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200화 (200/227)

제 200 화 군자당

“내 친구를 짐승이라고 부르는게 너무 짜증난다고!”

엽운은 차가운 표정으로 걸어나갔다.

다섯 명의 제자는 운소를 일으켜 세우며 두려운 눈빛으로 엽운을 쳐다봤다.

눈앞의 이 소년은 분명 고작 연기경 1중의 수위이며, 연기경 4중에서 5중 쯤 되는 자신들과는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 방에 연기경 5중의 운소를 날려버릴 수 있는 것인가?

운소의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엽운을 바라봤다.

마음속의 분노는 이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엽운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부축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 쯤 바닥에 엎어졌을지도 모른다.

“오지 마라. 나는 군자당의 사람이다. 군자당에 대해서는 들어봤겠지.”

운소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엽운을 바라봤다.

“그래, 우리는 군자당 소속이다. 군자당의 우두머리는 양 사형 이라고. 네가 운소를 건드렸다는 걸 그분이 알게 되면 앞으로 무영봉에서 지내기는 힘들 거다.”

제자 한 명이 두려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는 강한 척을 했지만 속으론 겁에 질려있었다.

“양 사형? 그 호칭은 몇 년 전 연기경 정점에 달했다는 양화룡을 말하는 건가? 들어본 적이 있는데 말이야.”

엽운은 웃음을 지었다.

군자당은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양화룡이라는 이름은 여러 번 들어본 이름이었다.

“양 사형의 이름을 알면서 감히 그런 소리를 하다니.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구나.”

정신을 차린 운소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엽운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를 보다 손을 한 번 휘두르자 빛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탁!”

맑은 소리가 울렸고, 운소의 얼굴에 다섯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입에서 치아 몇개가 선혈과 함께 뿜어져 나왔다.

“양화룡이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지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너희 몇 사람만 봐도 양화룡이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겠군. 운이 좋게도 오늘 여기는 무영봉이니 너희를 죽이지는 않겠다. 만약 밖에서 만났다면 너희 머저리들은 진작에 몇 번은 죽었을 거다.”

엽운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운소를 포함한 여섯 명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엽운을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

“꺼져라!”

엽운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운소 일행은 사면이라도 받은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다닥 도망갔다.

“애송이, 천검종에 들어온 이후, 밖에 나가본 적이 있나?”

엽운의 옆에 있던 신우취왕이 궁금한 듯 물었다.

엽운은 고개를 반쯤 젖힌 채 그를 보며 말했다.

“없는데.”

“그럼 방금 전엔 그냥 큰소리를 쳐 놈들을 속인 것이군. 난 또 네가 정말 나갔다 온 줄 알았다.”

신우취왕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너랑 무슨 상관이야. 계집애처럼 궁시렁거리지 말라고.”

엽운은 눈을 꿈뻑이며 발을 움직여 떠나버렸다.

사람 하나와 새 한 마리가 무영봉을 거닐 자 제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들을 쳐다봤다.

그들의 눈에서는 경외가 느껴졌고, 감히 말도 걸지 못하는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 엽운은 무영봉에 있는 자신의 집에 도착했는데, 대문을 열기도 전에 두 사람이 옆에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엽운 이 자식, 드디어 돌아왔구나. 사나흘 동안 나타나질 않아서 연을 끊자는 줄 알았잖아.”

단진풍이 웃으며 걸어왔다.

그의 웃음소리는 몹시 호탕했다.

“네 수위는 나보다 높고, 난 아직 쫓아가지도 못했는데 무슨 연을 끊겠어.”

엽운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넌 내 경계를 못 따라 올거다. 난 머지않아 2중을 넘어 3중에 도달할거거든. 보아하니 네 녀석은 2중을 돌파하려면 한참 멀은 것 같은데.”

단진풍은 득의양양하게 대답하며 엽운을 향해 걸어왔다.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끼리 한 판 붙어볼까?”

단진풍은 뱀에 물리기라도 한 듯 펄쩍 뛰며 말했다.

