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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아이돌-14화 (14/27)

14. 구원자

경매는 건너편 건물에서 진행됐다. 내부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일렬로 무대를 향해 앉아 있었다.

무대는 나무로 턱을 만들어 놓아 고개를 들어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또한 문지기로 있던 남자가 우리에게 번호가 적힌 나무 주걱을 건넸다.

별호는 내 옆에 앉아 터질 것 같은 배를 만졌다. 만족한 모습을 보니 나 또한 흐뭇했다.

경매장에 호위를 한 명만 데리고 갈 수 있다는 말에 나는 별호를 선택했다.

열하는 자연스레 훤을 데리고 들어왔다. 우리는 나란히 일렬로 앉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속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저 얼굴은 대체 뭐지요?”

“그러니까요. 옷을 보아하니 노비는 아닌 것 같고…… 호위가 저렇게 빛이 나도 되는 거요?”

“저 얼굴하며 몸의 태하며…… 당장 돈을 갖다 바치고 싶은 모습이구먼.”

우리 주변에 앉은 사람들은 훤과 열하, 그리고 별호의 얼굴에서 시선을 못 뗐다.

물론 불순한 시선도 있었으나 나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어둡고 칙칙한 곳에서도 스스로 빛을 내는 아이들이라니. 앞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면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옆에 앉은 별호와 열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열하는 옆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내가 개야? 왜 머리를 쓰다듬소!”

“귀여워서 그렇지. 곱상하니 아름답고.”

“……별로 칭찬 같지 않소. 그리고 우리를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 것 같지 않소?”

“너희를 이상하게 보는 게 아니라 우러러보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열하는 내 말에 입술을 비죽였다.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훤을 힐끔 바라보았다.

훤은 진지한 표정으로 내부를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자자, 이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우선 좋은 물건을 먼저 보여 드리지요!”

자신을 경매꾼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무대 위로 올랐다.

마이크도 없는데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그가 구석을 향해 팔을 휘두르자 사내 두 명이 탁자에 놓인 거울을 들고 왔다.

‘어?’

경매꾼이 소개하는 거울은 내가 사기꾼 놈에게 사들인 거울이었다.

“자자, 이 거울을 말할 것 같으면 어젯밤에 힘겹게 구해 온 겁니다. 여기 이 문양 보이시죠? 이 문양은 조선 땅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희귀한 문양입니다.”

사기꾼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나 보다. 사람들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바로 해륜국 왕실의 문양이지요!”

“오오!”

“특히나 이 거울은 지니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것이 장점이지요. 장터나 어딜 가도 쉽게 구할 수 없고요. 벌써 궁에서도 옹주마마님들께 전하께서 선물하셨다고 합니다.”

경매꾼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옆에 있던 별호도 콧김을 내뿜으며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히야! 대표 누이도 산 것이지 않소?”

“그러니까. 그게 좋은 물건이긴 한가 봐.”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경매꾼을 보았다. 경매 특성상 아무래도 거울값은 내가 산 것의 배는 뛸 것 같았다.

‘흐흐. 그렇다면 이따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팔 수도 있겠지?’

한 냥을 주고 산 거울의 값을 부풀릴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 거울을 여기 경매장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어?”

“하하! 이건 저희가 작은 뜻으로 준비한 물건이니 모두들 기쁘게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별호는 옆에서 겨우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열하 옆에 있던 훤도 피식 웃었다. 열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똥 밟은 얼굴을 하는 거요?”

“그야 똥을 밟았으니까!”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삼켰다. 망할 사기꾼을 족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을 분노였다.

경매꾼은 사람을 시켜 우리에게 거울을 나누어 주었다.

심지어 경매꾼이 준 거울은 선명한 데다 깨끗했다. 나는 내가 산 거울을 비교해 보았다. 내가 산 거울은 어딘가 마감이 엉성하기까지 했다.

열하는 내가 양손에 거울을 들고 있자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바꿔 달라고 해야겠소. 불량인 것 같소.”

“……한 냥이나 주고 샀는데…….”

