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아이돌-6화 (6/27)

6. 사전 조사 시작

전기가 없는 밤하늘에는 아직도 적응하지 못했다. 떨어질 것만 같은 별들과 호롱불 따위도 마찬가지였다.

첫날에야 별도 아름답고, 호롱불도 낭만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대체 이놈들을 데리고 춤, 노래 연습을 시키는 게 맞을까?’

나는 평상에 누워서 배를 툭툭 두드리고 있는 별호를 바라보았다.

별호는 힘이 남아도는지 장작을 패고서도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팔팔했다.

“별호야, 밥 먹을래? 국밥 하나 말아 줄까?”

“그럴까요, 그러면?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 내가 출출한 거 말이에요. 주모…… 아니, 대표 누이는 아주 귀신이구먼. 귀신이야.”

“……그래. 밥이라도 먹으면서 기다려라. 네가 무슨 생각이 있겠냐?”

계속 지켜본 그는 세 시간 간격으로 국밥을 두 그릇씩 해치웠다.

내가 아이돌을 키우는 건지, 소를 키우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서울에서도 별호는 참 많이 먹었다. 매번 <찾아라 맛있는 공간!>부터 시작해 <맛있는 아이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별스타그램에도 온통 먹는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음식 예능 프로그램 섭외는 끊이지 않았다.

‘그거 막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입만 다물면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외모였다. 몸에 박인 잔근육과 잘 어울리는 구릿빛 피부, 날이 선 외모는 조화를 이뤘다.

‘아니, 서울에서보다 몸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해…….’

저고리를 살짝 풀어 헤친 별호의 몸은 헬스장에서 만들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그의 몸은 도끼와 밭을 가는 손짓으로 만든 자연산임이 분명했다.

“많이 기다렸소?”

그때 주막의 문을 열고 열하가 들어왔다. 열하는 손을 흔들며 상기한 표정이었다.

‘저런 애가 어떻게 사또를 하고 앉아 있는 거람……?’

열하는 들어오자마자 스텝을 밟으며 열정을 드러냈다. 감추려고 해도 몸의 본능은 숨겨지지가 않았다.

정말로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친구였다.

“이봐, 머슴. 일어나.”

그는 별호를 보며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는지 어깨를 폈다. 아래로 깐 목소리가 지하를 뚫고 들어갈 기세였다.

누워 있던 별호는 입술을 비죽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별호가 피지컬 면에서 더 웅장하구먼…….’

공부만 하던 열하가 몸으로 별호를 이길 수는 없었다. 열하는 제 앞에 서 있는 저보다 5센티미터는 큰 별호를 위아래로 훑었다.

“아, 아니 너는 밥만 먹고 몸만 움직여 댔느냐? 사내가! 응? 그렇게 몸만 커서 어딜 써먹느냐!”

“써먹을 데야 많죠. 내가 이런 몸을 갖고 있으니 인기가 하늘을 찌른단 말입니다. ……참, 사또가 뭘 알겠습니까?”

별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열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는 그들을 보며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지 말고 앉아서 국밥 한 그릇씩 해. 길게 할 얘기가 있으니.”

내 말에 별호와 열하가 평상 위에 앉았다. 열하는 먹는 둥 마는 둥 젓가락으로 고기만 몇 점 건져 먹었다.

반면 이미 그릇을 싹 비운 별호는 열하의 그릇을 보며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별호의 이마를 내리쳤다.

“이 자식아! 밥값을 해! 밥값을! 내가 너 먹여 살리려고 지금 국밥집 일을 손에서 못 놔! 앙?”

“……대표 누이…… 화내니까 좀 무섭소.”

“됐고, 내일 열하도 낮에 괜찮다고 했지?”

“그렇네.”

“어쭈? 그렇네? 내가 말했지? 아이돌…… 아니 춤과 노래를 계속 하고 싶으면 그 말버릇부터 고치라고.”

열하는 시답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내 이번만은 그렇게 해 드리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내일부터는 시장 조사를 시작할 거야.”

“시장 조사라면?”

“우리가 설 무대는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지.”

별호는 내 말에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반면 열하는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국밥도 먹어 봐야 말 수 있는 것처럼…… 무대도 한번 봐야 설 수 있겠군.”

