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0 화 압력, 그리고 승급
영기가 끊임없이 체내에 주입되어 육신을 빠르게 회복시켰다.
일반적인 환경에서 수련한다면 이 같은 소모와 압력이 없었을 것이며, 아무리 육신의 강도를 올리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화룡굴은 달랐다.
이곳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웠기에, 진기의 보호막이 벗겨진다면 아무리 육신이 강하다 해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미친듯이 영기를 흡수하여 육신을 강화하며 보호막에 진기를 불어넣었고, 한편으론 이를 악물고 버텼다.
진기의 보호막이 있음에도 뜨거운 열기는 공간속, 그리고 마음속에 밀려와 버티기 힘들었다.
엽운은 이것이 아주 좋은 기회임을 잘 알았다.
여기서 일년 반 정도를 버틴다면 육신과 진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할 것이다.
사실 화룡굴의 뜨거운 열기가 가져다주는 압력은 연기경 제자의 수련을 돕기도 하지만, 그 어느 제자가 엽운처럼 강인한 육체를 가지고 있으며 이렇게 깊은 곳 까지 들어오려 하겠는가?
보통 연기경 5중 이하의 제자는 화룡굴에 들어와 석실에서 수련을 하지만, 그 정도 환경에서도 그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깊은 곳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몸 곳곳에서 흐른 땀은 순식간에 열기에 의해 말라버렸다.
백개가 넘는 상품 영석은 두 시진만에 절반 가까이 사라졌는데, 이는 믿을 수 없는 흡수 속도였다.
수련을 막 시작한 연기경 1중의 제자가 이 정도의 상품 영석을 모조리 흡수하고 연화했다면 족히 연기경 6중에서 7중까지는 돌파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영석을 소모하고도 체내 진기 수용량은 아주 조금 늘어났을 뿐이었고, 육신의 강도 역시 조금 늘어난 게 고작이며 좀처럼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당연히 버틸 수 있고, 버텨야 했다.
천라응신초를 찾는 9급 임무는 기간 제한이 아주 길었는데, 족히 한 달이나 시간이 있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여기서 연기경 2중을 돌파하지 못하고 9급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더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빛이 번쩍였고, 상품 영석 한 무더기가 또 나타났다.
소흡성결은 빠른 속도로 영기를 체내에 주입했고, 또 빠르게 연화시키고 흡수하여 육신을 강화했다.
한 시진, 두 시진, 세 시진, 열 시진...
이렇게 끈질기게 버텼다.
몸에는 이미 더 나올 땀이 남지 않았고, 의지가 강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면 벌써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 것이다.
이곳은 평범한 곳이 아니고, 화룡굴의 깊은 곳이었다.
여기서 정신을 잃는다면 반 주향도 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결국 삼십여 시진을 버텨냈고, 온몸이 거세게 떨려왔다.
곧 몸에서 한 줄기 부드러운 빛이 뿜어져 나왔고 진기 보호막은 더 두꺼워졌다.
체내의 진기가 별안간 폭발하여 무수히 많은 영기가 뿜어져 나오고 빠른 속도로 연화되는 것을 느꼈다.
진기는 파도처럼 온몸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으며 임맥과 독맥을 타고 빠르게 움직였고, 한 번 움직일 때 마다 진기가 더욱 강해졌다.
홍수 같은 진기는 이전처럼 발길을 멈추지 않았고, 기경팔맥에 충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엽운은 크게 기뻐했다.
기경팔맥에 충격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연기경 2중 주천경을 돌파하려는 징조였다.
기경팔맥이 뚫리면 진기의 수용량은 몇 배가 늘어날 것이며 주천경의 진기는 더욱 정련되어 훨씬 순수해질 것이다.
일반적인 제자들은 주천경을 돌파할 때 몹시 조심했는데, 그들의 진기는 엽운 만큼 거대하고 순수하지 않기에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충격이 뚝 끊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줄곧 주천경을 돌파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못마땅했는데, 그것은 육신과 진기가 완벽히 같은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 서로를 보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진기와 육신은 마침내 주천경을 돌파할 수 있는 조건에 도달했다.
진기는 홍수처럼 임맥과 독맥을 여러 차례 돌았고, 기경팔맥에 충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쾅!”
한 개, 두 개, 세 개...
진기는 몹시 광대하여 막을 수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 기경팔맥 중 다섯 개가 뚫렸다.
경맥이 아직 완전히 뚫리지 않았는데도 벌써 몸의 변화가 느껴졌다.
숨을 죽인 채 기쁨을 억누르고 있었다.
진기는 다섯 개의 경맥을 뚫고도 멈추지 않았고, 기세도 줄어들지 않았다.
여섯번째, 일곱번째, 그리고 여덟번째 경맥에 충격이 가해졌다.
순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충격을 느꼈다.
한 주향의 시간이 지났고, 기경팔맥이 완전히 뚫려 진기가 체내의 모든 곳에 맴돌았다.
경맥에서는 조금의 막힘도 느껴지지 않았고, 온 몸에서 회전했다.
연기 2중, 주천경!
머릿속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렸고, 곧 정신이 맑아졌다.
