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6 화 거래 시장
모용무정에 대해 그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수청훤과 소호의 짧은 몇 마디 말만으로도 모용무흔이 의심의 여지가 없이 강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소호라 할지라도 그의 상대가 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더욱 절망적이고 무서운 것은 모용무흔의 수련 속도는 멈출 줄 모르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엽운은 저녁을 먹은 뒤 인사를 하고 떠났다.
소령은 그와 함께 있으려 했지만 소호가 그녀에게 호통을 치며 말렸다.
지금 같은 때에 소령과 엽운이 친밀한 모습으로 함께 나타난다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소호가 천검종의 종주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동안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불상사를 가능한 방지해야 한다.
엽운은 마당을 나서자 밤이 왔다.
하늘을 가득 메운 별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고, 무영봉의 안개 뒤에서 반짝였다.
군자당을 당분간 건드릴 수 없다면, 용당이나 천기조 역시 건드릴 필요가 없다.
소호의 말을 통해 엽운은 공헌도를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거래 시장!
천검종의 거래 시장은 천신봉의 발치에 있었는데, 내문 제자 이상의 지위를 가진 자는 시장에서 거래를 할 수 있었다.
거래는 단지 물물교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헌도와 바꿀 수도 있었고, 연단이나 연기와 바꾸는 등 여러가지 방식이 존재했다.
단진풍과 여명홍은 아직 수행중이며, 엽운은 당분간 연기경 3중을 돌파할 수 없으니 우선 거래 시장에 가서 둘러볼 셈이었다.
천신봉의 발치에는 작은 골짜기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교환 시장 이라는 간단한 네 글자가 쓰여 있는 석패가 세워져 있었다.
골짜기의 입구에서는 제자들이 삼삼오오 드나들었고, 엽운이 오는 것을 보고도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엽운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그곳은 바깥세상과 단절된 것 같았다.
골짜기의 밖은 울창한 숲이 있었고 몹시 조용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돌이 깔려있는 길다란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거리의 양쪽으로는 온갖 노점이 있었는데 각종 잡동사니를 팔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몹시 난잡하기 짝이 없었고, 없는 물건이 없었다.
요란한 소리, 고함 소리, 호통을 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곳은 도무지 수선 종문에 있을 법한 장소가 아니었고, 속세에 있는 야채 시장에 가까웠다.
“어이 거기 동생, 낯이 익군. 우리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말이야. 저번에 이 형한테 물건을 사가지 않았어?”
엽운이 넋이 나가있는 사이 옆에서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걸어와 소리쳤다.
엽운은 그를 본 적도 없었으니 거래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사형, 잘못 보셨습니다. 아마 뵌 적이 없을 겁니다.”
엽운이 웃으며 대답했다.
회색 옷을 입은 남자는 얼추 서른 살 정도 되어보였는데, 엽운의 말을 듣고 몸을 돌려 가버렸다.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이 녀석 너무 솔직한 것 아닌가?
방금 낯이 익는다느니 어디서 봤다느니 하는 말을 해놓고, 사람 잘못 봤다고 말해주자 바로 몸을 돌려 가버리다니,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엽운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다시 돌아섰다.
“내 이름은 소한, 소퉁의 소 자가 아닌 소슬의 소 자를 쓴다. 한은 한냉 할 때 한이고.”
회색 옷을 입은 남자는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동생, 어딘가 낯이 익는다니까. 분명 어디서 한 번 본 적이 있을 거야.”
엽운은 말이 없었다.
대체 이 녀석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형,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저희는 만난 적이 없습니다.”
“엥, 아닌가? 설마 방금 내가 본 게 자네가 아니던가? 잠깐 돌아선 사이에 나를 잊은 거야? 귀하신 분들은 사람을 잘 잊어버린다더니, 정말이네.”
소한은 눈을 부릅뜨고 하하 웃었다.
