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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205화 (205/227)

제 205 화 화룡밀실

화룡굴은 무영봉의 뒷산에 위치한 금지 구역이다.

천검종 각 산봉우리의 뒷산에는 모두 금지 구역이 있는데, 그 중에는 화룡굴처럼 위험한 시련의 땅도 있었다.

엽운은 9급 임무를 받았고, 또 소호의 기명 제자 신분이기에 아무런 제지 없이 바로 화룡굴에 들어갈 수 있었다.

화룡굴은 이름 그대로 산 전체에 진화가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화룡 한 마리가 가끔 나타난다 하며, 그것이 나타나면 진화의 위력은 열 곱절이 강해져 연기경 제자 따위가 막을 수 있는게 아니라고 했다.

엽운은 화룡굴에 들어가기도 전에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덮치는 것이 느껴졌다.

“멈춰라. 거기 누구냐.”

화룡굴의 앞에는 두 명의 푸른 옷 청년들이 냉엄한 표정으로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사형님들, 저는 엽운입니다. 천라응신초를 찾으러 왔습니다.”

엽운은 공수를 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두 청년은 마치 제대로 듣지 못한 듯 서로를 쳐다봤다.

그 중 한 사람이 물었다.

“천라응신초를 찾으러 왔다고? 설마 신입 제자 임무는 아니지? 이건 9급 임무라고.”

“엽운, 너에 대한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다. 지금은 봉주 대인의 기명 제자라고 했었지. 그렇다 해도 충동적으로 행동하지는 말길 바란다. 이 화룡굴은 절대 재밌는 곳이 아니야. 9급 임무는 너무도 어려워 연기경의 제자로써는 완수할 방법이 없단 말이다.”

엽운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두 사형들의 주의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임무를 받았으니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럼 조심 하거라. 들어가서 시련을 받는 것은 무방하다만, 천라응신초는 화룡굴의 깊은 곳에 있다. 진화의 위력이 가장 강력한 곳이지.”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감사를 표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두 명의 경비 제자를 지나쳤다.

붉은 수정이 깔린 길을 하나 지나자 사람 두 명 높이에 두 척 정도 너비를 가진 동굴이 보였는데, 동굴은 온통 빨간색이었고, 벽에는 균열이 생길 정도로 건조했다.

밀려오는 열기는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겁을 먹게 만들었다.

현공을 시전하자 더위가 순식간에 몸 밖으로 밀려났다.

눈을 들어 보니 위에 화룡굴이라는 시커먼 세 글자가 쓰여있었다.

엽운은 대수롭지 않은 듯 진기로 몸을 보호하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푸우!”

발을 딛는 순간 양쪽 벽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와 엽운을 뒤덮었다.

다행히 화염은 진화가 아니고 평범한 화염이었으며, 그저 온도가 조금 높을 뿐이었다.

엽운은 진기로 몸을 보호하고 화염이 세 촌 거리까지 다가왔을 때 잠시 멈췄다 다시 걸어갔다.

동굴 곳곳이 화염에 그을려 하얗게 변해 있었고, 붉은 돌덩이도 몇 개 있었다.

지면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공간 전체가 일그러져 보였다.

엽운은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가는 길에 수많은 불길을 마주했고, 어떤 것들은 온도가 몹시 높아 하마터면 막아내지 못할 뻔했다.

엽운의 육체는 극도로 강력하기에 온몸에 진기를 두르고 현공을 시전한다면 육신의 강도만큼은 축기경 초기의 제자를 넘어선다.

그래도 지금 수위는 여전히 연기경 1중이었고, 육신과 진기가 완전히 융합되어 쉬선심법을 통해 새로운 경계를 돌파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만약 경계가 축기경 1중을 돌파하게 된다면, 그때 육신은 얼만큼 강해질지 스스로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화룡굴은 크지 않았고, 길은 하나뿐이었다.

대략 반 주향의 시간이 지났고, 앞쪽에는 두 갈래 길이 보였다.

길의 끝자락에 서서 두 갈래 길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통로 안에는 불시에 화염이 솟아올라 길을 뒤덮고 있었다.

화염이 엽운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없었지만, 엽운은 이 길이 얼만큼 긴지, 또 함부로 발을 들였다가 진화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다음 순간 엽운은 웃음을 지었다.

화룡굴은 연기경 제자들이 시련을 받는 곳인데, 여기서 진화가 나타난다면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시험을 진행하겠는가?

이를 깨닫고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발을 들어 오른쪽 통로로 향했다.

예상한대로 통로에서 불시에 불길이 뿜어져 나왔지만 그저 온도가 더 높을 뿐이었으며, 그래봤자 조금 견디기 힘들고 땀이 나는 정도였다.

축기경 후기에 필적하는 진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 주향의 시간이 지나자 엽운은 화염이 뿜어져 나오는 통로에서 빠져나왔다.

앞에 텅 빈 석실 하나가 보였는데, 석실은 열장 정도의 길이에 여덟 장 너비에 높이는 두 장 정도 되어보였다.

석실은 비어있었고, 3개에서 5개 정도 되는 매끄러운 원형의 돌이 곳곳에 있었다.

척 보는 순간 이 원형의 돌들은 연기경 제자들이 수행에 들 때 사용하는 것임을 알았다.

엽운은 아무 돌맹이나 골라서 위에 앉았다.

아래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고, 저항할 방법도 없이 몸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진기가 흐름에 따라 순식간에 소멸했고, 한 줄기 은은한 열기만이 체내에서 회전하며 진기속에 섞여 들어가는 것 같았다.

