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4 화 신뇌강림
엽운의 눈동자는 담담했고, 조금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엽운은 일종의 기묘한 경계에 접어든 것 같았다.
손에 자영검이 떨려오며 마치 광파로 변한 것 같았다.
자영검이 몇 번이나 진동을 일으켰는지 눈으로 샐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중생전혼탑 안에 있던 도조가 이를 봤다면 놀라서 턱이 빠졌을 것이다.
시전한 검은 그가 전수한 뇌운전광검 제 3식 신뇌멸세였기 때문이다.
진정한 신뇌멸세는 순식간에 체내의 번개 영기를 천이십네개로 나누고 각각의 영기를 다시 완벽히 하나로 융합시켜야 하는데, 그와 동시에 각각의 영기가 서로 분명히 구분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구천신뇌를 불러내 적을 공격할 수 있게 된다.
단 체내의 번개 영기를 천이십네 개로 나누는 것이야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저 몇 번 연습하면 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숨 한 번 쉴 틈에 완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번개의 영기를 천이십네개로 나누고, 각각의 번개 영기를 하나로 융합시키며 서로가 방해를 받지 않게 만드는 것은 완수할 수 없는 임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전투란 본디 순식간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일이며, 생각해야 할 것도 많기 때문에 완벽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뇌운전광검 제 3식 신뇌멸세를 사용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일격은 몹시 어려운 만큼 뇌운전광검이 세상에 나온 이래 수련을 끝낼 수 있는 이가 극히 드물었다.
천검종의 장로가 실종된 이후로도 사실 뇌운전광검 제 3식의 수련법이 완전히 소실되지는 않았지만, 번개의 영기를 가진 제자가 몹시 적었고, 수련에는 몹시 차분하고 냉철한 마음이 필요했기에 순식간에 이 검을 완성시킬 수 있는 이가 없었다.
뇌운전광검 제 3식 신뇌멸세의 수련법은 천천히 소실되었으며 총문의 후대가 이 기공을 다시금 떠올렸을 무렵에는 이미 수련법을 찾을 수가 없었기에 제 3식의 수련법을 추단 연역할 수밖에 없었고, 비록 얼추 비슷하긴 했지만 진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엽운의 손에 쥐어진 자영검이 끊임없이 진동했다.
어렴풋이 천둥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이 공격은 신뇌멸세가 아니었다.
그저 보라색 번개가 번쩍이며 자영검에서 벼락이 쳤고, 수운만타수를 향해 날아갔다.
“뇌정만곡!”
엽운이 소리치자 벼락이 공중에서 흩어지며 무수히 많은 번개가 되어 수운만타수를 뒤덮었다.
수운만타수의 변이된 두 눈에서 차가운 물줄기와 불타는 화염이 응집되어 날아왔다.
물과 불의 화살은 허공에서 만나 하나로 융합되었지만 색이 분명히 나뉘었고, 완벽히 융화되지 않았다.
“찢어라!”
물과 불의 화살이 공간을 찢을 듯이 날아왔다.
하늘을 가득 메운 번개가 멈추었고, 엄청난 힘에 두려움이라도 느끼는 듯 물과 불의 화살의 앞에서 반 척도 안 되는 곳에서 사라져버렸다.
공중에서 몹시 아름답게 불꽃이 튀며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번개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파랗고 붉은 물과 불의 화살이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잠시 주춤하다가 날아왔다.
화살에 담긴 힘은 조금 약해졌지만, 엽운의 육신으로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화살에 맞게 된다면 엽운은 죽거나 중상을 입을 것이며, 수위가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엽운은 조금도 피하려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눈은 평화롭기 그지없었고, 조금의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엽운, 뭐하는 거야? 빨리 피해!”
수막의 바깥쪽에서 소령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녀는 건너편에서도 화살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엽운은 순간 옆으로 고개를 살짝 젖히더니 웃음을 지었다.
자영검을 치켜들자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이 격렬히 진동해왔다.
자세히 보면 검이 한 번 진동할 때마다 보라색 기운이 자영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보라색 빛은 허공을 날아가지 않았고, 자영검을 둘러싸며 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수백 개의 보라색 빛이 자영검의 주위를 맴돌며 검을 뒤덮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백 개의 보라색 빛이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서로 조금도 부딪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과 물이 하나가 된 화살은 이미 엽운의 앞에서 반 장도 안 되는 거리까지 다가왔지만 엽운의 표정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고, 두려움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자영검에서 나오던 보라색 빛이 마침내 멈췄고, 빛은 장검 위에서 빠르게 회전했다.
“우르릉!”
세상과 단절된 석실에서 귀를 찢는 천둥소리가 울렸다.
천장 위에서 겁운이 나타났고, 구름 속에서 번개의 뱀이 혀를 낼름거리며 빛을 번쩍였다.
엽운은 웃음을 터뜨리며 자영검을 살짝 내밀었다.
“신뇌멸세!”
나지막이 소리치자 자영검에서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위의 겁운에서 사람 팔만한 굵기의 번개가 쏘아져 나와 천이십네개의 빛과 하나를 이루며 빛이 번쩍이는 보라색 번개가 되었고, 수운만타수를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순간, 수운만타수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고, 곧 두려움으로 변했다 마침내 절망이 되었다.
“쾅!”
벼락이 내려와 수운만타수의 머리를 거세게 때렸고, 번개가 번쩍이며 빛이 아른거렸다.