“설마 이걸 돈 주고 샀단 말이오? 하! 대표 누이 바보요? 너무 뿌예서 얼굴이 보이지도 않소!”

“내 돈…… 내 돈!”

“쯧쯧.”

열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경매꾼을 보고 손을 들었다. 경매꾼이 열하 쪽으로 다가왔다.

열하는 내가 산 거울을 뺏어 가더니 그에게 건넸다.

“내가 받은 거울이 불량인 것 같네.”

“아아. 아니 이런 실수가! 죄송합니다. 나리. 보아하니 어디서 가품을 만든 것이 같이 흘러왔나 보네요.”

“그런가? 가품이 확실한가?”

“예. 이 마감 처리하며, 문양도 보니 미세하게 다르지요? 이 손이 붉지 않고 노란빛이지 않습니까?”

“흐음. 그렇군.”

“그건 부리는 상것들에게 주시고, 저희가 나가실 때 따로 좋은 거울 하나 챙겨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송구합니다.”

경매꾼은 여러 번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며 다시 무대로 올라갔다.

그가 죄송하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배가 아파 죽을 것 같았다. 열하는 내가 산 거울을 다시 내게 주었다.

“버려.”

“거울은 그래도 비싼 것이니, 갖고 있다가 누구 주시오.”

“하. 다신 이렇게 당하지 않겠어!”

나는 거울을 다시 품속에 집어넣고 무대를 바라보았다. 경매꾼은 여러 가지 물건을 다시 보여 주었다.

분첩도 있었고 비단도 있었다. 꽤나 좋은 물건인지 금세 팔렸다. 그러나 몇몇은 지루해했다.

“대체 언제까지 물건만 보여 줄 참이오?”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오?”

경매꾼은 사람들의 원성에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그럼 물건 하나만 더 보여 드리고 바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경매꾼의 손짓에 사내들이 뭔가를 들고 왔다. 천으로 가려 놓아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경매꾼은 객석을 향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가 천을 거두자 눈앞에 보인 것은 그림이었다.

누군가의 초상화인 것 같았다. 사람들의 반응도 미적지근했다.

“큼큼, 이건 사연이 있는 그림입니다. 가지고 있으면 값이 훌쩍 뛸 것이고요. 뒤에 좋은 물건이 많이 있지만 제가 자부합니다! 이 그림이 오늘 경매장에서 가장 비싼 물건이 될 것을요.”

“……누굴 그린 것이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옷을 보아하니 이 나라 사람은 아닌 것 같고.”

“흐흐. 이분은 해륜국의 공주님이십니다. 바로 세자 저하께서 구애하고 계시는 분이기도 하고요.”

경매꾼의 말에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나는 훤의 표정을 살폈다. 훤의 표정은 살기를 띠고 있었다.

‘뭐야? 훤이 좋아하는 여자라는 거야?’

경매꾼은 말을 이었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주상 전하와 세자 저하는 난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할 만큼 지금 사이가 좋지 않지요. 궁에서도 쉬쉬하고 있고요. 그게 다 이 여인 때문입니다.”

“……오오! 아름답기는 하군!”

“예. 보십시오. 이 눈빛, 이 우아한 자태! 세자 저하가 이 초상화를 보고 한눈에 반해 구애하려고 궁을 떠났다는 소문이 있죠.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사실이기도 하고요.”

훤은 금방이라도 경매꾼을 죽일 기세였다.

‘무슨 저딴 소문을 만들어? 그리고 해륜국이 어디야?’

나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해륜국? 해륜국이 어디야?”

“아아. 해륜국을 모르시는 분은 아무도 없겠지요?”

경매꾼은 씩 웃으며 다시 입을 뗐다.

‘나만 모르는 건가?’

역시 내가 아는 조선이 아니라서인지 이웃 나라도 다른 듯했다.

“중요한 건, 이 그림이 바로 미래의 중전이 되실 분이라는 거죠. 중전이 아니라 후궁이 된다고 해도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겁니다. 이 그림은 원본! 그림을 가지고 있다면, 누가 이 그림을 사겠다고 하겠습니까?”

