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215화 (215/227)

제 215 화 전부 쓸어담아

“채취 완료. 끝!”

엽운은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손뼉을 쳤다.

소령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 약초들은 전부 네가 가져간 거야. 수운만타수도 네가 죽였고. 네가 어떻게 핑계대나 보자.”

“어이, 사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이 약초들은 분명 우리가 같이 딴 거야. 수운만타수는 폭주를 일으켜 내가 손을 쓰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거고. 내가 놈에게 죽임을 당했다면 네가 여기서 도망칠 수 있었을까?”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소령은 눈을 까뒤집으며 말했다.

“우리가 같이 딴 거라면 약초의 절반을 나한테 줘.”

그녀는 새하얀 손을 엽운의 면전에 대고 두어 번 흔들었다.

엽운은 그녀의 손을 탁 하고 쳐내며 말했다.

“넌 수위가 낮아서 네가 가지고 있으면 안전하지 않아. 시련이 끝나면 적당한 곳을 찾아 이걸로 좋은 걸 만들 수 있나 한 번 보자고.”

소령의 구부러진 눈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아름다웠다.

“아니면 같이 나가자. 어차피 시련은 별 볼일 없어 보이는데 말이야.”

엽운은 소령의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소령은 어리둥절했다.

곧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돼. 난 반드시 날짜를 다 채우고 나가야해. 그렇지 않으면 시 장로 일행이 우리 아버지를 공격할 거야.”

엽운의 눈에서 살기가 스쳤다.

시 장로라면 신물이 날 것 같았다.

이 늙은이는 무영봉의 제자 영입식에서도 간섭을 해대고 엽운을 조사하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온갖 구실을 만들어 소호를 공격하려 하니, 정말 짜증나는 일이었다.

“언젠가는 내가 그 인간을 죽여 버릴 거야.”

엽운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

소령은 조금 긴장된 모습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그를 한 대 때리며 말했다.

“함부로 말하지마. 누가 듣기라도 하면 귀찮아질 거야.”

엽운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들을테면 들으라지. 내 말이 사실이잖아. 천검종에 시 장로 같은 인간이 있으면 언젠가는 일이 터진다고.”

소령은 눈살을 찌푸리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를 보고 있자니 엽운은 마음이 아팠다.

소녀는 고작 열 넷에서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나이의 소녀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순진함이나 발랄할 따위는 없었다.

무영봉주의 딸로써 다른 소년 소녀들 보다 일찍 책임이란 것을 배워야 했다.

엽운은 가볍게 그녀의 손을 쥐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떠날 수 없으면 나도 너랑 여기 있으면 돼. 열흘은 순식간에 지나갈 거야. 나도 마침 수위를 정련하고 경계를 견고히 다져야 하거든.”

소령은 빙긋 웃으며 손뼉을 쳤다.

순간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매일 오시에 제자들이 정찰을 오거든. 네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번거로워질 거야. 됐으니까 먼저 나가. 시련이 끝나면 내가 널 찾아갈게.”

엽운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화를 내려 했다.

곧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은 저녁 무렵이니까 너랑 하룻밤만 있으면 딱 되겠네. 방금 얻은 기화이초들이나 한 번 살펴보자.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것들이거든.”

소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웃음을 지었다.

수운만타수가 지키고 있던 석실에서 엽운과 소령은 총 134개의 기화이초들을 얻었다.

그 중 20개는 9급 임무에 필요한 천라응신초였는데, 이 약초는 그다지 희귀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어차피 수위가 축기경에 도달하기만 하면 신혼을 정련하는 방법이나 보물은 적지 않았다.

“이건 만다라화야. 금강지통약을 만드는 중요한 재료지. 그다지 진귀하지는 않지만 값은 제법 나가.”

“이건 벽취해당이야. 강력한 독을 가지고 있지. 잘못 먹으면 한 시진 동안 온 몸의 통제를 잃게 돼. 수행자가 아니라면 순식간에 죽음에 이를 것이고.”

