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7 화 서로의 계산
“동생, 농담도 잘 하는군. 수백 년 동안 번개의 영기를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 소문에 의하면 운이 아주 좋은 제자만이 깨우칠 수 있다던데, 동생도 참, 장난치지 말라고.”
백현행은 눈살을 찌푸리며 표정이 수 차례 바뀌었다가 이내 다시 웃음을 지었다.
“동생, 하나도 재미없는 농담이네. 우리가 성의가 없는 것 같으면 그냥 직접 말하면 되잖아.”
소한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언짢아했다.
엽운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두 형님께서는 어떤 면에서 제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두 분이 무영봉의 제자가 아니며 무영봉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건 확실하네요.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큰 장사를 하시면서 엽운이라는 사람을 모를리 없으니 말입니다.”
엽운은 자신감이 넘쳤다.
이제 막 무영봉에 왔지만 벌써 기세가 등등했다.
명사일과 일전을 벌이고난 후 분명 무영봉의 제자 대부분은 그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천생일겁은 비록 모두가 알지 못하는 기술이지만 안목이 좋은 제자라면 그 속에서 번개의 힘을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신뇌멸세를 시전하는 것을 목격한 제자들도 있으니, 그가 번개의 영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숨길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내는 편이 좋았다.
소한과 백현행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아직도 믿을 수 없는 눈치였다.
엽운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검을 만들자 손끝에서 번개가 번쩍이는 것이 보였고, 사방에서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뇌운전광검? 그렇다고해서 네가 번개의 영기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아니지. 진기를 응집시킬 수만 있으면 번개의 형태를 흉내 낼 수는 있으니까.”
백현행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여전히 엽운이 번개의 영기를 깨우쳤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두 사형께서는 뇌운전광검에 대해서 조금 아시는 것 같군요. 게다가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도 좀 섞여있는 것 같네요. 진기를 응집시켜 보라색 번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생각하신다면 다들 더 이상 할 얘기가 없겠지요. 안녕히 계시길!”
엽운은 말을 마치며 몸을 일으켜 천운루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백현행과 소한은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엽운보다 한 발 앞서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농담 좀 해본 거야. 그냥 흘려들으라고 동생. 우리 동생이 번개의 영기를 가지고 있다면 훗날 그 앞날이 무궁무진하겠군. 그러니 우리도 동생과 잘 교류하는 편이 좋겠지. 다과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으니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백현행은 엽운을 잡아끌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맞아. 어찌 안믿을 수 있겠어. 게다가 나와 백현행 이 녀석은 달라. 동생과 나는 구면이잖아. 이미 만난 적이 있는데 내가 동생을 안 믿으면 누굴 믿겠어?”
소한 역시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백현행과 함께 엽운의 팔을 한 쪽씩 잡아끌었다.
엽운은 개의치 않았다.
가려고 할 때 두 사람이 그를 막지 않는다면 그냥 떠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두 녀석이 반드시 잡으러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형님들, 번개의 영기를 보조할 수 있는 보물이 없다면 저희도 할 얘기가 없지 않겠습니까.”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꼭 없다는 말은 아니고, 무엇보다 수백 년 동안 아무도 번개의 영기를 깨우치지 못했으니까, 그 방면에 도움이 되는 영기를 눈여겨보지 않은 것이지. 하지만 엽 형제가 원한다면 우리 두 사람이 시장 전체를 뒤져서라도 반드시 한두개 쯤은 찾아줄 수 있어.”
백현행은 자신의 가슴을 쿵쿵 소리가 나게 두들겼다.
“그럼 두 분께서 수고 좀 해주시지요.”
엽운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소한은 이미 혼자서 엽운이라는 큰 손님을 독차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백현행의 말을 듣고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분명 대성을 이룰 천재군. 번개의 영기를 보조해 줄 보물은 당연히 찾아줄 것이지만, 그 전에 다른 보물이 필요하지는 않은가? 말만 하면 이 형이 반드시 찾아주지.”
소한은 엽운이 번개의 영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 큰소리를 쳤다.
백현행은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엽운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일단 당분간은 필요한 게 없네요. 하지만 나중에 많은 보물이 필요 할텐데, 그때 다시 두 형님을 찾아오겠습니다.”
소한과 백현행은 잔뜩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번개의 영기를 보조할 수 있는 보물을 짧은 시간 안에 찾아낼 수 없다면 엽운이 다른 보물이라도 원할 줄 알았다.
엽운은 고작 연기경 2중의 수위이고, 그의 수위를 올릴 수 있는 보물은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엽운에게는 수련 자원이 부족하지 않으며 심지어 남아 돌았다.
이번에 시장에 온 목적은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파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막 이곳에 발을 들였고, 이 거래 시장은 무영봉에 속한 곳도 아니니, 낮선 얼굴을 한 그가 물건을 좋은 가격에 판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소한과 백현행이 먼저 그에게 다가왔으니, 그 김에 그들부터 먼저 모색해보는 편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 거다.
소한과 백현행 두 사람이 정말 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고 노점상들과는 다르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엽운의 앞에 구미가 당기는 보물을 내놓지 못한 것에 오기가 생길 것이며 엽운이 어떤 보물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 싶어 할 것이다.
이 때가 바로 엽운이 수완을 발휘할 때이며, 가장 높은 가격에 물건을 팔 수 있는 때였다.
