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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225화 (225/227)

제 225 화 인지

엽운의 수위는 빠르게 성장하는 편이었고, 진정한 실력은 축기경 1중의 고수들과도 맞설 수준이었지만 내면은 오만하다고 볼 수 없었다.

자신이 연기경 2중의 수위를 가졌지만 연기경에서는 적수가 없었으며 축기경 아래로는 최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보다 수위가 높은 상대와 맞설 수 있는 자가 엽운 밖에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양화룡 같이 특출난 재능을 가진 제자가 축기경을 돌파하게 된다면 진정한 실력은 적어도 축기경 2중에서 3중의 수위를 가진 제자와 맞설 수 있는 수준일 것이다.

엽운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무모한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지금 실력으로 문을 두들긴다면 계획이 성공할 확률은 몹시 낮으며, 오히려 두들겨 맞고 돌아올 확률이 크다.

소호는 더 이상 묻지 않았고, 엽운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소령은 수청훤을 도와 저녁식사를 준비하러 갔고, 엽운과 소호는 마당에 있는 돌로 된 탁자 앞에 마주 앉았다.

“엽운, 내가 너를 기명 제자로 받은 목적은 잘 알고 있겠지.”

소호는 웃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십살진을 위해서겠지요. 사존께서 여유가 되실 때 제게 진법의 비결을 전수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제가 수련에 성공하면 사형들과 함께 십살진을 연습해 볼 수 있겠지요.”

엽운은 십살진에 대해 몹시 궁금했다.

소호는 이 십살진이 자신이 차기 종주가 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진법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어떤 신기한 점이 있을까.

“서두를 것 없다. 지금 네 수위는 아직 부족하니까 말이다. 네 실력이 모자라다는 말이 아니라, 경계에 대한 깨달음이 아직은 조금 부족하다는 뜻이다. 네가 연기경 7중의 정점까지 수련하고 그 뒤에 십살진을 배운다면 조금도 어렵지 않겠지. 지금은 번개의 영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완벽히 십살진에 융합시키기는 어려울 거다.”

소호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조금도 다급하지 않은 듯한 눈치였다.

소호가 조급하지 않다면 엽운은 당연히 조급할 이유가 없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수위를 올리는 것이며, 최대한 빨리 축기경에 도달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도조와 함께 대진제국으로 가 천검종의 선대가 남긴 보물을 찾을 것이다.

“너는 쉬선심법을 수련했으니 앞으로의 수행은 다른 이들 보다 백 배는 더 힘들겠지. 하지만 매번 수위를 돌파할 때 마다 얻는 이익 역시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일 거다. 네가 계속 버티기만 한다면 훗날 네 수위는 끝이 없을 거야.”

소호는 찬사가 가득한 눈으로 엽운을 바라보았다.

엽운이 궁금한 듯 물었다.

“사존, 쉬선심법은 매우 낮은 등급의 공법인데, 수련이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낮은 등급의 공법이 된 게 아닐까요? 제가 보니 사존과 칠 장로님 보두 이 공법을 몹시 인정하시는 것 같은데, 분명 다른 이유가 있겠지요.”

소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다. 쉬선심법은 사실 보기 드문 공법이 아니다. 우리 천검종 뿐 아니라 다른 종문에도 비슷한 공법이 있을 게다. 비록 수련의 방식은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대체로 대동소이 하겠지. 하지만 천백 년 동안 이 공법을 수련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엽운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저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호가 이어서 말했다.

“그 이유는 공법의 문제가 아니며, 자원의 문제도 아니다. 천검종 같은 진나라에서 제일 가는 세력에서 육신의 내외를 동시에 수련한 제자를 양성하려 한다면, 어찌 자원을 부족하게 주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이 공법을 선택한 제자들의 심성이 모자라 번번히 실패하고 버텨내지 못한 것도 아니다. 너보다 재능이 있고 훌륭한 심성을 가지고 있으며 고독을 견뎌내고 열심히 수행한 제자들은 많았지만, 몇 년 동안 단 한명도 이 공법을 성공하지 못했다.”

