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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203화 (203/227)

제 203 화 귀찮아질 겁니다.

“20년 전의 약속이요? 그게 뭐죠?”

엽운은 어리둥절해하며 저도 모르게 물었다.

소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고, 수청훤과 서로 한참을 쳐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아직 알아야 할 때가 아니다. 아무튼, 오늘부터는 매순간 실력 향상을 목표로 해야 하며 절대 방심해선 안 된다.”

소호는 천천히 말했다.

소호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건 아직 엽운이 알아야 될 때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이 이상 물을 필요가 없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참, 내일부터 네가 내 기명 제자 신분이라는 사실이 무영봉에 널리 알려질 것이야. 하지만 그렇다 해서 너에게 특권이 생기는 건 아니다. 참고로 봉주의 기명 제자라 해도 그 지위는 몹시 낮다. 이제 막 진급한 모든 내문 제자들은 몇 가지 임무를 수행하여 종문을 위해 공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공헌도를 얻어 수련 자원과 장무각의 입장 자격을 얻을 수 있지.”

소호는 잠시 생각하다 당부했다.

“다른 규칙은 신분패를 받을 때 이미 알았겠지. 내문 제자들끼리는 서로 싸움을 벌일 수도 있다만 몇 가지 제약이 있다. 상대에게 중상을 입혀선 안 되며, 상대의 수위에 영향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 너는 이제 갓 들어온 신입이니 내 기명 제자라 해도 많은 사람들이 너와 겨루고싶어 할 것이니, 이 점을 잘 기억 하거라.”

소호는 아버지처럼 간곡히 타일렀다.

엽운은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마음속에 새겼다.

두 사제는 그다지 깊이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특히 소호는 수위나 선기에 대해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어차피 기명 제자일 뿐이고 엽운의 진짜 사존은 칠 장로이며 칠 장로의 수위와 식견은 소호조차 한 수 접고 들어갈 만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엽운에게 이같은 방면에서 전수를 하지 않았다.

엽운은 작별을 고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하늘에는 벌써 밝은 달이 떠올랐다.

어두운 밤의 무영봉에서는 구름 한 점 없는 새하얀 달을 볼 수 있었다.

“천검종에도 번거로운 일이 많군. 사존의 20년 전 약속이 도대체 뭔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된 이상 가능한 빨리 수위를 올려야만 하겠어.”

엽운은 오늘 하루를 되돌아봤는데, 별안간 멀지 않은 미래에 심각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긴박감이 느껴졌다.

무영봉은 매년 새로운 내문 제자를 뽑는 것이 아니었고, 기본적으로 3년에서 5년에 한 번씩 뽑았다.

신입 내문 제자들은 각자의 스승에게 폐관 수련을 받고, 다른 이들은 신입 제자 임무에 참가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공헌도를 얻고 훗날 그것으로 추가적인 수행 자원과 장무각 등지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준비하는 것이다.

무영봉의 임무전은 천촉봉과 비교하자면 몹시 화려하고 높은 건물과 초가집 한 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엽운은 임무전의 바깥 광장에 서 있었는데, 수십 장 높이의 임무전은 몹시 화려했다.

붉은 수정을 쌓아올려 만든 수 장 높이의 대문 위에는 거대한 현판이 있었고, 그 위에는 임무전이라는 금색의 세 글자가 현판에서 춤을 추는 듯 한 모양새로 쓰여 있었다.

“신입 내문 제자인가? 아마 엽운이겠지?”

흰 옷을 입은 내문 제자 한 명이 임무전에서 걸어 나와 엽운을 보더니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저 자가 엽운인가? 봉주 대인의 기명 제자라던데, 보기에는 지위가 낮아 보이지 않는군.”

다른 한 명의 백의 제자가 웃으며 말했다.

“기명 제자일 뿐인데, 지위가 높아봤자 우리랑 비교가 되겠어? 섭 사제, 너무 추켜세우지 말라고.”

“음 사형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실언을 했군요.”

