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199화 (199/227)

제 199 화 무영봉으로 되돌아가다

칠 장로의 손에서 다시 한 번 검이 나타났지만 좀 전의 웅장한 기세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검을 내질렀는데, 구름은 옅고 바람은 가벼웠으며, 조금의 바람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이해했느냐?”

엽운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한참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해했습니다.”

“그럼 됐다. 이해했으면 가거라. 별 일이 없다면 날 찾지 말고. 무영봉에서도 내 제자라 소문 낼 필요 없다. 기억하거라, 지금부터 너는 소호의 기명 제자이다.”

칠 장로는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엽운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소호 대인의 기명 제자라고요?”

“그래. 너는 지금부터 소호의 기명 제자다. 이렇게 하면 네가 무영봉에서 다니기 좀 더 수월하겠지. 그런데 기명 제자는 진짜 제자와 차이가 크다. 지위도 그렇고 사람들의 대우도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너도 신분이 하나 필요하고, 소호도 그 명분으로 널 십살진에 끼워 넣어야 하니까.”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가거라!”

칠 장로는 손을 내저었다.

형형한 두 눈이 혼탁해지기 시작했다.

엽운은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올리고 몸을 돌려 떠났다.

“기다려라!”

칠 장로가 별안간 불러세웠다.

“스승님, 분부가 아직 있는 겁니까?”

엽운은 어리둥절해하며 호기심에 물었다.

“이 영전에는 장풍문이라는 공간 진법이 배치되어 있는데, 무영봉의 모든 곳으로 연결되지. 이쪽으로 가지 말고 저리로 가거라. 그럼 바로 무영봉으로 갈 수 있을게다.”

칠 장로는 앞쪽의 멀지 않은 곳을 가리켰다.

보일 듯 말 듯한 안개가 피어오르는 그 곳은 영전의 또 다른 출구였다.

엽운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제자가 내문 제자 자격시험 때 요수를 한 마리 길들였는데, 놈을 천촉봉에 두고 왔습니다. 가서 데리고 와야 할 것 같네요.”

“오! 요수를 길들였느냐? 9급 요수인가?”

칠 장로는 이 일을 몰랐고, 궁금한 듯 물었다.

“아마 그럴겁니다. 취봉의 독취왕입니다. 신우취왕이지요.”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칠 장로는 어리중절해하더니 흥미롭다는 듯 보며 말했다.

“신우취왕? 그 녀석은 9급의 정점에 있는 요수지. 수백 년 전부터 취봉에 있던 녀석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줄곧 영수로 승급하지 못하더군. 녀석의 자질과 잠재력으로 영수가 된다면 막을 방법이 없어질 게다. 영수 중에서도 특출 난 존재가 되겠지.”

엽운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그런데, 녀석은 이미 그렇게 됐습니다.”

칠 장로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엽운을 바라봤다.

“애송이. 내가 널 얕봤구나. 하하하!”

칠 장로는 하늘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곤 빠르게 움직여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엽운은 칠 장로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곧 몸을 돌려 천촉봉으로 향하는 출구를 향해 달려갔다.

천촉봉의 마당.

엽운 앞에는 온 몸이 금색으로 뒤덮힌 거대한 새가 조용히 마당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애송이, 돌아왔구나.”

신우취왕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동안 그는 줄곧 엽운의 집에 머물러 있었는데, 엽운은 그에게 수련을 위한 천개의 상품영석을 주고 갔고, 그 틈에 경계를 견고히 굳히고 몸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었다.

“수련은 어떘어? 영석은 전부 쓴 건가?”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신우취왕은 눈도 뜨지 않은 채 여전히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 쓰지 않았다면 여기서 자고 있겠나? 내 경계는 이제 완벽히 안정되었으니 더 이상 이렇게 수련할 필요가 없다.”

“그렇군. 그럼 준비해. 나랑 같이 무영봉으로 갈거니까.”

신우취왕은 눈을 반 정도 뜨고 말했다.

“무영봉에 가서 뭘 하려고? 듣자하니 거기에는 고수도 많고 축기경 노인네들도 많다는데, 죽으러 가는 거냐?”

“난 이미 무영봉의 내문 제자니까 당연히 무영봉에서 수행해야지. 취왕 너는 내 수행원이니까 당연히 나랑 같이 가는 거고.”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누가 네 수행원이야? 나는 네 친구다. 아니, 경호원이지. 기억해라. 경호원이다.”

신우취왕은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연기경 1중의 제자가 자신을 수행원이라 부르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 그래, 경호원, 친구. 취왕, 이제 나와 함께 무영봉에 갈거지?”

엽운은 퉁명스럽게 노려보다 이어서 말했다.

신우취왕은 두 날개를 매섭게 두어 번 펄럭이며 말했다.

“그럼 꾸물거리지 말고 가자고. 여기서 무영봉 까지는 천 리가 넘으니까 전송진을 타고 가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게 될 거다.”

엽운은 훌쩍 뛰어올라 신우취왕에 등에 올라타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먼저 영전으로 가자. 거긴 무영봉으로 갈 수 있는 출구가 있으니까.”

신우취왕은 울부짖으며 날아올라 영전으로 향했다.

신우취왕의 속도는 원래 몹시 빨랐는데, 영수가 되고 나서 그 속도는 가히 열 배 이상 빨라졌고, 엽운의 집에서 영전까지 수 십리 정도의 거리를 단숨에 날아갔다.

“누구냐. 멈춰라.”

영전의 바깥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흑포 제자가 소리쳤다.