“어째서죠?”

엽운은 호기심에 물었다.

소호는 그를 바라보며 눈에서 빛을 번쩍이더니 말했다.

“깨달음이다. 천도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깨달음이 있다. 육신과 진기의 균형을 완벽히 깨달은 자만이 몸의 겉과 속을 동시에 수련할 수 있는 것이지. 이것은 재능과는 상관이 없으며, 수련자의 독특한 자질이다. 어쩌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제자들도 이를 수련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평범한 제자라 해도 균형을 이해한다면 쉬선심법을 성공시킬 수 있다.”

엽운은 눈을 반짝이며 중얼거렸다.

“균형, 맞아요. 균형이죠.”

소호는 엽운을 쳐다보더니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균형이지. 분명 너는 이미 내외를 동시에 수련하는데에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파악한 것 같구나. 바로 균형이다. 그걸 몰랐다면 화룡굴에서 수위를 돌파하지도 못했겠지.”

엽운은 어딘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존께서도 알고 계셨군요.”

소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화룡굴은 우리 무영봉의 금지 구역이며, 정예 제자를 양성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절대 숨길 수 없지. 네가 연기경 2중을 돌파하지 못했다면 수운만타수를 죽이지도 못했을 거다.”

엽운은 겸언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모든 것이 사존의 법안에 있었군요. 그럼 혹시 제가 수운만타수를 죽인 것이 사존께 폐를 끼친 것일까요?”

소호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청훤 아줌마나 령이가 하는 말은 듣지 말고. 나 소호는 무영봉주다. 고위층을 제외하면 종주와 태상 장로 몇 명 말고는 내 머리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고작 수운만타수 한 마리와 기화이초 몇 그루일 뿐인데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 게다가 화룡굴은 우리 무영봉에 위치한 곳인데, 어찌 다른 이들이 간섭하겠느냐.”

소호의 목소리에는 호기가 가득했다.

그는 단 두 마디로 무영봉주인 자신이 천검종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임을 드러냈다.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고, 윗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기개가 담겨 있었다.

마주앉은 두 사람의 거리는 아주 가까웠기에 소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를 느낄 수 있었는데, 경탄할 만한 기세가 느껴졌다.

그제야 소호 정도의 지위와 수위라면 천검종에서 어느 한 사람이나 세력을 두려워 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토록 늘 완벽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관점에서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영봉주라는 위치에 있다면 사안을 생각하게 되는 입장이나 높이가 이미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사존, 저에겐 9명의 사형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의 실력은 어떤가요?”

엽운이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소호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9명의 사형이 아니라 8명의 사형과 한 명의 사저다.”

“맞아. 사저가 한 명 있지. 엽운 너도 만난 적이 있을 걸.”

엽운이 말을 하기도 전에 소령이 건물에서 껑충 뛰어 나왔다.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만난 적이 있다고?”

소호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령을 바라봤다.

소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엽운, 기억해? 진천한에게 수위를 폐기 당하고 종문에서 쫓겨날 뻔했을 때 말이야. 나랑 우리 언니가 널 구해줬잖아.”

엽운은 문득 모든 것을 깨달았다.

머릿속에 별안간 아름다운 자태의 여인이 떠올랐다.

“소음설? 언니의 이름이 소음설이라고 했었지.”

엽운은 그때 진천한이 그녀를 그렇게 불렀던 것을 떠올렸다.

“맞아. 바로 우리 언니 소음설이야. 언니도 우리 아빠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지.”

소령은 손뼉을 치고 웃으며 말했다.

소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너희 두 계집아이들이 일찍이 엽운을 만나고 심지어 그를 구해주기까지 했을 줄은 몰랐구나. 보아하니 모든 것은 하늘이 정해주신 것 같다. 어둠 속에서 엽운이 내 눈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아이, 아버지도 참, 그렇게 감개무량하게 말씀하시면 우리같이 젊은 사람들은 못 알아듣는단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언니는 폐관한지 반년이나 됐는데 어찌 아직도 나오지 않는 거죠?”

