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7 화 기다려
명 사형은 담담한 눈빛으로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 수위를 폐기 당한 제자는 자신과 관련이 없다는 듯, 심지어는 적인 듯 했다.
엽운은 그제야 모두가 어째서 이 녀석을 두려워하는지 깨달았다.
그는 규칙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타인에게 상처를 입혔으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참, 방금 전 저 녀석이 네가 너무 건방지다고 말했지. 확실히 건방진 건 맞아. 하지만 난 건방진 사람을 좋아하지. 건방진 녀석들은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 이상 다들 실력이 있거든. 난 실력이 있는 사람이 좋다. 넌 이제부터 날 따라 사형을 뵈러 간다. 그리고는 내 부하가 되는 거야.”
명사일은 엽운을 바라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엽운은 명사일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들어 귀를 후비더니 손가락을 후 불었다.
명사일은 이를 보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조금의 분노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으로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히려 그의 뒤에 서 있던 제자들이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펄쩍 뛰었다.
하지만 그들은 방금 전 엽운의 공격에 두려움을 느꼈다.
주먹 한 방에 사람을 날려버리고 입에서 피를 토하게 만드는 수위라면 분명 보통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명사일이 상냥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속이 좁고 변덕스럽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방금 전의 일이 바로 그 증거였다.
따라서 그들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엽운을 공격할 듯 노려볼 뿐, 반걸음도 다가가지 못했다.
내문 제자가 된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머저리는 아니며, 조금의 지능은 가지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뒤, 명사일은 엽운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여전히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며 빙긋 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돌려 뒷쪽의 두 사람을 쳐다봤다.
“너희 둘, 화가 잔뜩 난 것 같구나. 엽운에게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럼 가서 잡아오거라.”
화가 난 표정의 두 제자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들의 얼굴에서 분노가 차츰 사그라들었고, 몹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감히 말을 꺼낼 수 없었고, 그저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다 엽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앞으로 걸어 나온 두 사람은 다시 기세등등해졌고, 두 눈에서 분노가 솟구치는 모습을 되찾았다.
엽운이 아무리 강해도 기세가 꺾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엽운이 다치게 만들지 않아도 명사일의 변덕에 되려 당할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금방이라도 엽운과 한 바탕 붙으려는 듯이 달려 나갔다.
그들은 엽운의 앞에 다가오더니 별안간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의 제자가 엽운에게 다가가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엽 사형, 체면 좀 세워주시지요. 명 사형에게 한 번 가보십시오.”
나머지 한 사람은 여전히 화가 잔뜩 난 것 같았지만, 마찬가지로 고개를 떨구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맞습니다. 한 번 도와주십시오 엽 사형. 저희가 이대로 돌아간다면... 방금 전 전 사형의 최후를 모두 보지 않으셨습니까.”
엽운은 두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한 바탕 싸움을 벌이거나 입방아를 찧을 줄 알았고,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명사일이 왜 나를 찾아온 거지?”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궁금한 듯 물었다.
“저희도 잘 모릅니다. 아마 명 사형이 아닌 양 사형이 당신을 찾는 것 일겁니다.”
제자 한 명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양 사형?”
엽운은 어리둥절했고, 저도 모르게 물었다.
“너희가 말하는게 양화룡인가? 군자당의 그 녀석?”
두 제자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바로 그 양화룡 사형이십니다.”
엽운은 “오” 하는 소리를 내고 눈에서 빛을 번쩍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세 사람은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목소리를 잔뜩 낮추었기에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의 말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두 명의 제자들이 여전히 분노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엽운을 위헙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명사일은 여전히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이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엽운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그다지 만족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엽 사형. 부탁입니다. 당신이 가지 않는다면 우리 두 형제는 수위를 전부 폐기당할 겁니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희는 군자당이 아닌가? 명사일이라는 녀석이 말은 예쁘게 하지만, 아주 되바라진 녀석인 것 같군. 저런 놈일 줄은 몰랐네. 군자당의 군자라는 두 글자가 위군자를 뜻하는 것인가.”
두 사람은 크게 놀랐다.
얼굴에서 분노가 즉시 사라졌고, 황송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군자당은 무영봉 내문의 세력 중 가장 강한 조직이며, 평소 양화룡과 명사일은 스스로를 군자라 칭하였고, 그 누구도 감히 위군자라고 부르지 못했다.
그것은 정말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지금, 두 사람은 더 이상 화난 척을 할 수 없었다.
이 말이 명사일의 귀에 들어가면 그들도 휘말리게 될 것이다.
“됐다. 너희들이 이렇게나 불쌍한 처지이니 명사일이라는 위군자를 한 번 따라가 주지. 하지만 잠시 기다려야 한다. 임무를 아직 다 내지 못했거든.”
엽운은 고개를 저으며 두 제자들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두 사람은 크게 기뻐하며 다시 화가 난 척을 했다.
그들은 엽운에게 두어 번 콧방귀를 뀌더니 몸을 돌려 명사일에게 걸어갔다.
“명 사형. 저희가 엽운을 잘 교육해 줬습니다. 저희와 함께 양 사형을 뵈러 가겠다는 군요.”