석실 정체가 보라색 번개로 가득 차 사방으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보라색 빛 속에서 얼음과 불이 하나가 된 화살이 날아와 그의 옷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하지만 반짝이는 푸른색과 붉은색 빛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고 앞에서 한 줄기 빛이 되며 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귀를 찢을 듯한 천둥소리가 끝나고 하늘을 가득 메운 번개가 사라졌다.
석실 중앙의 오른편에는 수운만타수가 온 몸이 새카맣게 그을린 채 쓰러져 있었는데, 조금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수막의 바깥에 소령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는 듯 했다.
방금 전의 공격이 하늘 가득 벼락을 몰고 와 귀청을 찢을 듯한 천둥소리를 내 그녀는 하마터면 자리에서 넘어질 뻔했다.
천둥소리가 끝나고 바닥에 누워있는 것은 엽운이 아닌 수운만타수였다.
“탁!”
작은 소리와 함께 앞을 막고 있던 수막이 흐르는 물로 변해 석실의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소령은 소리를 지르며 날아가 엽운의 옆에 떨어졌다.
“엽운, 괜찮아? 나 놀래키지 마.”
소령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엽운의 팔을 붙잡았다.
엽운은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려 소령을 보고 빙긋 웃었다.
손을 들어 소령의 머리카락을 헝크러뜨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좀만 늦었으면 수운만타수의 공격이 내 가슴을 뚫었을 거야. 하지만 내가 좀 더 빨랐지!”
소령은 그를 와락 끌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 나쁜놈.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엽운은 가볍게 소녀를 끌어안고 등을 두들기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자 소령의 울음소리가 점차 그쳤고, 고개를 들어 엽운을 노려봤다.
“수운만타수는 죽었나 보네. 한참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는 걸 보니.”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소령은 어리둥절해하다 곧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이 녀석은 화룡굴의 기화이초들을 지키는 영수니까 정말 죽었다면 귀찮은 일이 생길 거야.”
“무슨 귀찮은 일이 생기겠어? 너는 봉주의 딸이고, 봉주는 내 사존이잖아. 우선 수운만타수의 요핵을, 아니 정핵을 뽑고 약초도 다 따자. 기화이초를 지키는 영수도 없는데, 약초를 나쁜 놈에게 빼앗기면 곤란하잖아.”
엽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수운만타수를 향해 걸어갔다.
소령은 넋이 나간 채 서 있다 곧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곳은 화룡굴의 가장 은밀한 금지 구역 중 하나인데 어디서 나쁜 놈이 들어오겠어. 내가 보기엔 네가 그 나쁜 놈이야.”
엽운은 숙연한 표정으로 정색하며 말했다.
“수운만타수의 정핵과 약초를 가져가는 게 나쁜 놈이라면 나는 나쁜 놈이 되고 싶은 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웃음을 터뜨리며 자영검을 휘둘러 수운만타수를 반으로 갈랐다.
그리고 수운만타수의 머리를 쪼개자 붉은 빛이 담긴 옅은 푸른색의 정핵이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엽운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정핵을 뇌음화룡계 속에 집어넣었다.
“이 약초는 함부로 뽑아서는 안돼. 그냥 마구잡이로 잘라낸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그렇지 않으면 약효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거야.”
소령은 어린 소녀였기에 엽운이 정말 수운만타수의 정핵을 꺼내는 모습을 보고 달려갔다.
“좋아, 그럼 네가 해봐. 나중에 사존께서 물으시거든 우리 둘이 같이 벌을 받는 거야.”
엽운은 손을 활짝 펴고 웃으며 소령을 바라봤다.
소령이 달려와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냈다.
“딱 얘기하는데, 벌은 네가 받아. 나중에 우리 아빠가 물어보면 다 너 혼자 벌인 일이라고 할테니까.”
엽운은 웃었다.
손을 들어 분홍색 줄기와 푸른 잎을 가진 약초를 뿌리째 뽑아 뇌음화룡계 속에 던져넣었다.
“원래 나 혼자 할 생각이었어. 너는 없어도 돼.”
연신 손을 움직여 눈 깜짝할 사이에 다섯 그루의 약초를 뽑았다.
소령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어떤 것들은 뿌리를 자르면 안 된다니까. 나중에 영기와 영토를 이용해 배양하면 다시 자랄 수 있는 것들도 있다고. 빨리 손 떼!”
엽운은 그제야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럼 빨리 말하지 그랬어. 어서 이것들을 전부 가져가야해. 누가 보면 안 된다고.”
소령은 입을 삐죽거리더니 엽운에게 지시를 내려 약초를 거두며 소리쳤다.
“이제야 무서운 거야? 여길 나가서 우리 아버지한테 뭐라고 얘기하려고 그래?”
엽운은 기뻐하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사존께서 물으시 거든 수운만타수가 폭주해 사람들을 다치게 만들었다고 하면 돼. 내가 좀만 늦었더라면 녀석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고, 그래서 놈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야. 그리고 이 기화이초들은 이곳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는 것인데 영수에게 점령을 당한 것인 줄 알고 종문을 위해 가져왔다고 하면 되지.”
소령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정말 뻔뻔하네. 돌아가서 이렇게 말하나 두고 봐야겠어.”
두 사람은 기쁜 모습으로 수운만타수가 지키던 기화이초를 한 그루도 남김없이 전부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