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9 화 수수한 일검
거대한 군자검이 허공을 가르며 엽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신검은 대적이 불가 할 정도로 곧장 내려와 엽운을 반으로 갈랐다.
모든 이들은 크게 놀라 넋이 나갔고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방금 전 엽운은 막강한 수위를 보여줬는데, 이 검의 위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어찌 엽운을 단칼에 반으로 가를 수 있는 것인가?
다른 제자들 뿐 아니라 명사일 마저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오른손을 가볍게 들자 군자검은 한 줄기 빛이 되어 그의 손바닥 위에 떨어졌다.
그 순간 반으로 잘린 엽운이 천천히 희미한 빛으로 변해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이 검은 나쁘지 않네. 내 잔상을 벨 수 있다니.”
엽운의 목소리가 명사일 뒤에서 들려왔다.
그가 언제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명사일의 뒤로 움직였는지 알 수 없었다.
명사일은 크게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다급히 몸을 돌려 몇 장 너머에 멀쩡히 서 있는 엽운을 보았는데, 그는 뒷짐을 진 채 시큰둥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럴 수가..?”
명사일은 경악했다.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엽운은 잔상을 만들어내 그의 검을 피한 것이다.
그는 군자검을 배운 이후로 이 같은 상황을 맞닥뜨린 적이 없었다.
군자검을 꺼낸다면 그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중상을 입기 마련이며, 실력의 차이가 너무 크다면 그 역시 함부로 덤비지 않았다.
명사일의 얼굴에 여유는 이미 사라지고 없고, 눈에서도 살기가 사라졌다.
엽운이 자신의 공격을 피하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물러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검에 대해 자신이 있었으며, 단칼에 엽운이 두 동강 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비록 봉주 대인의 기명 제자를 죽였으니 귀찮은 일이 생기겠지만, 그는 기명 제자일 뿐이니 큰일이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만약 정식 제자였다면 명사일도 함부로 손을 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엽운은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기까지 했고 조롱이 섞인 미소를 지으며 명사일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순간 명사일은 엽운의 실력이 어쩌면 소문보다 더욱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용무흔과의 전투 역시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엽운은 조롱이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명 사형, 세 수를 양보한다고 했고 지금 이게 첫번째 수이니 아직 두 번이나 남았어. 공격해 봐.”
명사일은 한이 서린 눈빛으로 입가를 씰룩였다.
이대로 물러난다면 몇 년 동안 쌓아온 그의 위신이 지금 이 순간 무너지고 말 것이다.
만약 싸움을 이어나간다 해도 이미 이길 자신이 없었다.
순식간에 진퇴양난에 빠진 명사일은 한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저 정도 경계로 저런 수위를 가지고 있다니, 광장 주변의 제자들은 경외어린 눈으로 엽운을 바라봤다.
그는 단지 피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내문 제자라면 누구라도 방금 전 엽운의 회피가 얼마나 멋진 것인지.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봉주 대인께서 제자로 거두실 만 하군. 저 정도 실력이라면 연기경 정점에도 밀리지 않겠는데.”
“누가 아니래. 단지 기명 제자일 뿐이지만 엽 사형은 머지않아 정식 제자가 될 거야.”
“너희들 모두 잊었어? 봉주 대인은 총 9명의 정식 제자가 있잖아. 엽 사형은 아마 무영봉의 10대 제자 중 마지막 한 사람이 될 거야.”
“그러게 말이야. 몇 년 동안 봉주 대인께서 줄곧 열 번 째 사람을 찾으셨는데, 이미 찾으신 것 같네.”
“그런데 명 사형도 만만치 않아. 두 사람의 원한이 이대로 뿌리를 내리면 훗날 자주 맞붙게 되겠지.”
“쉿, 목소리 좀 낮춰! 명 사형은 사실 두렵지 않아. 두려운 건 그가 군자당의 2인자라는 사실이지. 양 사형이 나선다면 분명 곤란해질 거야.”
“양 사형? 듣자하니 몇 년 전에 수위가 이미 연기경의 정점에 달했다는데, 지금은 축기경을 성공하셨는지 모르겠군. 축기경에 도달했다면 엽 사형도 번거롭겠는데.”
“그러니까. 무영봉 전체에 축기경의 수위를 가진 사람은 몇 안 되는데, 젊은 세대 중에서는 더더욱 그 수가 적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축기경을 성공한 사람은 천검종의 천백 년 세월 동안 한 두 사람 쯤 될 거야.”
“맞아. 모용무정과 진천운 사형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양 사형이 우리 젊은 세대에서는 일인자 였을텐데.”
제자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비록 그들은 목소리를 낮췄지만 엽운을 포함한 두 사람의 귀에 어렴풋이 들렸다.
명사일의 안색이 조금 변했다.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보며 도대체 누가 그에 대해 논하는가 살펴봤는데,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를 보던 엽운은 별안간 한 발짝 내딛으며 천둥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명 사형, 아직 두 번 남았는데, 안 덤빌 거야?”
명사일은 엄청난 압력이 자신을 덮치는 것을 느꼈다.
마치 신혼이 응집된 위세처럼 느껴졌지만 그만큼 무겁지는 않았다.
오늘 일을 이대로 끝낼 수 없음을 알고 눈에서 싸늘한 빛을 번쩍이며 군자검을 살짝 치켜들었다.
빛이 회전했다.
“겸손한 군자는 옥처럼 온화하리.”
나지막이 읊조리자 군자검에서 빛이 터져 하늘을 찌르며 하늘 위에서 막을 만들어 냈고, 그들을 가두었다.
