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아이돌-1화 (1/27)

1. 관짝에 들어가며 미소

“2576, 운동 시간이다.”

2576은 언제 들어도 어색한 내 또 다른 호칭이다.

WON 엔터테인먼트 대표,

연예 기획의 큰손으로 불리던 내가 하루아침에 추락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것도, 내가 믿었던 자들의 손에 이렇게 허무하게 망가질 줄은…….

주가 조작 혐의 및 마약류 관리법 위반뿐 아니라 내가 뒤집어쓴 죄목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개새끼…….’

내 모든 죄는 모두 그 새끼가 저지른 일일 텐데.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때 귀를 긁는 철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얼마 걷지 않아 복도에 벽에 붙어 있는 거울을 마주쳤다.

단정하게 깔끔한 수트를 차려입고 다니며 화사하게 웃던 내 모습.

이제 그때는 온데간데없이 까슬한 얼굴에 파리한 안색이 역력한 죄수복을 입은 30대 중반의 여자만이 남았다.

‘과연 복수할 수나 있을까?’

10년 안에 어떻게든 이곳에서 나가 내 죄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야 했다.

힘없이 교도관에게 이끌려 걷는데 복도 끝에 눈부신 햇빛이 일렁였다.

하루에 한 번, 유일하게 사람과 말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지만 전혀 달갑지 않았다.

혼자 산책이라도 하려고 해도 수감자들이 내게 몰려들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를 잘 모른대도 내가 키운 애들에 대한 정보는 빠삭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수많은 팬덤이 있는 나의 아이돌.

보이 그룹 ‘영원’

팬덤 이름은 타임리스. 줄여서 탐릿.

여기도 탐릿이 많았다.

내 정체가 밝혀진 건 순식간이었다. 운동 시간은 내게 따가운 질문을 견디는 시간이 되었다.

“열하는 여친 있어? 솔직히 말해 봐.”

“별호는?”

“훤은 사생아라던데 진짜야?”

저런 질문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가십에 반응하는 것이 더 역효과라고 내가 누누이 말해 왔으니까.

그러나 내 멱살을 잡아 오는 저돌적인 저 무리에게 반응을 하지 않는 건 어려웠다.

“현명 오빠를 잠도 못 자게 괴롭혔다며? 이 나쁜 년.”

“그러니 로버트가 자기 나라로 다시 도망갔지.”

쟤네는 지치지도 않나. 매번 볼 때마다 내게 침을 뱉거나 돌이나 흙을 뭉쳐 던지는 무리다.

“니가 우리 오빠들 인생 망쳤어 알아?”

오빠는 무슨. 나이는 자기가 훨씬 많을 텐데.

‘소문의 시작과 끝은 모두 한곳이야. 신경 쓸 것 없어.’

직원들이나 애들에게 내가 누누이 하던 말이었다. 일일이 반응하지 말 것.

하지만 나를 떠밀고 때리는 짓을 매일같이 할 줄은 몰랐다.

“하…….”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아 낸 뒤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지막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내게 몰려드는 탐릿을 물리쳐 주는 것은 교도관의 몫이었다.

‘애들이 이런 기분이었겠지.’

다시 애들을 떠올리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 왔다.

일찍이 매니지먼트부터 차곡차곡 밟아 가며 내가 하나하나 가르마 방향까지 신경 써 가며 키웠던 그룹이었다.

데뷔 초 무명 시절부터 데뷔곡이 뒤늦게 역주행을 거듭하며, 그 뒤로 낸 곡들도 히트를 쳤다.

작곡 작사 공부를 하고, 연기를 하거나, 뮤지컬로 진출하는 등 녀석들이 자신의 역량을 아낌없이 펼칠 수 있게 도왔다.

영원의 멤버들은 영어나 여러 언어를 직접 공부하며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던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파멸의 원인은 내가 제공한 것일지도 모른다.

회사가 거물급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레 나와 함께 로드 매니저를 하며 친하게 지냈던 최혁재의 지오단 엔터와 남매 회사처럼 지냈다.

그의 소속사는 소규모였지만 나는 그간 최혁재와의 의리를 보아 이것저것 진행을 도와주었다. 지오단 소속 가수들도 원석이 많았다.

나는 지오단 가수들이 우리 소속사에 와서 연습하는 것도 허용했으며 그들은 나와도 스스럼없이 지냈다.

최혁재는 늘 영원을 부러워한 것, 아니…… 시기한 것도 모른 채.

