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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201화 (201/227)

제 201 화 다시 만난 수청훤

“엽운, 우린 이제 막 무영봉에 들어왔으니 너무 충동적으로 굴면 안돼. 군자당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언젠가는 맞닥뜨리게 될 테니까 서두를 필요 없다고.”

단진풍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

“맞아요 엽 사형. 어찌 됐든 무영봉에 적응하는 게 먼저입니다.”

여명홍 역시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은 웃으며 말했다.

“너희 생각이 틀렸어. 내가 그들을 찾아가 귀찮은 일을 만들겠다는 뜻이 아니야. 내가 하고싶은 말은 그저 무영봉에 오자마자 군자당과 접점이 생겼다 해서 두려워 할 필요 없다는 거야. 놈들이 감히 우릴 건드리면 두들겨 패서 돌려보내면 돼.”

단징풍과 여명홍은 엽운이 주동적으로 나서려는 줄 알았기에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마음을 놓았다.

“그럼 됐어. 우린 내일 스승님께 가서 수행을 하고 세 달 뒤에 돌아올 거니까 그동안 조심하라고.”

단진풍은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다가와 엽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엽운은 빙긋 웃으며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세 형제는 세 달 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오늘 엽운의 집 마당에서 한 바탕 거하게 취했다.

밤이 지나고 동쪽의 하늘에서 아침 햇살이 떠오를 때 단진풍과 여명홍은 몸을 일으키며 작별을 고했다.

그들은 시간을 조금도 지체시키고 싶지 않았다.

엽운 혼자 무영봉에 남아서 수행을 하게 되었으니, 그들이 최대한 빨리 시험을 통과해야만 세 달 뒤에 돌아와서 엽운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취왕, 지금 네 수위로 축기경의 어느 단계까지 쓰러뜨릴 수 있지?”

엽운은 두 사람을 보내고 몸을 돌려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애송이, 이제 와서 두려운 거냐? 방금 전 까지 계속 허풍을 떨었잖아. 뭐 상대가 축기경의 고수여도 두렵지 않다더니.”

신우취왕이 그를 놀리듯 말했다.

엽운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당연히 두렵지 않아. 축기경 고수가 찾아온다 한들 규칙을 어기고 나를 죽이겠어? 게다가 나는 소호 대인의 기명 제자 신분이라는 건 놈들도 이미 알고 있을 거야. 내가 걱정하는 건 누군가 널 발견하는 거야. 너는 천검종 소속도 아니니까 어느 고수가 너를 노린다면 귀찮아질 거라고.”

신우취왕은 별안간 몸을 일으키더니 눈알을 몇 번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축기경 고수는 개뿔, 축기경 3중 이상의 강자가 오지 않는다면야 뭐, 그 이상이면 이기지는 못해도 도망칠 수는 있지. 속도를 말하자면 누가 나와 비견될 수 있겠어?”

엽운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걱정할게 없겠네. 넌 집에 있어. 나는 가서 봉주 대인을 좀 뵙고 올테니.”

“네 사존인가.”

신우취왕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난 기명 제자일 뿐이야. 정식 제자가 되어야 사존이라 부를 수 있지.”

엽운은 집을 나서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영봉의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가 기억하기로 소호와 수청원이 있는 곳은 정상 근처에 위치한 작은 건물이었다.

새벽 무렵의 무영봉에서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없었다.

누군가를 맞닥뜨려도 그들은 엽운을 한 번 쳐다보고 황급히 도망갔다.

엽운도 개의치 않았다.

내문 제자가 되었고 또 소호의 기명 제자가 되었으니 무영봉 안에서는 대부분의 장소에 드나들 수 있으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반 주향의 시간 만에 그는 무영봉의 정상에 올랐다.

엽운은 꼭대기에 서서 불어오는 맑은 산바람을 맞으며 숨을 들이마셨다.

속이 후련해졌다.

동방의 지평선 위에서 붉은 원반이 반 쯤 모습을 드러내더니 천천히 떠올랐다.

