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아이돌-13화 (13/27)

13. 그저 빛, 열하!

열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았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먼저 내게 다가와 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던 열하. 이전에 보았던 그가 다시 내 곁으로 와 준 것만 같았다.

‘정말, 우리 아이들이다!’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다. 이들은 그때의 아이들과 똑같다. 그러니 나만 잘하면 되었다.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엇나가지 않게, 케어하는 역할은 나였으니까.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맞아. 열하! 우리가 너 없으면 뭘 어떻게 하겠어? 네가 없으면 영원이 아닌데! 정말 고맙다!”

“당연하지! 내가 아니었으면 여기 한 발자국도 못 들여놓았을 거요!”

“그럼 그럼! 역시 열하가 최고야! 너무 멋지다! 넌 영원한 영원이야!”

“……뭐, 알아서 다행이긴 한데……. 너무 과하긴 하지만서도, 듣기에 그리 나쁘지는 않구먼.”

열하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역시 예뻐 죽겠어!’

나는 몇 번 더 열하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엄지를 치켜올렸다.

“흠흠, 그러니 앞으로 내게 잘 좀 해 주시오! 나는 대표 누이의 말을 딱! 기억하고 관아에 가서 먼저 여기 위치부터 물었소!”

“이야! 역시 열하가 열하했구나! 한 건 했어!”

“흐흐. 암암! 내가 바로 열하라고!”

뿌듯해하던 열하는 나와 별호, 그리고 훤을 보더니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대표 누이의 옷이 아주 화려하구먼? 꼭 부잣집 안방마님 같아.”

“어때? 괜찮아?”

“이 비단은 꽤 값이 나갈 텐데? 그리고 이 두 놈들도 왜 이렇게 빼입었대? 돈이 어디 있어서? 어디서 훔친 거요? 어디서 났소!”

“훔친 거면 차라리 마음 편하겠다. 거금 주고 샀어. 여기 들어가려면 이 정도는 입어야 한대. 그 망할 새끼. 내가 꼭 잡아서 족친다!”

다시금 헤실헤실 웃으며 장사하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쫓아가 수염을 모두 잘라 버리고 싶었다.

‘내가 꼭 찾는다!’

나는 투지에 불타며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열하는 입술을 비죽이며 메마른 땅을 툴툴 찼다.

“……나는?”

“어?”

“내 것도 샀지, 대표 누이? 명색이 대표 누이인데, 내 옷이 없을 리가 없잖아. 그렇지?”

열하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초롱초롱 응시했다.

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열하가 환하게 웃었다.

“그래! 역시, 영원이 영원이고 열하가 열하했다고 할 대표 누이라면 당연히 옷을 살 때 내 것도 샀을 것이오! 어디 있소? 크기를 잰 것이 아니라 딱 맞을지 모르겠네.”

“주, 주막으로 가져다 달라고 시켰어!”

“오, 그렇소? 빨리 일을 해결하고 마을로 가야겠네! 장담하건대, 여기서 이런 비단의 가치를 아는 건 나밖에 없을 것이오.”

“하하. 당연하지! 열, 열하가 아니면 누가 알아?”

내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말하자 옆에서 훤이 속삭였다.

“어쩌려고 거짓말을.”

“……진짜 사 주면 거짓이 아니 되겠지.”

“쯧쯧. 말 한 번으로 천 냥 빚을 지는 대표로군.”

훤의 말에 분노가 활활 불타올랐다. 열하는 기분이 좋아져 별호의 옷을 대신 걸쳐 보기까지 했다.

저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니 없다고 진실을 고할 자신이 없었다.

‘젠장. 그 망할 놈을 꼭 찾아서 내 옷을 환불받고 열하 옷이나 한 벌 해 줘야지.’

뭐, 훤에게 말한 것처럼 사실로 만들면 되는 것이니…….

일단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기와집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크고 웅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다.

“그나저나 경매는 어디서 하는 거야?”

“다들 술이나 한잔 걸치고, 분위기가 들뜨면 그때 시작한다고 들었소. 우리도 분위기를 보고 있어야 할 듯싶소.”

“뭐? 술까지 먹어야 해?”

“내 말이 그 말이오.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어. 관아에서도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질 않나…….”

“아마 뒷돈을 챙기는 거겠지. 거기에 너도 끼게 되었고.”

“에? 나는 돈 한 푼 받지 않았는데?”