“이건 칠성초라고 해. 정신단의 보약을 만드는 재료야. 뭐? 정신단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아, 그건 신혼은 정련하는 단약이야. 수위가 반드시 연기경 정점에 달해야만 복용할 수 있어.”

“이건 금선사기야. 고서에서 읽어본 적 있던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효능을 가지고 있는지는 적혀있지 않았어.”

소령은 몸 앞의 약초 한 무더기를 천천히 분류하며 하나씩 알아봤다.

어떤 것들은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이었고, 어떤 것들은 모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엽운의 수위로는 이 약초들은 당분간 쓸모가 없었다.

“어 이건 아마...”

별안간 소령이 소리를 지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엽운은 소령의 손에 쥐어진 붉은색 약초를 바라봤는데, 약초의 꼭대기에는 손톱만한 금색 열매가 있었다.

“이게 뭐지?”

“이건 아마 화룡금과일 거야. 소문에 의하면 여기엔 불의 영기가 있는데, 완전히 익은 열매에는 엄청난 불의 영기가 담겨져 있다고 해.”

소령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잠시 생각하다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불의 영기?”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곧 그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그럼 이 화룡금과는 다 익은 거야?”

소령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연히 아니지. 화룡금과의 성숙기는 한 시진에 불과해. 열매는 한 시진 안에 줄기와 잎사귀를 모두 흡수하고 열매의 표면에 균열을 만들 거야. 그리고 한 시진이 지나면 터져버리고 모든 영기가 공중에 흩어져 사라져버리지.”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화룡금과를 재배해서 계속 자라게 만들 수는 없을까?”

소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좀 전에 너한테 함부로 약초를 뽑지 말라고 했던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야. 다행히 화룡금과는 아직 끊어지지 않았고 뿌리째 뽑혔으니까 조심하기만 하면 계속 자라게 할 수 있을 거야.”

소녀의 손에 쥐어진 금색 과실을 바라보던 엽운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네가 불의 영기를 수련한 걸 알고 있어. 지금 이 열매에도 영기가 조금은 담겨있을 거야. 다만 아주 희박할 뿐이지. 열매가 다 익으면 영기는 이것보다 수천 배는 늘어날테니, 이걸 가지고 우리 어머니한테 가서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을지 여쭤봐.”

소령은 화룡금과를 엽운에게 건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은 화룡금과를 받고 저물대에 넣었다.

기화이초의 분류는 끝났지만, 소령도 알지 못하는 몇몇 약초들이 있었다.

소령이 한 가지 제안을 했는데, 이것들을 수청훤에게 가지고 가는 것이다.

그녀는 이 방면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약초들은 화룡굴에서 나온 물건이니 사라진다면 언젠가는 발각될 것이고, 수청훤과 소호도 분명 알게 될 것이다.

미리 수청훤에게 알린다면 그녀가 분명 이 일을 덮을 수 있는 방도를 알려줄 것이다.

약초의 수집은 끝났고, 엽운은 번개에 새카맣게 그을린 수운만타수의 시신을 거두었다.

어쩌면 훗날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석실을 떠나 소령이 시련을 하고 있던 안개에 뒤덮인 석실로 돌아왔다.

“지금부터는 옷을 벗고 수행하면 안 돼. 만약 누가 들어오면 뒷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야.”

엽운이 별안간 정색을 하며 말했다.

소령은 어리둥절해하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떨구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누가 너처럼 밑도 끝도 없이 들어온다는 거야?”

“뭐라고?”

엽운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노여움이 서려 있었다.

“알았어 알았어. 뭘 또 그렇게 사납게 굴어. 난 그냥 이곳의 안개를 최대한 흡수해 수위를 올리려고 한 건데, 네가 싫다니까 옷은 벗지 않을게.”

소령은 콧방귀를 뀌었다.

안개 속에서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엽운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 주위의 안개를 살펴보았다.

“령아, 며칠 동안 여기서 수련한 거야?”