“내가 방금 한 번 공격 했으니 이제 네 차례다. 이 기술은 군자겸양식, 네가 깨뜨릴 수만 있다면 오늘 일은 여기서 묻어두고 더 이상 묻지 않겠다.”
명사일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지만 전과 같은 여유는 느껴지지 않았고, 조금 떨리는 목소리였다.
주위가 시끌벅적해졌다!
명사일이 군자검을 치켜드는 찰나 모두들 그가 공격을 하려는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명사일은 군자당의 2인자로써 줄곧 오만하게 날뛰며 변덕을 부렸고, 평소 타인을 업신여기던 것은 자신이었는데, 누가 감히 그를 업신여기겠는가?
그의 성격이라면 엽운의 비아냥을 참지 못하고 불같이 덤벼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명사일이 온갖 쎈 척을 하며 방어 기술을 꺼내들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러면서 군자겸양식인지 뭔지를 파훼하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느니 혼자 북을 치고 장구를 쳤다.
듣기에는 그가 엽운보다 우위에 서서 엽운의 생사를 쥐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마음속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이 물러간다 한들 엽운이 놔주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렇게 하면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되니, 이 방법으로 퇴로를 마련한 것이다..
자신의 방어를 뚫을 수 있다면 엽운에게 한 번 기회를 주고 이번 일은 여기서 끝내는 것으로 하여 자신의 넓은 아량을 드러낼 수 있었다.
엽운이 방어를 뚫지 못한다면 실력이 상상했던 것만큼 강하지 않은 것이며 그저 요상한 몸놀림으로 빠르게 움직일 뿐이다.
그렇다면 유감스럽게도 오늘 명사일의 미움을 사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줄 수 밖에 없다.
명사일은 타산에 뛰어난 편이었고, 스스로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명사일의 두 번 째 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가 방어를 취할 줄은 몰랐다.
“용서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명 사형.”
엽운이 웃었다.
말로는 감사하다고 했지만 어조에서는 조롱이 잔뜩 느껴졌다.
자영검이 나타나 조금씩 떨리며 파도처럼 일렁이는 빛을 뿜었다.
별안간 엽운의 기세가 변했다.
기세는 광대해졌고 마치 태고의 신병처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드높았다.
곧 자영검이 천천히 앞을 찔러나갔다.
그 어떤 화려함도 없었고, 그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주위의 제자들도 전부 어리둥절했다.
엽운이 뭐하는 거지?
설마 도망치고 싶어서 아무렇게나 검을 내지른 뒤 도망갈 핑계를 만들려는 것인가?
명사일 역시 어안이 벙벙했다.
마찬가지로 엽운의 검에서 어떤 놀라운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검에는 아무런 힘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자들의 생각처럼 그가 퇴로를 찾을 생각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검에는 분명 이상한 점이 있을 것이다.
명사일은 꾸물대지 않고 온 몸의 진기를 방어에 몰아넣었다.
이 방어를 뚫지 못한다면 오늘 일은 여기서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며, 명사일의 손아귀에 들어있는 셈이다.
칼날이 회전하며 명사일의 머리 위에 막을 만들어내 뒤덮었다.
보라색 장검이 천천히 다가왔는데, 그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이윽고 엽운은 눈마저 감았다.
지켜보던 제자들의 눈에 실망이 가득했다.
그들은 사방에서 빛이 번쩍이는 전투를 기대했고, 엽운이 먼저 포기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군자당의 위명이 그에게 큰 압력을 주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아직 무영봉의 10대 제자도 아닌 엽운이 군자당의 미움을 사는 것은 확실히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모두의 마음에 실망이 가득할 무렵 엽운이 뻗은 자영검이 명사일의 방어막에 닿았다.
제자들의 눈에 빛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보라색 빛은 마치 허공 구석구석에서 튀어나온 듯 명사일의 칼날이 만들어낸 방어막을 파괴했고 방어막을 뚫고 들어가 명사일을 감쌌다.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렸고, 보라색 빛 속에서 사람 한 명이 나가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허공에서 꽃처럼 만개했다.
이어서 자영검이 거두어졌고,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광장에는 엽운이 뒷짐을 진 채 조롱이 섞인 미소를 지으며 있었다.
열 장 너머에는 명사일이 입가와 가슴팍이 피로 물든 채 바닥에 고꾸라져 있었다.
관옥같은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험상궂게 변했다.
“명 사형. 겸허한 군자라면 품위를 지켜야 할텐데, 지금 네 모습이 어딜 봐서 군자야?”
엽운이 웃었다.
손을 들자 옆에 떨어져 있던 군자검이 희미하게 떨려오더니 한 줄기 빛이 되어 그의 손으로 날아왔다.
엽운은 군자검을 만졌다.
진기가 주입되자 순식간에 명사일의 흔적이 지워져 주인이 없는 물건이 되었다.
“군자답지 못한 녀석이니 이 군자검은 내가 거두어 가겠다.”
명사일은 몸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썼지만 부상이 너무 심해 그럴 수 없었고, 다시 땅 위로 넘어졌다.
눈에 한이 서렸지만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안 된다. 군자검은 네가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사존께서 하사하신 물건이란 말이다. 엽운, 감히 군자검에 손을 대면 후회하게 될 거다.”
엽운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볍게 군자검을 튕겨 소리를 내었다.
맑은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제법 괜찮은 검이네. 그럼 사양하지 않겠어.”
말을 마치고 군자검을 뇌음화룡계 속에 넣고 빠르게 움직여 임무전 안으로 들어갔다.
“관리 사형, 제 공헌도는 다 기록 되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