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아이돌-16화 (16/27)

16. 붉은손버섯을 아시오?

녀석들과 주막에 함께 있자니 내게 아직 남은 소원 하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현명이.

우리 엔터테인먼트를 뒤흔들었던 아이였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유약했던 그 아이를 미리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다.

왜 최혁재의 마수에 걸려들게 되었는지, 또 그동안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주막에서 함께 모여 있는 저 훤칠한 넷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느 때처럼 열하와 별호가 티격태격하며 장난을 치고 있고 훤은 마루에 앉아 활을 정비하고 있었다.

로버트는 주막이 신기한지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었고.

고요한 물에 누군가 돌을 던진 것처럼 마음에 작은 파장이 일었다. 그래, 아직은 때가 일렀다.

때 이른 평화는 금방 깨져 버리는 법이었다.

나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쉬자 녀석들이 일제히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소?”

“땅이 꺼지겠군.”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내 안색을 살피기에 표정을 가다듬고 괜찮다고 다독였다.

다시 하던 일들로 돌아간 녀석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영원은 다섯이어야 해. 언제나.”

점심이 되자 주막에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주막을 접는다고 했는데도 사람들이 아침이면 찾아와 평상에 앉아 주린 배를 잡고 있으니 무턱대고 장사를 접어 버릴 수도 없었다.

열하는 곤란한 얼굴로 내 눈을 바라보며 간곡히 말했다.

“내 정말 도와주고 싶으나 나 역시 지금 관아에 가 일을 해야 하니 대표 누이, 나중에 저녁에 보오.”

열하는 눈웃음을 날리며 내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래. 열하는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수능을 쳤고 영어 시험을 봤던 녀석이었다. 점수는 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고.

별호가 볼을 퉁퉁 불리자 열하가 혀를 살짝 내밀며 관아로 쏙 향해 버렸다.

사실, 계약 조건에 함께 주막을 꾸려 간다는 조항도 없었고 괜히 뜨거운 국물을 잡다가 녀석들이 다칠까 싶어 나는 방에 아이들을 모두 밀어 넣었다.

“노래 연습이나 해. 아니면 운동을 하고 있든지. 일은 내가 할 테니까.”

주막 일은 역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아궁이에 땔감을 집어넣으며 입으로 바람을 후 불자 매캐한 재가 내 얼굴에 다시 불어닥쳤다.

“아, 내 눈!”

콜록이며 눈을 닦아 내자 누군가가 키득대며 웃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간신히 떠 보니 내 앞에는 로버트가 있었다.

“풉. 대표 누이, 얼굴이 까매.”

내 손에 묻은 검댕을 녀석의 피부에 문지르려다가 그냥 옷에 닦는 것으로 분노를 삭였다.

조선 시대에서는 피부과에 데려갈 수도 없으니, 뾰루지가 날 일을 만들면 안 됐다.

로버트는 나를 살짝 밀어내더니 아궁이 앞으로 와 땔감을 능숙하게 넣었다.

“노비 하면, 이거 많이 해.”

로버트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조금 신이 난 것도 같았다. 땔감을 넣는 걸 좋아하는 우리 로버트.

얼핏 듣기에도 목소리에 이미 세련된 오토 튠이 장착되어 있었다. 청아하게 퍼지는 목소리.

음색 하나는 정말 타고난 녀석이었다.

우리 빛나던 무대 위의 영원이 조선에 와서 이 주막 일을 능숙하게 하는 걸 보고 있으니 전 세계 수많은 팬덤의 고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소속사 일 안 하냐! 감히 오빠들을.’

‘사장이 돈독 올라 미쳤네.’

‘서아원츄 머니’

내 이름을 이용한 악플을 보다가 그만 울었던 적도 있었다.

절대 녀석들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우물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울 생활을 떠올리고 있는데 뒤에서 별호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대표 누이, 사람들이 저렇게 국밥 맛을 못 잊어 오는데 빨리빨리 줘야지 않소? 내가 도와드릴게. 배고픈 게 세상에서 제일 슬픈 거 알잖소?”

뒤를 돌아보니 방에 넣어 놓았던 훤이까지도 밖에 나와 있었다.

“방에 들어가 연습하래도?”

훤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표, 자네가 지도를 해 줘야지. 우리의 목표를 위해 저 인파를 빨리 해치우도록 하지. 나는 아궁이를 맡겠다. 불 앞에서 수양의 시간을 갖겠어.”