뜨거운 화룡굴 속에서 온몸에 진기가 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몸을 일으켜 빠르게 앞을 향해 달려갔다.
소리내어 웃었다.
기쁜 웃음소리가 동굴 안에서 한참을 맴돌았다.
앞을 봤는데, 아직 수십 장의 거리가 남았지만 길의 끝이 보였고, 더 이상 길이 없었다.
그 말은 이 통로는 수련을 위한 곳이며 다른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니란 뜻이었다.
어쩐지 동굴 입구가 옥처럼 매끈한 것은 다른 제자들이 자주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다만, 엽운은 궁금했다.
수십 장 너머 이 길의 끝에는 도대체 어떤 수위를 가진 자들이 들어가는가?
분명 축기경 후기쯤은 될 것이다.
어쩌면 두 사존의 수위라면 이 길의 끝에도 쉽게 서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룡굴은 두 사람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컸다.
아쉬운 듯 앞을 한 번 보더니 길을 되돌아가 동굴 입구로 빠져나왔고, 수관이 까맣게 그을린 나무 위에 떨어졌다.
몸에 진기는 몇 배나 웅장하고 두터워졌다.
게다가 더욱 순수해지기까지 했는데, 지금 실력은 화룡굴에 들어가기 전보다 적어도 일곱 배에서 여덟 배는 강해졌다.
지금 모용무흔을 만난다면 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엽운의 시선은 나머지 두 개의 동굴로 향했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길 바로 앞의 동굴을 향해 몸을 날렸는데, 동굴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동굴은 좀 전의 그것과 비슷하게 두 명에서 세 명 정도가 나란히 걸을 수 있었고, 꼭대기에는 부드러운 빛을 뿜는 명주알이 동굴을 살짝 비추고 있었다.
수정이 깔린 꼬불꼬불한 길은 앞쪽으로 통했는데, 모퉁이 때문에 끝이 보이지 않았다.
빙긋 웃으며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이 통로는 좀 전의 동굴과는 달리 열기가 없었고, 앞을 향해 수십 장을 나아갔지만 아무런 온도의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보아하니 이 길에는 진화가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약간의 바람이 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말은 이 통로에 다른 출구가 있어 양쪽을 관통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엽운은 빠르게 걸어갔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몸에서 진기를 뿜어내 표면을 보호했고, 진기를 주먹에 둘러 언제라도 강력한 공격을 날릴 준비를 했다.
한 주향의 시간 만에 몇 리를 걸어왔다.
하지만 동굴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쪽의 출구도 보이지 않았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곳에 공간 진법이 배치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화룡굴의 모든 산봉우리는 겨우 십리를 넘지 않았는데, 어쩌면 이 동굴이 꼬불꼬불하게 되어있어 몇 리를 가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엽운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화운비장에서도 살아 돌아왔는데, 이 화룡굴의 공간 진법이 아무리 강해도 금단 수사가 배치한 것일 뿐, 대묘에 있는 것보다 강할 리 없다.
한 시진 동안 걸었고, 마침내 앞쪽에서 불빛을 보았다.
출구가 분명했다.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발걸음을 재촉했고, 잠깐 사이에 출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온 것은 출구가 아니라 부드러운 흰색 빛과 함께 안개에 휩싸인 석실이었다.
“출구가 아니었다니.”
엽운은 어리둥절해하며 저도 모르게 말했다.
“누구야?”
별안간 앳된 목소리가 새하얀 빛 속에서 들려왔는데, 아주 익숙한 목소리였다.
엽운은 어안이 벙벙했다.
곧 크게 기뻐했다.
“소령, 너야? 나 엽운이야.”
“아...”
익숙한 목소리가 별안간 비명을 질렀고, 소령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 들렸다.
“누가 너보고 오라했어. 빨리 나가. 나가란 말이야.”
엽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단 나가. 빨리 나가라고. 한 주향 있다가 다시 들어와.”
소령의 목소리에서는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당황스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소령, 너 왜 그래?”
엽운은 소령의 목소리에 담긴 놀라움이나 기쁨은 느끼지 못했고, 그저 당황스러움만을 느꼈다.
눈썹을 치켜올리며 빠르게 움직여 하얀 빛이 비추는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세 장도 되지 않아 엽운은 앞쪽에서 가녀린 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기뻐하며 소령의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손끝에 따듯하고 부드러우면서 비단처럼 매끈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소령도 그랬다.
“꺄악!”
소령은 비명을 질렀다.
“누가 들어오라 했어. 기다리라 했잖아. 빨리 나가!”
그제야 소령이 왜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옷을 입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소령은 뒤로 돌았지만, 어깨에 올려져있던 손은 그대로 허공에 멍하니 떠 있었고,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이 계집애가 뭐하는 거야. 옷도 안입고.”
엽운은 몸을 돌려 안개를 비집고 석실의 입구로 돌아갔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소령이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들어오지 말라니까 왜 말을 안 듣는 거야.”
소령의 목소리에는 노여움이 서려 있었다.
곧 연두색의 가녀린 몸이 안개를 뚫고 나와 엽운의 앞에 다가왔다.
“흥, 엽운. 어째서 화룡굴까지 슬그머니 들어온 거야? 게다가 여길 찾아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