“동생, 나한테는 많은 물건이 있어. 진기를 더욱 연마할 수 있는 단약도 있고, 상품 영기, 그래, 상품 영기도 있어. 심지어 제법 괜찮은 품질의 7품 공법도 있고. 맞아, 제련에 실패한 축기단도 하나 있어. 비록 제련에 실패한 물건이긴 하지만 그 안에는 축기의 법칙이 깃들어 있어. 그걸 복용하면 축기를 깨달을 기회를 얻을 수 있지. 네 수위가 연기경 정점에 도달한 이후에 이 단약을 먹으면 자연히 축기에 도달할 거야.”
소한은 목소리를 낮추며 다급하게 말했다.
“진기를 연마하는 단약은 아무 것도 아니야. 상품 영기는 우리 동생처럼 번개의 영기를 가질 수 있는 재능이라면 분명 적지 않게 가지고 있겠지. 공법은 더더욱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야. 엽 형제는 번개의 영기를 깨우쳤으니 아주 높은 수준의 공법이 필요할 것이고, 번개와 연관이 있는 공법이라면 딱 좋을텐데, 네가 가지고 있는 열화마심결은 꺼내 놓기도 부끄럽다고. 거기다 축기단이라니, 심지어 제련에 실패한 축기단을...쯧쯧”
백현행은 즉시 소한의 말을 이어 받으며 그를 폄하했다.
“열화마심결은 꺼내 놓기도 부끄러운 물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련에 실패한 축기단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네 식견이 너무도 떨어진다는 것이고, 축기경에 대한 인지가 나보다 십만팔천 리 정도 뒤쳐진다는 말이다. 그런 너와 축기경을 논하는 것은 소 귀에 경을 읽는 격이지.”
소한은 콧방귀를 뀌며 반격했다.
두 사람은 십 년을 알고 지냈고, 늘 거래 시장에 출몰하기에 이같은 대화는 샐 수도 없이 많이 했다.
엽운은 찻잔을 들어올리며 입가에는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가 번졌다.
“어찌, 소형이 보시기엔 제가 훗날 축기경을 돌파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까?”
소한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입가를 두어번 씰룩이다가 말했다.
“동생 정도의 자질과 번개의 영기를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운이 있다면 축기경은 수련의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그런데 말이야, 성공률이 높아지는 것을 누가 마다하겠어? 이 축기단은 무조건 도움이 될 거야. 평범한 사람이라면 꺼내지도 않았겠지만, 동생은 이걸 가질 자격이 있다고.”
“제련에 실패한 축기단이지.”
백현행이 옆에서 비웃었다.
엽운은 빙긋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무래도 소형은 저한테 아직도 믿음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진짜 축기단이라면 열댓 개씩 먹으며 놀겠지만, 제련에 실패한 건 필요 없습니다.”
서로를 마주보는 소한과 백현행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방금 엽운은 진정한 축기단이라면 열댓 개라도 먹겠다고 말했다.
이 애송이가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라면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참고로 축기단은 몹시 진귀하여 돈이 있어도 살 수 없고, 가끔 가다 한 알씩 나온다 해도 가격은 하늘을 찔렀다.
“농담도 잘하는군 엽 형제. 축기단은 한 알에 10만 공헌도인데다 몹시 진귀하여 시장에 잘 나오지도 않는데, 어디서 열댓 개를 구한다는 거야.”
소한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말했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축기단 하나에 십만 공헌도나 한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다.
화운이 남긴 보물들 가운데 축기단이 몇 알 있다면, 그것을 내다 팔기만 해도 공헌도가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곧 그는 단념했다.
축기단이 그렇게 진귀하다면 어찌 쉽게 내놓겠는가?
번개의 영기가 있다면 종문에서 알아서 그를 양성하려 할 것이다.
번개의 영기는 누군가가 빼앗을 수도 없는 것이고, 기회가 있어야만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약이나 영기같은 보물이 눈에 띄게 된다면 누군가는 그를 죽여서라도 그것을 빼앗으려 할 것이다.
엽운은 자신이 벌써부터 천검종에서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할 만큼 자만하지 않았다.
“없으면 됐습니다. 보아하니 사존의 말씀이 맞군요. 거래 시장에도 별 거 없네요. 오다가다 한 번씩 보는 걸로 충분하겠어요.”
엽운은 일부러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한과 백현행은 다급히 몸을 일으키며 웃음을 지었다.
“보아하니 동생은 이런 별볼일 없는 물건에는 관심이 없군. 사실 우리도 이런 것들이 값어치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하지만 방법이 없다고. 천검종의 고위층이 흘리는 보물은 고작 이 정도가 다야. 어차피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백현행은 웃음을 짓더니 이내 기대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궁금하긴 해. 정말 값이 나가는 물건은 어떤지. 동생은 분명 한두 개 쯤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소한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진작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엽운은 속으로 크게 웃었지만, 겉으로는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는 줄곧 소한과 백현행의 호기심이 극에 달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해야만 뇌음화룡계 속에 있는 물건들을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것이다.
“그건... 한두 가지 있기는 한데, 당신들에게 보여준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차피 사지도 못 할텐데 말입니다.”
엽운은 몹시 곤란한 듯 했다.
소한과 백현행은 어리둥절했다.
곧 그들이 웃으며 말했다.
“동생, 우리를 너무 얕보는구만. 우리 둘의 재력으로도 살 수 없는 물건이라면 이 시장 전체에서 너와 거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거라고.”
엽운은 의혹이 가득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정말입니까?”
“물론이지.”
백현행은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엽운이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뭘 원하십니까? 약초가 몇 개 있는데 한 번 보시겠습니까?”
“좋아 좋아.”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운이 오른손을 뒤집자 한 척 높이의 암홍색 약초가 그의 손바닥에 나타났다.
“형님들, 이건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