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4 화 독심술
“가끔씩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조금 읽을 수 있단다.”
수청훤의 목소리는 엽운의 귓가에 마치 천둥처럼 울렸고, 먹먹하게 만들었다.
설마 정말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는 신기한 술법이 존재한단 말인가?
사실이라면 너무도 무서운 것 아닌가?
비록 수청훤은 매우 상냥해 보이고 잘 대해주지만, 엽운은 비밀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그녀에게 선마지심을 들키게 된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순간 엽운은 당장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가능하다면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다.
독심술을 쓸 수 있는 수청훤을 마주하고 있자니 소름이 돋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두려워할 것 없다. 대부분은 나도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 게다가 그저 잠시 꿰뚫어 볼 수 있을 뿐 금방 잊어버린단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있거나 하지는 않아.”
수청훤은 엽운의 마음속 공포를 알아차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농담도 잘하십니다 아주머니. 두려운 게 아니라 그저 너무 놀라울 뿐이에요.”
애써 억지웃음을 지었다.
“안심하렴. 아무런 실마리가 없다면 나도 간파할 수 없어. 네가 군자당을 생각하고 있음을 안 것도 네가 군자당의 명사일과 충돌했고, 그가 크게 패배하여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방금 전 무심코 너의 마음을 드려다 보니 이미 그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어디 한 번 이야기 해보는 게 어떻겠니?”
수청훤은 가냘픈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엽운과 소령은 서로를 바라보며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만약 아주머니께서 군자당과 관련이 있으시다면 그들을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엽운은 수청훤을 따라가 작은 탁자 앞에 앉으며 천천히 말했다.
수청훤은 경악하며 말했다.
“내가 봉주의 부인씩이나 되어서 어찌 군자당같은 내문 제자들의 조직과 연관이 있겠니? 그저 네가 군자당에 맞설 생각을 하는걸 보고 물어봤을 뿐이야. 말하고 싶지 않다면 그래도 좋단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맞아요. 저는 분명 군자당과 맞서려 했어요.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공헌도가 부족해서 장무각에 들어가 선기와 공법을 고르거나 수련 자원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공헌도가 무슨 쓸모가 있어? 필요한 선기가 있으면 내가 찾아주면 되는데.”
소령은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분명 엽운이 군자당에게 맞서려는 이유가 공헌도 때문임을 몰랐던 것 같았다.
그녀에게 공헌도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장무각에 들어가 공법을 고르려면 소호의 말 한 마디로 충분하다.
엽운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을 하려는 찰나 수청훤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령아. 이전까지는 네가 장무각에 들어가서 아무 공법이나 고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소령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가 저도 모르게 물었다.
“왜죠?”
“지금은 전과 다르단다. 더구나 예전에는 네 수위가 연체경에 불과했기 때문에 수련할 수 있는 공법이나 선기는 별 볼일 없는 것들뿐이었지. 수련 자원이나 단약 같은 것들도 나와 네 아버지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것이지 종문에서 너에게 나누어 준 게 아니야. 지금은 네 아빠가 종주의 자리를 놓고 경쟁중이니 네가 무슨 짓을 해서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면 그이의 계획에 큰 차질을 빚게 될 거야. 그래서 오늘부터는 말이다, 네가 수련 자원을 원한다면 내가 줄 수 있겠지만 공법과 선기가 필요하거든 임무를 완수하고 공헌도를 얻어야 할 거야.”
수청훤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비록 수행을 하지는 못했지만 몹시 지혜로웠다.
“엄마. 그러면 저도 그 어려운 임무들을 완수해야 공헌도를 얻을 수 있는 거잖아요. 너무해요.”
소령은 수청훤의 팔을 끌어안고 살짝 흔들었다.
수청훤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공헌도는 임무를 완수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예를 들어 네가 보물을 가지도 있다면 시장에 나가 팔 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도 공헌도를 얻을 수 있고, 단약기나 영기 같은 것도 마찬가지로 공헌도와 바꿀 수 있어. 물론 공헌도를 가장 빠르게 얻는 방법은 조직을 꾸려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각종 임무를 완수하고 공헌도를 일괄 분배하는 방법이겠지. 소위 말하는 군자당이니 용당이니 하는 자들도 그렇게 한단다.”
소령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가를 씰룩였다.
“그럼 제가 엽운이랑 조직을 만들고, 단진풍과 여명홍도 끌고 온다면, 엄마와 아빠, 그리고 흑백 이로까지 있으니 쉽게 기여도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수청훤은 손을 가볍게 들어 소령의 이마를 찌르며 말했다.
“나와 네 아버지, 그리고 흑백 두 장로님들이 너희를 위해 나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거라. 모든 것은 너희가 스스로 해결해야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너희가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나 도망쳐 왔을 때 너희를 지켜주는 정도일 거야.”
소령은 입을 삐죽이며 아양을 떨었다.
“엄마, 왜 그래요. 아빠가 무영봉주 씩이나 되는데 우리한데 공헌도를 수십만 쯤 주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겠어요.”
수청훤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공헌도는 네 아버지가 만드는 것도 아니야. 종문에서 통일적으로 반포하는 것이지. 공헌도의 총량은 이미 백년동안 변하지 않았고, 너희 아버지에게 공헌도 같은 건 필요하지도 않은데 어찌 가지고 있겠니?”
