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들을 너무 잘 키워버렸다 (1)화 (1/99)

-1화-

내 나이 8세.

우연히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고 말았다.

“저쪽 버려진 창고에 가면 개가 있대!”

“개가 아니라 사람이랬어. 막 물어 가지고 가둬 놓은 거래.”

“아냐, 개랬어. 막 아우우우 하는 소리도 들었다니까? 게다가 한 마리가 아니었어! 두 마리인가 봐!”

“멍청아! 개는 왈왈이지. 그건 늑대 소리잖아.”

“느, 늑대!”

평소라면 유치하다고 듣지도 않았을 보육원 아이들의 이야기가 문제였다.

아름드리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난, 애들이 속닥거리는 소리에 순간 등 뒤가 싸늘해졌다.

「보육원 창고에 갇혀 있던 버려진 짐승의 자식들.

알고 보니 그 아이들은 대공이 잃어버렸던, 아니 있는지도 몰랐던 쌍둥이였다. 문제는 보육원장이 그 아이들을 주기적으로 학대한 것.

결국 쌍둥이들은 어린 시절에 지독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됐고, 그건 그들이 소설 속 흑막으로 자라나는 기반이 되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참으로 미친 어른으로 자라 소설을 엉망으로 만드는 주범이 된다.

한 사람은 흑막, 한 사람은 악녀.

아이러니하게도 흑막이 사랑한 여인과 악녀가 지독히도 미워한 여인은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소설 속 여주인공이었고…….」

“난 그 흑막과 악녀를 지독히도 싫어했지.”

하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소설 속 내용이 왜 지금 떠오른 걸까?

왜 내가 소설 속에 들어온…… 보육원 아이 8번 정도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걸까!

마치 덮여 있던 책이 펼쳐진 듯, 기억은 실마리가 보이자마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필 그 애들이 어린 시절 보육원 창고에 갇혀서 개 취급 받은 것까지 다 기억나 버렸어. 소름! 심지어 두 아이에게 악몽 그 자체였던 보육원이 산드라 보육원이고, 악마 같은 보육원장이 세릴 산드라라는 것까지!’

바로 내가 있는 이곳이 산드라 보육원이고, 보육원장은 세릴 산드라다.

“절대 아니겠지? 이건…… 내가 너무 과민 반응 하는 거겠지?”

그래, 세릴 산드라라는 여자가 보육원장인 산드라 보육원이 여기 말고도 다른 데에도 있는 게 분명……할 리가 있나!

그렇게 우연에 우연이 겹쳐 이 나라 안에 똑같은 이름을 지닌 보육원과 원장이 있을 리가 없잖아!

나는 당장 보고 있던 책을 덮고 보육원 아이들 사이로 뛰어갔다.

갑작스레 내가 뛰어오자 놀란 듯 아이들은 한 발씩 물러섰다.

“아이샤 왔어?

“어. 왔어. 그런데 너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보육원에 늑대가 있다고?”

“응!”

“어디에? 어디에!”

“역시! 아이샤도 이런 거 궁금하지?”

맨날 별 시답잖은 걸로 날 귀찮게 하던 남자애가 내 답답한 속도 모르고 턱을 쭉 빼며 잘난 척을 해댔다.

“됐고, 어딘지 빨리 말해.”

“알았어. 대신 아이샤는 연약하니까 내가 데려다줄게!”

순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남자애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윽…….”

“멍청이. 나 안 약하거든?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하면 아주, 혼쭐날 줄 알아. 나보다 약한 게 어디서!”

버럭 소리를 지르자 남자애는 움찔거리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 알았어…….”

“그래서 어디야? 늑댄지 개인지 있다는 곳!”

“저, 저기. 숲으로 가는 길에 있는 버려진 창고…….”

“깡패라니까, 깡패. 으으.”

몇몇 애들이 내 행태에 혀를 내둘렀지만, 난 그들을 뒤로하고 버려진 창고로 향했다.

걔들까지 신경 쓰기에는 마음에 미친 듯이 불안감이 엄습해 왔으니까.

“안 되는데. 여기가 소설 속이면 안 돼, 절대 안 돼……. 난 죽고 싶지 않다고!”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난 기억력이 좋다. 태어나 눈앞이 보이기 시작한 그때부터 모든 일들을 다 기억할 정도니까.

당연히, 부모란 작자들이 날 버린 순간도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런데 그런 내게 유난히도 묘한 기시감을 주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이 산드라 보육원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이 보육원에 버려져 쭉 자라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설마 소설 속이어서 그랬다니. 어쩐지…… 어쩐지 심히 낯이 익더라니!”

빌어먹을. 망할. 욕지거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여기가 소설 속인 게 말이 되냐고 거듭 부정해 봤지만, 버려진 건물로 달려가는 사이 속속 떠오른 기억들은 순식간에 원래 기억과 융합되어 하나가 되었다.

“망할.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여긴 소설 속인 거 같아. 하아. 하필…… 그 소설 속이냐.”