“그래. 멀지 않은 곳에 남사당패가 온다고 하더라. 내일 다들 같이 가서 구경하고, 각자 감상문 제출하도록.”

“누, 누이!”

별호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사색이 되었다. 그의 무서운 표정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왜?”

“나, 나는……!”

“뭔데? 무섭게 왜 이래?”

“나, 나는 글을 모르오!”

그는 울상이 된 얼굴로 나와 열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그의 말에 이마에 힘줄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그럼 열하한테 도움을 받아서 제출하면 되겠다. 그치? 둘은 이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친, 구, 잖아.”

“내가 글도 모르는 이자와 벗이란 말이오?”

“난 팔에 근육 없는 자와 친구 하지 않소!”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친구가 되길 거부했다.

‘미운 정이 오래 드는 법이다…….’

나는 두 사람의 말을 가뿐히 무시한 채 다른 이야기를 더 꺼냈다.

“시장 조사를 마친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안무 연습도 하고 노래 연습도 할 거야.”

“본격적으로 무대에 진출하는 거요?”

“그러기 전에 우리는 프로…… 아니 장인 정신을 보여 줘야 해. 열하는 목소리가 좋으니까 노래 연습할 곳을 찾아보고, 별호는……”

별호는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일단 국밥 잘 먹고. 응? 몸 잘 챙겨.”

“알겠소!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누이!”

“그래…….”

별호는…… 해맑으니…… 여기서도 해맑으니 다행이었다.

* * *

다음 날 주막 문에 휴업이라는 팻말을 달아 두었다.

나는 간단하게 주먹밥을 싸며 나갈 준비를 했다. 별호만 아니었다면 좀 더 일찍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내가 주먹밥 세 알을 만들자 표정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내가 서른 알을 만들자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밥을 제때 주지 않으면 힘없이 토라질 것을 알기 때문에 하는 수 없었다. 나는 그를 데리고 장터로 향했다.

‘이런 날이 장날이라 장사도 잘될 텐데…….’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주막으로 성공할 것이 아니라, 나를 믿어 주었던 아이들을 다시 모아 제대로 성공할 테니 말이다.

혹시 몰라서 돈도 넉넉히 챙겼다. 남사당패에게 물어볼 것도 많았고, 장터에 가면 틀림없이 돈이 새어 나가는 법이었다.

“여기!”

멀리서 열하가 손을 흔들었다. 그는 누가 보아도 고급스러운 비단을 걸친 채 우리를 위아래로 훑었다.

“대체 뭘 준비한 거요?”

“……주먹밥.”

“되었으니 빨리 갑시다.”

열하는 우리가 부끄러운지 두세 걸음 떨어져 걷기 시작했다.

장터에는 볼 것도 먹을 것도 풍요로웠다. 지글지글 굽고 있는 전과 바람에 휘날리는 값비싼 비단들. 작은 장식품들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런 장터에서의 메인은 바로 마당이었다.

가판대와 물건들로 북적거리던 곳과 달리, 마당은 누가 비워 놓기라도 한 듯 텅 비어 있었다.

곧이어 마당에 볏짚이 깔렸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놓치지 않고 열호의 등을 두드렸다.

열호는 내 손짓을 잘 알아듣고 깔린 볏짚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덕분에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다.

“쳇, 엽전 몇 푼 던져 주면 알아서 자리가 날 것을…….”

말은 그렇게 해도 열하의 눈은 준비를 하고 있는 남사당패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풍악을 울릴 수 있는 때깔 좋은 악기와 몸을 풀고 있는 남사당패의 모습이 보였다. 남사당패는 총 일곱으로 인원이 꽤 많았다.

‘저런 식으로 준비를 하는구나…….’

그들의 준비 과정 또한 볼거리였다. 딱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가자 꽹과리를 갑자기 치기 시작했고, 여인들이 앞을 지나치면 물을 한 바가지 퍼서 상의를 적셨다.

무대 전의 퍼포먼스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방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로 마당이 붐비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을 알리는 장구 소리가 들렸다.

“자아! 잘 오셨습니다!”

조화로운 풍악 소리가 귀를 즐겁게 했다. 남사당패는 긴장 하나 하지 않은 표정으로 덤블링을 하기 시작했다.

‘헉……!’

영화에서도 남사당패의 모습을 보긴 했다. 그러나 실제로 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전율이 올랐다.

