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아이돌-23화 (23/27)

23.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지키는 방법

밤마다 따로 연습하겠다며 사라지더니 그것이 드디어 빛을 보는구나.

감격스러운 마무리를 한 후, 인사를 하고 산을 내려가기 전에 나는 산신령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뒤로 영원의 아이들과 산신령이 대화를 나누는 틈을 타, 나는 조용히 제자를 향해 속삭였다.

“이곳에 사는 소리의 신은 당신이죠?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어찌 아셨습니까?”

나는 미소 지었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맞잡은 손을 흔들다가 나는 그의 손에 금반지 두 짝을 올려 주었다.

“노래를 주신 대가입니다.”

그는 다시 반지를 돌려주었다.

“제가 머릿속 음악들을 기록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고수님께 드리지요. 제가 그분께 입은 은혜가 많습니다.”

“그런데 왜 저분을 고수라고 부릅니까? 저분은 아무것도 안 하시던데.”

“제 목숨을 살려 주신 분입니다. 저분은 고수가 맞습니다.”

“어떤 고수라는 겁니까?”

“방금 말하지 않았습니까? 목숨을 살려 주는 고수라고.”

그는 반지를 쥔 채, 내게 빛나는 눈으로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온전히 다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더는 캐묻지 않았다.

“후에, 다시 노래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오십시오.”

나는 그의 말에 싱긋 웃었다.

“후속곡도 꼭 당신에게 맡기지요.”

노래에 자신감을 얻은 아이들과 함께 남사당패를 찾아 마을로 향했다.

* * *

도착하자, 주막 평상에서 전처럼 늘어져 있는 그들을 발견하고는 나는 당당히 가서 말했다.

“그 신을 만나고 왔소.”

남사당패 중 한 명이 우리의 몰골을 보고는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그 험한 곳에 다녀온 사람들치고, 상태가 좋은데?”

맑은 물에서 씻고 자고 생활하다 보니 피부가 좋아져 있었다.

그리고 밤낮 가리지 않고 혹독한 복식 호흡 트레이닝으로 아이들의 몸도 다시 전성기처럼 컨디션이 돌아와 있었다.

꼭두쇠 털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물었다.

“노래를 가져왔단 말이오? 풀피리나 불다가 올 줄 알았는데?”

“다녀오신 적이 있는 모양입니다?”

내 물음에 꼭두쇠와 단원들이 낄낄 웃었다.

“그렇지. 그리고 노래를 준다고 했다가 순식간에 흥얼대고는 줬다고 우기지 않소?”

어찌 된 일인지, 대충 파악은 되었다.

다행히 로버트가 그 음을 따고 계속 기억했고, 이제는 제자가 작곡한 곡을 종이에 적어 주기까지 했으니까.

“그렇소, 그리고 이렇게 악보도 받아 왔소.”

내가 펴 든 종이를 보자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노래를 알아듣지도 못하는 놈에게는 노래를 줄 수 없다고 그 늙은이가 역정을 내며 지팡이를 휘두르던데?”

“어쨌거나 우리는 받아 왔소, 약속대로 춤이나 기술을 내어 주십시오. 우리가 노래를 받아 온 과정도 결코 쉽지는 않았으니.”

훤의 말에 꼭두쇠가 허탈한 듯 웃으며 작게 읊조렸다.

“이것 역시, 차별을 하는 것이지.”

“무슨 소리요?”

내 물음에 그가 단원들에게 외쳤다.

“다들 집합해 보거라!”

단원들이 다 모이고 우리는 그 앞에서 산에서 받아 온 노래를 불렀다.

“그러니까 이 음이 이 음표라는 말이지?”

꼭두쇠가 여러 번 물어볼 때마다 나는 세세하게 잘 알려 주었다.

“이 음악을 기반으로 춤을 짜 주시오. 내 보수는 넉넉히 쳐드릴 테니.”

내 말에 꼭두쇠가 웃었다.

“그러지. 그런데 노래를 좀 몇 번 더 불러 줄 수 있겠소?”

“지금 벌써 세 번째가 아니오?”

열하의 투덜거림에도 꼭두쇠는 전과 달리 거만 떨지 않고 우리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노래를 외워야, 춤도 그에 맞게 잘 짜 줄 수 있는 것 아니겠소?”

