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6 화 검도의 도조
이 늙은이는 천검종의 태상 장로였다!
이 한 마디는 마치 천둥처럼 엽운의 귓가에 울렸다.
순간 얼이 빠졌고, 자신이 들은 말을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어르신, 어르신께서 천검종의 태상 장로란 말입니까?”
심호흠을 하며 나지막이 물었다.
“아마 그렇겠지. 헌데 이상하게도 내 이름뿐만 아니라 천검종 다른 이들의 이름도 완전히 잊었다.”
노인의 허상이 희미하게 빛났다.
노인은 자신의 이름만 잊은 것이 아니라 당시 다른 사람들의 이름까지 전부 깨끗이 잊어버린 것이다.
호기심에 물었다.
“그럼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노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민하다 말했다.
“아주 기이한 기법을 하나 수련했던 것은 기억나는구만, 이름이 소흡성결이었지.”
“소흡성결!”
엽운은 어안이 벙벙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럼 자 장로님을 아십니까? 아, 자산 장로 말입니다.”
말을 마치며 자신이 무슨 질문을 했는지 깨달았다.
자 장로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눈앞의 노인보다 많겠는가.
“모든 이의 이름이 기억나질 않으니, 나에게 물어도 소용없다.”
엽운의 말이 끝나자마자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럼 또 뭐가 기억나십니까?”
엽운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노인이 별안간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것 같군. 하지만 검법 하나가 기억나는구만. 배우고 싶거든 전수해줄 수 있다네.”
“검법이요?”
엽운의 눈이 반짝였다.
곧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도 아직 통달하지 못한 검법이 몇 개 있어서요. 새로운 걸 더 배운다 해도 소용이 없을겁니다.”
“검법? 애송이, 아무렇게나 몇 개 배웠다고 그게 검법인 줄 아는냐? 검법의 역사는 알고 있는가? 검법의 맛, 그리고 진정한 검의 뜻과 검도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아느냔 말이다.”
노인은 별안간 화를 내며 소리쳤다.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이 노친네는 별안간 화를 내었는데, 그럴 필요가 있는가?
하늘 아래 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설마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저 자의 말대로 아무렇게나 배운 것을 검법이라 부른단 말인가?
“무슨 검법을 배웠는지 한 번 시전해 보거라. 검을 모욕했는지 한 번 보겠다.”
노인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엽운은 어깨를 으쓱이고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께서 굳이 보시겠다면야, 실례하겠습니다.”
엽운은 손에서 자영검을 꺼내고 살짝 흔들었다.
공간을 가득 메운 열기가 잠시 멈췄고, 곧 눈꽃이 허공에서 피어올라 근방 몇 장의 범위를 뒤덮었다.
“빙봉천리!”
엽운이 나지막이 소리쳤다.
자영검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지며 근방 열 장 내의 모든 것을 얼음으로 뒤덮었고, 화룡굴이 이렇게나 뜨거운데도 순식간에 눈이 쌓였다.
“애송이, 네가 얼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군. 그런 기술을 쓸 수 있다면 간신히 검법으로 쳐줄 수는 있겠군. 하지만 그저 검법일 뿐, 진정한 검도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노인의 눈이 빛났다.
엽운의 공격은 분명 그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다.
“검도요? 검도가 무엇입니까?”
엽운이 호기심에 물었다.
“천지의 법칙 속에는 무수히 많은 대도가 있지. 검도는 그 중 하나다. 위력은 절륜하고 단칼에 천지를 베는 것이지. 각자의 검도는 모두 다르지만 결국에는 같은 곳을 향한다.”
노인은 거침없이 심오한 이야기를 했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르신, 그렇게 제 검법이 못마땅하시다면 이 후배에게 한 번 보여주시지요.”
노인은 어리둥절했다.
곧 그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내 검을 어찌 함부로 시전 하겠느냐. 내가 단칼에 천지를 벤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 화룡굴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엽운은 큰소리로 하하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이 단칼에 화룡굴을 베어버릴 수 있는 검법을 가지고 계신다면 어째서 팔백 년 동안 여기 갇혀 있었던 겁니까?”
“멍청한 놈. 설마 내가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는 게냐. 나는 그저 영혼의 허상일 뿐이다. 만약 내가 화룡굴을 베어버린다면 내 영혼은 순식간에 먼지가 되어 사라지겠지.”
노인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바라봤다.
그가 말한대로 찬란한 빛 속의 그는 그저 영혼의 허상일 뿐이었고 실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다. 나도 굳이 너에게 더 따지지는 않으마. 더 할 줄 아는 검법이 있거든 꺼내 보거라. 몇 가지 가르쳐주마.”
노인은 손을 내저었다.
얼굴에는 쓸쓸한 기색이 역력했다.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자영검을 집어넣고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순간 기세가 변했고, 마치 우뚝 솟은 산처럼 어딘가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노인은 기대가 가득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엽운은 오른손을 자영검에 얹고 휙 뽑았다.
보라색 빛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아름답게 일렁였다.
그것은 간결한 일격이었다.
그저 검을 뽑아 내질렀을 뿐이며, 그 뒤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엽운은 진기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그저 간결하게 검을 내질렀다.
“어르신, 어떻습니까?”
노인은 마치 귀신을 보기라도 한 듯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별안간 소리쳤다.
“천생일검, 이건 천생일검이다. 네가 어떻게 천생일검을 쓸 줄 아는 게냐?”
엽운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크게 놀랐다.
이 노인이 칠 장로가 전수해준 천생일검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말해봐라. 누가 천생일검을 네게 전수해준 것이냐? 이 검은 아무나 수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몹시 까다로운 요구사항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총명한 천재라 해도 수련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거늘.”