흰 옷을 입은 두 제자는 서로 맞장구를 치며 엽운의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엽운은 두 사람을 보지도 못한 것처럼 앞만 보았고, 두 사람의 앞으로 다가가 그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임무전은 넓으니 우린 서 있고 싶은 곳에 서 있겠다. 네가 돌아가라.”

음 사형은 고개를 반쯤 젖히고 눈을 가늘게 떴다.

엽운은 긴말 없이 두 사람의 옆으로 돌아서 가려 했다.

별안간 음 사형이 몸을 움직여 엽운의 앞을 가로막았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고 싸늘하게 말했다.

“뭐죠? 여기도 당신들 땅입니까?”

“그렇다. 왜? 듣자하니 봉주 대인의 기명 제자라면서, 모용무흔과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느니 허풍을 떨더군. 문득 어느 정도인지 한 번 보고 싶은데 말이야.”

음 사형이 웃으며 말했다.

엽운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됐습니다. 귀찮아질 겁니다.”

“귀찮기는? 귀찮을 게 뭐가 있지? 누가 널 귀찮게 하거든 이 음호천의 이름을 대보거라. 감히 누가 널 귀찮게 하는지.”

음 사형이 웃으며 말했다.

엽운이 말했다.

“아, 제가 아니라 당신이 귀찮아질 거라는 말입니다.”

음호천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뭐가 귀찮다는 거지?”

“저에게 맞아 다리가 부러지면 침대에 누워서 수련해야 하는데, 귀찮은 일이잖아요.”

엽운이 눈에서 빛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음호천은 어안이 벙벙했다.

크게 분노하며 말했다.

“갓 들어온 신입 내문 제자 녀석이 감히 나를 희롱하다니, 죽고 싶구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팍” 하는 소리가 귀를 울렸고, 이어서 오른쪽 뺨이 얼얼해지는 것을 느꼈다.

곧 그가 입을 떡 벌렸고 이 두 개를 뱉어냈다.

“귀찮아질 거라고 했죠. 이제 믿어집니까?”

엽운은 천천히 손을 거두며 음호천의 옆으로 걸어갔다.

음호천과 섭 사제는 어리둥절했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는 것 같았다.

방금 엽운이 뭘 한 거지?

음호천의 뺨을 후려쳐 이 두개를 뽑은 것인가?

이 녀석이 내문 제자라고?

어찌 이렇게 날뛰는 것인가?

참고로 평범한 신입 내문 제자는 각별히 신중해야 하며 겸손해야 한다.

음호천의 뺨을 갈기는 것은 물론 목소리를 조금 높이는 것만으로도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죽으려고 발악을 하는구나.”

음호천은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엽운이 자신의 뺨을 걷어 올렸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엽운은 그의 포효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거기 서라!”

음호천이 크게 노하며 손에서 빛을 번쩍이자 두 손이 검게 물들었다.

엽운의 등을 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

엽운은 등 뒤에서 음산하고 서늘한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음호천의 손바닥에서 진기가 나왔는데, 어렴풋이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살짝 기울여 오른손을 아무렇게나 내질렀다.

“팍!”

두 손바닥이 허공에서 교차하고, 음호천은 당해낼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전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새카만 손바닥에 응집된 진기는 놀랍게도 그대로 흩어져버렸고, 엽운의 진기가 그의 손바닥을 타고 몸속으로 들어왔다.

순간 음호천은 그제야 엽운에 관한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고, 심지어는 소문보다 더욱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엽운의 진기는 너무도 웅장하였는데, 이 진기가 전부 그의 몸에 들어온다면 순식간에 오장육부가 갈기갈기 찢길 것이고, 수위가 모두 사라져 폐인이 될 것 이다.

음호천은 엽운이 무영봉의 규칙 따윈 신경 쓰지도 않고 자신을 이토록 매섭게 공격할 줄은 몰랐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엽 사형.”

음호천에게 더 이상 선배의 풍채는 남아있지 않았다.

