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인생은 선택의 연속
현명이의 옷깃을 꾹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버둥대며 내 팔을 쳐 내려 하는 녀석을 더욱 강하게 잡아 냈다.
“놔요! 놓으라고!”
너, 원래 이런 애 아니었잖아.
왜 이 시대에서까지 이런 모습을 보이니.
* * *
서울에서 현명이와의 첫 만남도 썩 그림이 좋지는 못했다.
골목 한구석에 숨어서 몰래 담배를 피우고 있던 교복을 입은 녀석을 보고는 내 오지랖이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탓이었다.
괴롭힘을 당한 것인지 교복이 헝클어져 있고 하얀 와이셔츠에는 신발 자국이 묻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애의 손에 들려 있는 담배를 빼앗아 밟고 다른 손에 든 담배와 라이터로 불을 붙여 한 모금 깊이 빨아들였다.
“나 꼰대 맞는데, 이런 거 좀 나중에 피워요. 지금은 아직 계속 자라고 있잖아요? 중독이라는 게 되게 떨치기 어렵거든. 어린 나이에 미리 중독을 겪을 필요가 있나 싶네.”
내 말을 듣자 녀석은 작게 한숨을 내쉰 채 바닥에 떨어진 가방만 주워 들고는 등을 돌려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차림으로 어디를 가나 싶어, 그 옷자락을 잡았던 게 나였다.
엄마가 걱정하지 않겠냐고, 찢어진 교복을 주변의 교복 상점에 가 새로 해 입혔다.
그러고 나서는 밥을 사 주었다.
천천히 숟가락을 들어 올리던 녀석이 내게 말했다.
“신세 진 돈 제가 꼭 다 갚을게요. 연락처 좀 알려 주세요.”
나는 싱긋 웃으며 명함을 내밀었다.
WON 엔터테인먼트 사장 서아원.
명함을 본 녀석은 눈이 동그래졌다.
“영원? 그 그룹 맞죠? 요즘 반 애들이 몇 명 듣기도 하던데.”
“맞아요.”
눈을 반짝이며 현명이가 내게 소리를 죽인 채 조심스레 말했다.
“저도 사실 영원 같은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현명이에게 오디션 기회를 줬던 것은 동정 때문이 아니었다. 분명 그 아이에겐 운도 있었지만, 실력이 있었다.
그 애는 일주일에 몇천 원씩이라도 돈을 갚겠다며 전화를 해 왔다.
“어른이 되면 갚아.”
내 말에도 계속해서 문자로 계좌 번호를 알려 달라고 성화를 부리기에 회사에 와서 직접 얘기하자고 했다.
회의 일정이 늦어져 조금 시간을 늦출 수 없겠냐고 연락했지만 현명이에게서는 답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회사 로비에 일찍 도착한 녀석을 보고, 우리 직원이 오디션을 봤던 것이었다.
“대표님, 걔 진짜 보석이에요. 목소리에 한이 서려 있다니까요? 비주얼도요. 지금 영원에 없는 미소년 비주얼이잖아요.”
이제야 대중에게 조금씩 눈도장을 찍고 있는 영원이었다. 그런데 새 멤버를 넣는다니. 내게는 새로운 모험이었다.
하지만 직원의 말도 틀린 부분은 없었다.
영원에는 무엇인가 하나가 아쉬웠다.
막내 라인.
현명이는 얼핏 보면 여자로 헷갈릴 정도로 얼굴이 아름다웠다.
가정 형편이 너무나도 어려워 행색을 정돈하지 못했을 뿐, 내가 몰래 학교를 통해 지원을 시작하자 아이는 몰라보게 나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현명이는 약 6개월의 연습생 생활 후, 영원의 막내가 되었다.
내가 기회를 준 것은 아니었다.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튀었으며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니까.
멤버들도 유난히 많은 연습생들 중 현명이와 죽이 잘 맞았고.
처음에는 팬덤에게 미움을 받았지만 특유의 가련한 분위기와 우수에 찬 눈망울로 적을 편으로 돌린 녀석이었다.
기특한 아이. 그리고 착한 아이.
하지만 그 유약함으로 자신과 우리 회사까지 망가트렸다.
* * *
주마등처럼 스치는 기억들과 함께 공연이 끝나자 돌아가는 인파 속에서 나는 그렇게 현명이의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았다.
“난 네게 할 말이 있어. 어디 갈 생각 마.”
