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와, 진짜 못돼 처먹은 인간. 어떻게 사람이 저러지? 말이 좋아 불쌍하게 만드는 거지, 어떤 생각인지 뻔히 보일 정도다.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애들을……!
마음 같아서는 어떤 일을 하려는 건지 정확하게 듣고 싶었지만, 어느새 그녀는 흥얼거리며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 바빴다.
그 순간 알았다. 이곳에 아무리 오래 있는다 해도 내가 더 이상 알아낼 수 있는 건 없다고.
‘쓰레기만도 못한 폐기물 같은 인간.’
이가 아득바득 갈리지만, 고작 여덟 살인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구원자도 아니고, 성녀도 아니다. 그렇다 해서 알고 보니 대단한 가문의 아이냐. 이것도 아니다. 내 부모가 누군지 나는 아니까.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스스로 살기 위해 소설 속 흑막들의 어린 시절을 소설보다 조금 낫게 해주는 것뿐이다.
‘그래도, 애들이 다치는 일은 막아야겠지.’
한동안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하며, 난 조심스럽게 쌍둥이에게 달려갔다.
***
한 번 와봤다고, 창고로 가는 길이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난 그때처럼 개구멍을 통해 창고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나를 경계했다. 그럼에도 난 뻔뻔스럽게 아이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쭈쭈. 걱정 마.”
나도 모르게 강아지 다루듯 혀를 찼는데, 예상과 다른 반응이 터져 나왔다. 입으로 으르렁거리던 아이가 입술까지 비죽이며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본 것이다.
“잠깐, 그 표정은 뭐야.”
“…….”
“안 준다?”
“으르……!”
“내가 이걸 구해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런데 그렇게 한심하다는 듯 날 보다니!”
아주 치사하지만, 지금도 아까 일만 생각하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난 아직까지 원장에게 직접적인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지만, 여러 일들을 당한 애들 말을 들으면 정말 살벌했으니까.’
원장에게 갔다 온 아이들은 대부분 한여름에도 긴팔을 입고 돌아왔다. 그 옷을 들추면 말도 못할 상태였고, 거동이 편치 않은 아이들도 많았다.
학대를 서슴지 않는 사람.
그 때문에 먼 곳까지 왔음에도 쉬이 진정되지 않는다.
“아휴…….”
그때.
내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표정을 굳히자, 내내 숨어 있던 아이가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아니야. 아니야. 겁먹지 않아도 돼.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이거 얼른 먹어.”
혹시나 겁먹을까 봐 최대한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내 미소에 쌍둥이들이 더 겁을 먹은 듯했지만.
‘내 얼굴이 그렇게 험악한가.’
입을 뾰족 내밀었던 난 주머니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어 쌍둥이에게로 던졌다.
그러자 한껏 경계하던 두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 내게로 성큼 다가왔다. 그러더니 빵부터 냉큼 가져간다.
“너희 말이야, 사실 다 알아듣는 거지?”
“…….”
아무래도 알아듣는 거 같은데, 내가 저런 말을 물을 때마다 쌍둥이들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보인다.
비 맞은 강아지들처럼 시무룩해져서는. 그 모습에 난 또 약해져 버렸다.
“너네 이게 뭔지 알아? 우유야, 우유.”
내 소중한 우유. 나도 잘 먹지 못하는 우유다. 얼마나 고소한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원장이 기분 좋아야 한 달에 한 번 겨우 먹는 우유를 보는 것만으로도 입에서 침이 뚝 떨어졌다.
“쓰읍.”
볼품없이 떨어진 침을 급히 닦아 냈다. 그런 소리는 또 어찌나 잘 듣는지 애들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나 아무것도 안 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내 침이 똑 떨어진 바닥을 향했다.
“아니라니까? 그 우유 먹고 싶어서 침 흘리는 거 아냐!”
“…….”
“어, 어쨌든 식긴 했지만 맛은 좋을 거야. 영양가도 있고. 대신 빈속에 마시지 말고 빵 다 먹고 마셔.”
민망한 마음에 떠들어 댔지만 아이들은 내가 던진 우유병을 쳐다보기만 했다. 심지어 발로 그걸 굴린다.
“아…… 손톱이 길어서 이걸 못 여는구나?”
마음 같아서는 저 손톱부터 좀 잘라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을 먹이는 게 우선이니까.
우유병으로 다가가 뚜껑을 연 뒤 우물거리는 아이에게 내밀었다.
“캬악!”
“와, 우유 따줬다고 고마워는 못 하고 그렇게 경계하기야?”
물론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내 손에 있던 우유를 냉큼 가져간 아이는 자신의 동생과 그걸 나눠 먹기 바빴다
“맛있지?”
“…….”
“……그래, 많이 먹어라.”
그때.
꼬르르륵.
내 배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방금까지 자기들 먹느라 바빴던 쌍둥이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 닿았다.
“시, 신경 쓰지 마. 나 원래 배에서 소리 잘 나.”
말은 그렇게 했어도 적어도 빵 한 조각은 떼어 줄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정말로 신경을 끄고 말았다.
조금 섭섭하기도 하고.
“뭐…… 너희가 잘 먹으면 된 거지.”
바닥에 무릎을 세워 앉아 턱을 괸 채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쌍둥이를 바라봤다.