엽운은 안개를 바라보다 별안간 물었다.

“이 안개의 이름은 구음미장이고, 여자의 수행에 적합하지.”

소령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네 말은 이 안개를 흡수해서 연화시킬 수 있다는 거야? 그렇게 수위를 올릴 수 있다고?”

엽운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 안개에서 영기가 느껴지지 않는 걸. 흡수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 같은데.”

“너희 남자들은 구음미장에 반응할 수 없으니까 당연히 수행도 할 수 없을 거야.”

엽운은 아 하는 소리를 한 번 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두어 마디를 더 이야기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의 경계는 이미 연기경 2중에 도달하여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으나 경계는 아직 견고하지 않았기에 정련할 시간이 필요했다.

두 사람은 등을 마주 댄 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련을 시작했다.

그들은 밤새 말이 없었고, 오랫동안 수련했다.

엽운이 수행에서 깨어날 무렵, 그의 연기경 2중은 완전히 견고해졌으며, 나머지는 그가 정련하지 않아도 알아서 굳어질 것이다.

지금 비로소 진정한 연기경 2중에 들어선 것이다.

실력은 족히 여덟 배에서 열 배는 향상 되었다.

엽운은 소령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곳을 떠난다면 시 장로 일파에게 소호를 공격할 핑계를 제공하게 될까봐 걱정했으니 그녀가 열심히 수련하게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소령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했고, 수청훤이 그녀에게 준 보물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번에는 그녀가 그저 열심히 수련하고 조금만 고생한다면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엽운은 화룡굴에서 나왔다.

소령의 말대로 전송진을 통해 떠나지 않았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도조를 만났던 곳을 지나 거울처럼 매끄러운 벽을 보았고, 또 그곳에서 한참을 더듬거리며 길이 열리는 곳을 찾았다.

그리고 석실을 뚫고 통로를 지나 화룡굴의 바깥에 도착했다.

“엽운 사제, 임무를 완수한 건가?”

경비를 서고 있던 제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엽운을 보았다.

이 녀석은 고작 하루만에 9급 임무를 완수한 것인가?

“간신히 완수했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엽운은 공수를 하였다.

두 제자의 경악이 가득한 시선을 받으며 화룡굴을 떠났다.

엽운은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임무전으로 향했다.

임무전은 여전히 우뚝 서 있었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세월이 느껴졌다.

화려한 대전 아래에는 많은 제자들이 임무전을 오고 가며 임무를 받고, 또 완수했다.

매일같이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엽운이 왔다. 저거 엽운 맞지?”

엽운이 먼 곳에서 걸어올 무렵 눈썰미가 좋은 제자 한 명이 그의 모습을 보고 다급히 소리쳤다.

임무전의 바깥에 있던 삼사십 명 정도의 제자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발걸음도 멈추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오고 있는 엽운이 보였다.

“이렇게 빨리 돌아오다니, 벌써 임무를 완수했을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당시의 모용무정도 9급 임무를 완수하는 데에 3일이 걸렸잖아.”

“누가 아니래. 전에 진 사형도 9급 임무를 완수하는 데에 대략 3일 정도가 걸렸는데 엽운은 하루만에 돌아왔잖아. 어찌 벌써 임무를 완수했겠어? 실패한 게 분명해.”

“맞아. 실패했겠지. 그런데, 임무를 실패했다면 곤란해 질텐데.”

“우리와는 상관없잖아. 우린 그냥 멀리서 구경하면 돼. 괜히 불똥이 튈지도 모르니까.”

“아쉽네. 듣자하니 봉주 대인의 기명 제자라는데, 오늘 떨어지는 것인가?”

“쉿, 조용히 해. 그가 왔어!”

임무전의 바깥에서 수십 명의 제자가 손가락질을 하며 저들끼리 의논했다.

엽운이 앞에 다가오자 일제히 입을 다물고 각자 갈 길을 갔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싸늘한 눈빛으로 주위를 훑고 냉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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