“나처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무슨 싸움을 한다고 그래. 한 판 붙고 싶거든 명홍을 찾아가라고. 이 녀석은 어제 막 수위가 연기경 2중을 돌파해서 누구와든 붙어보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

그제야 웃음을 머금고 옆에 서 있던 여명홍에게 눈길을 돌렸다.

조용히 자리에 서 있었는데, 수위가 향상됨에 따라 더욱 덤덤해진 것 같았다.

“엽 사형. 돌아오셨군요!”

여병홍은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저 빙긋 웃어보였다.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말했다.

“축하해 여 사제. 드디어 연기경 2중을 돌파했구나. 보아하니 마음도 많이 차분해진 것 같으니 훗날 수련에 큰 도움이 되겠어.”

“엽 사형의 지적과 관심, 감사드립니다. 명심할게요.”

여명홍은 겸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처음에 엽운은 여명홍의 공손한 태도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천천히 적응되었기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비록 여명홍과 단진풍, 그리고 자신은 함께 생사를 넘나든 동료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다 생각했지만 말이다.

“어이, 취왕. 안색이 좋아 보이는데.”

단진풍은 엽운의 뒤에 있던 신우취왕에게 인사를 했다.

신우취왕은 콧방귀를 뀌더니 하늘을 바라보며 무시하는 시늉을 했다.

“취왕. 이미 친한 사람들끼리인데, 이렇게나 체면을 안 세워주다니, 너무하네.”

단진풍은 머리를 긁적이고 코를 만지작거렸다.

신우취왕은 눈을 한바퀴 굴리더니 그를 쏘아보았다.

“뭐야, 나랑도 싸우고싶은 거냐?”

단진풍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에이 무슨 소리야. 취왕은 영수의 왕인데 내가 어찌 상대가 되겠어.”

신우취왕은 또 다시 콧방귀를 뀌고 하늘을 쳐다봤다.

여명홍과 엽운은 옆에서 이를 바라보다 웃음을 지었다.

엽운이 대문을 열었고, 여명홍과 단진풍이 그를 따라 들어갔다.

세 사람과 새 한 마리는 정원의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엽운, 너 며칠 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야? 천신봉에서는 어떻게 된 거고?”

단진풍은 자리에 앉으며 참지 못하고 다급하게 질문했다.

“단 사형, 걱정하지 마세요. 엽 사형은 이미 돌아왔잖아요. 놀라긴 했지만 위험한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여명홍이 담담히 말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위험한 일은 없었지. 그냥 변화가 조금 생겼을 뿐.”

“무슨 변화?”

단진풍이 다급히 물었다.

“원래 난 분명 소호 대인의 문하에 들어가 그의 제자가 되려 했는데, 왜인지 고위층에서 나에 대해 안좋게 생각하시는 바람에 소호 대인이 나를 제자로 들이지 못할 뻔 했어. 그런데 소호 대인께서 끝끝내 설득하신 결과, 난 대인의 기명 제자가 되었지.”

엽운이 천천히 말했다.

칠 장로가 자신을 제자로 들인 일은 당분간 두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고작 기명 제자란 말이냐. 소호 대인은 너를 제자로 들이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더니 결국 이런 꼴이군.”

단진풍은 약간 실망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기명 제자라도 상관없어요. 잊으셨나요 단 사형? 우리도 기명 제자잖아요. 수위가 올라가기만 한다면 자연히 정식 제자가 되겠지요.”

여명홍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담담히 말했다.

“그거랑은 다르지. 만약 그때 엽운이 무영봉에서 소호 대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지금 쯤 그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 되었겠지. 지금은 큰 이변이 없는 한 그 시간이 한참 늦춰진 셈이잖아. 그런데 고위층에서 간섭해온다면 10대 제자가 되기란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어. 무영봉의 10대 제자라니까. 훗날 봉주의 자리도 10대 제자 중 한 사람에게 물려줄지도 모르잖아.”

단진풍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여명홍은 잠시 멍해졌다.

