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4 화 9급 임무
9급 임무, 천라응신초!
엽운의 시선은 한 줄의 금색 글자에 멈췄고,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엽 사형, 바로 9급 임무를 하시려는 겁니까?”
음호천은 그를 보며 다급히 물었다.
엽운은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물었다.
“안될 건 뭐야? 내가 기억하기론 신입 내문 제자는 반드시 임무 하나를 완수하여 공헌도를 쌓아야 하는데, 임무의 등급이 높을수록 받을 수 있는 공헌도가 높다고 하던데 앞으로의 수련에 있어 공헌도는 아주 중요하겠지. 게다가 첫 임무의 완성도는 신입 내문 제자에 대한 고위층의 평가이기도 하잖아.”
음호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신입 내문 제자에 대한 고위층의 평가는 허울뿐이며 실제로는 공헌도가 중요하지요. 하지만 9급 임무는 너무 어려워 완수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완수한 사람이 없나?”
엽운이 고개를 젖히며 물었다.
음호천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만, 몇 년 동안 신입 내문 제자 중 9급 임무를 완수한 사람은 아마 모용무정 한 명 뿐일 겁니다.”
모용무정?
머릿속에 모용무정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상황에서 모용무정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오로지 수행에만 몰두한 모용무정은 몹시 흉악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냉혹하고 인정에 박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상상하던 모용무정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닙니다. 음 사형께서 모르시나본데, 연기경 시절에 9급 임무를 완수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습니다.”
섭원정이 옆에서 불쑥 끼어들었다.
엽운과 음호천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5년 전, 진천운이라는 열일곱 살짜리 신입 제자 한 명이 있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그도 처음부터 9급 임무를 완수했다고 합니다.”
섭원정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진천운? 진천운이 누구야?”
음호천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천신봉의 진천운 사형 말입니다.”
섭원정이 말했다.
“그 사람 말이군. 몇 년 전에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사라지더니 어찌 다시 나타난거지?”
음호천이 궁금한 듯 물었다.
섭원정이 말했다.
“음 사형, 2년 동안 뭘 하셨습니까? 진 사형은 근 2년 동안 대성을 이루어 견줄 자가 없습니다. 어렴풋이 모용무정을 뛰어넘을 조짐이 보인다고요. 3개월 전 죽음의 사막에서 4대 봉주의 시련 제자 한 명이 궁지에 몰려 죽음을 앞둔 그 순간 진 사형이 별안간 나타나 단칼에 모든 요물을 소탕하고 칼날의 빛으로 수십 리를 밝혔던 것 기억하시겠지요.”
“오, 그런 일이 있었지. 그게 그 사람이었군. 그가 처음으로 고른 임무가 9급 임무일 줄은 몰랐네.”
음호천은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듣고 있던 엽운의 마음속에서 저도 모르게 이견이 생겼다.
진천운이라는 세 글자는 수청훤에게서 들어본 적 있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근 몇 년 동안 천검종에서 수많은 공을 세웠다고 한다.
또 평소에 그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인품 또한 온화하며 시 장로의 배후 세력에 힘입어 4대 봉주들에게도 맞설 수 있는 인물이라 했다.
“진 사형은 평소에 어디 계시지?”
“당연히 천신봉에 계시지요.”
음호천은 섭원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웃음을 지으며 말을 가로챘다.
“아니오. 진 사형은 평소 천신봉에서 수련에만 전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자주 4대봉을 돌아다니며 수위가 떨어지거나 경계의 깨달음에 한계를 느끼는 제자들을 도우시며, 그들에게 공법을 가르치고 경계에 대해 깨달음을 얻도록 인도해 큰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섭원정은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말했다.
표정에서 약간의 경외가 느껴졌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젠장. 수련에 몰두하느라 산 밖으로 나가질 않았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녀석이 그렇게 주제 넘는 짓 따윈 하지 못 했을텐데.”
음호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섭원정과 엽운은 서로 보며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음 사형, 사형의 실력도 뛰어납니다만, 엽 사형의 주먹 한 방도 버티지 못하셨는데 어찌 진 사형과 견줄 수 있겠습니까.”
섭원정은 큰 소리로 웃다가 별안간 말실수라도 한 듯 다급하게 말했다.
“엽 사형. 제 말은 당신의 수위가 진 사형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두 분은 용과 봉황 같은 존재이시며 우리 천검종의 특출 난 인재이십니다.”
엽운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진천운이라는 사람은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데, 수위는 이미 축기경 후기라고 하니 나와는 개똥벌레와 밝은 달 정도의 차이가 날 거야. 네 말이 맞다. 지금의 나는 아직 맞설 수 없어.”
섭원정은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엽 사형은 참 겸손하십니다. 진천운이라는 녀석은 나이가 이미 스물 몇 살 쯤 됐을 겁니다. 그런데 엽 사형은 이제 열여섯에서 열일곱 쯤 되시는데 지금도 저를 가볍게 쓰러뜨릴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가히 연기경의 정점이라 할 수 있으나 3년도 되지 않아 대겁을 넘어서고 축기경 6중 천인경에 오르실 겁니다.”
음호천의 아첨은 끊이지 않았다.
