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너의 선택
“얼굴을 보면 아시겠죠? 보통 놈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제가 그곳도 확인했는데, 아휴. 남다릅니다. 이놈의 이름은 오버트입니다.”
‘오……버트?’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열하도, 훤도 이름이 같은 것을 보았을 때 당연히 로버트도 로버트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버트는 두 달 전에 바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데다가, 어찌나 힘이 센지……. 길들이느라 갖은 고생을 했습죠.”
경매꾼은 로버트의 팔을 잡으며 자랑하듯 우리 앞에 내보였다.
“지금은 뭐, 한 마리의 순한 개라고 보시면 됩니다. 일도 잘하고, 밥도 잘 먹고요. 말도 어느 정도 합니다. 그렇지 버트야?”
경매꾼이 그의 팔을 꾹 누르자 로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매꾼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말을 해야지. 네 주인이 되실 분이 계신 귀한 자리인데.”
“……네.”
한마디였다. ‘네’라는, 모든 걸 포기한 목소리.
그런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감미롭고, 한 번 더 들어 보고 싶다는 요청까지 생겼다. 모두들 돌아 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경매꾼은 미소를 유지하면서도 로버트에게 말을 하라고 부추기지 않았다.
“여러분, 이놈의 목소리를 듣고 싶으신 분들은 그저 들고 계신 팻말을 계속 들고 계시면 됩니다. 그러면 이놈의 목소리를 어느 때고 계속 들을 수 있거든요.”
그는 정말 장사꾼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지, 목을 맬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사람들은 높이 손을 들었다. 그간 산 물건들은 다 장난이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때 열하가 나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대표 누이는 안 들어요?”
“……들어야 하는데, 들리지 않는다.”
난 로버트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가 필요하니까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가 있으면 영원이 영원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도 두둑하게 챙겼다.
그런데 로버트를 내가 산다고 생각하니까, 이들과 같아진다는 생각이 드니까 차마 팔을 들고 싶지 않았다.
별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그럼 내가 대신 들까요?”
“이게 맞는지 모르겠어, 별호야. 내가 로버트를 사게 되면, 로버트가 좋아할까?”
“그건 모르지만, 다른 놈들이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소?”
“……그치만…….”
“난 대표 누이가 나를 구해 준 것처럼, 저자도 구해 준다고 생각해요.”
“뭐?”
“대표 누이, 대표 누이가 로벌이란 놈을 산다고 해서 종처럼 부릴 게 아니잖아요. 우리와 같이 춤을 추고 노래를 시킨다면서요?”
“…….”
“난, 저놈의 눈빛이 마음에 들어요. 같이 춤을 추고 노래하고 싶은데요?”
별호가 생긋 웃었다.
“나도 저놈이 꽤나 괜찮은 것 같소. 잠깐이지만 목소리도 정말 좋았고.”
열하도 큼큼거리며 말했다.
“이놈들보단, 확실히 괜찮은 놈 같군.”
훤도 나직이 목소리를 냈다.
그들의 말에 불편했던 마음 한구석이 와르르 녹아내렸다.
별호의 말이 맞았다. 나는 로버트를 사려고 한 게 아니니까.
내가 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빠르게 구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팔을 번쩍 들고 외쳤다.
“누구든 부르는 값의 한 냥을 더 얹겠소.”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를 부를 줄 알고!”
“어이가 없군! 공정하게 해야지! 공정하게!”
그때 열하가 옆에서 씩 웃다가 표정을 싹 굳혔다.
“너무 무리하시는 게 아닙니까? 아무리 그분께서 꼭 구해 달라 요청하셨다고는 들었지만…….”
“뭐?”
“한양의 그분께서…… 아잇, 내가 뭐라고 지껄인 거람!”
열하는 훤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훤은 열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나리, 내일 관청에 들러 일지를 작성하셔야 합니다. 인제 그만 일어나시지요?”
“어허! 지금 이 일이 더 중요한 것을 모르겠는가?”
“송구합니다.”
나는 그들의 연극을 보며 입꼬리 한쪽을 올렸다. 열하는 지금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기필코 로버트를 구출해 낼 수 있는 상황.
이미 사람들은 열하의 말에 저들끼리 살을 붙여 이야기를 과장하기 시작했다.
