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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3)화 (3/99)

-3화-

어차피 대답도 없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다시 개구멍으로 빠져나왔다.

혹여나 쫓아 나올까 걱정했지만, 쌍둥이들은 초콜릿 하나에 날 온전히 믿을 만큼 호락호락한 것들이 아니었다.

“뭐, 상관없어. 아무래도 흑막들의 어린 시절을 내가 좀 주물럭주물럭해야겠으니까.”

난 살고 싶다.

살아남아서, 번듯한 어른이 되어 이 보육원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만들어 준 보육원장에게 죗값에 맞는 대가를 선사해 줄 거다.

주먹을 꽉 쥔 난 호다닥 식품 창고로 뛰어갔다.

잠시 후 내가 나온 개구멍 쪽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명확치 않은 그 소리를 난 흘려듣고 말았다.

***

“이럴 줄 알았으면 멋있는 척은 하지 말걸.”

애들에게 떵떵거리고 나왔는데, 오늘 하필 나온 식사는 수프뿐이었다. 물에 가까운 그걸 챙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무언가 챙겨 갈 생각으로 기쁘게 식사 시간에 참여했던 내 얼굴은 절로 굳어졌다.

“아이샤! 아이샤, 안 먹을 거야?”

며칠 전까지 같은 방을 썼던 엘이 수프를 보며 굳어 있는 내 옆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안 먹을 거면 내가 먹어도 돼? 요새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엘을 천천히 살피던 난 수프 그릇을 옆으로 슥 밀어 주었다.

“그래, 먹고 싶으면 먹어. 난 생각 없어.”

“응응!”

“대신에 내가 먹었다고 하고 식기만 반납해 줘.”

“당연하지!”

해맑게 웃어 보이는 엘을 보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이유는 식사 자체가 너무할 정도로 별 볼 일이 없어서다.

‘이런 걸 먹으니까 배가 고프지.’

말이 좋아 수프지, 이건 수프 조금에 물을 잔뜩 탄…… 맹탕에 가까웠다. 건더기도 거의 없고, 영양가도 없다.

‘저런 쓰레기를 음식이라고 내놓는 보육원장이 제일 문제라니까.’

오죽하면 애들 취미가 흙에서 벌레 찾아 먹기일까.

이 와중에도 엘은 신이 난 듯 내가 먹던 그릇을 들고선 흡입하고 있다.

‘안쓰러운 엘. 아니, 보육원 애들.’

통통하기는커녕 정상 범주에 들어가는 애들조차 한 명도 없다.

그에 반해 보육원장은 아주 거대하다. 거의 곰처럼 느껴질 정도로 키도 크고 덩치가 좋다.

그럴 만도 하다. 보육원 아이들한테 먹이라고 들어온 후원 음식들은 모조리 보육원장이 다 먹어 치웠으니까.

‘나쁜 인간.’

보육원장을 떠올리며 씩씩대던 내 머릿속에 순간 번개가 치듯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맞다! 거기가 있었지!”

생각이 떠올랐으니 다음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떠오른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

그래서 난 뒷문으로 조심히 나왔다. 보육교사들에게 들킬까 봐 조심스러우면서도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조심스러운 것과 별도로 내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왜 그동안 거길 생각도 못 했을까.’

주방보다, 창고보다 음식들이 더 많이 쌓인 곳! 그건 바로 원장의 방이다.

사람이 생긴 대로 군다는 말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생긴 건 피도 눈물도 안 나올 것같이 생겨서 감수성 많은 사람도 있고, 누가 봐도 좋은 사람같이 생겨서 사기를 밥 먹듯이 치는 사람도 있으니까.

하지만 보육원장은 그 말을 싫어하는 내가 인정할 정도로 정말 생긴 대로 구는 사람이다.

콩 한 쪽도 남에게 주는 법 없을 정도로 얼굴 가득 욕심이 가득하다.

심지어 욕심 많은 보육원장은 자기 방에 쌓아 둔 음식이 썩어 나갈지언정 누군가에게 주는 법이 없었다.

간간이 제 비위를 맞춘 아이들에게 하나씩 던져 줄 뿐.

난 살금살금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때마침 보육원 중앙에 있는 시계탑 시계가 정각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무조건 방에서 나와 식당으로 향했지. 특히 오늘은 수요일이라 밖에 나가서 식사하는 날이기도 하고.’

기억력이 좋은 게 이럴 때는 빛을 발휘한다. 보통의 아이라면 신경도 쓰지 않을 테지만, 난 그녀는 물론 이 보육원 선생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보육원장의 방으로 향했다.

활짝 열려 있는 창문.

좀처럼 나오질 않는 그녀 때문에 보육원장의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곤 했다. 그 때문에 방을 정리하는 교사들은 점심시간만이라도 방문을 열어 두곤 했다.

도둑놈아 어서 오십쇼, 하는 것처럼 활짝 열린 문을 잠시 바라봤다.

“……이 나이에 도둑질이라니.”

도둑질이라는 생각에 조금 마음이 흔들렸지만, 내 미래를 위해서 그 정도 고민이야 금세 버렸다.

“지금은 아이들과 친해지는 게 우선이야!”

