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220화 (220/227)

제 220 화 모두의 경외

엽운은 빙그레 웃으며 관리 제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넋이 나간 채 그를 바라봤다.

관리 제자는 나가서 이 광경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명사일의 실력이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분명 두 사람의 싸움 끝에 엽운이 이긴 것처럼 보였고 심지어 아주 가볍게 승리한 것 같았다.

“그..그래. 다 됐다!”

관리 제자는 말을 더듬었다.

그는 경외가 담긴 눈빛으로 엽운을 바라봤다.

말을 하면서 엽운의 신분패를 내밀었다.

엽운은 신분패를 건내 받고 공수를 하더니 제자들의 경외 섞인 눈빛을 한 몸에 받으며 임무전에서 나갔다.

명사일은 진작 임무전의 광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엽운에게 가볍게 당한 그는 여기에 남아 있을 이유도, 그럴 체면도 없었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던 제자들의 눈에는 경외가 느껴졌지만 동시에 어딘가 아쉬운 듯한 느낌이 있었고, 약간의 기대도 있었다.

“거기 사형, 이리 와보시오.”

엽운이 제자 한 명에게 손짓했다.

이번에는 방금 전과 달리 엽운의 손짓을 본 제자는 다급히 뛰어왔다.

“엽 사형, 저를 부르셨습니까?”

“방금 전 임무전에 왔을 때 당신들의 눈빛을 보니 나한테 아주 귀찮은 일이 생겼다는 것 같던데, 어떻게 된 겁니까? 아까 그 녀석은 얼버무리면서 제대로 말해주지 않던데,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엽 사형, 제 이름은 손정묘 입니다. 사제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제자는 미소를 잔뜩 머금고 이어서 말했다.

“엽 사형이 오시기 전에 용당에서 언젠가는 엽 사형이 용당에 가입할 것이라는 소문을 내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말입니다. 그런데 또 이어서 천기조가 나타나 엽 사형이 너무도 오만하여 외문 제자 시절부터 횡포를 부리고 다녀 수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샀으니 이번에는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또 저희가 들은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만, 소문에 의하면 엽 사형이 군자당의 미움을 사 군자당의 우두머리인 양 사형께서 친히 그 일에 대해 묻고 계신다 합니다. 그래서 조금 전에 저희가 엽 사형을 뵈었을 때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이지요.”

“천기조? 군자당에 용당에, 보아하니 무영봉의 내문 제자들 사이에는 파벌이 즐비한 모양이군.”

엽운은 시큰둥하게 웃었다.

“그렇습니다. 무영봉에는 수천 명의 내문 제자들이 있고 수위는 각기 다르며 잠재력도 각기 다릅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패거리를 만들게 되는 것이지요. 도합 수십 개의 조직이 있습니다.”

손정묘가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그 천기조라는 녀석들은 무영봉의 조직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가지고 있지? 내가 듣기로는 군자당과 용당이 1,2위를 다툰다고 하던데.”

엽운은 고개를 돌려 웃으며 물었다.

“맞습니다. 줄곧 군자당과 용당은 분명 1,2위를 다투었죠. 그곳에는 고수들이 구름떼처럼 많아 두 조직을 합치면 연기경 정점에 오른 고수가 적어도 백 명이 넘을 겁니다. 소문에 의하면 군자당의 수좌이신 양 사형 께서는 이미 축기경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손정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화룡을 이야기할 때 표정에서 존경이 느껴졌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양화룡이 이미 축기경에 성공했다면 수위는 무영봉의 제자들 중에서도 빼어난 편이겠군. 혹시 봉주 대인의 10대 제자인가?”

손정묘는 어리둥절했다.