진천운은 멀리 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신분과 지위에도 큰 차이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엽운은 지금 곁에 있고, 자칫하여 이 녀석의 기분을 안좋게 만들면 두 세대 쯤 더 얻어 맞을텐데, 그렇게 되면 온 몸의 뼈가 송두리째 부서질 것이다.
엽운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고, 벽 위에 빛나고 있는 금색 글자를 만지려 했다.
“고작 연기경 1중의 제자가 감히 9급 임무를 맡으려 한다니. 정말 겁도 없군.”
냉랭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임무전의 바깥에서 흰 옷을 입고 목에 금색 천을 두른 청년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뒤에는 약 일곱여덟 명 쯤의 제자들이 따라오고 있는데, 표정은 하나같이 겸손하고 공손했다.
음호천과 섭원정의 표정이 변해 급하게 몸을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용 사형.”
두 사람은 겁에 질린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청년은 두 사람은 본 척도 안하고 곧장 엽운의 앞으로 다가와 훑어보며 말했다.
“네가 바로 엽운인가? 봉주 대인의 기명 제자라던?”
엽운은 그를 한 번 보더니 아랑곳 하지 않고 손을 들어 9급 임무를 받으려 했다.
“담이 크구나.”
몇 개의 목소리가 일제히 들려왔는데, 목소리에는 살기가 서려있었다.
“엽운, 9급 임무는 몹시 어렵다. 너 정도 수위로 참여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자칫하면 죽고 말거다.”
용 사형이 담담히 말했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고 몸을 돌려 말했다.
“무영봉 내문 제자들은 전부 한가한 모양이지요? 이렇게나 오지랖이 넓다니.”
“겁도 없이 감히 용 사형께 그 따위로 말하다니.”
내문 제자 한 사람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
“음호천, 종문 규정에 신입 제자가 9급 임무를 받으면 안 된다는 법이 있나?”
엽운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젖혀 물었다.
음호천은 좀 전의 오만한 표정을 거두고 재빨리 고개를 숙여 엽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원정, 네가 말해봐라.”
엽운은 다른 쪽을 바라봤다.
섭원정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중얼거렸다.
“종문의 수첩에 그런 말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9급 임무는 아주 위험해 조금만 잘못해도 죽을 수 있습니다. 엽 사형께서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엽운은 “오!”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목에 금색 천을 두른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봐 당신, 이 9급 임무를 받고 싶은 겁니까?”
용 사형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남의 시간 낭비하지 마시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들었다.
9급 임무 위에 금색 글자가 순간 붉은 빛을 내더니 엽운의 신분패가 그 붉은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곧 붉은 빛 속에서 금색 글자가 줄지어 나타났다.
9급 임무, 천라응신초 한 그루를 찾아내라.
장소, 화룡굴, 모사골!
기한, 3일.
포상, 기여도 백 점.
“정말로 9급 임무를 받다니, 요즘 젊은 녀석들은 정말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군.”
용 사형은 어안이 벙벙했다.
엽운이 정말로 9급 임무를 받을 줄은 몰랐다.
엽운은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기다려라.”
용 사형이 손을 들자 일곱 여덟 명의 소년들이 엽운의 길을 막았다.
엽운의 표정이 곧바로 어두워졌다.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뭘 하려는 겁니까?”
용 사형은 손뼉을 치고 웃으며 말했다.
“오해하지 말거라. 내 이름은 용음생, 분명 들어본 적이 있을게다. 나는 무용봉 용당의 부당주이다. 듣자하니 네가 군자당을 아주 업신여긴다던데, 우리 용당도 같은 생각이거든. 오늘 나는 네가 9급 임무를 받을 용기가 있는지 확인하러 왔다. 그런데 정말로 받을 줄은 생각지 못했군. 아주 감탄스럽다. 이렇게 하자. 네가 살아 돌아온다면 시험을 거쳐 우리 용당의 8대 당주 중 하나가 되어라. 어떻게 생각하나?”
엽운은 이 녀석이 군자당의 인물인 줄 알았는데, 웬 용당 이라는 곳에서 온 녀석이었다.
엽운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밖으로 나갔다.
“엽운,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을 거다.”
용음생은 엽운의 뒷모습을 보며 소년들에게 길을 비키라 지시했다.
엽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얘기했다.
“무슨 당이 어쨌느니, 저는 관심 없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임무전을 떠나는 발걸음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용음생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다른 9급 임무였다면 엽운은 이렇게까지 서둘러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천라응신초를 찾아야 하는데, 뜻밖에도 장소가 두 군데밖에 없었다.
하나는 모사골이라 했는데,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다른 하나가 그의 흥미를 끌었다.
화룡굴!
이 화룡굴이란 곳은 소령이 잡혀간 시험 장소가 아닌가?
비록 수청훤의 말대로 소령이 목숨을 지킬 수 있는 보물을 가지고 있다 해도 어떤 의외의 일이 벌어질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만약 어차피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지금 9급 임무를 받았고,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화룡굴에 들어가 끝을 봐야 했다.
화룡굴은 무영봉의 금지 구역 중 하나인데, 수위가 일정한 경계에 올라야만 그곳에서 시련을 받을 수 있었고, 진화열용의 불길을 견뎌내면 체내의 불순물이 배출되어 훗날 수련이 더욱 수월해진다.
따라서 화룡굴은 아주 험악한 곳이었지만, 많은 제자들이 꿈꾸는 곳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