“너처럼 하나 빵 터져야 돈이 돼. 전생에 내가 뭔 죄를 지어 이렇게 구질구질한 애들만 들러붙어서.”

원래 저런 사람이었던가? 최혁재는 변했다. 아니 변한 게 아니라 원래 저런 사람인데 내가 몰랐던 것이다.

돈만 아는 사람. 최근 들리는 소문으로는 주가를 조작한다는 이야기까지 돌던 터였다.

나는 찻잔을 들어 홀짝이며 나긋이 말했다.

“오빠, 애들이 상품이야? 말이 좀 그러네.”

최혁재의 눈썹이 한쪽으로 치켜 올라가던 그 순간 대표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열린 문으로 쭈뼛쭈뼛 들어온 그녀는, 지오단 엔터의 애물단지라고 부르던 나이가 많은 여돌 멤버의 리더였다. 로즈라는 예명이던가?

결혼을 발표했지만, 그것조차도 기사화가 되지 않고 금방 묻혀 버린 그녀.

비서가 우왕좌왕하며 그녀를 뜯어말리려고 하는데, 그녀가 고소장을 테이블 위로 내밀었다.

‘피해 보상 청구권’.

그녀가 더듬더듬 말했다.

“계약 해지를 해 주신다고 하셔 놓고 저한테 이렇게 큰 액수를 달라고 하시는 법이 어딨어요? 몇 년간 정산도 안 해 주셨잖아요.”

입꼬리를 비틀어 웃던 최혁재는 시계를 풀어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재떨이를 집어 들었다.

“내가 적자 년들 키운다고 쓴 돈이 얼만데. 이게 미쳤나.”

최혁재의 위협에 그녀는 자신의 배를 감싸 안으며 자리에 웅크려 앉았다.

임신했구나.

나는 곧장 알아차렸다.

재빨리 그의 손을 꺾어 잡아 틀었다. 그의 손에서 재떨이가 바닥으로 떨어져 뒹굴었다.

“아악, 씨발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몸을 부들대며 떠는 그녀에게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덮어 주며 물었다.

“괜찮아요? 같이 나가요.”

그녀를 부축한 나오기 전, 손가락을 부여잡은 채 노려보는 최혁재에게 나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쓰레기 새끼. 남매 회사라고 언플? 지랄하네. 두 번 다시 나한테 연락하지 마.”

그 뒤로 내가 최혁재와 척을 진 것은 엔터계에서 유명한 일이 되었지만 그런 것쯤 상관하지 않았다.

로즈, 아니 김선경의 소송 비용을 내가 다 댄 것으로 최혁재와는 완벽하게 손절했다.

최혁재는 본디 질이 나쁜 인간이었다. 힘이 없었을 때는 그것을 숨겼을 뿐. 강자에게 빌빌거리고 약자에게는 누구보다 떵떵거리는 인간.

그래도 소속 아티스트들까지 절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과도 이미 정이 많이 들었다.

함께하던 컬래버레이션 작품들까지 있어서 마무리되는 대로 정리하려던 것이 결국 이 사달을 만들었지만.

최혁재의 소속 아티스트 몇몇이 마약과 관련한 스캔들을 일으켰다.

그 일에 영원의 유리 멘탈이던 현명이가 휘말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을 내가 직접 겪을 줄이야.

내부자와 최혁재가 이뤄 낸 대환장의 컬래버레이션이었다.

그 내부자는 다름 아닌 내가 언제나 믿고 또 믿었던 영원의 멤버 현명이었다.

“내가 널 실망시킨 적 있니?”

이미 약에 절어 버린 녀석은 내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멍한 눈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구치소에 가기 전, 병원에 들러 마지막으로 본 망가져 버린 녀석의 모습이 더 슬펐다.

매스컴에서는 최혁재가 인터뷰하는 것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제가 그간 친하게 지내 오며 아끼던 원 엔터 사장인 서아원을 잘 잡아 주었어야 했는데.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그가 한 일을 수습해 어떻게든 소속 아티스트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두 회사를 잘 이끌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서 사장은 마약 제조, 유통도 모자라 자기 회사 소속 아티스트들뿐 아니라 우리 회사의 아티스트들에게까지 약물을 권했으며…….”

울먹이는 최혁재에게 옆의 비서가 손수건을 건넸다.

“그들은 모르고 당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꼭 다시 재기시키고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원 엔터를 우리 회사처럼 재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약을 제작하고 유통하며 아티스트들을 망가뜨린 것이 나라고.

내가 그렇게 아끼던 아이들을 망가뜨린 것이 나라는 누명.