소설 속에서 쌍둥이의 비중은 꽤 컸다.

제국에 단 하나뿐인 대공에게는 대공비가 있었는데,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항간에는 대공이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심지어 매일 다른 여자와 밤을 보낸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상황에서 이름도 모르는 여인 하나가 대공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소설을 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테지만, 소설 속에선 이 부분이 정확히 명시가 되어 있었다.

「대공비는 이름도 모를 여인을 빼돌린다. 그렇게 열 달이 지난 후, 이름도 모를 여인에게서 태어난 쌍둥이를 본 대공비는 절망했다. 그들이 대공과 너무나도 꼭 닮았으니까.

‘징그러워. 이딴 것들을…… 이딴 것들은 다 죽어야 해! 내 아드님이 대공가를 이어야만 해!’

명백한 적의를 어린아이들에게 표출하던 대공비는 점점 더 미쳐 갔다.」

비슷한 시기에 임신에 성공한 대공비는 5년 만에 아이를 가진 상태라 더 예민했다. 자신의 아이와 몇 달 차이 없이 태어난 쌍둥이들에게 그녀는 모진 학대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혹여나 대공에게 들킬까 두려웠던 그녀는 수도와 꽤 떨어진 이곳 산드라 보육원에 많은 기부금과 함께 태어난 쌍둥이를 보내 버린다.

절대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는 당부, 아니 협박과 함께.

사실은 죽이려 했던 거지만, 대공의 피를 강하게 이어받은…… 짐승이라 불리는 핏줄을 타고난 아이들은 무슨 짓을 해도 죽지 않았다.

며칠을 굶겨도, 독을 먹여도 아이들은 살아남았다.

결국 대공비는 대공이 아이들을 찾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주 먼 곳으로 보내 버린 거다.

그러나 쌍둥이가 일곱 살이 되는 해, 대공은 결국 아이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여길 불태워 버리지. 피도 눈물도 없는 미친놈이라 다른 애들은 쳐다도 안 보고 다 죽여 버렸어.’

내가 알게 된 이상, 절대 그렇게 둘 순 없지.

난 작은 손을 꽉 쥔 채 숨이 헐떡거릴 만큼 뛰고 또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창고 앞.

지키는 사람은 없지만, 굵은 쇠사슬로 꽁꽁 묶인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유난히도 굵고 단단한 자물쇠가 다섯 개나 달려 있었다.

“누가 봐도 수상쩍잖아.”

단풍나무 잎을 닮은 작고 통통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진짜라고……? 진짜 걔들이 여기 있는 거야?”

오면서 혹시 모를 기대감을 가졌다. 내가 과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고. 이곳이 소설 속이 아니라고. 하지만 아니라고 우기기에는 모든 게 내가 아는 소설 속 내용과 척척 맞아떨어졌다.

“젠장…… 이러면 확인을 안 할 수가 없잖아.”

잠시 주변을 살피던 나는 창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이방인의 등장을 알아차린 건지 안에서부터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우우우!”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것처럼.

자고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 더 들어가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욕망.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혹시 모르잖아? 이 세계에 소설과 똑같은 이름의 보육원과 보육원장이 있고, 때마침 창고에서 개를 키우고 있는 걸지도!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란 것도 어쩌면 어릴 적 책에서 본 걸 짜깁기한 걸지도 모르고.’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어린아이 하나 들어갈 정도로 작게 나 있는 개구멍 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이럴 때는 원장한테 고마워해야겠네.”

개구멍은 어린아이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 작았다. 만약 보육원장이 ‘정상적인 식사’를 제공해 왔더라면 아마 꽉 끼어서 못 들어갔을 거다.

다행히 원장은 겨우겨우 살 만큼 적은 식사만 내주었고, 덕분에 그곳에 들어가는 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후우.”

낑낑거리며 겨우 안으로 들어온 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순간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 이런 곳에서…….”

천장은 높았으나 빛이 들어올 만한 곳은 작은 창문 정도였고, 그 탓에 겉보기보다 안쪽의 환경이 더 열악했다.

이곳저곳에 물건들이 어질어져 있었고, 공기 속엔 먼지가 가득했다.

그때.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온 이방인에게 놀란 건지, 구석에서 누군가 으르렁거리며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겪어 본 적 없는 날짐승 특유의 감각이 날 스쳐 지나갔다.

위험해. 이건 인간이 아니야.

위험 경고가 울렸지만, 난 물러서지 않고 네 발로 기어오는 짐승을 바라봤다. 창이 작다고는 하나 쨍쨍한 낮인지라 창고 안의 모습을 보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으르르르…….”

짐승 소리를 내는 아이의 모습도 또렷이 보였다.

그동안 얼마나 방치되어 있었는지 보여 주듯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고, 손톱은 당장 깎아 주고 싶을 만큼 길었다.

심지어 입고 있는 옷들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근처의 포대 자루를 대충 구멍 내서 입은 듯 허름하기 그지없었다.

짐승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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