소령이 다가와 소호의 팔짱을 꼈다.

소호의 눈에는 총애가 가득했다.

그는 소령의 티끌 하나 없는 이마에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너희 언니는 축기경을 돌파하고 있다. 반년이면 분명 돌파에 성공하고 출관하겠지.”

“축기경이요? 언니는 이제 열아홉인데 축기경을 돌파한다니, 그 정도 자질이면 모용무정 못지 않겠어요.”

소령은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크게 기뻐했다.

열아홉에 축기경을 돌파하다니!

엽운의 동공이 움츠러들었다.

사람들이 모용무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 스무 살에 축기경을 돌파하는 데 성공하였고, 그 길로 수위가 끝도 없이 성장했다고 한 것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그런데 소령의 언니인 소음설이 열아홉의 나이에 축기경을 돌파하는데 성공 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음설이의 재능은 몹시 뛰어나다. 열아홉에 축기경을 돌파한다는 것은 천백 년 동안 본 적도 없는 재능이지. 하지만 모용무정과 비교하자면 아직 한참 부족하다.”

소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자신의 딸에게 몹시 만족하는 것 같았다.

“어째서죠? 언니는 이제 열아홉 밖에 안 됐잖아요? 모용무정은 스물에 축기경을 성공했는데도 다들 천검종에서 천년 만에 인재가 나왔다고 했잖아요.”

소령은 입을 삐죽이며 콧방귀를 뀌었다.

소호는 빙긋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고, 엽운을 바라봤다.

엽운은 소호의 뜻을 이해하고 그의 말을 이어 받았다.

“같은 축기경이지만 진정한 실력은 다른 것이지. 분명 음설 사저의 재능도 엄청나겠지만 축기경에 도달한 후에 자신보다 수위가 높은 사람에게 도전하기는 몹시 어려울 거야. 하지만 모용무정은 달라. 당시의 그는 축기경에 도달하자마자 축기경 중기의 고수들과 맞설 수 있었을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축기경이 연기경인줄 알아? 연기경은 진기를 정련하고 정화하여 그 질과 양이 남들보다 뛰어나게 만들기만 하면 수위가 높은 사람에게도 이길 수 있겠지만, 축기경은 그렇게 하기 힘들어. 그러니 자신보다 몇 단계나 높은 수위를 가진 상대와 싸우는 건 말할 필요도 없지.”

소령은 가타부타하며 말했다.

엽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소호가 말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소호가 웃으며 말했다.

“엽운의 말이 맞다. 모용무정이 천검종 천년 이래 가장 걸출한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그가 남들을 능가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그는 연기경의 경계에 머무르며 기초를 튼튼히 다져 결국 스무 살이 되어서야 축기경에 도달했지만, 사실 그가 원한다면 열여덟 살에도 축기경을 돌파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는 수위를 다시 다지려 했기 때문에 스무 살에 축기경에 이른 것이지. 축기경에 성공한 후 그는 축기경 1중의 수위로 천급 임무 하나를 완수했다.”

“천급 임무? 어떤 천급 임무요?”

소령이 저도 모르게 물었다.

“대막혈응강봉을 쫓아 죽이는 것이었다. 축기경 1중의 수위로 축기경 4중을 상대하는 셈이었지. 임무는 상대를 죽이고 목을 베어 머리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소호는 담담한 목소리로 천천히 얘기했다.

엽운과 소령은 서로를 바라보며 숨을 들이마셨다.

축기경 1중으로 축기경 4중을 베어 죽인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소령의 말처럼 축기경은 연기경과 달라 자신보다 높은 수위를 가진 상대에게 도전하기란 몹시 어려운데, 하물며 3급이나 차이나는 상대를 이긴 것이다.

엽운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고, 머릿속에서는 냉혹한 모습의 청년 남자가 떠올랐다.

그의 얼굴은 마치 안개에 뒤덮인 것처럼 잘 보이지 않았다.

모용무정, 대체 당신은 얼마나 괴물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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