엽운은 그제야 소한이 어째서 만난 적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는지, 그리고 무슨 까닭으로 자신에게 친한 척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만난 적이 있느냐고?
방금 전에 몸을 돌려 다시 돌아왔으니, 한 번 만난 셈이 아닌가?
“잘 봐 동생. 일생에 두 번 봤으면 많이 본 거지. 우린 이미 익숙한 사이라고.”
소한은 큰 소리로 웃으며 친한 척을 했다.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소 사형, 정말 재밌으십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소한이 말했다.
“사형이라 부르지 마. 거래 시장에서는 사형제도 없고 사숙도 없으니까. 그냥 사고 파는 관계일 뿐이지.”
“오, 그렇습니까. 그럼 그냥 소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소형께서는 분명 이 거래 시장 노점의 주인이시겠군요.”
엽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소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나는 노점상 주인이 아니야. 이런 수준 떨어지는 장사를 할 시간이 어디 있겠나. 나는 더 큰 사업을 하지.”
엽운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큰 사업이라면 많은 공헌도가 오고가는 사업일 것이다.
그는 소한이 말한 큰 사업이라는 것에 큰 기대를 품었다.
엽운의 뇌음화룡계에는 수많은 보물이 있다.
화운이 천년 동안 준비해온 물건들이 전부 엽운의 주머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소형,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아니면 뭔가 좋은 물건이 있는 건가요?”
엽운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웃으며 물었다.
소한은 눈에서 빛을 번쩍이고 웃으며 말했다.
“좋은 물건이 있다면 내가 받아 가지. 필요 없는 게 있다면 꺼내봐. 그런데 동생은 사고 싶은 거야, 아니면 팔고 싶은 거야?”
엽운이 말했다.
“사도 되고, 팔아도 됩니다. 중요한 건 마음이죠.”
“마음이라니, 좋은 말이군.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 같은 수선인들이 어찌 속세의 노점상 처럼 사고 팔겠어. 동생, 좋은 물건이 있다면 빨리 꺼내봐. 만족할 만한 값을 쳐줄테니 말이야.”
소한은 하하 웃었다.
그는 엽운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소형께서는 제가 이곳이 처음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는데, 저를 속이지 않는다고 어찌 보장합니까?”
소한은 어리둥절했다.
곧 그는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소리쳤다.
“동생, 나 소한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나는 이 거래 시장에서 10년 동안 장사를 했어. 신용도 좋고 평생 누굴 속인 적도 없다고. 게다가 종문에서는 공평한 거래를 위해 모든 보물은 감정처에 가서 고수들의 감정을 받을 수 있어. 감정비를 어느 정도 내면 그만이지. 만약 마음대로 사기를 칠 수 있었다면 이 거래 시장은 존재하지도 못했을 거야.”
엽운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소한의 말이 맞다.
아무리 거래 시장이라 해도 천검종끼리 거래를 하는 시장이니 결국 바깥세상과는 다르며 도를 지나친 거래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잘됐네요. 소형, 계속 서 있을 수는 없으니 어디 가서 앉아서 얘기합시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말했다.
소한은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야지. 가자. 앞에 천운루라는 곳이 있는데, 다과가 아주 훌륭하니 거기서 천천히 얘기를 나누자고.”
소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소한, 또 새로온 형제를 속이려는 것이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한과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가 흰 옷을 입고 손에 부채를 쥔 채 천천히 걸어왔다.
“백현행, 너구나. 또 내 일을 망치려고 하는군.”
잠시 어리둥절하던 소한은 곧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흰 옷의 남자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네 일을 망친다고? 사기를 치는 게 좋은 일은 아니잖아.”
소한이 분노하며 말했다.
“백현행, 그런 말을 하려거든 증거를 가져와라. 그렇지 않으면 종률전에 가서 일러바칠테니.”
백현행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증거는 없다. 그리고 그냥 아무렇게나 해본 소리야. 소한, 그렇게 까지 발끈할 것 없잖아. 설마 정말로 동생을 속이려 한 거야?”