“한, 한양의 그분이면 한 사람밖에 없잖아?”
“내가 봤네! 저 남자가 관아에서 나오는 것을.”
“그, 그렇다면 확실한 게 아닌가? 어찌 궁에서까지…….”
“난 무서워서 못 하겠네……!”
그리고 모두들 천천히 팔을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열하, 별호, 훤, 그리고 무대에서 처연히 자신의 앞날을 기다리는 로버트를 응시했다.
* * *
배는 홀쭉해졌다. 복대에 엽전을 넣지 않아도 될 정도로 돈을 탈탈 털었다.
우리는 기와집에서 나와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머리의 장식하며 옷까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게다가 초상화부터 시작해 거울까지. 갑작스레 짐이 많아진 기분이었다.
숙소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부랴부랴 방 안에 축 늘어졌다.
로버트는 주뼛주뼛 서서 방 안을 살폈다. 그때 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로버트 옆에 섰다.
“나보다 키가 큰 사람은 처음 봐!”
“너보다 잘생긴 사람은 많이 봤는데. 이를테면 나?”
열하가 키득키득 웃었다. 별호는 입술을 비죽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훤은 벽에 기대앉은 채로 로버트를 바라보았다.
“앉아라. 피곤할 텐데.”
“…….”
“말을 못 알아듣는 건가?”
“이제, 난, 어디로 가지?”
로버트가 조심스레 물었다.
훤과 별호, 그리고 열하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나는 로버트를 보며 싱긋 웃었다.
“일단, 나가서 좀 걸을까?”
나는 로버트를 데리고 주막 뒤쪽에 난 산책길로 향했다.
로버트는 내 옆에 멀찍이 떨어져 걷고 있었다. 그는 나를 잔뜩 경계하는 중이었다.
“이름이 뭐야?”
“……오버트.”
“그건 저들이 너를 부르는 이름이고. 네 진짜 이름.”
그가 처음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뗐다.
“로버트.”
“역시, 맞네. 로버트.”
“뭐?”
“어머니가 조선인이고, 아버지가 타국인이지?”
“……그걸 어떻게 알지?”
나는 자리에서 멈춰 로버트 앞에 섰다. 로버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내가 대신 사과할게.”
“!”
“미안하다. 너를 이렇게 가두고 괴롭히고, 사고팔기까지 하다니. 부끄럽구나.”
“어떻게 우리 말을 할 줄 알지?”
“너랑 얘기하려고, 배웠어.”
로버트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정말 천사가 강림한 줄 알았다.
혼혈아인 그는 백화점에서 어머니께 드릴 선물을 고르는 중이었다.
신중하게 옷을 고르는 모습을 나도 모르게 홀려서 바라보았다.
그때는 로드 매니저를 겸직하고 있을 때였고, 무엇보다 좋은 얼굴을 발굴하는 게 중요했다.
그를 본 순간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무조건 그를 잡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를 끈질기게 쫓았고, 같이 해 보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말을 잘하지 못했다. 영국에 계속 있었다는, 서툰 한국어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할 뿐이었다.
나는 그의 번호를 겨우 받아 낸 뒤 밤마다 영어를 공부하고 그를 위한 영상을 만들었다. 그에게 내 진심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일같이 그를 찾아가 설득했다. 그에게 같이 일하고 싶다고, 지금의 우리 아이들의 연습 영상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때 로버트가 내게 자신의 노래 영상을 보여 줬다. 자기도 노래를 좋아한다고. 그리고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사실, 한국말 잘해요. 엄마가 한국인이라서. 그리고 매니저님의 노력에 감탄했어요. 계약, 할게요. 제 거짓말에 대한 사과입니다.”
“와. 정말 잘하네?”
“그리고 전, 여행하고, 다양한 사람 만나는 거 재밌을 것 같아요.”
로버트는 그다음부터 나를 전적으로 믿어 줬다.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로버트, 난 너를 노비로 부리려고 산 게 아니야. 난 네게 같이 일하자고 제안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어.”
“…….”
“난 지금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동료를 모으고 있어. 우리는 조선 최고의 남사당패가 되어서 전국을 누빌 거야.”
“뭐라고?”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해. 우리는 너처럼 든든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 있었으면 하거든.”