노인은 몹시 감격하며 빛 속에서 펄쩍 뛰었다.
엽운은 노인이 이렇게까지 감격할 줄은 몰랐고,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당연히 저희 사존께서 전수해주셨지요. 설마 스스로 깨우쳤겠습니까.”
“네 말은 네 스승도 천생일검을 수련했다는 말이냐? 불가능하다. 거짓말이야. 이 검은 몹시 신묘하여 수백 년 동안 천검종에서 수련에 성공한 사람이 없단 말이다. 당시의 나조차 깨우치지 못했거늘. 설마 네 검도에 대한 깨달음이 나를 넘어선다는 말이냐? 너희 사제 두 사람이 천생일검을 수련했다니. 자, 말해 보거라. 천생일검이 이미 파훼되어 모든 이들이 수행할 수 있는 게 된 것이냐?”
노인은 큰소리로 다급하게 외쳤다.
엽운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물론 아닙니다. 천검종 전체에서 이 검을 시전 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저희 사존 뿐입니다. 근데 제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만, 이 검이 그렇게나 대단한 것입니까? 검도의 도조라 할 수 있는 당신을 이렇게 실성하게 만들 정도란 말입니까?”
노인이 날뛸수록 천생일검에 대한 엽운의 호기심은 점점 커졌다.
이 틈을 타 그를 검도의 시조라 부르며 아첨을 했다.
이 호칭이 먹힌 것인지 노인은 몹시 즐거워보였고, 천천히 평정심을 되찾았다.
“검도의 도조라고? 괜찮은 이름이군. 내 이름이 생각나질 않으니 이 호칭을 쓰면 되겠군. 나와 아주 잘 어울려.”
노인은 너스레를 떨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엽운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도조님, 천생일검은 저도 우연히 익힌 것이며, 안에 담겨있는 신묘함은 잘 알지 못하니, 도조께서 가르쳐주시면 좋겠습니다.”
검도의 도조는 “응”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천생일검은 그냥 검이 아니다. 이 검은 근본 그 자체이며, 가장 간결한 검법이기 때문이지. 가장 간단하기 때문에 가장 대도에 잘 어울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깨우칠 수 있다면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위력을 낼 수 있다.”
엽운은 천생일검의 위력을 확실히 알았다.
칠 장로가 가볍게 휘두른 일격만으로 천지의 허공이 갈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이 검은 몹시 간단하고 대도에 적합하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기만 하면 각종 다른 깨달음을 녹여낼 수 있지. 일검은 십검이 되고, 십검은 백검이 된다. 백검은 천만 개의 검이 되고, 적은 순간 온 세상에 피할 수 없는 검의 비가 내리는 것을 목격하게 되지.”
검도의 도조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신기한 검이 있단 말입니까? 방금 저의 검도 그랬지만, 그렇게 강력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요.”
엽운은 어딘가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렇게 강력한 것 같지 않다고? 방금 너는 진기도 쓰지 않았는데 어찌 강력한 공격을 펼친다는 말이냐?”
검도의 도조는 연신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어서 그가 또 말했다.
“보아하니 네 체내의 진기는 아주 웅장하구나. 경계는 고작 연기경 1중이지만 이미 높은 경지의 연기경 제자들과도 맞설 수 있겠지? 만약 네가 방금 그 검에 진기를 주입할 수 있다면 연기경 정점의 수위로도 쉽게 막아낼 수 없을 것이며, 심지어는 네 검 아래에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엽운은 칠 장로에게서도 이 같은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천생일검에는 각종 기법을 녹여낼 수 있는데, 완벽히 융합시킬 수만 있다면 무궁무진한 위력을 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다른 기법을 융합시킬 수 있는 것입니까?”
엽운은 마음속의 의혹을 물었다.
“천생일검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검을 뽑아드는 동작이다. 이를 깨우치지 못하면 만 번을 시도해도, 아니 십만 번을 시도해도 진정한 천생일검을 쓸 수 없다. 너는 이미 이를 깨우쳤으니 잘 생각해 보거라. 어찌하면 기법을 그 속에 녹여낼 수 있을지 말이다. 네가 마음만 먹으면 융합시킬 수 있을 게다. 처음의 깨달음이 가장 관건이고 그 뒤로는 수련에 전념하면 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검도의 도조는 손을 내저었다.
그는 천생일검을 본 것만으로도 값을 했다고 생각했다.
엽운은 검도의 도조가 했던 말을 찬찬히 되새기며 눈을 감았다.
족히 반 주향의 시간이 지나고 그가 눈을 떴다.
곧, 오른손을 펴 검 모양을 만들고 왼쪽에 있던 벽을 천천히 찔렀다.
순간, 옆에 단진풍과 여명홍이 있었다면 두 사람은 분명 놀라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그들이라면 이 일격에 담긴 각종 변화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변화는 전부 그들에게 익숙한 선기였지만, 그 많은 변화들이 한 데 완벽하게 융합되었다.
검도의 도조는 더욱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저 한 마디 했을 뿐인데, 엽운이 잠시 사색에 잠기더니 이 일격에 각기 다른 선기를 녹여낼 줄은 몰랐고, 심지어 이 일격은 완벽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천재, 진정한 천재다. 검도의 천재!”
도조는 큰소리로 외쳤다.
목소리에서 감격이 느껴졌다.
이 말은 엽운을 전혀 방해하지 않았다.
사실 듣지도 못했고, 그저 자신이 신묘한 경계에 들어선 것만을 느꼈다.
이 검에 두 개의 공격이 완벽하게 융화되었음을 느꼈는데, 검에서 느껴진 변화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천생일검의 신비로움은 바로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