그들은 단순히 춤과 노래를 하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과 접촉하고 참여를 권유했다.

그러니까 이들은 하나의 연극을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참여하며 함께 만들어 가는 하나의 연극.

마당놀이, 그것은 복합 문화 예술이었다.

나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아무리 보아도 내가 만들 아이돌은 이 시장에서 먹힐 것이다. 한국의 아이돌 무대는 누가 보아도 완벽하게 계산된 무대이다.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할, 그냥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무대는 승산이 있을 듯싶었다.

“……저런 걸 어떻게 하오!”

“우리가 저런 걸 할 수 있다고? 대표 누이 꿈도 크쇼.”

정작 열하와 별호의 표정은 사색이 되어 갔다. 그들은 남사당패의 공연을 똑같이 따라 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별호와 열하의 등을 툭툭 치며 나가자고 손짓했다.

남사당패의 공연 때문인지 다른 곳은 사람이 현저히 적었다. 별호와 열하는 입술을 비죽이며 털레털레 걸었다.

아까는 열하와 떨어져서 걷던 별호가 이제는 별의별 생각이 드는지 그와 딱 붙어 걷고 있었다.

“다들 왜 이래? 감상문 써야지.”

“감상문은 무슨 감상문이오? 나는 저들보다 못할 것인데……. 실패할 것 같다고 적으면 되오?”

“……대표 누이…… 우리를 데리고 저런 공연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소……. 아무리 생각해도 국밥 장사에 무게를 두는 것이…….”

나는 그들이 정신 차릴 수 있도록 박수를 쳤다. 고개를 숙이고 걷던 그들이 동시에 나를 보았다. 나는 그들과 시선을 하나하나 맞췄다.

“우리는 저런 공연, 안 해.”

“……뭐요?”

“똑같은 공연 하려면 시장 조사를 왜 해? 시장 조사는 우리가 차별성이 있는지 확인하는 거야.”

“…….”

열하는 내 말에 턱을 매만졌다. 나는 열하 쪽으로 다가갔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공연을 할 거야. 너희가 빛날 수 있는 법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또 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거요?”

“아니. 현실을 말하는 거야. 우리가 할 공연은 사람들이 엽전을 던지지도, 사람들이 이렇게 하라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을 테니까.”

나는 그들을 향해 확신의 미소를 지었다.

* * *

“아니……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더니…… 지금 우리를 데리고 여길 온 것이오?”

열하는 혀를 끌끌 차면서도 이마에 난 땀을 닦았다. 곱게 쓰고 온 갓은 이미 뒤로 넘긴 상태였다.

별호는 물 만난 고기마냥 산을 잘 탔다. 이미 그는 언덕을 지나 큰 바위에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대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무엇이요? 감상문이라도 쓰게 시간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니오?”

“감상은 아까 다 들었고, 너도 별호 감상문 도와주기 싫다며? 썼다고 치자.”

“공부를 어떻게 했다고 치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그래. 말이 되는 소리야.”

“뭐, 뭐요?”

열하는 땀을 닦으며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내가 이들은 데리고 산으로 오른 건 나무가 필요해서였다.

가만 보니 장터에서 공연을 시작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우리에게는 주막이라는 무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막에서 무대를 하려면 가장 먼저 의자가 필요했다.

볏짚 위에 앉아서 공연을 보는 것은 꽤 피로했다.

우리는 공연을 보러 온 손님에게 최상의 컨디션을 제공해 줄 의무가 있었다.

“의자보다 바닥이 편하다니까요!”

별호는 나무를 열심히 베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지금 세상에서야 양반다리가 가장 편하겠지만…… 보는 내가 불편했다.

그리고 의자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관람객을 어느 정도 제한하겠다는 소리였다.

적은 물량일수록 사람들은 더 원하는 법. 나는 다가올 행복한 미래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누이, 무슨 소리 못 들었소?”

“응? 무슨 소리?”

그때 별호가 나무를 패고 있던 도끼를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열하도 나도 그의 말에 숨을 죽였다.

스스슥.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였다. 그러나 이상하게 섬뜩했다.

“야, 왜 그래?”

열하는 주춤주춤 별호에게 다가갔다. 순간 별호는 눈을 번쩍 떴다.

“뛰어!”

그의 뒤편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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