난 주린 배를 부여잡고 빠르게 원장의 방 창문을 넘었다.

그렇게 입성한 보육원장의 방.

역시나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아침에 막 구운 빵과 식은 우유, 여러 과일과 야채들이 든 샌드위치, 과자, 초콜릿바와 사탕 등 온갖 음식들이 쌓여 있었다.

“정말 욕심쟁이라니까.”

특히 책상 위에 놓인 빵은 근처 빵 가게에서 아이들 먹이라고 며칠에 한 번씩 주는 거였다. 물론 욕심 많은 보육원장은 그걸 우리에게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가만히 그곳을 살피던 난 손바닥만 한 빵 두 개랑 우유를 주머니에 넣었다. 아, 초코바 하나까지.

“괜히 욕심냈다가는 창문도 못 넘을 거야.”

욕심이 과했다가는 배탈만 날 뿐이니까.

아쉬움을 가득 안고 들어온 창문을 넘으려던 그때였다.

“정말 짜증 난다니까!”

갑작스레 보육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여기 왔다는 걸 들켰다가는 다시는 걷지 못할 정도로 얻어맞을 게 분명하다.

더럽게 운도 없어라. 어쩌면 하필 오늘 이 시간에 돌아온담.

등 뒤로 솜털이 오소소 돋는 듯한 기분이다.

‘차라리 숨을까. 몸이 조그마하니까…….’

하지만 숨었다가 원장이 이 방에서 나가지 않으면 난 이 방에서 아사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할 때, 다행히 보육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물론 그녀가 묻자마자 원장은 확 짜증 난 목소리로 성질을 냈지만.

“뭐? 내가 너한테 하나하나 말해야 해?”

“아,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갑작스럽게 돌아오신 연유가 궁금해서…….”

“닥쳐.”

“아아…….”

피식 코웃음 치는 원장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크게 들렸다.

“왜 또 내가 한 말에 상처받았다면서 너네들끼리 난리 치려고?”

“그건…… 그때 원장님이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얼마든지 하라 하셔서…….”

“멍청한 것들. 닥쳐. 보기도 싫으니까.”

“원장님…….”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점점 더 길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난 낑낑거리고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의 내 양쪽 주머니엔 우유와 빵에다 초콜릿바까지 넣은 상황이라 바로 창문을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지금이라도 차라리 방 안에 숨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벌컥, 방문이 벌컥 열렸다.

“네 목소리 자체를 듣기 싫어. 어디서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고 말이야. 짜증 나게.”

“워, 원장님…….”

“시끄러워! 넌 당장 가서 내 식사나 가져와. 아, 그렇지. 지난번에 애새끼들 먹이라고 들어온 소고기 있지? 그거나 구워 와.”

천만다행히도 신이 나를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건 아닌 듯, 방문이 막 열리는 타이밍에 맞춰 나는 창문을 넘는 데 성공했다.

살면서 이렇게 심장이 뛴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급히 넘어오느라 그대로 뚝 떨어진 엉덩이가 악 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아팠지만 꾹 참았다.

그때였다.

“잠깐! 이게 뭐야!”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보육원장은 내가 있는 창문 쪽과 훨씬 가까워졌다.

‘서, 설마 들킨 건가?!’

아주 조심히 기어서 이곳을 벗어나려던 난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고선 몸을 창문 아래 벽에 바짝 붙였다.

‘무슨 핑계를 대야 하지. 뭐라 해야…….’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다 못해 타들어 갔다. 누군가가 심장을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플 지경이다.

그리고 보육원장이 이상하단 걸 느낀 선생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왔다.

“무, 무슨 일 있으세요?”

“어! 무슨 일 있고말고. 이거 봐봐!”

그 순간 종이가 공중에서 휘날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건…….”

“눈이 있으면 보라고. 이거 안 보여? 이번에 애들 앞으로 들어온 후원금이 정말 하나도 없잖아?!”

“아. 그…… 그건…… 최, 최근에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아서요.”

“상황이 안 좋으면 너네들이 좋게 만들어야지. 월급은 공짜로 받아 가? 어?”

“아아…… 그게…….”

“돈 들어갈 구석이 많은 거 알아, 몰라?”

“후원이 들어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어찌해야 할지…….”

그 순간 무언가 때린 듯, 폭력이 가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넋 놓고 있으면 후원이 퍽이나 들어오겠네. 가만히 있지 말고 식충이들 일 시켜. 구걸이라도 시키…….”

“네……? 구걸이요?”

“아니야. 아니야. 더 좋은 생각이 났어.”

다른 의미로 짐승 같은 원장의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들킨 게 아니라는 안도감과, 인정이라곤 없는 원장에 대한 분노가 어지럽게 뒤섞였다.

“이참에 몇 명을 더 불쌍하게 만드는 건 어때? 지난번에 애들 중 하나가 다친 덕에 후원금이 꽤 들어왔었잖아.”

“그, 그건……!”

“그래, 그거야! 나는 천재였어! 그것만큼 후원금이 많이 들어오는 일은 없을거야! 내가 몇 명 뽑을 테니까 일단 걔들 잘 먹여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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