명 사일은 두 사람을 한 번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너희 둘은 그래도 덜 창피하군. 하지만 날 한참을 기다리게 만들었으니 돌아가서 스스로의 뺨을 서른 번 치며 반성해라.”
“예. 감사합니다 명 사형.”
두 사람은 사면을 받기라도 한 듯 뺨을 서른 번 치라는 말에도 전혀 괴로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뻐했다.
엽운은 여전히 자리에 서서 관리 제자가 내당에서 나와 그의 신분패에 공헌도를 기록할 때 까지 기다렸다.
명사일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엽운, 뭘 하느냐? 아직도 따라오지 않고.”
엽운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먼저 가라 명사일. 우선 임무를 마저 제출한 다음에, 밥을 먹고 목욕을 좀 해야겠다. 그리고 낮잠을 한 숨 자고 군자당에 가서 널 찾겠다.”
명사일은 어리둥절했다.
곧 그는 평소의 온화한 표정을 되찾으며 손에서 부채를 펼치더니 살살 흔들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두 제자는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고 두 다리를 오들오들 떨었다.
만약 명사일이 분노한다면 두 사람은 살갖이 터질 때 까지 얻어맞고 방금 전의 제자와 마찬가지로 수위를 폐기당할 것이다.
“몇 년 동안 내문에서 나와 양 사형의 체면을 가벼이 여기는 놈을 보기 힘들었는데, 엽운 네가 나타났구나.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기쁠 뿐이야. 알아서 잘 행동했으면 좋겠구나.”
명사일은 부채를 접고 가볍게 흔들었다.
담담한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말을 마치고 그는 몸을 돌려 문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엽운이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기다려.”
명사일의 뒤에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두 명의 제자들은 엽운의 말에 희망을 갖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엽운이 그에게 복종하고 명사일을 따라 양화룡을 만나러 간다면 분명 모든 것이 잘 해결 될 것이다.
하지만 명사일은 분명 이미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는 엽운의 말을 듣고도 멈추지 않았고, 여전히 임무전의 밖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엽운은 미간을 찌푸리며 싸늘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 말이 들리지 않나?”
목소리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명사일은 그의 말을 듣고 당장이라도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야 할 것 같았다.
옆에서 구경하던 제자들의 눈에 기대가 가득했다.
그들은 엽운과 명사일이 충돌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것은 몹시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명사일은 조롱이 섞인 엽운의 말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의 성격이라면 진작 혼쭐을 냈겠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 양화룡이 그에게 가능하면 엽운을 너무 난처하게 만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결국 봉주 소호의 기명 제자이니, 일단 그의 체면을 좀 세워주자는 것이었다.
엽운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손을 들어 명사일의 등을 향해 진기를 쏘았다.
먼저 공격할 것이라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명사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다면, 명사일 역시 그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명은 군자당의 2인자이며 한 명은 봉주 소호의 기명 제자였고, 두 사람 다 평범한 내문 제자가 건드릴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의 지위라면 싸움을 벌이기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엽운이 먼저 공격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게다가 몹시 빠른 속도의 공격을 날렸고, 진기는 순식간에 명사일의 뒤에 다가왔다.
명사일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허공을 가르는 소리를 듣고 눈에서 살기를 번뜩였다.
하지만 몸을 돌리지 않았고, 발걸음을 늦췄다.
엽운의 진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강력했다.
하지만 명사일에게 닿기도 전에 일곱 여덟 명의 제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매섭게 손을 뻗어 진기를 쏘았다.
엽운에게 그들은 안중에도 없어 손바닥을 살짝 흔들었다.
고수가 있었다면 일곱 여덟 개의 진기가 뿜어져 나와 제자들의 공격에 정확히 맞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온몸에서 큰 진동을 느끼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엽운의 공격은 여세를 줄이지 않고 여전히 빠른 속도로 날아가 명사일의 뒤를 쫓았다.
명사일은 그제야 경이로운 눈빛으로 몸을 돌렸다.
고동색의 동그란 방패 하나가 앞에 나타나 엽운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보였다.
“땡!”
엽운의 공격과 원형의 방패가 부딪혔다.
명사일은 엄청난 힘이 방패에서 전해지는 것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두 걸음 물러났다.
엽운은 뒷짐을 지고 서서 냉랭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기다리라는 말, 못 들은 건가?”
명사일의 무덤덤한 표정에 마침내 변화가 생겼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여지껏 몹시 오만하게 굴었고, 누구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자가 있다면 즉시 공격을 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종률전이 그를 귀찮게 굴 리 없었기 때문에 그는 무법천지로 날뛸 수 있었던 것이다.
평소 그의 담담한 표정과 온화한 모습은 다른 제자들의 눈에 악마의 웃음처럼 보였고, 모두들 그를 호랑이처럼 두려워하며 피했다.
하지만 명사일은 마침내 자신보다 더욱 오만한 이를 만났는데, 다름 아닌 신입 내문 제자 한 명 이었다.
봉주 소호의 기명제자라곤 하지만, 이 정도로 건방진 녀석은 보기 힘들었다.
명사일은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조금 놀라긴 했지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조금 전 엽운이 그다지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의 공격은 명사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엽운은 냉랭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이제 됐어. 꺼져.”
명사일은 넋이 나갔다.
엽운이 뭐라 한 거지?
꺼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