
“아……!”
“어때. 손톱이 짧으니까 편하지?”
“우웅!”
라리즈는 한참 동안 자신의 손톱을 바라봤다. 마찬가지로 라리즈의 손톱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던 로헨이 흠흠거리다 내게 슬쩍 손을 내밀었다.
“너도 잘라 달라고?”
대답은 없었다. 그저 손을 위아래로 흔들 뿐. 난 싱긋 웃으며 로헨의 손톱과 발톱도 잘라 냈다.
그러는 사이 라리즈는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마음에 들어?”
“…….”
로헨도 퍽 마음에 드는 듯 한참 동안이나 자신의 손톱을 바라봤다.
“머리도 잘라 줄까?”
아무리 맛있는 걸 가져다주어도 마음을 열지 않는 것처럼 굴던 라리즈가 주저 없이 내 앞에 앉았다. 아마도 손톱을 잘라 준 게 꽤나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얼굴에 자연히 웃음이 번졌다.
난 찬찬히 라리즈의 앞머리를 자르며, 조심스레 물었다.
“있지. 보육원장은 언제 한 번씩 여기 와?”
“…….”
“안 와?”
하지만 고개는 위아래로도, 좌우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딱딱하게 굳어 버렸을 뿐.
대답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보육원장이 정말로, 계속해서 아이들을 찾아오고 있다는 걸.
난 그런 아이들에게 푸념에 가까운 말을 뱉기 시작했다.
“그, 그래도 다행히 요새 보육원장 기분이 좋거든. 여기 올 때는 분명, 기분이 나쁠 때일 테니까. 내 말은 당분간 원장이 올 일은 없을 거란 거야.”
우리한테도 그랬다. 보육원장은 기분이 안 좋으면 아이들을 불러다 때리곤 했다. 어차피 그 인간에게 우린 돈줄일 뿐이니까.
“난 말이야, 보육원장에게 어떻게든 복수할 거야. 심지어 이번에는 애들을 다치게 하려는 것 같고.”
가위질하던 손이 멈췄다. 속에 묵혀 둔 울분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어쨌든, 아마 괜찮을 거야. 당분간 너희를 찾지 못하도록, 내가 잘할게.”
능숙한 솜씨로 라리즈의 눈을 찌르는 앞머리의 끝을 막 잘라 낸 그때, 라리즈가 몸을 움찔거렸다.
“정말? 이제 안 와?”
생소한 사람의 목소리다. 잘못 들었나 했는데, 이건 분명히 라리즈가 말한 것이다.
“……어? 너 마, 말했어?”
“…….”
하지만 아이는 금세 입을 다물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난 가위를 든 채 굳어 버렸다.
“너희…… 마, 말할 수 있는 거였어?”
짐승처럼 자라서 말 못 하는 거 아니었어? 당혹감에 입술만 달싹였다.
그런 나를 가만 보던 라리즈가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잘 못 해.”
“할 순 있었던 거잖아!”
라리즈가 짧게 자른 앞머리와 퍽 어울리는 화사한 웃음을 지었다. 아주 밝게.
“응! 말해!”
“하…… 이제껏 말 안 하길래 못 하는 줄 알았는데.”
“멍청이. 우리가 정말 말도 못 할 줄 알았어?”
그때. 로헨이 내게로 뚜벅뚜벅 걸어와서는 당당히 내 앞에 앉았다.
너무나 당당히 말하는 통에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거기에 멍청이라니.
“너희가 말을 안 했잖아!”
“……그렇긴 하지만. 거기에 말하냐고 묻지도 않았잖아!”
그랬나? 지금은 당혹스러워서 객관적인 판단조차 어려웠다. 당연히 말 못 할 거라 생각했던 애들이 둘 다 말하다니…….
“어쨌든…… 거기에 너는 또 왜 이렇게 말을 잘해?”
“라리즈도 원래 잘했어. 그런데 어릴 적에 독을 먹어서 못 하는 거야.”
그 말을 하는 로헨도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독을 먹은 건 로헨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런데도 억지로 말하는 걸 테고.
“그래도 요새는 많이 좋아진 거야. 가만히 있지 말고 내 앞머리도 잘라.”
“어, 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우물거리던 나는 기계처럼 움직여 라리즈와 똑같이 로헨의 앞머리를 잘라 냈다.
“근데 왜 말 못 하는 척한 거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다 됐어?”
자기 걸 맡겨 놓기라도 한 듯한 태도였다.
“으, 응. 다 했어. 그보다 말을 할 줄 알았다니.”
“그렇게 놀랄 일이야?”
“아니, 뭐…….”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은 했다. 대공의 핏줄은 생존력 강한 늑대의 핏줄이라고 했으니까.
어떤 독도 완벽히 들지 않고, 밥을 먹지 않아도 죽지 않고. 한겨울 폭설에 내다 놔도 건강할 뿐 아니라 습득력도 좋아 어려운 고서도 척척 읽는다고 했다.
‘하지만 교육 한 번 못 받은 아이들이 이렇게 말을 잘할 줄이야.’
“아! 그럼 혹시, 너희 이름도 알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