어차피 그가 만든 춤을 그대로 쓸 생각은 없었지만,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아이들에게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하나, 둘, 셋!”

내 큰 목소리에 맞춰 아이들의 음색이 저마다 모여 하나의 층을 쌓아 나갔다.

전과 달리,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후로는 불안한 고음 처리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장점을 살려 파트를 분배할 수 있었다.

서로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들은 훈련 덕분이었다.

노래를 듣는 꼭두쇠의 눈이 희번덕 번쩍였다.

나는 그를 예의주시하며 바라보았다.

노래가 끝나자 꼭두쇠가 박수를 치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젠 나도 노래에 대해 좀 알겠소.”

꼭두쇠가 발을 구르며 박자를 만들자, 단원들이 전과는 달리 희미하게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의 퀄리티와는 매우 달랐지만.

“잘 부르시는군요, 다들.”

내 말에 꼭두쇠가 웃음을 지었다.

“춤은 오늘부터 바로 준비해 드리겠소. 자, 선금을 주시구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춤을 받은 후에 드립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돈은 무조건 드리니 걱정 마시고 재능을 다 펼쳐 주십시오.”

내 말에 그가 입술을 삐죽였다.

“이 바닥은 먼저 돈을 받는 법인데…….”

“후지불이 맞긴 하지만, 이 돈으로 서로 신뢰를 쌓을 수만 있다면 드리죠.”

나는 털보의 손 위에 금가락지 하나를 올려 주었다.

그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말을 마치고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오는 길에는 이상하게도 계속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누이, 우리 이제 노래도 있으니 춤까지 완벽히 있으면 정말 그 대회에 나가서 날아다닐 것 같지 않우?”

별호가 신이 나 말하자 현명이도 맞장구를 치며 즐거워했지만, 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 기색을 눈치챈 열하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내게 속닥였다.

“저들은 아무래도 기운이 우리와는 맞지 않긴 하오.”

“무슨 기운?”

훤이 옆에서 덧붙였다.

“춤보다는 노래에 어째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는 말이지.”

나는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도 사업의 기본은 신뢰니까 믿을 수 없어도 먼저 믿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도 내게 신뢰로 임할 것이니.”

내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그저 끄덕였다.

우리의 뒤에 따라오던 로버트가 멈춰 서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혼잣말을 했다.

“한 장이 모자라! 페이퍼 어디 갔지?”

그 말을 우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고, 며칠간 다디단 휴식을 취했다.

춤을 주기로 약속한 기한이 다가와 나는 영원과 함께 노래에 어울리는 복식을 마련하기 위해 시장에 들렀다.

장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북적였다.

별호가 한 상인을 잡고 물었다.

“오늘따라 왜 이리 시전이 북적거리오?”

“저기 가운데 저잣거리에 남사당패가 왔다지 않소? 전과 달리 사람들이 엄청 붐비네그려. 손들이 많아지니 나도 좋고. 댁들도 가서 한번 보시게.”

남사당패의 공연이라면, 그 털보가 진두지휘하는?

공연을 여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다급해졌다.

열하가 흔들리는 눈을 한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이들과 나는 조심스레 공연이 열리는 저잣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워지자, 익숙한 멜로디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노래들.

산에서 받아 왔던 그 음들이었다.

대체 일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대표 누이!”

뒤에서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인파를 헤치고 무대 앞으로 나아갔을 때,

나와 눈이 마주친 털보가 히죽 웃으며 크게 노래에 맞춰 상모를 돌렸다.

“얼씨구!”

추임새와 함께.

노래의 멜로디는 분명히 우리의 것이 맞았지만, 그 노래에 저들의 사물놀이의 리듬을 입혀 신명 나게 풍악풍의 노래로 변경한 것이었다.

단원들이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르자 사람들이 놀람을 금치 못했다.

“새로 듣는 노래인데, 아주 대단하이.”

“그러니까. 아주 입에 착착 붙는 것이 따라 부르게 되는구먼?”

그들의 무대가 마치고 나는 꼭두쇠에게 다가가 물었다.

“예행연습이라면 저희에게 허락을 받고 해 주셨으면 좋았겠는데요.”

털보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연습이라니? 우리는 우리 공연을 했을 뿐이오.”