곧 호기심이 섞인 표정으로 엽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엽 사형께서는 봉주 대인의 기명 제자가 아니십니까? 혹시 10대 제자는 평소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적고 조직에 가입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모르시는 겁니까? 그들은 매일 전력을 다해 수련하는 것 같습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정묘는 10대 제자의 사명을 모르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소호가 그를 제자로 삼으려 했던 것도 10대 제자 중 마지막 한 사람으로 들이고 십살진을 연마하기 위함인데, 엽운은 번개의 영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십살진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보아하니 10대 제자들은 평소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는데, 그 말은 10대 제자의 수위가 비범하다는 뜻이었다.

그날 대묘에서 나문성을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니 그 역시 절검봉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수위는 연기경의 정점에 달했었다.

이로 유추해보자면 무영봉의 10대 제자 중에는 분명 축기경에 달한 고수가 있을 것이다.

“그럼 천기조는?”

엽운이 계속해서 물었다.

“천기조는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봐야 반 년 정도 됐을 거에요. 반 년 동안 그들은 수십 개의 조직에 도전했는데,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어요. 심지어 요 몇 달 동안은 용당에게도 도전했는데, 비록 양쪽의 수좌들은 나서지 않았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천기조의 실력이 용당보다 약할지언정 그렇게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요. 무엇보다 천기조의 우두머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진면목을 보인 적이 없고 심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엽 사형이 대체 언제 그들과 맞닥뜨려 원한을 사게 된 건지 모르겠네요.”

손정묘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조금의 근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평범한 제자들은 어쩌면 그처럼 말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잘못 이야기 했다간 천기조나 용당 같은 조직에게 보복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 나를 혼내주고 싶어 하는 다른 조직은 더 없어?”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하하, 엽 사형도 참 농담을 잘하시는군요. 방금 전 명 사형과 싸움을 벌이기 전까지는 호시탐탐 사형을 노리는 조직이 몇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뭐 이미 없다고 봐야겠죠. 어떤 우매한 조직이 감히 사형에게 손을 대겠습니까.”

손정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큰 소리로 웃었다.

“좋아. 그렇단 말이지. 네 이름은 손정묘라고 했지? 마음에 드네. 나중에 만약 내가 조직을 만든다면 들어올 생각이 있을까?”

엽운은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웃으며 물었다.

손정묘는 어리둥절했다.

곧 그는 크게 기뻐하는 표정으로 몸을 굽히며 말했다.

“엽 사형께서 마다하시지 않는다면 저는 당연히 그러고 싶습니다.”

엽운은 하하 웃으며 몸을 돌려 가버렸다.

“그래, 나중에 내가 조직을 만드는 날 까지 기다려. 너는 우리 조직의 원로가 될 거다.”

말을 마친 그는 잔상을 남기고 순식간에 저 멀리 산발치를 향해 사라졌다.

손정묘는 엽운의 잔상을 바라보며 흥분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

엽운이 조직을 만들겠다고 한 것은 아무렇게나 뱉은 말이 아니었다.

그는 손정묘와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해 무영봉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는데, 이 녀석들이 당이니 조직이니 하는 걸 꾸리는 것을 보니 독단적으로 행동했다간 번거로운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엽운은 그런 번거로운 일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매번 이 조직 저 조직에서 가입을 권유하며 협박을 하기도 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그를 몹시 짜증나게 만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단진풍 여명홍과 함께 세 사람이 조직을 만들고 내친 김에 소령까지 끌어들이면 그를 귀찮게 만들 사람이 없지 않겠는가.

무영봉의 수행 방식은 천촉봉과 너무도 달랐는데, 천촉봉에서는 매달 수행 자원이 들어와 간신히 수행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무영봉은 다르다.

수련 자원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자원만으로 수행을 해서는 수위를 올리기가 몹시 힘들었다.

수위가 연기경에 도달하게 되면 한 단계 승급하는 데에 들어가는 영석이 족히 열배에서 백배쯤 늘어나며, 매달 분배되는 영석에만 의존하기엔 그 양이 턱없이 부족했다.

따라서 공헌도라는 것이 생긴 것이다.