로버트는 쉽게 경계를 풀지 않았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나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네가 원래 살던 곳으로 가고 싶다면 내가 도울게. 지금의 너에게는 여행보다 안식처가 필요할 것 같거든.”
영원이 영원이 될 수 없다.
로버트가 같이하지 않는다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내 욕심일 수 있다. 지금의 로버트는 사람이라면 신물이 날 정도로 지겨울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강요하기보다는 포기를 선택했다. 나는 로버트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내 신분도 그저 주막에서 일하는 주모였다. 아이들도 아직 연습이 덜 되었다.
‘어쩔 수 없어. 여기는 한국이 아니야. 그를 놔줘야 해.’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가볍게 웃었다. 그러나 로버트는 내 말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나를, 정말, 놔줘?”
“응. 네가 원하면 그렇게 할게. 그리고 네가 고향으로 갈 수 있도록 내가 방편을 알아볼게. 아까 봤지? 열하라고, 관청에서 일하거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날…… 사려고 엽전, 썼잖아.”
“널 그 거지 같은 곳에서 빼 오기 위해 돈을 낸 거야. 넌 거기서 그런 대우를 받을 아이가 아니니까.”
“…….”
“널 오버트라고 부르는 사람들, 그 속에 널 어떻게 내버려 두겠니? 넌 영원의 로버트인데.”
로버트는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고민해 보고 알려 줘. 어떤 선택을 하든, 난 너를 응원할 거야.”
나는 싱긋 웃었다.
* * *
다음 날 나는 평상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었다.
국밥을 세 그릇이나 해치운 별호가 숨을 크게 내뱉었다.
“그렇게 걱정이 돼요?”
“당연하지. 로버트가 빠지면 안무 동선부터 다시 짜야 하고, 콘셉트도 다시 정해야 하고 노래도 다시 나눠야 한다고!”
“……난 당최 대표 누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소.”
“하. 그래도 떠난다고 하면 보내 줘야지. 내가 걔를 잡아 두면, 그 경매장에서 본 사람들과 뭐가 다르겠어?”
우리 둘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별호는 배가 불러서, 나는 배가 아파서였다.
어제 일을 많이 후회했다.
그냥 무릎을 꿇고 같이해 달라고 비는 거였다.
멤버 중에서도 로버트처럼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고 다정한 녀석이 없었다.
이제 혼자서 케어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게다가 로버트의 천상의 목소리는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킬 포인트였다. 도입부도 후렴도 어느 파트 하나 못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그림 말이오.”
별호는 평상에 있던 그림을 꺼내 살펴보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림이 왜?”
“정말 잘 그리지 않았소? 돈을 많이 냈을 것 같소.”
별호의 말대로 그림은 꽤나 정교했다. 전신을 그린 초상화였는데 옷감까지 구현을 잘한 것 같았다.
‘관상이 안 좋은데?’
어제 어두운 곳에서 보았던 것보다 밝은 곳에서 보니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어딘가 쎄한 얼굴이었다.
‘예쁘긴 예쁜데 왜 그렇지?’
마치 연습생들의 프로필 사진같이 예쁜데 정이 가지 않았다. 나는 몇몇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 우리가 묵은 숙소 문이 열렸다. 열하, 훤, 그리고 로버트가 짐을 들고 나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로버트를 응시했다. 로버트는 미묘한 표정으로 내 앞에 섰다.
“고민은…… 좀 해 봤어?”
“응.”
그의 단호한 표정을 보자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배편을 알아봐 줄게. 열하야, 내가 어제 말했지?”
“알아보지 않았는데.”
“……야. 내가 사정까지 했는데…… 확실히 알아봐 준다며?”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뭐?”
열하가 싱긋 웃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로버트를 바라보았다.
“난, 여기 남길 선택했습니다.”
“……정말?”
“들었어, 어제, 당신의 말.”
열하는 뿌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웃었다. 로버트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람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자리, 라는 말을 들었다. 나, 더는, 노비, 아니라면. 행복, 찾을 수 있어.”
“…….”
“무엇보다, 너희, 따라가면 재밌을 것 같아, 요.”
나는 애써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응.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게 해 줄게!”
그에게 약속할 수 있는, 내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