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하아…….”
“아우우우!”
난 여러 소리를 바꿔 내가며 날 위협하는 아이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은발인지 회색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는 머리칼은 잔뜩 떡이 져 있었지만, 소설에서도 묘사된 적 있는 푸른 눈동자는 또렷했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었다. 이 아이는, 소설 속 그 흑막 혹은 악녀가 맞았다. 빌어먹게도.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한숨과 함께 퉁명스레 내뱉었다.
“하나만 해. 너 개야, 늑대야?”
말하고 나니 좀 이상하기도 해서 다시금 되물었다.
“생긴 건 사람인데.”
가까이 다가가자 위험하단 느낌은 싹 사라졌다.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오히려 짐승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아이였다.
위협적인 상대가 나타나면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처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날것의 감정이 내게도 여실히 느껴졌다.
사실 저 발톱, 아니 손톱이 조금 위협적이긴 했지만 아이에게 날 공격할 의사 따윈 없어 보였다.
‘무서워하는구나.’
마치 부모를 잃은 동물처럼.
가슴 어딘가가 답답해졌다.
이곳이 소설 속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러 온 것뿐인데,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분명 나는 흑막과 악역을 엄청 싫어했는데.’
여주를 유난히 힘들게 하고, 남주의 삶을 고달프게 하는 그들을 욕하기 바빴는데.
아직 어리기만 한, 심지어 눈앞에 짐승 꼴로 나타난 아이를 보자 그냥 어이가 없어졌다.
“……? 잠깐만. 근데 혹시 너 혼자니?”
갑자기 떠오른 가능성에 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심히 말을 걸었다.
이 아이가 쌍둥이가 아니라 혼자라면, 그럼 소설 속 그 아이들이 아니게 되는 거니까!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앞에 있는 아이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네 발로 바닥을 기어 다니며 몸을 둥글게 말 뿐.
“대답 안 할 거야? 그것만 확인하면 나갈게.”
“으르…….”
“으음…… 어떻게 하면 대답하려나.”
말을 못 알아듣나? 아니면 대답하기 싫은 걸까.
하긴, 나여도 말 안 했겠다. 난 저들의 영역에 침범한 사람이니까.
외부인. 타인. 경계하는 이에게 경계를 풀게 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특히 굶주린 아이들에게는.
“하지만 이걸 줘도 말 안 할까?”
보스락거리며 품에서 초코바를 하나 꺼냈다.
마치 이렇게 될 걸 예상이라도 한 듯, 아침에 창고에서 초코바를 하나 훔쳐 왔던 거다.
훔치지 않으면 먹을 수도 없는 아주 귀한 초코바.
난 그걸 짐승 같은 아이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아까운 건 사실이라, 손이 덜덜 떨렸다.
‘내 소중한 초코바…….’
아쉬움에 손이 살짝 움찔거렸다.
‘아, 아니지. 쟤네는 초콜릿 같은 거 먹을 줄 모를 거잖아? 이걸 주는 것보단 다른 걸…….’
그 순간, 초코바가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한 듯 바닥을 향해 몸을 던졌다.
“아, 안 돼!”
놀란 마음에 소리를 버럭 지르며 떨어지는 초코바를 잡으려 했으나, 내 버둥거림으로 인해 초코바는 아예 아이에게로 튕겨 나갔다.
“…….”
“…….”
순간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어, 어차피 너 그거 안 먹을 거잖아. 그러니까…….”
“으르르…….”
하지만 내 기대를 배반하고, 아이는 자신 앞에 떨어진 초코바를 홀라당 가져가 버리고 말았다.
“아…….”
그뿐인가. 포장을 뜯지 못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아이는 기다란 손톱으로 포장지를 북북 찢어 냈다.
심지어 포장이 찢긴 기다란 초코바가 손가락으로 잘 잡히지 않자, 사냥에 성공한 강아지처럼 그걸 냉큼 입에 물기까지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이는 그걸 먹어 치우는 대신 불안하게 나를 바라봤다.
“……걱정 마. 그거 맛있는 거야.”
“…….”
“못 믿겠어?”
마치 말을 알아듣는 강아지처럼, 아이는 물고 있던 초코바를 포장지 위에 내려놨다. 그러더니 입으로 그걸 크고 작게 두 토막 낸 뒤 나를 빤히 바라본다.
“먹기 싫으면 내놔. 얼마나 귀한 초코바인데.”
“으르…….”
그러더니 손톱만 한 건 그대로 두고 큰 걸 냅다 문다.
“설마 지금 나보고 이걸 먹어 보라는 거야?”
내가 말하고서도 황당한 말이었지만, 짐승 같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먹어?”
“…….”
“허, 완전 억울해.”
내 소중한 초코바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기미까지 해줘야 하다니? 심지어 개가, 아니 아이가 입에 물었다가 뱉어 낸 걸!
내가 기미상궁이냐고!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별수 없이 난 작게 잘린 초콜릿을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아주 적은 양임에도 불구하고 초콜릿의 깊고 진한 풍미는 충분히 입안을 가득 채웠다.