“여기 들어올 패를 받고, 어제는 거한 상을 받았겠지. 잠자리도 꽤나 좋았을 테고.”

“……그, 그건 내가 당연히 관청에서 일하는 몸이니…….”

“그렇다고 해도 과하지 않았나?”

훤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열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내가 너무 고생해서 앞에 있는 안락함에 현혹되었어.”

“그렇다고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다. 어차피 너 하나가 움직인다고 해서, 이 큰 노비 시장이 사라질 리는 없으니까.”

열하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대체 언제 시작하는 거야?’

기와집 안의 풍경은 술판 때문인지 시장통처럼 북적였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기도 했다. 우리도 마냥 주뼛주뼛 서 있을 수는 없어서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이어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많은 음식이 나왔다. 별호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나는 열하를 보며 물었다.

“돈도 안 냈는데 벌써 이런 걸 줘?”

“대표 누이, 어차피 조금 있으면 서로 돈을 내겠다고 난리를 칠 거야. 어제 잠깐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기서 세금 조로 받는 돈으로 관아 사람들 임금 몇 년 치는 줄 수 있대.”

“그렇게 노비를 많이 산다고? 자기 일 시키려고 하는 사람한테 왜 돈을 많이 들여?”

“알잖아, 대표 누이. 대표가 찾는 놈도 눈동자가 푸른 놈이라며? 그럼 타국 놈일 거 아냐?”

“……그렇지.”

가만히 듣던 훤이 나를 차갑게 쳐다보았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왜 그렇게 봐?”

“타국 사람을 노비로 만드는 건 법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게 문제가 되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지.”

훤은 팔짱을 낀 채 단호하게 말했다.

열하가 식은땀이 났는지 목덜미를 쓸었다. 그는 나직이 훤에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이거 위에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니오? 판이 꽤 큰데. 자칫 우리까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상황을 지켜보도록 하지. 이 일에 어디까지 연관이 되어 있는지 모른다. 너도, 나도 아직 힘이 없다.”

“그래도…….”

“적임자를 찾는 데도 시간이 걸릴 테고. 일단 이들이 어떤 식으로 노비를 사고파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진상 조사를 할 사람을 찾을 수 있어.”

가만히 듣던 별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일단 장단을 맞추는 게 중요하겠지? 그렇지?”

“그래. 네 말이 맞는다. 우리는 최대한 이들의 눈에 띄지 않고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

“어라? 별호 네가 웬일로 맞는 소리를 다 하냐? 나 없었을 때 철들었냐?”

열하의 말에 별호가 씩 웃으며 백숙 다리를 뜯었다. 그는 우걱우걱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그러니 내 여기 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척하겠네! 맛있게 먹어야 의심을 안 할 것 아냐?”

훤은 혀를 끌끌 찼다.

“……그냥 먹고 싶었다고 말해. 부끄럽지도 않냐?”

“쳇. 왜? 나처럼 맛있게 먹어야 의심을 안 하지. 너희처럼 그렇게 삐딱하게 앉아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면 되겠냐?”

“……큼큼. 우리도 한 점 먹으려고 했어. 그렇지, 훤아?”

“……너나 많이 먹어라.”

“훤이는 아닌가 본데? 그나저나 열하 너는 어디서 잤어? 관아에 갔더니 일찍 나갔다던데.”

“나는 이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양반 집에 가서 잤지! 그러니 여기 문지기도 내가 패를 내미니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겠느냐?”

“오오. 역시 벼슬이 좋긴 좋다?”

“……하. 그런데 내가 양반을 모셨던 상놈과 이렇게 한 상에 앉아 있다니……. 이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경우람.”

열하는 현실을 자각했는지 애꿎은 한숨만 푹푹 쉬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왜 이래? 우리 앞으로 같은 팀…… 아니, 같은 무리인데! 같은 곳에 속해 있을 땐 계급 같은 거 없다니까! 약속했잖아?”

“흥. 그런데 왜 우리는 대표 누이를 이름이 아니라 대표 누이, 대표 누이,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요?”

“나는 너희 무리를 관리하는 상급자니까. 가족은 너희들이고.”

“……이상하게 피해 가네. 그리고 다들 가족이 있는데 무슨 가족을 하라는 거요!”

“제2의 가족. 몰라? 가족도 살아가면서 하나하나 다시 만드는 거야.”

“……말은 참 잘한다!”