내 회사, 그리고 영원을 앗아 간 천하의 쓰레기 새끼.

영원 멤버들 중, 유일하게 약에 물들지 않았던 사람은 훤이었다.

가끔 나를 보러 면회를 와서는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쭈, 울겠네 아주.”

그는 씩 웃어 보였다.

“기다려요, 대표 누나. 내가 곧 빼 줄 테니까.”

“대표 누나는 무슨. 난 끝났어. 너 갈 길 가.”

“지오단, 아니 우리 원 엔터 제가 누나한테 다시 줄게요. 조만간, 그렇게 만들 거예요.”

훤이 유리창 너머로 내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해 보였다.

“내가 뭐 좀, 알아낸 게 있거든요. 꼬리를 잡았어요.”

그때 나는 모든 걸 거의 포기했다. 훤이를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똥은 피하랬지? 관둬. 너나 잘 살아.”

훤은 셔츠 단추를 풀며 마른세수를 했다.

“아니. 저도 그렇겐 못 해요. 누나가 어떻게 일군 건데.”

‘누나라…….’

처음에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다. 나를 믿고, 누나로 생각하라며 따라오라고. 그런데 회사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대표님 호칭이 더 익숙해졌다.

지금은 뭐 어떤가? 이제 대표도 아닌데.

나는 그저 웃어 보였다.

내가 뽑은 녀석이긴 하지만 잘생기기는 참 잘생겼다.

바르고 곧은 정갈한 이목구비에 눈빛 하나까지 보통 인물이 아니긴 하다.

그랬던 녀석이 한 달째 감감무소식이다. 엔터계가 얼마나 바쁘게 돌아가는지 알았으니까 서운하지는 않았다.

대신 오늘은 다른 사람이 나를 만나러 와 줬다.

나와 인연이 닿았던 여돌 로즈…… 아니, 선경이가 자신을 닮은 귀엽고 똘망한 아기와 함께 왔다.

“봐 봐, 엄마 은인이셔. 예쁘지?”

“예쁘긴 뭘. 그나저나 애기 데리고 이런 데 오지 마. 뭐 좋다고 와?”

“언니, 아니 대표님이 저랑 얘 구해 주셨잖아요. 저는 진짜 언니 편이에요. 근데 대표님 혈색이 많이 안 좋아요.”

“…….”

“건강하셔야 해요. 그 새끼 요즘 살이 아주 있는 대로 올라서 TV 나올 때마다 꼴 보기가 싫다니까요.”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새끼, 상판대기 재수 없긴 하지.”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세상의 끝에 내 사람 셋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던데. 두 명이나 날 보러 와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는 웃으며 터덜터덜 문을 나서기 전 선경과 아기에게 손을 흔들었다. 뒤돌아 문고리를 잡는 순간 심장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곧 선경의 비명과 교도관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언니, 언니!”

“2576! 정신 차려! 2576!”

나는 그렇게 죽었다.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장례식장에 있을 수 있던가?

내 장례식은 훤과 선경, 그리고 그의 남편이 도왔으며, 연일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텔레비전에는 정말 우습게도 나를 죽게 한 최혁재의 자살 소식도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비밀 문건들이 세상에 공개되자 도피하듯 죽어 버렸던 것이었다.

그걸 밝혀낸 것은 기특하게도 우리 훤이었다.

수트를 입고 인터뷰하는 훤의 모습에 나는 유령이 되어서도 절로 터지는 미소에 입을 가리고 웃었다.

“저희 대표님의 누명을 벗기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으며, 최혁재 대표, 아니 최혁재는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마약을 유통시키고 있었습니다…….”

내 죄를 벗는 것을 내가 죽고 나서 보다니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로는 저승에서 곧 최혁재를 만난다는 기쁨에 나는 웃었다.

관짝에 들어간 최혁재를 저승에서 실컷 팰 기쁨에 기꺼이 눈을 감았다.

그런데…….

눈을 뜬 지금, 나는 활활 끓어오르는 아궁이 앞에서 뜨끈한 고깃국을 담은 뚝배기를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주모! 빨리빨리 좀 내와! 관아에 들어가 봐야 한대도?”

시선을 돌리자 한 남자가 평상에 앉아 숟가락을 쥐고 나를 원망스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저요? 이거요?”

남자는 별 미친년 다 보겠다는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귀신 씌었소? 당장 주쇼!”

서아원.

저승에서 최혁재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죽이네 마네 해야 했는데…….

대체 왜 조선 시대의 주모가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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