아침 햇살이 산뜻하고 아름다운 담요처럼 먼 곳으로부터 다가와 대지를 뒤덮었고, 멀리서 보니 모든 것이 붉게 타올랐다.

엽운은 대자연의 경관을 잠시 감상하다가 고개를 돌려 소호가 사는 건물로 갔다.

“멈춰라. 거기 누구냐.”

별안간 한 사람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렸는데,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엽운은 자리에 멈춰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었다.

“넌 누구냐? 감히 금지된 구역에 쳐들어오다니.”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곧 검은 옷을 입은 제자 두 명이 공중에서 내려와 엽운의 앞에 떨어졌다.

엽운이 고개를 들어 보니, 두 사람은 연기경 6중의 수위에 오른 이들이었는데, 이 정도 실력을 가지고도 경비를 서고 있었다.

“엽운이 두 사형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뒷산에 사존을 뵈러 왔습니다.”

엽운이 손으로 주먹을 감쌌다.

“사존? 누가 네 사존인데?”

왼쪽에 있던 흑포 제자가 냉랭하게 소리쳤다.

“엽운? 네가 바로 엽운인가? 모용무흔과 수십 합을 겨루고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는 그 엽운?”

다른 한 명의 제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감탄했다.

엽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두 사형께서는 뒷산을 지키는 수위 제자들이시지요?”

“형 사제, 저 자를 아는가?”

흑포 제자가 궁금한 듯 물었다.

오른편에 선 제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천촉봉의 내문 제자 시험에 갑자기 모용무흔이 나타났고, 두 사람이 싸움을 벌여 수십 합을 겨뤘다고 합니다. 결국 모용무흔이 무정천검까지 시전 했지만 여전히 엽 사제를 쓰러뜨리지 못했으며, 두 사람은 승부를 내지 못하고 훗날 다시 겨루기로 약속했다 합니다.”

“무정천검 마저 쓰러뜨리지 못했다고? 그럴리가, 무정천검은 연기경 7중의 사형들도 막아내지 못할 위력을 가졌는데, 이 애송이는 연기경 1중에 지나지 않잖아. 형곤 네가 누군가에게 속았겠지.”

흑포 제자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누군가가 직접 목격한 일이니, 틀림없습니다.”

형곤은 고개를 젓더니 몸을 돌려 엽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엽운이라면, 신분패를 꺼내봐라.”

엽운은 긴말 없이 신분패를 건내주었다.

두 사람은 이를 한 번 보더니 서로를 쳐다봤는데, 눈에는 충격이 서려있었다.

“사존을 뵈러 왔다고 했었지. 내가 듣기로는 배사대전에서 봉주 대인이 너를 제자로 삼으려 했거늘 천검전령으로 중단 되었다는데, 결국 봉주 대인께서 널 제자로 들이셨단 말이야?”

형곤은 신분패를 엽운에게 돌려주며 궁금한 듯 물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존께서는 저를 그저 기명 제자로 들이셨을 뿐입니다. 정식 제자가 되려면 아직 수많은 시험을 거쳐야겠죠.”

다른 이가 나를 한 척 만큼 존중한다면, 나는 그에게 한 장 만큼의 예우를 돌려준다.

이것이 바로 엽운의 성격이다.

눈앞의 이 형곤이라는 사람은 도도하게 굴며 사형 노릇을 하거나 하지 않았고 오히려 엽운에게 예의를 차렸다.

그는 엽운에 대해서 무슨 소문을 들었던 엽운은 소호의 기명 제자가 되었는데, 그는 이를 알고 나서도 똑같은 태도를 보였고, 이는 엽운으로 하여금 똑같이 예의를 차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모용무흔과 운소처럼 오만하게 날뛰는 녀석들이나 미련하게 일을 벌이는 녀석들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엽 사제, 들어오시게.”