“헤헤. 아무튼 상황을 좀 기다리면 된다는 거지?”

“그런데 돈은 챙겨 왔소? 옷 사느라 돈이 남았을 리가 있나?”

열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갑작스레 큰 지출이 있긴 했지만, 로버트를 구할 돈 정도는 있었다.

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별호는 목이 막히는지 술과 닭을 번갈아 가며 먹었다. 그의 얼굴이 왜인지 기름져 보였다.

나는 따뜻한 육전을 먹었지만 열하와 훤은 음식도 입에 대지 않았다.

‘역시 신분이 진짜 다른가 보네.’

열하는 이 자리를 계속 불편해했다. 훤에게 계속 진상을 조사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열변을 토했으니까.

열하는 관청에서 부당한 일을 관리하는 벼슬이었고, 정의로운 일을 하고 싶어 했다.

훤은 말하면 입만 아팠다. 진정한 자기편을 찾겠다고 나선 왕세자였다.

그들은 전국 각지에서 외국인 노비를 사겠다고 몰려온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건 먼 미래에서 온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때 훤이 내 쪽으로 다가와 입을 뗐다.

“그런데 대표, 너도 원래부터 노비를 사려고 하는 목적이었나?”

“뭐?”

“타국에서 건너온 노비들은 양반들이 장신구처럼 자랑하려고 내놓는 경우가 많다. 너도 우리 중 타국인을 두어서 자랑하려고 할 작정이냐고 묻는 거다.”

“흐음. 물론 너희는 내 자랑거리고, 내가 찾는 놈도 당연히 자랑하고 싶지, 사람들한테.”

훤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열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별호도 닭 뼈를 접시에 내려 두었다.

“그러나 순서가 틀렸어. 일단 나는 노비를 찾는 게 아니야. 내 사람을 찾는 거지.”

“…….”

“또한 얼굴이 반반한 타국인을 찾는 게 아니야. 내가 찾는 사람은 유일하거든.”

“사람이라.”

훤이 나직이 읊조렸다. 열하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내게 말을 걸었다.

“대표 누이는 나도 그렇고, 이 머슴 놈도 그렇고, 이자도 그렇고 어떻게 그리 확신하오?”

“너희가 잘하는 걸 봤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자세하게 말해도 너는 모를 거다. 다만 나는 너희를 이용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난 너희가 사람들의 환호성을, 사랑을 받기를 원해. 다섯 명 모두가 모여서.”

“꼭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야 행복한 건 아니잖소?”

그때 별호가 내게 물었다. 나는 별호 앞쪽으로 육전이 담긴 접시를 밀어 주었다. 별호가 해맑게 웃었다.

예전에도 별호가 비슷하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영원도 처음에 팬덤 타임리스가 모이기 전, 아주 초짜 신인일 때가 있었다.

나는 별호와 다른 멤버들에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하자고 말했다.

별호는 그때 꼭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지 않아도, 춤을 추고 노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자조했다.

그때 로버트가 별호에게 이렇게 말해 줬다.

네가 노래하고 춤을 추는 걸 모두가 사랑하게 된다면, 너를 보고 춤을 추고 노래하는 걸 꿈꾸게 되는 사람이 생길 거라고.

별호는 종종 인터뷰 때 그 이야기를 언급했다. 나는 별호를 보며 말했다.

“네가 노래하고 춤을 추는 걸 모두가 사랑하게 된다면, 그때는 신분 때문에 꿈을 포기한 사람들도 꿈을 다시 꾸게 될걸.”

“!”

별호는 젓가락을 떨어트렸다.

훤의 표정 역시 한껏 놀란 얼굴이었다. 반면 열하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러니까 너희가 먼저 솔선수범해서 꼭 친해져. 신분이 아니라, 같은 영원의 구성원이 되었으니까.”

“…….”

“어딜 가도 너희가 영원할 거라고, 모두가 생각할 수 있게.”

그들은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든 어색하고 낯선 처음이 존재했다.

내가 머슴이었던 별호를 보았을 때, 그리고 주모 일을 한평생 해 왔다던 이 몸으로 깨어났을 때도 그랬다.

그러나 그 낯섦 뒤에는 두근거림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지금 그랬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멤버들을 찾을 때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아니, 이번에는 꼭 문제없이 아이들을 지키리라는 꿈이 생겼으니까.

“자자,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모두들 준비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네 번째 별, 로버트를 만날 시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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