“왜 이러십니까? 제게 선수금도 받아 가시지 않았습니까?”

나는 털보의 목에 걸린 실에 꿴 금반지를 가리켰다.

“춤은 알려 줄 것이오. 그런데 보자 보자 하니, 우리가 노래를 훔쳤다는 증거가 있소?”

“증거……! 증거라니!”

저작권 보호법도 없고, 우리 노래가 우리의 것이라는 증표는 사실 아무것도 없긴 했다.

시시비비를 가리기엔 우리가 먼저 노래를 대중 앞에 선보인 것도 아니었으니까.

선빵 필승인가.

그래도 나는 악보를 꺼내 들었다.

“이 악보가 우리에게 있지 않소? 원작자도 우리에게 곡을 주었다고 관아에 증언해 줄 것이오.”

털보가 피식 웃었다.

“그 악보라면 내게도 있다. 그리고 그 원작자라는 작자의 말을 믿을 만 한 것이 맞겠느냐? 너희가 그곳에 오래 머물면서 그에게 무엇을 주었을지 우리가 알 게 뭔가? 돈부터 시작해서 몸까지 내주었을지도 모르지.”

“네놈이!”

털보의 빈정거림에 뒤에 있던 훤이 나서려 했다.

“뚫린 것이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게냐!”

나는 그를 손으로 막아 저지했다.

“당신과 우리의 신뢰 관계는 끝이 났고 절대로 다시 이뤄질 수 없을 겁니다.”

로버트가 털보의 손에 든 악보를 서둘러 빼앗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원한다면 가져가거라. 그런데 음악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란 말이지.”

그는 주먹을 쥐었다.

“보이지 않는 음악을 빼앗겼다고 어디 관아에 가서 울어 보거라. 춤도 마찬가지지. 종이에 먹을 갈아 일일이 다 그린 것이 아니면 그게 누구의 것이겠느냐?”

맞는 말이었다. 무형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그래서 부단히도 한국의 사람들은 애를 써 왔다.

무형의 가치에 대한 법을 만들고,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 주고.

그곳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곳은 달랐다.

* * *

언젠가, 작은 연습실에서 아원은 아이들과 함께 큰 소리로 박수를 치며 리듬을 맞춰 나가고 있었다.

곁에는 이름난 안무가가 있었지만, 실상 스튜디오는 초라하기만 했다.

“아원아, 스튜디오를 옮길 여유가 아예 없는 거야? 내 스튜디오를 빌려준대도.”

“아니에요, 애들도 저도 여기가 편해요. 어차피 매일 연습하는데, 언니네 연습실을 계속 쓸 수도 없고요.”

작은 기획사부터 시작했기에, 자본이 없어 시작은 미미했다.

그리고 첫 데뷔곡은 뜨지 못했다.

발표는 영원이 먼저 했지만, 한 정상급 아이돌이 그 노래의 표절곡을 발표해 국내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고 언론에서 그 노래가 ‘영원’의 데뷔곡이었다는 기사가 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얼마 없던 팬들의 힘이었다.

인터넷의 커뮤니티를 활용해 표절곡이라는 것을 알렸다.

언론에서는 먼저 작곡가와 접촉했고, 대형 기획사에서는 그 작곡가를 자기네 전속 직원으로 채용하는 조건과 다른 파격적인 보너스를 약속했다.

믿었던 작곡가 동생에게서 미안하다는 대답을 들은 후, 아원은 그제야 언론에 심경을 밝혔다.

“동일한 작곡가의 작품이었으니, 이런 일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영원’의 노래가 조명받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또한, 탐릿에게 감사드립니다.”

다행히, 언론에서는 초연하고 부드러운 아원의 대처를 좋게 봐 주었다.

그러면서 역주행 신화가 조금씩 생겨나는 물결이 일었지만, 사실 그 때의 추억은 아원에게는 뼈아픈 기억이었다.

자신이 못나서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방어를 해 주지 못하고 고작 작곡가를 빼앗기는 것이 다였으니까.

대형 기획사만큼 좋은 대우를 해 줄 수 없었으니, 그녀는 작곡가를 보내 주었다.

“미안해요 누나.”

그 과정을 지켜봤던 영원의 멤버들이 이를 악물고 다시 연습에 정진했던 것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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