공헌도는 주로 임무를 완수하여 얻을 수 있는데, 물론 구매할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윗사람에게 하사를 받는 등 여러가지 방식이 있는데, 종문의 규정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모든 수단을 전부 사용해도 된다.

이처럼 수많은 조직이 생겨난 것은 공헌도 때문이기도 했다.

난이도가 높은 임무는 한 두 사람이 수행하기에는 너무도 위험했는데, 수십 명의 제자가 함께한다면 훨씬 쉽게 완수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손쉽게 공헌도를 손에 쥘 수 있고, 실력이나 다른 것에 따라 공헌도를 분배하여 모든 이들이 공헌도를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해서 반복한다면 지나치게 괴상한 임무가 아닌 이상 한 조직에게는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엽운은 무영봉에 수십 개의 조직이 있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공헌도를 떠올리며 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사실 이것은 어려운 추론도 아니며, 소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간단한 문제였다.

앞으로의 수행에 있어 공헌도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다른 조직에 가입하느니 스스로 하나 만드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조직을 만들게 되면 무엇보다 핵심 인물의 실력이 가장 중요한데, 만약 실력이 부족하다면 다른 조직에 의해 와해되거나 집어삼켜질 가능성이 몹시 높았다.

물론 엽운의 실력은 누군가에게 무너지거나 집어삼켜질 정도는 아니며, 이 정도 신분과 수위를 가진 그에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게다가 흑백이로의 제자인 여명홍과 단진풍까지 이렇게 세 사람이 조직을 꾸리고 다른 이들의 몫을 건들지 않는다면, 누가 감히 그들의 몫을 노리겠는가?

엽운은 천천히 숙소로 돌아갔다.

화룡굴에서 수위를 돌파하고 경계를 어느 정도 견고히 다지기는 했지만 천생일검과 뇌운전광검 제 3식은 아직 완벽히 장악하고 융합시키지 못했다.

수위는 당연히 높을수록 좋은 것이며, 지금은 한가롭고 딱히 할 일도 없는데다 조직을 꾸리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최대한 빨리 수위를 올려야만 했다.

무엇보다 중생전혼탑 속에는 도조가 있었다.

이 늙은이는 세상에 대한 식견이 가히 엽운과 비교조차 되지 않았기에, 그의 말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늙은이의 식견은 천검종의 모든 이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며 종주와 그의 사존 칠 장로 조차 비견될 수 없었다.

엽운은 봉인을 풀고 집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중생전혼탑이 허공에서 나타나 돌로 된 탁자 위에 떨어졌다.

옥처럼 새하얗고 투명한 보탑은 은은하고 따뜻한 빛을 뿜고 있는데, 마치 안개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일 듯 말 듯 했다.

엽운은 손가락을 들어 석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어르신, 중샌전혼탑에서의 요양은 어떤 것 같습니까?”

한참이 지나고 중생전혼탑에서 도조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녀석. 나를 깨우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난 지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니까.”

엽운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제가 서두르는 것도 다 어르신을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최대한 빨리 수위를 올리지 못하면 교월왕조의 도읍에 가서 어르신의 영혼을 찾는다거나, 요족의 땅에 가서 나머지 영혼을 찾는 일에는 아주 긴 시간이 걸리게 될 겁니다. 조금 일찍 시작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도조가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군. 수행을 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전부 이야기 해보거라.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거라면 전부 대답해주마.”

“수위에 관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직까지 별로 없습니다. 저는 그저 어르신이 알고 계신 천검종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대진제국에 대해서도요. 머지않아 천검종을 떠나 대진제국으로 갈 생각입니다. 계속 이곳에 머무른다면 시야가 트이지 않게 되고 그럼 수위를 빠르게 올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중생전혼탑은 한동안 조용했다.

곧 도조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울렸다.

“뭐 그것도 좋다. 천검종의 진정한 비밀에 대해서 말해주마. 참고로 우리 천검종은 약소한 종문 따위가 아니다. 천년 전 까지만 해도 대진제국에 파도를 일으키며 군림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