곧바로 땅에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이 음호천이라는 인간이 이렇게나 나약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진기가 손바닥에 스며드는 순간 곧바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엽운은 생각만으로 손바닥에서 힘을 방출했고, 음호천은 곧장 몇 장 너머로 날아가 땅에 넘어졌다.

“엽 사형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음호천은 땅에 엎드려 몸을 벌벌 떨었다.

엽운은 한 번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떠났다.

음호천은 땅 위에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두려움과 후회가 몰려왔고, 옷은 이미 흠뻑 젖어있었다.

방금 전 용서를 빌지 않았다면 엽운의 진기는 그대로 몸에 들어와 내장을 전부 파괴했을 것이다.

만약 경맥이 조금이라도 찢어진다면 그의 수위에 막대한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엽 사형. 훗날 제가 쓸모가 있거든 분부만 내리십시오. 제가 따르겠습니다.”

음호천은 엽운이 임무전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섭 사제는 옆에서 입을 떡 벌린 채 있었다.

전광석화의 찰나, 누구도 엽운이 이 정도로 사나 울 줄은 몰랐다.

그는 하마터면 음호천의 수위를 없애버릴 뻔했다.

“음 사형, 어서 갑시다.”

그는 앞으로 두 걸음 걸어가 음호천을 부축했다.

음호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이 흠뻑 젖었다.

“거기 서!”

두 사람이 몸을 돌려 떠나려는 순간, 엽운의 목소리가 앞쪽에서 들려왔다.

음호천은 두 다리가 풀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귓가에 들려온 엽운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지옥의 심연에서 온 악마였다.

“엽 사형, 아직 분부가 더 있으십니까.”

음호천은 몸을 돌리고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엽운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내가 무영봉이 처음이라 이 임무전이라는 곳이 영 익숙치가 않네. 싸우면서 정이 든다는 말도 있는데, 너희 둘이 나랑 함께 가서 좀 알려줘라.”

음호천과 섭 사제는 서로를 쳐다보다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망설여도 엽운의 불만을 사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은 다급히 옆으로 다가가 몸을 살짝 굽혔다.

“엽 사형, 좀 전의 제 죄는 부디 용서하십시오.”

섭 사제는 엽운에게 인사를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다 지나간 일이니까 상관없다.”

엽운은 그를 한 번 쳐다보며 말했다.

“넌 이름이 뭐지?”

“섭원정 입니다. 원정군 할 때 그 원정이지요.”

섭 사제가 다급히 대답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임무전의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두 사람은 그에게 바짝 따라붙었다.

엽운이 두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자 수많은 내문 제자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지만, 좀 전의 광경을 목격한 제자들은 전부 고개를 떨구고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 했다.

음호천과 섭원정은 둘 다 연기경 6중의 수위를 가졌고, 내문 제자들 사이에서 중간은 가는 존재였는데, 놀랍게도 엽운에게 한방에 나가떨어져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저 녀석은 소문보다 더 흉악한 녀석이 분명하다.

임무전은 몹시 호화로웠다.

몇 장 높이의 대문을 지나자, 용의 모습이 조각 된 일곱 개에서 여덟 개의 기둥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것이 보였는데, 하나같이 몇 사람이 팔을 벌리고 애워 쌀 굵기를 가졌다.

기둥 앞에는 일고여덟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들의 시선은 모두 앞쪽의 옥벽을 향했다.

엽운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옥벽 위에는 무수히 많은 금색 글자가 빽빽히 쓰여있었다.

“엽 사형, 이것은 임무옥벽입니다. 매일 몇 가지 임무를 발표하는데, 높은 것부터 낮은 것 까지 각각 포상이 다릅니다.”

음호천은 그를 바라보며 다급히 말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갔다.

옥벽 위의 금색 글자가 끊임없이 반짝였는데, 맨 위에는 문장 한 줄이 쓰여 있었다.

9급 임무: 천라응신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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