그의 말에 주위가 들썩였다.

“세자께서 왕이 되신다면, 신임을 얻을 수 있는 그림이겠군.”

“반대로도 사용할 수 있지. 중전이든, 후궁이든 그 여인에게 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에이! 아니지 이 사람아! 만약 세자 저하가 왕이 되시지 않으면, 주상 전하께 갖다드릴 수 있지. 암암리에 판매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가져왔다고 하면 되지 않는가?”

모두들 주걱을 들기 시작했다. 훤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미쳤군.”

“내가 살게.”

“뭐라고? 저딴 그림을 왜 사지? 너도 그 소문을 믿는 건가?”

열하의 말에 훤의 표정이 굳었다. 열하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 세자 저하가 저런 그림에 반해서 궁을 나가셨겠냐?”

“그렇다면 왜 그림을 사지? 임금이든 세자든, 신임을 얻고 싶어서?”

“아니. 불순하게 이용될 것 같아서.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

열하는 진심인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열하의 머리를 열심히 쓰다듬었다.

“너는 어쩜 오늘따라 이렇게 예쁘고 고운 말만 하는 거니?”

“당연하지!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세자 저하께 되팔 그림을 사려고 하는 걸까?”

열하는 한심하다는 듯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훤은 의외라는 듯 열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래서? 넌 저 그림을 사서 어쩔 것이냐?”

“일단 보관. 그리고 세자 저하의 사생활도 보호하고.”

그리고 열하가 팔을 들었다.

몇몇은 과열된 양상에 포기하고 팔을 내리는 중이었다. 열하는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그의 차례가 다가왔다. 경매꾼은 열하를 보며 해맑은 미소를 보냈다.

“이야! 역시 가품을 알아보실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이 가치를 알아보시는 분이군요?”

“포장을 잘해 놓게.”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흐흐.”

사람들이 열하를 부러운 시선으로 힐끔거렸다.

“젊어 보이는데, 돈이 많은가 봐.”

“옷을 봐. 나랏일을 하는 사람인 게야. 아양 떨고 싶겠지.”

그들의 험담에도 열하는 개의치 않았다. 열하는 훤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혹시 모르니까 이 초상화의 주인이 확실한지 한번 알아보자.”

“……난 궁금하지 않다.”

“야, 뭐든 확실히 해야 뒤탈이 없어. 그래야 훗날에 세자 저하를 뵙게 되면 할 말이 생기지.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말이야.”

“……알겠다. 그리고 고맙다.”

“뭐가?”

“모르면 됐고.”

열하는 시시한 훤의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그들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자자, 그럼 여러분! 이제 여러분이 기다리시던 시간입니다.”

그리고 객석 주변에 있던 촛불이 모두 꺼졌다.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오로지 무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물건을 보여 줄 때면 열심히 소개하던 경매꾼이 이번엔 조용했다.

그는 말없이 구석에 섰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뒤쪽에서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터벅, 터벅, 무대 쪽으로 걸어오는 발걸음.

그는 천천히 무대 위로 올랐다. 부드러운 금색 머리. 큰 키와 하얀 피부. 불그스름한 촛불을 모두 잠재울 만한 푸른 눈동자.

모두들 아무 말 없이 그를 응시했다. 그는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왜 경매꾼이 설명하지 않는지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저 줄…….’

나는 주먹을 쥐었다.

그의 팔과 다리는 쇠사슬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또한 불빛에 비친 그의 옷은 옷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겉옷을 풀어 헤친 모습이었다.

그의 굴곡진 상체가 모두에게 노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경매꾼이 그의 옆에 섰다. 그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경매꾼이 다시 사내들에게 손짓하자, 사내들은 재빨리 관객석 쪽의 촛불을 밝혔다.

“……대표 누이, 얼굴이 왜 그러오? 화가 잔뜩 난 것 같소. 찾는 사람이 맞소?”

“응. 맞아.”

“그렇다면 다행인 게 아니오?”

“다행이지. 그런데…… 저건 아니잖아.”

로버트의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부당한 일을 당해 왔을지.

그때 경매꾼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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