“음. 맛있어.”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는 기분이다. 아이샤가 된 후 단 걸 거의 먹어 본 적 없었기에 그 작은 초콜릿으로도 온몸이 짜릿해졌다.
하지만 쟤들 앞에서 그런 표정을 보일 수 없기에 흠흠 거리며 괜스레 시선을 돌렸다.
“엄청 맛있어!”
과장한 듯 이야기했지만, 아이는 그런 내 반응에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했다.
대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참이나 나를 살폈다.
‘꼭 사냥감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는 개처럼.’
내가 멀쩡한 걸 확인하자 아이는 몸을 돌려서는 안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야, 어디 가!”
난 침 묻은 초콜릿까지 먹었는데!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들어 아이를 쫓아 물건들이 쌓여 있는 곳 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곳엔, 무언가를 뒤집어쓰고 있는 또 다른 아이가 있었다.
“어, 라…….”
초콜릿을 보고 빼꼼 고개를 내밀었던 아이는 내가 자신들을 바라보자 놀란 듯 급히 몸을 숨겼다.
“저, 정말 둘이었구나.”
“…….”
“이렇게까지 대답이 없는 걸 보면…… 사람의 말을 못 하나?”
묻고 싶은 게 가득하다. 특히 너희가 정말 대공의 잃어버린 쌍둥이가 맞는지. 하지만 아이들은 말하기는커녕 말귀를 알아듣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음, 있잖아? 난 그렇게 위험한 사람 아냐.”
알아듣는 거 같기도 하고, 못 알아듣는 거 같기도 하고.
“멍멍? 왈왈? 우쭈쭈……? 나는, 너희들을, 도와줄 수, 있다멍?”
대답이 있을 리가 없었다. 대신 아까 초콜릿을 물고 갔던 아이가 내 앞을 막아섰다. 마치 가까이 올 생각도 하지 말란 것처럼. 그 의도와 행동은 명확했다.
그래서 가까이 가는 대신 거리를 두고 둘을 살폈다.
둘 다 머리가 길고 얼굴을 제대로 보여 주려 하지 않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하는 행동만으로 대충 누가 누군지 구분이 갔다.
‘여기가 소설 속이라는 가정하에.’
방금 날 상대한 애가 남자인 로헨일 테고, 뒤에 있는 애가 여자인 라리즈일 테지.
언제나 그랬다. 소설 속에서 로헨은 언제나 라리즈를 보호했다.
‘사실 라리즈는 누구보다 강한 아이였지. 로헨보다 더 튼튼했고,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로헨은 자신의 동생인 라리즈를 언제나 안타깝게 여겼다. 그 때문에 로헨은 자신들을 찾아온 대공의 손을 잡고 먼저 보육원을 떠난다.
정체도 모르는 사람에게 라리즈를 보낼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라리즈가 혼자서도 무사히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뒤에 말이다.
가만히 소설 속의 이야기를 생각하니, 앞에 있는 애들은 뒤구르기를 하다 봐도 알아차릴 정도로 확실해져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희들이 맞는 것 같단 말이지.”
여전히 아이들은 말이 없었고, 난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곳이 소설 속인 게 밝혀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있지, 얘들아.”
혼자 연극이라도 하듯 대답 없는 애들을 향해 하소연을 시작했다.
“사실 난 꿈이 있어. 바로 보육원 원장이 되는 거지. 왜냐고? 못돼 처먹은 보육원장을 밟아 주려면 그게 직빵이거든. 그래서 난 너희를 꼭 구해야 해.”
허무하게 이 보육원과 함께 불타 죽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보육원장이 못돼 처먹긴 했으나, 당장 이곳을 떠나면 살길이 막막한 것도 사실이고.
거기에 보육원장이 하는 행태를 진작에 알아차린 나는, 내 장대한 꿈을 위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매우매우 바르게 컸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꽤 착했고, 동네 깡패…… 아니, 반장으로서 아이들을 케어까지 했으니. 원장을 비롯해 많은 어른들이 날 꽤 좋아하는 상태다.
그게 모두 단 하나를 위한 것이었다. 현 보육원장을 타도하고, 오래오래 살아남기 위해서.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고민했거든?”
그런데 답은 하나더라. 너희들을 잘 키우기.
주먹까지 꽉 쥐어 가며 결심을 내비쳤다.
‘그래서 나중에 찾아올 대공한테 보육원만은 무사히 남겨 달라고 부탁해야지. 보육원장의 재산을 모두 내 걸로 만들어 복수하기 전엔 이 보육원은 멀쩡히 남아 있어야 해.’
이를 아득아득 갈던 난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어. 내가 음식 가져다줄게.”
“…….”
여전히 대답은 없었지만, 내게 보이던 날 선 감정은 훨씬 덜해졌다.
역시 콩 한 쪽도 나눠 먹어야 친해지는 게 확실하다. 물론 콩 한 쪽이 아니라 내 초콜릿의 대부분을 다 빼앗겼지만.
가슴 어딘가가 쓰려 왔지만, 큰일을 위한 작은 희생이라 여기며 난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럼 나 갔다 온다? 기다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