그는 이런 것 까지 고려하지는 못했는지 결국 저도 모르게 표정에 아쉬움이 드러났다.

엽운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10대 제자니 뭐니 하는 건 관심 없어. 설마 우리 세 형제가 백날 천날 천검종에서만 수행하겠어? 우리의 뜻은 이곳에 없어. 저 머나먼 대진제국과 교월왕조가 우릴 기다리고 있잖아.”

단진풍과 여명홍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별안간 몸을 일으켰다.

그들의 눈빛은 엽운이 바라보던 곳을 향했다.

허공을 꿰뚫고 대진제국을 지나 교월왕조가 눈에 보였다.

“세 놈이 하루 종일 허풍만 떨고 앉아있네. 천검종에서 나가본 적도 없는 것들이 감히 대진제국을 노리다니.”

세 사람의 마음속에 감개와 동경이 가득 차오를 무렵, 신우취왕의 때 아닌 말소리가 울려퍼졌다.

엽운은 화를 내지도 않았고, 그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미래를 꿈꾸지도 못한다면 그게 무슨 수선이겠어. 취왕 너도 지금에 안주했다간 령화에 성공하지 못할거야.”

신우취왕은 어안이 벙벙했다.

엽운의 말은 마음속에 와 닿았다.

그렇다. 만약 꿈을 꾸지 않았다면, 그리고 버텨내지 않았다면 어찌 매번 령화겁의 실패를 겪을 때 마다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겠는가?

“흥, 꿈도 크군. 수행은 차근차근 해야 하는 법이다. 대진제국에 가고 싶거든 축기경에 오르고 다시 얘기 하거라.”

콧방귀를 뀌며 격앙 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땅 위에 엎드렸다.

엽운은 아랑곳 하지 않고 몸을 들려 얘기했다.

“단 사형, 너희들은 3일 동안 무영봉에 대해서 좀 알아 낸게 있어? 아 맞다. 방금 전에 겁없는 머저리들을 몇 명 만났는데, 자기가 군자당 양화룡의 부하라고 하더라고. 군자당은 무영봉에서 어떤 위치이지?”

“군자당의 양화룡? 전에 종응의 얘기를 들었겠지만, 듣자하니 그 녀석도 군자당 소속이라고 하더군. 나중에 흑포 제자 한 명에게 얘기를 들어보니까 진화성이 양화룡과 제법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했는데 아마 그 사람이 맞겠지.”

단진풍은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천천히 이야기했다.

“아마 그럴거야. 다른 소식은 없어?”

엽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군자당에 대한 이야기는 요 며칠 동안 간간히 들려왔습니다. 아무래도 내문에서는 제법 괜찮은 세력인 것 같아요. 무영봉은 외문과는 달리 내문 제자들끼리 편가르기가 심한 것 같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크고 작은 수십 개의 세력이 있는데 군자당이 그 중 제일이라 하더군요. 자칭 제일인 것 같긴 합니다만.”

여명홍이 이어서 말했다.

그는 늘 이 같은 소식에 묵묵히 귀를 기울이곤 했다.

“내문 제일이라, 입심은 좋네. 우리 세 사람은 나설 필요도 없고, 취왕만 나서도 이 녀석들은 전부 먼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단진풍은 조롱이 섞인 목소리로 거드름을 피웠다.

옆에 누워있던 신우취왕은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콧방귀를 뀌었다.

엽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위가 축기경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제일이니 뭐니 하는 소리는 다 허풍일 뿐이야. 그런데 이번 시험에 대해서는 소문이 자자하니 분명 나중에 윗선에서 누군가가 찾아 올거야. 조심들 하라고.”

“그럴 필요 없어요. 저희 두 사람은 내일이면 스승님에게 가서 수행을 시작할거니까요. 아마 세 달 쯤 지나서야 돌아오겠죠. 사형도 가능하면 봉주 대인에게 가서 수련하고 나중에 돌아오도록 하세요.”

여명홍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말했다.

엽운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도망치라는 거야? 난 녀석들을 좀 만나보고 싶은데!”

신우취왕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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