별호는 마루에 올려놓았던 흰 광목천을 냉큼 집어 허리에 둘렀다.

“그럼, 퍼 담아 나르며 사람들이랑 얘기하는 건 내가 할래!”

손가락으로 검지와 엄지를 말아 오케이 표시를 한 로버트는 이제 꽤 조선 패치가 된 모양인지, 국밥을 들고 사람들에게 서빙하며 능숙하게 말했다.

“빨리빨리 먹어. 저기 기다려.”

“오, 노. 곰방대는 저쪽 가서 해.”

말이 조금 짧긴 했지만 그래도 저만한 것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로버트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손님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이 정도라면 잠깐 주막을 믿고 맡길 만했다. 나는 애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나 잠깐 자리 좀 비울게. 시장 조사 좀 하러. 알겠지?”

내가 없어도 잘 해내야 한다, 얘들아. 주막의 수입은 전부 다 너희를 키울 자본이니까.

* * *

말을 마치고 아원이 외출 준비를 하기 위해 방에 들어가자 훤과 별호가 은밀히 시선을 교환했다.

“대표 누이인지 저자, 아무래도 우리를 주막에 가둬 두려는 계략 같지 않느냐?”

훤의 말에 별호가 싱긋 웃었다.

“이런 주막이라면 백날 갇혀도 좋아.”

훤은 별호에게 핀잔을 주었다.

“잊지 마라. 이 주막에서 일하는 건 과정일 뿐이란 말이다. 각자의 꿈과 목표를 위해 우린 잠깐 모인 것이다.”

별호는 입술을 살짝 내밀어 보였다.

“치, 그래도 저도 좋으면서.”

그 말을 들은 훤의 눈썹이 살짝 꿈틀대었다.

“저? 아주 이제는 너무나도 허물없이 지껄이는구나. 아무리 계약을 했다지만.”

둘의 티격태격을 보던 로버트가 외쳤다.

“시끄러워! 열하 없어. 그럼 이제 너희 둘 싸워? 그만! 일해.”

로버트의 냉철한 말에 훤과 별호는 살짝 눈치를 보다가 다시 자신들의 위치로 돌아가야만 했다.

끼익.

문소리와 함께 쓰개치마를 뒤집어쓰고 종종걸음으로 길을 나서는 아원의 뒷모습을 셋은 힐끔대며 눈여겨보았다.

모두를 집약시키는 응집력을 지닌 여자였다.

한낱 주모라기엔 보여 준 모습들이 강단이 넘쳤고.

누군가에겐 누이, 누군가에겐 꿈, 누군가에겐 힘, 누군가에겐 둥지가 되어 주는 그런 사람.

“우리가 총 다섯이라는 말을 아까 얼핏 들었다. 너희도 들었느냐?”

훤이 먼저 넌지시 얘기를 꺼내자 나머지 둘도 고개를 끄덕였다.

별호는 국밥 그릇을 정리하다 말고 머리를 긁적였다.

“대체 누이 머릿속에는 무슨 계획들이 있는 건지.”

* * *

주막을 나와 종종걸음으로 시장을 걷는데, 전에는 가만히 지나쳤던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는 무언가 큰 거적으로 가린 수레 하나가 길목을 막고 있었으나, 그것이 사라지자 골목길이 보이는 것이었다.

골목 초입에 눈을 사로잡는 방(榜)이 하나 작게 벽에 붙어 있었다.

글의 제목은 명약(名藥) 관리.

‘어, 이건?’

방에 적힌 글자 옆에는 익숙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분명 경매장에서 보았던 거울의 문양이 확실했다.

단풍처럼 붉은 손 문양 옆에는 한자로 ‘求人(구인)’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왜 여기에 해륜국의 문양이 있지?’

나는 그 앞에 멈춰 방을 한참이나 살펴보았다.

뒤에서는 내 귓가를 사로잡는 이야기 하나가 흘러들어 왔다.

“저걸 하면 아주 그냥 별세상이라더군.”

“그런 명약이 정말 있어?”

“그렇다니까? 한 번 하면 이 천하를 다 호령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니, 도통 빠져나갈 재간이 없다고 하지.”

“허허, 신통하구먼. 저 손을 닮은 붉은 게 버섯이라지?”

‘버섯?’

그러나 저들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 다른 것이 떠올랐다.

이를테면 양귀비꽃이라거나, 대마초라거나……. 마약에 관한 것들.