내 말에 현명이는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달았다.
“집에 가야 한다고요. 어머니가 기다리신다니까요.”
내가 놓지 않고 계속 가만히 현명이를 주시하고 있자, 주머니를 뒤지더니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가져다 대었다.
짜악!
나는 현명이의 뺨을 내리쳤다.
“지금 그걸 감히 입에 갖다 대? 미쳤어?”
내가 불같이 화를 내자 곧이어 영원이 모두 달려왔다.
“오 마이 갓.”
“무슨 일이오?”
“누이, 애한테 왜 그러오? 무섭소.”
나 대신 그 아이의 손목을 강하게 쥔 훤이 물었다.
“너 이 담바구, 어디서 났느냐?”
현명이는 눈물을 흘리며 더듬더듬 말했다.
“집에 아픈 사람이 있습니다. 병환이 깊어 시전 바닥을 돌아다니던 중, 한 사내가 주었고. 이 약을 한번 써 보면 분명 병이 나아질 것이라고 했소.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걸 나눠 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소.”
‘아편 같은 건가?’
진통제로 이용되었던 아편처럼, 붉은손버섯도 그렇게 쓰이는 것 같았다.
“이 약을 준 자의 얼굴을 기억하느냐?”
훤의 물음에 현명은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다.
“모르오. 얼굴에 복면을 쓴 채로 나타났소. 그리고 사람들한테도 나눠 주라고 했소. 많이 줄수록 내게도 이 약을 많이 주었고.”
훤은 열하와 시선을 교환했다.
“이놈을 잡아넣어라.”
열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미 이런 녀석까지 공급책이라면 실로 큰일이 난 게지.”
현명이는 겁에 질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포승줄로 현명이를 묶으려는 열하의 손을 제지하며 나는 앞을 막아섰다.
“지금은 아직 때가 아냐. 이 애가 꼬리인데, 당장 잡아들였다가는 머리는커녕 몸통도 잃게 돼.”
열하는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이놈을 어쩌오?”
아직은 때가 아닌 듯했다. 처음부터 반감을 지닌 아이를 우리의 멤버로 넣는다고 한다면 녀석들의 반대가 심할 터였다.
“너희 집으로 가자. 내가 내일 다시 찾아가든지 해야겠어.”
별호와 열하가 양옆에서 현명이를 끼고 로버트가 현명이의 보따리를 빼앗아 들었다. 훤은 내 옆에서 마약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 왔다.
“증상이 심해지면 눈물도 흘리고 방에 처박혀 무기력하게 있는 것이 맞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해지면 더한 상황까지도 간다는 것을 말하자 훤의 표정은 더 심각해졌다.
도착한 현명이의 집은 생각보다 더 초라했다.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안에서는 콜록이는 기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인기척을 듣고 안에서 중년의 여성이 밖으로 나왔다.
“현명이, 이제 오누?”
열하와 별호가 서둘러 현명이를 붙잡고 있던 팔을 놓았다.
“네, 어머니. 늦은 시간인데 주무시지 않고요!”
현명이가 눈물 자국이 흐른 볼을 쓱쓱 닦고는 방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우리에게 물었다.
“댁들은 누구요? 우리 현명이를 아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저희는 친구, 아, 동무입니다.”
여자는 인자하게 웃으며 방에 들어오라고 했다.
주춤대는 녀석들을 끌고 올라온 방은 생각보다 더 작았고 흙 부스러기가 계속해서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누추하지만, 내가 요 근래 몸이 좋지 않아서 말이오.”
현명의 어머니가 무언가 찾으려 짚으로 꼰 바구니를 들추자 현명이 소리쳤다.
“어머니, 손님이 왔으니 좀 나중에요…….”
어머니가 씁쓸히 웃었다.
“그래도 그걸 하면 고통이 싹 가시는 것 같아서. 오늘도 가져왔니?”
현명이가 로버트가 둘러멘 보따리를 힐끔 보았다가 시선을 피했다.
“아니요. 어머니, 그거 약 아니래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현명의 어머니가 손을 살짝 떠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쥐었다.
“내일 의원을 불러드릴 테니, 병환에 대해 상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서울에서 현명이는 연습생 때부터 나 모르게 최혁재의 도움을 받았다.
어머니의 병환까지 내게 신세 질 염치가 없어 최혁재에게 높은 이율의 돈을 빌려 왔다.