그는 엽운으과 신우취왕을 막으려 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엽운이 그의 앞에 멈춰섰고, 얼굴을 드러냈다.

순간 경비 제자는 공손해졌고, 그의 표정에서는 경외가 느껴졌다.

“엽운 사형이셨군요. 들어오시지요.”

다른 한 명의 흑포 제자가 재빨리 반응하며 공손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요 며칠 동안 엽운의 행적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게다가 소문이 조금 부풀려진 까닭에 지금의 엽운은 천촉봉의 제자들에게 이미 천검종에서 가장 걸출한 인물이었고, 20세가 되기도 가볍게 질곡을 끊어내고 축기경에 도달할 인물이라고 여겨졌다.

게다가 엽운은 칠 장로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아 보였고, 얼마 전 그들은 엽운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던 칠 장로의 말을 들었고, 그가 엽운에게 오고 싶으면 언제든 오라고 이야기한 것도 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엽운에게 바로 길을 열어준 것이다.

엽운이 공수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사형.”

두 명의 흑포 제자들은 정신없이 답례를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엽운은 그들과 오래 이야기하지 않았고, 신우취왕과 함께 영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칠 장로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개의치 않고 신우취왕과 함께 다른 출구로 나갔다.

영전에 배치된 공간 진법은 정말 신기했다.

엽운은 영전에 들어와 이곳을 떠나기 까지 2,3리 정도 걸었는데, 영전을 벗어나는 순간 이미 무영봉에 도착해 있었다.

무영봉은 이름대로 구름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어떤 때는 눈으로 볼 수 있었지만 어떤 때는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엽운은 온 몸이 금색으로 뒤덮인 신우취왕을 데리고 영전을 떠나 무영봉에 도착했다.

무영봉과 천촉봉은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는데, 천촉봉에서는 각 외문 제자들이 수련 자원을 얻기 위해 가능한 빨리 수위를 올렸고, 모두들 바삐 수행을 하며 지냈다.

길을 지나다보면 게으른 이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모두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다급히 움직이거나 열심히 수행에 몰두했다.

하지만 무영봉은 달랐다.

기본적으로 무영봉에 올 수 있는 이들은 모두 내문 제자이며, 이따금씩 잡역 제자들과 외문 제자들이 이곳에 와 내문 제자들이 꺼려하는 주변 청소 등을 하곤 했다.

때문에 엽운은 영전을 벗어나는 순간, 청석판이 깔린 길 위에서 삼삼오오 모여 보기 좋게 돌아다니는 제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목적도 없어보였다.

“어이, 영전에서 나온 저 녀석 좀 봐. 저렇게 커다란 새를 데리고 다니네. 온 몸이 금색이라 멋지군.”

내문 제자 한명이 엽운과 신우취왕을 보고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저 녀석은 누구지? 고작 연기경 1중의 수위로 저렇게 사나운 요수를 데리고 다니다니 안 되겠다. 저 녀석을 두들겨패고 저 새를 뺏어와야겠어.”

중간에 서 있던 청년이 신우취왕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

“자, 기다리거라 운소. 우리가 가서 저 짐승을 잡아 올테니.”

다섯 명의 제자들은 곧바로 달려 손에서 빛을 번쩍이며 신우취왕을 잡으려했다.

“어이, 비켜봐라 애송이. 이 녀석이 네 새냐?”

앞장 선 연기경 4중의 수위를 가진 제자가 엽운을 보더니 고함을 질렀다.

엽운은 빙긋 웃음을 짓더니 손을 들어 신우취왕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보면 모르겠냐. 이 새는 내가 기르는 녀석이야. 나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몰라.”

신우취왕이 반쯤 감긴 두 눈을 부릅떴다.

청색의 빛이 눈에서 뿜어져 나오다 이내 사라졌다.

“네가 키우는 녀석이었군. 그럼 값을 불러라. 내가 살테니.”

운소라고 불리운 청년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그래, 값을 불러봐라. 너 자식 오늘 한 몫 잡았구나. 우리 운소가 눈독들일만 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니. 안심해라. 운소는 남이 밑지는 거래를 한 적이 없거든.”

제자 한 명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운소는 신용도 좋고 마음씨도 좋다니까.”

“애송이, 복이 있구나. 운소가 네가 기르는 짐승을 마음에 들어 하잖아.”

흰 도포를 입은 다른 한 명의 제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엽운이 손을 뻗는 것이 보였고, 신우취왕이 별안간 날개를 펄럭였다.

곧 실체가 존재하는 공격이 하늘에서 떨어져 운소에게 적중했다.

운소는 오! 하는 소리와 함께 피를 뿜었다.

순간 신우취왕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깨달았다.

“네가 이 녀석을 키웠을 리가 없어. 분명 큰 세력에서 어렸을 때부터 기른 놈이겠지.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사나 울 수가 없다고.”

운소는 몸을 일으켜 반 쯤 꿇어앉은 상태로 입에서 피를 흘렸다.

“내가 기른 게 아니라면? 그럼 누구일까? 너일까?”

엽운은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며 조롱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지었다.

“뭘 하려는 거야. 저리가. 내가 누군지 알아? 나는 군자당 사람이다. 감히 날 건드리면 넌 죽은 목숨이다.”

운소는 엽운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엽운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군자당 사람이구나. 너무 무섭네.”

엽운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을 움직여 운소의 뺨을 걷어 올렸고, 그는 나가떨어져 버렸다.

“내 친구를 짐승이라고 부르는 게 너무 짜증난다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