하지만 내가 아는 조선 시대라면 마약이 이렇게까지 길거리에 공공연히 퍼졌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작은 단서들이 내게 외치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분명 마약이라고.

나는 뒤를 돌아 대화를 나누던 둘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엔터 사업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정보 싸움이었다.

어떤 이슈가 있는지 제대로 캐치하고 상황에 맞게 적응해 나가는 것은 어떤 사업이든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두 분께서는 어찌 그리 위 정보에 대한 학식이 다망하신지요? 저도 그 소식을 익히 들어 왔던 터랍니다. 저 붉은 버섯의 이름을 혹시 아시나요? 뭐라고 하더라. 붉……, 붉……”

말을 나누던 사내들은 히죽대며 대답했다.

“붉은손버섯.”

나는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어머, 서생께서는 붉은손버섯에 대해서 잘 아시옵니까?”

이야기를 꺼낸 남자가 헛기침하더니 우쭐한 기색으로 말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쨌거나 명약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소. 내 만약 저 시험에 통과한다면 저 약을 얻을 수 있겠지.”

“저 일이라 함은……?”

“몇만 마지기나 되는 규모의 밭에서 저 버섯을 재배할 사람을 뽑는다더군.”

“아, 그렇다면 하는 일이 저 버섯을 키우는 일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보수도 꽤 크다지? 그런데 댁이 웬 관심이오? 우리처럼 신체 건강한 남정네들만 뽑는 곳에.”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제가 직접 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집에 놀고 있는 제 동생들이 있어 일을 소개해 줄까 싶어서요. 가족들이 먹을 음식마저 떨어져 가서 배곯을까 싶어…….”

별호가 많이 먹긴 했으니 전적으로 거짓말은 아니었다.

옷고름을 가져다 눈가에 대자 나를 살피던 한 사내가 헛기침을 했다.

“그렇대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오.”

“그래서 그 밭이 얼마나 돼?”

“어마어마하게 넓다더군. 몇만 마지기라는 소문이 있어. 그리고 그걸 아주 전문적으로 작농하는 사람을 뽑는다더군.”

나는 다시 물었다.

“사람을 뽑는데, 이렇게 사람을 구하겠다는 공고만 달랑 적어 놓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른 남자도 고개를 갸우뚱대었다.

“그러게. 시와 때가 나와 있지도 않은데.”

“그렇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이번 구인으로 저 명약에 대해 다들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이지. 저기 봐.”

남자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시장의 틈새 곳곳에 이 방이 붙어 있었다.

왜 이제야 이 방이 붙은 것을 보았을까? 나의 눈썰미에 약간 실망했다.

항상 웃고 있던 과일 노점의 대들보 위에도, 인심 좋은 백정 아저씨의 푸줏간 옆 벽 한쪽에도 방이 붙어 있는데.

‘아무래도 수상해.’

이곳저곳에 해륜국의 문양이 그려진 종이들이 알게 모르게 파다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가다가도 멈춰서 그 종이를 들여다보곤 했고.

파삭.

나도 모르게 붙은 종이를 떼어 주머니에 넣었다.

남자들은 피식 웃었다.

“동생 갖다주려고 그러오?”

“경쟁자를 줄이려고 그러는 거지요?”

나는 싸늘하게 웃었다.

“네. 맞아요.”

남자들은 헛기침하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어쨌거나, 지금 그 밭 관리를 하는 자가 여기가 고향인지 다시 돌아와 급히 사람을 구하는 모양이야. 일 잘할 것 같은 사내들을 눈여겨보다가 시험을 봐서 데려간다더군.”

건너편 남자가 다시 물었다.

“입에 거미줄 치지 않으려면, 나도 당장 가고 싶구먼.”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어디서 많이 보던 수법이었다.

많은 돈을 준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라는 뜻.

마약이 확실한 듯했다.

‘좋은 일’이라며 사람들의 환심을 가로챈 뒤 돈도 가족도 친구도 다 모두 버리게 만드는 것이 마약이니까.

물론 아직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는 남자 둘을 보며 말했다.

“저라면, 발도 디디지 않겠습니다.”

나는 주머니에 넣었던 종이를 구긴 후 바닥에 던져 짓밟았다.

‘대체, 누가 마약으로 조선 땅에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분노로 가득 차 몸이 떨리기 시작하자 별안간 교도소에 있을 때의 상황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이 청정하고 아름다운 곳에 마약이라니. 다시 이런 상황을 맞닥트리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나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 벽을 짚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다시 그 순간들이 재생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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