소한의 눈에서 살기가 번득였다.
이곳이 천검종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이미 충돌했을 것이다.
엽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두 사람을 쳐다보다 곧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소형, 백형의 말이 사실입니까?”
“하하. 이봐 동생, 역시 눈썰미가 좋군. 이 소한이라는 놈은 좋은 녀석이 아니야. 네가 보물을 가지고 있거든 내게 팔거라. 혹시 재료가 필요한 거라면 나에게 사도 좋고. 이 시장에서 큰 장사를 하는 건 소한 뿐이 아니야.”
백현행은 손에 쥔 부채를 펼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현행, 감히 내 사업을 가로채?”
소한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는데, 마치 칼처럼 싸늘했다.
“아이, 설마 그럴 리가. 그냥 제의를 하는 것뿐이야. 소한 네가 달갑지 않다면 나는 이만 가보마.”
백현행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소한은 콧방귀를 뀌고 대답하지 않았다.
엽운은 두 사람을 바라보다 웃으며 말했다.
“백형도 큰 사업을 하시는 분이셨군요. 그럼 이렇게 만난 것도 운명인데, 같이 천운루에 가서 다 같이 얘기해보는 건 어떨런지요. 어쩌면 제가 원하는 물건이 혼자서 감당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잖아요.”
소한과 백현행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을 반짝이더니 이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운루는 백 장 너머의 모퉁이에 있는 매우 괜찮은 주점이었다.
사실 거래 시장에 있는 작은 노점들에 비하면 그렇다는 말이지, 이 천운루도 속세에서는 그저 별볼일 없는 술집일 것이다.
세 사람은 아무도 없는 창가에 앉아 아무렇게나 다과를 주문했다.
“동생, 그러고보니 존함도 묻지 않았군.”
백현행은 자리에 앉으며 부채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엽운이 말했다.
“그러네요. 제 이름은 엽운이고 무영봉에서 온 내문 제자입니다.”
“무영봉에서 온 동생이었군. 나 백현행은 절검봉의 제자이며 수위는 연기경 6중이다. 이 녀석은 소한이라 하고 성격은 몹시 더럽지만 그래도 신용은 있는 편이다. 아 참, 그리고 이 놈은 천신봉의 제자다.”
백현행은 능숙하게 소한과 함께 자신을 소개했다.
소한은 여전히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는 백현행의 행동이 익숙하다는 듯 엽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엽 형제는 무슨 보물을 원하는 거지? 말만 하면 이 형이 반드시 손에 넣게 해줄게.”
백현행은 연거푸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은 평범한 장사꾼이 아니었고, 보통의 물건은 취급도 하지 않았다.
엽운은 이들의 입심을 보니 분명 아주 큰 사업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엽운은 다급히 이야기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 웃으며 말했다.
“저는 번개의 영기를 수련했습니다. 그래서 번개의 영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보물이 있으면 좋겠네요.”
그가 몸에 번개의 영기를 지니고 있다는 소문은 이미 널리 퍼졌기에 소호 외에도 천검종의 고위층들도 알고 있었으며, 소문에 민감한 제자들 역시 천천히 알게 될 것이다.
어차피 엽운은 뇌운전광검을 적지 않게 시전 했으니 말이다.
따라서,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차라리 대범하게 사실을 밝히고 몸에 지닌 다른 영기를 감추는 편이 나을 것이다.
소한과 백현행은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엽운이 이런 요구를 할 줄은 생각지 못한 것 같았다.
번개의 영기는 수백 년 동안 깨우친 이가 없었기에, 눈앞의 이 소년이 번개의 영기를 강화시킬 수 있는 보물을 찾으러 왔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두 사람은 거래 시장에서 제법 견문이 넓은 편이었고, 가지고 있는 보물도 적지 않은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어찌 번개의 영기를 강화시킬 수 있는 보물을 가지고 있겠는가?
순간 두 사람은 넋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