“그렇군요.”
소령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을 삐죽거렸다.
엽운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원래 기여도라는 것은 천검종의 화폐이며, 백 년 동안 가치가 떨어진 적이 없었다.
이를 통해 공헌도가 얼마나 진귀한 것인지 알 수 있는데, 9급 임무를 완수해도 고작 백 점 밖에는 주지 않았다.
공헌도 백점을 가지고는 장무각에도 들어갈 수 없으며 6품 이상의 선기를 고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수청훤이 말한 거래시장은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만약 천검종 내에 이런 시장이 있다면 그가 대묘에서 얻은 보물들로 아주 쉽게 공헌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보물들은 화운이 부활한 이후에 축기경에 도달하기 위해 쓰려했던 것으로, 엽운에게는 진귀하기 짝이 없는 물건들이니 결코 함부로 교환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공헌도는 역시 군자당을 통해 얻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아주머니, 공헌도에 대해서 해주실만한 다른 조언이 있을까요?”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나지막이 물었다.
“사실 가장 빠른 방법은 조직을 이루는 것이 아니야. 그렇게 애를 쓰다보면 수련에 지장이 생기겠지. 가장 빠른 건 역시 종문에서 반포한 임무를 완수하는 것인데, 천급 임무를 완수하면 임무 하나당 만 점이 넘는 공헌도를 받을 수 있고, 심지어는 10만 점이 넘게 받을 수도 있어. 당시에 모용무정 역시 종횡무진 사방을 누비며 천급 임무를 완수했고, 그리하여 공헌도가 부족할 일은 없게 된 것이지.”
수청훤은 맑은 눈으로 엽운을 바라보았다.
엽운의 눈에서 싸늘한 빛이 스쳤다.
종횡무진 누비며 천급 임무를 완수한다니.
무영봉에 들어온 이후 그가 봤던 가장 높은 등급의 임무는 9급 임무였다.
이 천급 임무라는 것은 분명 9급 임무와는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며, 가늠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9급 임무 위로는 인급 임무가 있고 그 위로는 지급 임무가 있으며, 마지막이 바로 천급 임무야. 인급의 난이도는 9급 보다 열 배는 어려워. 그리고 지급 임무는 인급의 열 배, 천급은 적어도 인급의 열 배는 어렵지.”
수청훤은 또 한 번 엽운의 마음을 꿰뚫어본 듯 천천히 말했다.
엽운은 숨을 들이켰다.
9급 위의 인급 임무는 10배가 더 어렵다고 하니, 계산해보자면 천급 임무는 9급보다 천 배는 어려운 셈이다.
엽운은 천라응신초를 찾는 9급 임무를 수행할 때 2급 영수 수운만타수를 만났고, 그의 수위로는 간신히 싸워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그 수운만타수보다 천 배나 강한 영수가 있다면 도대체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을까?
엽운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 그의 수위로 그런 영수를 만난다면 분명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며, 살아남을 가망이 없었다.
그제야 빙산처럼 보이던 모용무정이 그가 상상하던 것 보다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용무정이 그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는데.”
소령은 눈이 동그래져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이지. 괜히 천년동안 천검종에서 나온 가장 걸출한 천재라고 하는 것이 아니란다. 사실 그가 젊지만 않았다면 차기 종주는 그가 됐을텐데.”
수청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조차 모용무정을 이야기 할 때는 다소 경탄하였다.
엽운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다시 물었다.
“그럼 진천운은요? 소문에 의하면 근 삼사십 년 사이 그가 최강자의 반열에 올라 모용무정마저 넘어설 지경이라던데요.”
수청훤이 빙긋 웃으며 대답하려는 찰나 마당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천년 동안 천검종에서는 모용무정과 견줄 사람이 없었다. 진천운이라는 자 역시 시 장로의 일파에서 배출해낸 고수 중 하나일 뿐, 두려울 것은 없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호가 문을 밀고 들어와 세 사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십니까 사존.”
엽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굽히며 인사를 했다.
소호는 그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엽운, 밖에서는 사존이라 불러도 되지만, 여기서는 봉주 대인이라 불러도 된다. 아니면 소씨 아저씨라고 불러도 되고.”
엽운은 그가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어 그저 가볍게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사존. 제가 문하에 들어온 이상 당연히 사존이라 불러야지요. 제 마음 속에 당신은 칠 장로님은 똑같은 사존이십니다.”
소호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거라.”
“그래서, 방금 들어오면서 들었는데, 군자당과 한바탕 해보겠다고?”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는 천촉봉에서 부터 군자당과 조금씩 부딪혀왔습니다. 그리고 무영봉에 와서는 명사일과 싸우게 되었으니, 이미 원한이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제가 먼저 문을 두드려 원한을 푸는 동시에 기여도도 챙기는 것이지요.”
엽운은 숨김없이 사실대로 말했다.
소호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양화룡의 수위는 세 달 전에 이미 축기경에 도달했고, 명사일의 실력은 군자당에서 열 손가락에도 꼽히지 못해. 네가 놈들을 건드리려는 생각이거든 잘 생각해보고 움직여야 한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군자당에 그렇게나 많은 고수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양화룡은 이미 축기경을 돌파했다고 하니, 군자당에 맞선다는 계획은 수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