오래 수련하지 않았다.

이 정도 열기는 아무런 효능도 없었다.

그저 열기를 잠깐 느껴봤을 뿐이었고,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석실의 사방을 훑어봤지만, 들어오는 통로 이외에 다른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좀 전에 다른쪽 통로가 더 깊은 곳으로 가는 길임이 분명했다.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주변을 훑어가며 석실 전체를 샅샅이 살폈다.

석실이 단지 연기경 제자들의 수련을 위한 장소라 생각하지 않고, 분명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손을 들어 두어번 두들겼고, 돌에서 전해져오는 울림을 들었다.

조금씩 벽을 두드리며 인내심을 가지고 살폈다.

족히 두 시진이 지났고, 엽운은 마침내 통로를 마주보고 있는 돌벽의 중앙에서 들려오는 울림소리가 조금 더 길게 울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엽운은 빙긋 웃으며 주먹에 진기를 응집시켜 돌벽의 한 가운데를 향해 매섭게 내질렀다.

“우지직!”

맑은 소리가 울리며 벽에서 빛이 번쩍였고, 불길이 뿜어져 나와 엽운을 뒤덮었다.

화염의 온도는 몹시 높았다.

진기로 보호하고 육신도 강했지만 이 화염은 몸을 감싸고 있던 진기를 모두 태워버리고 덮쳤다.

화염이 물러가자 벽 위에 둥근 문이 보였다.

엽운은 빙긋 웃으며 발을 내딛었다.

문에 발을 들이는 찰나, 앞쪽에서 한 사람이 단정하게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정신을 집중하고 다시 보니 아무도 없었다.

엽운은 고개를 드는 순간,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머리 위 천정에는 종유석들이 새하얀 빛을 반짝이고 땅에는 붉은 수정이 불시에 붉은 빛을 번쩍였다.

새하얀 종유석에 붉은 빛이 반사되어 반짝였는데, 몹시 아름다워 마치 환상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아름다운 곳이군.”

마음속으로 감탄했다.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과 땅 위의 붉은 수정을 바라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경탄하는 사이 앞쪽 열 장 너머에 있던 종유석이 별안간 빛을 뿜었다.

그리고는 한 줄기 붉은 화염이 지면에서 솟아오르더니 종유석을 비춰 아름다운 불빛을 반사했다.

반사 된 빛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땅 위로 쏟아지며 한 데 모였다.

엽운은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한 데 모인 빛 속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 것이다.

분명 사람이었다!

엽운은 크게 놀라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화염 속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 사람은 솟아오르는 불길 속에서 조금씩 흔들렸는데, 진짜 사람이 아니라 종유석이 만들어낸 빛의 그림자임을 알 수 있었다.

“8백 년 만에, 드디어 사람이 들어왔군.”

다가가 살펴보려는 순간, 불빛 속에 있던 사람의 형상이 입을 열었다.

몹시 침착하고 노쇠한 목소리가 동굴 안에서 울렸다.

엽운은 체내의 진기를 끌어올려 오른손에 응집시켰는데, 하마터면 손을 뻗어 칠 뻔했다.

“8백 년? 당신은 누구십니까?”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담담히 물었다.

“내가 누구냐고? 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은 이 곳에 갇힌 지 8백 년이 되었다는 것뿐이지. 난 한 시진 한 시진을 묵묵히 세었고, 지금까지 팔백 년 하고도 이백 사십삼 일 일곱 시진이 지났다.”

노쇠한 목소리에서 쓸쓸함이 느껴졌다.

불빛 속에 사람은 다른 움직임없이 그저 조용히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모습은 불길 속에서만 오르락내리락 했다.

“어르신, 자신이 누군지 기억나지 않으신다면, 누가 여기에 봉인했는지는 기억하시는지요.”

엽운은 마음을 다잡고 침착하게 물었다.

“나를 여기 가둔 게 누구냐고? 당연히 알고 있지. 그는 인간이 아니라 요족이었다. 이름은 화열이지.”

노인은 별안간 분노에 차 소리쳤다.

엽운은 어리둥절해하며 저도 모르게 물었다.

“요족이요? 어르신, 그 전설 속 요족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무슨 전설 같은 소리를 하느냐? 요족은 요족이고 늘 존재했다. 이 대륙에 수만 년 동안 존재했단 말이다.”

고서에서 요족을 봤다는 기록을 읽었지만, 그저 전설이라고만 생각했고 진짜 누군가가 봤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노인은 8백년전 화열이라는 요족이 자신을 이곳에 가두었다고 말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천검종에도 요족이 있다는 것인가?

참고로 천검종이 세워진지가 천 사백 년이 조금 넘었는데, 이 노인은 팔백 년 전에 요족에게 봉인 되었다 한다.

정말 그렇다면 이 요족은 줄곧 천검종에 있다는 것 아닌가?

게다가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고?

“하지만 두려워 할 필요 없다. 화열 그 요물 녀석은 내가 부상을 입혔고, 죽지는 않았지만 회복하는 데에 족히 수백 년은 걸리겠지. 게다가 우리 인류의 대륙에서 요족의 회복 속도는 아주 느리니, 네가 팔백 년 동안 요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 놈은 분명 이미 이곳을 떠나 요족의 땅으로 돌아갔을 게다.”

노인은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개가 느껴졌다.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노인의 그림자를 바라봤다.

그의 머릿속에서 별안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르신, 스스로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하셨는데, 혹시 천검종 사람이신지는 기억하십니까?”

“천검종? 그렇다. 나는 천검종의 태상 장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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