그리고 최혁재는 그 아이를 이용했다. 고리대금처럼 불어난 이자는 영원의 활동을 하면서 갚아 나가도 끝이 없었다.
내가 그 상황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우리의 결말이 달랐을까?
나는 감옥에서 이 모든 것이 현명이를 잘 챙기지 못했던 대가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더는 그런 실수를 반복할 수 없었다.
내 손을 잡은 현명의 어머니는 고개를 숙였다.
“잔기침이 많이 나고 호흡이 가쁘고 심장이 옥죄는 듯 아프시다는 거죠?”
나는 바구니에 조금 남아 있던 끔찍한 검은 덩어리까지 집어 들었다.
어머니와 현명이의 눈에 아쉬움이 비치는 것을 보았으나 나는 강하게 말했다.
“제가 이것을 가져가도 되겠죠? 내일 의원이 온 뒤, 치료를 받으시고 주막에 꼭 오세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까요.”
현명이와 어머니를 두고 돌아오는 길에 별호가 투덜대었다.
“그런 나쁜 약이나 하는 놈을 누이는 뭐가 예쁘다고 돌보오?”
“맞아. 사실 저런 건 그냥 당장 데려다가 곤장을 쳐야 하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아이의 말을 아까 함께 들었잖아. 사정이 있었어. 모르고 짓는 죄가 있다. 그리고 약을 우리에게 다 반납하지 않았니.”
로버트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 친구, 힘들어 보여.”
훤은 생각이 복잡해 보였다. 로버트의 흰 보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날이 밝자, 주막에는 현명이와 어머니가 찾아왔다.
바쁜 와중에도 그녀와 현명이를 방 안으로 따로 모셨다.
“어머니, 오늘 맥을 짚어 보시니 좀 어떠셨습니까?”
그녀의 혈색은 한결 나았다.
“보약도 지어 주고 약도 주었소. 그런데 그, 듣자 하니 현명이가 우리가 피우던 그것이 나쁜 약이라던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계속한다면 중독되어 건강을 깊이 해치게 됩니다.”
현명이 모자가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편하게 먹으라며 문간을 나섰다.
그런데 훤이 벽에 기대어 있다가 내 손을 잡아끌고는 뒤뜰로 향했다. 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대표, 그대가 이리저리 오지랖을 부리는 것까지 참견하지는 않겠지만, 저놈을 우리 무리에 끼운다면 나는 이 광대 짓거리를 그만두겠소.”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을 아예 예상하지도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훤의 거부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 현명이가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결정하지도 않았고, 그 문제는 시기상조야. 나중에, 좀 더 나중에 얘기하자.”
훤은 고개를 돌려 한숨을 내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주막에 나가 보니 별호와 로버트의 옆에 현명이가 있었다.
“어머니 약도 비싼데 지어 주시고, 저도 뭐라도 도와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서툴지만 국밥을 내가는 현명의 모습에 나는 다시 가슴이 아려 왔다.
빚, 너는 항상 은혜를 갚으려고 했지. 우리는 서로 빚이 있단다.
나는 입술을 꾹 물었다.
아무래도 쓰러져 가는 움집에 현명이와 어머니를 두는 것이 찝찝해 곡식을 쌓아 두던 창고를 치우고 내가 쓰던 별채를 내드렸다.
현명 모자가 한사코 거절했지만, 내게도 이게 더 편했다. 현명이의 곁에 있다면 분명히 그 공급책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저녁이 다 되자 열하와 함께 훤이 들어왔다. 주막 평상에 함께 모여 앉은 현명 모자와 영원을 보더니 말없이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저 자식이, 버릇없게!”
친누나 모드가 발동해 방으로 쫓아 들어가려 하자 현명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들어가 볼게요.”
서둘러 들어가는 현명의 뒷모습을 보며 열하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허어, 가지 않는 편이 좋을 텐데…….”
로버트가 열하의 손을 잡아끌었다.
“배고파! 빨리빨리 먹자! 우리!”
* * *
방문을 닫고 훤은 쓰러지듯 자리에 앉았다. 지금 당장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적었다.
붉은손버섯을 재배하는 사람을 뽑는다는 곳에 찾아갔지만 이미 자취를 모두 감춘 후였다.
귀신같이 어떻게 정보를 알아내는지, 열하에게 수소문을 부탁했지만 어렵다고 했다.
“누군가, 큰 그림을 그리는 듯해.”
열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그림의 전체를 훤은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막지 못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