형곤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부러운 듯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비록 기명 제자는 높은 지위라 할 수 없었지만, 누구의 기명 제자에 따라 달랐는데, 평범한 장로의 기명 제자라면 부러움이나 질투를 살 수 없었다.

하지만 소호는 무영봉주이고, 소문에 의하면 유력한 차기 종주후보였으니, 그의 기명 제자가 된다면 신분이 달라지게 된다.

엽운은 나중에도 소호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 될 수는 없었지만, 기명 제자라는 신분 만으로도 수많은 내문 제자들 앞에서 체면을 세울 수 있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향해 인사를 올리고 뒷산을 향해 걸어갔다.

형곤과 다른 흑포 제자는 떠나는 엽운을 바라보았는데, 눈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주변의 공기가 조금씩 요동치더니 두 사람은 허공에 숨기라도 한 듯 사라져버렸다.

소호의 집을 다시 방문한 엽운은 정원 바깥에서 안쪽의 건물을 바라보았는데, 마음속에서 별안간 감개가 느껴졌다.

소령이 그를 데리고 무영봉에 왔을 때 그는 수청훤과 소호를 만났다.

그리고 소호는 그를 제자로 삼으려 했고, 엽운은 자신이 지닌 비밀을 가능한 숨기기 위해 이를 완곡히 거절했다.

결국 돌고 돌아 소호의 제자가 될 줄은 몰랐다.

비록 기명 제자이긴 했지만, 칠 장로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엽운이 무영봉의 10대 제자가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밖에 서서 뭐하니. 왔으면 어서 들어오거라.”

자연의 소리처럼 우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건물 안에서 들려왔다.

멍하니 서 있던 엽운은 곧바로 큰 소리로 외쳤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사존을 뵈러 왔습니다.”

“삐걱!”

나무문이 살며시 열리고, 수청훤이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자태는 몹시 아름다웠고, 얼굴은 수려했다.

수청훤이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자 그 어떤 빛도 뿜어져 나오지 않았는데 문이 열렸다.

엽운은 마당에 발을 들이자마자 재빨리 수청원의 앞으로 다가가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청훤 아주머니께 인사드립니다.”

“일어나렴.”

수청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름다운 눈으로 엽운을 훑었다.

그녀는 고운 얼굴에 웃음을 머금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만에 수위가 연기경 1중 후기에 달했을 줄은 몰랐네. 게다가 체내의 진기가 더욱 정련되어 한 방울 한 방울에 힘이 가득하구나.”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미 수청훤에게 상대방의 수위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세세하게 알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마치 엽운의 몸속에 들어가 살펴보고 나온 것 같았다.

선마지심을 제외한 모든 것은 그녀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아주머니, 용모만 여전하신 게 아니었군요. 안목은 더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엽운은 빙긋 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능청스럽긴, 좋은 건 안 배우고 아첨부터 배웠구나.”

수청훤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름만 번지르르한 네 사존을 보러 온 거구나. 그 이는 어제 돌아오지 않았단다. 일을 하나 처리하러 갔는데, 좀 늦게 돌아올 거야. 이왕 온 김에 그 이가 돌아올 때 까지 여기 남아서 나랑 얘기나 나누자꾸나.”

엽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수청훤의 앞에 있자면 온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을 짓누르던 무언가가 전부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더할 나위 없이 좋겠네요. 소령의 얘기를 들어보니 아주머니의 요리 솜씨가 일품이라 하던데. 오늘 꼭 맛봐야겠어요.”

수청훤을 대할 때 엽운은 오히려 자연스러워졌다.

“그 애도 참 너한테 별 말을 다 하는구나. 좋아. 그럼 맛보게 해줄게.”

수청훤은 굳이 겸손 떨지 않고 웃음을 지었다.

엽운은 그제야 물었다.

“아주머니, 소령은요?”

수청원은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왜 안 물어보나 했는데, 역시 못 참겠지?”

엽운은 저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소령은 네 사존의 명으로 수행을 하러 화룡굴로 보내졌어!”

수청훤은 별안간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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