여전히 기다란 손톱과 발톱이 눈에 밟혔다. 꾀죄죄한 얼굴도, 몸 곳곳에 난 생채기들도.
“……있잖아. 보육원장이 여기 와서 너희에게 막 대하는 거 맞지?”
“…….”
“보육원장이 누군지 모르려나? 그 곰 같은 여자 있잖아. 덩치는 산만 해가지고, 손은 프라이팬처럼 큰 사람.”
혹시 몰라 몸으로 보육원장을 흉내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원장이 걷는 것처럼 뒤뚱거렸다.
그러자 언제나 뒤에 있던 아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하, 역시…… 그 인간, 혹시 언제 와?”
“…….”
말을 못 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우선은 잘 먹이는 게 제일 중요하겠지. 그다음에 말을 가르치고, 아니다, 먼저 좀 좋은 환경을…….’
그때. 한숨만 푹푹 내쉬던 내 앞에 빵 하나가 툭 떨어졌다. 언제나 제 오빠의 뒤에서 조금은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던 동생이었다.
내가 자신을 바라보자 아이는 빵을 내려 두고선 후다닥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 뭐야, 나 주는 거야?”
“…….”
겨우 두 번 봤지만, 그때마다 낯을 가리던 아이였다.
“나 먹으라고?”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먼지털이처럼 보일 정도로 아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순간 가슴이 찡하니 아려 왔다.
“우리 이제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사이가 된 거야?”
물론 대답은 없었지만, 가슴속에 알 수 없는 감정이 가득 찼다.
이제까지는 그저 살기 위해 쌍둥이의 환심을 사야겠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아이들은 그냥 활자가 아냐.’
나쁜 짓을 저지르고,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소설 속 흑막이 아니다.
살아 있고, 감정이 있다. 누구보다 힘들게 살아왔으면서, 앞으로도 살아가기 위해 누구보다 애쓰는…… 애달프면서도, 인간으로서의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나, 결심했어.”
툭 내뱉은 말에 네 개의 눈동자가 빤히 나를 바라봤다. 너저분한 앞머리에 가려지고, 눈곱이 끼어 있었지만, 아직 반짝이는 빛을 간직한 눈동자였다.
“너희에게 그 누구보다 평범한 어린 시절을 선물할게. 아주 평범한 인간으로 자라게 해줄 거야. 그러니까 기다려. 나 또 온다!”
지금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다.
먹을 게 없다면 보육원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사과 농장에서 버려진 사과를 가져오면 된다.
또 마실 게 없으면, 직접 물을 길어 오면 되지.
이곳에 갇힌 채 짐승처럼 살아온 아이들보다야 내가 더 자유로우니까.
아직은 작기만 한 두 손을 꽉 쥐어 보인 난 그길로 창고 밖으로 나왔다.
***
“역시 인생은 착하게 살아야 해.”
나는 그동안 꽤 착하게, 적당히 잘 살아온 사람이었다.
보육원장은 먹을 건 제대로 주지도 않으면서 그 어린아이들의 노동력까지 착취했는데, 유난히 좋은 기억력 덕분에 난 다른 아이들보다 쉽게 맡은 일을 끝내곤 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아직 미숙한 아이들이 하려면 하루 종일 걸리는 일들로, 검에 매달거나 부채 끝에 매다는 용도인 수실이 바로 보육원 아이들이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보육원에서 만드는 수실은 말도 안 되게 빈약한 퀄리티를 자랑했다.
‘그럼에도 보육원장은 하루에 그걸 50개씩 만들라고 했지. 아이들 전부에게. 다 못하는 아이들은 굶기거나 혼내기도 했고.’
그리고 난 늘 그 일을 1등으로 끝내는 아이였다. 머리로 이해하니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남는 시간엔 힘들어하는 아이들 것까지 도와주기도 했다.
“여기. 내가 안 신는 신발이야!”
“고마워, 엘.”
“아냐! 헤헤, 아이샤 덕분에 언제나 내 손이 덜 아픈걸!”
그 때문에 이렇게, 아이들에게 오늘 치 수실을 만들어 주는 대신 바라는 물건들을 부탁할 수 있었다.
몇몇 애들은 옷이나 신발을 달라는 내 말에 궁금해했지만, 며칠 치 수실을 만들어 준다고 약속하자 냉큼 신발부터 담요, 커다란 보따리 등을 내 앞에 가지고 왔다.
‘그마저도 보육원장이 알까 봐 몇몇 아이들에게만 말했지만.’
어느새 내 앞 작은 보따리 안에 여러 물건들이 담겼다.
아이들이 가져온 보따리를 검수한 나는 미리 만들어 놓은 수실을 넘겼다.
“자! 여기, 너희들 건 미리 다 해놨어.”
“진짜 고마워!”
“아이샤가 최고다.”
“언제든 부탁만 해!”
“응. 대신, 내가 이런 거 가지고 오라고 했다는 거 들키면…… 알지?”
그 말에 엘의 절친인 리안이 어깨를 들썩였다.
“어, 어! 아, 알지. 아이샤가 혼낼 거야.”
“때릴지도 몰라.”
내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리안과 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욱하는 마음에 둘을 노려봤다.
“……나 그렇게 애들 막 패고 다니는 애 아니거든?”
“아냐. 저번에 아이샤가 옆방의 엘렌 패는 거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