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6 화 가르침
엽운은 소호 일행이 남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칠 장로의 번개같은 속도 속에서 그는 옆쪽의 산봉우리와 구름밖에는 볼 수 없었고, 빠르게 움직여 순식간에 엄청난 거리를 날아왔다.
대략 한 주향의 시간을 날았는데, 칠 장로가 별안간 엽운을 데리고 공중에 멈춰 섰고, 그대로 내려와 영전에 떨어졌다.
엽운은 이 정도로 빠른 속도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한 주향의 시간 만에 그들은 수백 리, 아니 천 리를 날아왔다.
“사부님, 천신봉에서 영전까지는 분명 꽤 멀지 않습니까. 어째서 전송진을 쓰지 않으시는 겁니까?”
엽운은 오는 길에 바람을 잔뜩 맞아 꼴이 말이 아니었다.
칠 장로는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말했다.
“다 눈속임일 뿐이다.”
“뭐라고요?”
엽운은 어리둥절해 저도 모르게 물었다.
“내 말은, 그 놈의 전송진이니 뭐니 하는 소리는 다 속임수란 말이다. 사실 천검종의 봉우리는 서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기껏해야 천 리가 안 되겠지. 연기경의 제자라면 아무리 못해도 천신봉에서 여기까지 반나절이면 올 거다. 그 녀석들이 전송진 따위를 만들어 낸 것은 각 봉우리를 오가는 통로를 숨기기 위해서야. 길을 아는 사람의 수가 적을수록 좋으니까 말이다.”
칠 장로가 천천히 말했다.
엽운은 어안이 벙벙해져 물었다.
“왜죠?”
“네가 천검종에 온지도 삼사년 쯤 됐을텐데, 혹시 천검종의 진짜 산문은 본 적이 있느냐?”
엽운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너 뿐만 아니라 입문한지 칠팔년 쯤 된 제자들도 천검종의 산문과 각 봉우리의 통로를 본 적이 없을 거다.”
“왜 그런 것이죠?”
엽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안전! 소문에 의해서는 안전을 위해서라고 하더군. 천검종이 더욱 안전하게 생존하기 위해, 20년 전 부터 저 녀석들은 산문을 숨기고 봉우리 간의 통로를 폐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단거리 전송진을 설치한 것은 모두가 산문과 각 봉우리의 통로를 찾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지. 이렇게 하면 내부에 다른 종문에서 잠입해 오거나 강대한 세력이 문을 두들겨도 안으로 들어오는 통로를 절대 찾을 수 없을테니까.”
“하지만 도처에 전송진이 있으니 더 빨리 들어올 수 있지 않습니까.”
엽운은 저도 모르게 질문했다.
“내가 묻겠다. 통로를 봉쇄하는 것이 쉬운가, 아니면 전송진을 하나 파괴하는 것이 쉬운가?”
칠 장로는 그를 보더니 대답도 하기 전에 말했다.
“모두에게 익숙한 길을 봉쇄한다는 것은 몹시 곤란한 일이다. 하지만 전송진의 경우 어느 한 곳만 파손되어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진입이 원천 차단된다. 그럼 강적이 쳐들어왔을 때 종문은 그에 대응하거나 이동할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지.”
엽운은 문득 모든 것을 깨달았다.
줄곧 천검종에는 전송진이 조금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 모든 것이 금단 고수와 축기경 정점에 오른 강자들이 배치해 놓은 것인 줄로만 알았고 이 같은 사정이 있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전송진을 배치하려면 공간진법에 대한 심오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금단경의 수사쯤은 되어야 공간 진법을 깨우칠 수 있고 축기경 정점에 달해도 그저 조금 아는 정도라고 하는데, 이렇게 많은 전송진을 한두 사람의 손으로 만들진 않았을 테고, 우리 천검종에 수십 년 동안 그렇게나 많은 금단 수사와 축기경 정점의 수사가 나왔다는 말입니까?”
“맞다. 확실히 전송진은 공간진법의 범주에 속하지. 먼 거리까지 전송할 수 있는 법진을 완벽히 만드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금단 수사라 해도 아주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지.”
칠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천검종에 장거리 전송이 가능한 법진은 없다. 중거리 전송은 다섯 개 쯤 있는데, 그 정도는 공간진법을 조금만 알아도 배치할 수 있다. 완벽한 진법이라면 근 20년 동안은 말 할 것도 없고, 500년 동안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게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이해됐다.
종문에 있는 수많은 전송진은 천 리에서 이천 리 쯤 되는 단거리 밖에는 전송할 수 없고, 그렇다면 천검종에 전송진을 만들 수 있는 고수가 어찌 그렇게나 많은지도 설명이 된다.
“무지몽매한 인간들이지. 진나라 전체에 우리 천검종에 대항할 자가 아무도 없는데 무슨 적이 쳐들어오겠어? 그리고 만약 대진제국에서 천검종에 맞설 수 있는 세력이 쳐들어온다면 이런 구닥다리 전송진으로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칠 장로가 손을 들어 올리자 술단지 하나가 먼 곳에서 날아와 손에 쥐어지는 것이 보였고, 그는 마개를 열고 입속으로 술을 들이 부었다.
술이 흘러내려 옷자락을 적셨다.
칠 장로가 대진제국의 적대 세력을 이야기 할 때, 듣고 있던 엽운의 눈가에 한 줄기 걱정이 스쳤다.
“사부님, 저희 천검종에도 대적하기 힘든 적대세력이 있지 않습니까?”
칠 장로는 어리둥절해 하다 눈에서 빛을 번쩍이며 엽운을 한참 쳐다보다가 이야기했다.
“어떻게 알았느냐?”
엽운은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여명홍에게 전해들은 대진제국의 내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맞다. 우리 천검종에게도 적이 있지. 그것은 바로 대진제국의 알화종이다. 20년 전 그들은 진나라에 쳐들어와 진나라의 수선 세력을 일망타진하고 그들의 휘하에 두려고 했지. 그들이 먼저 노린 것이 바로 우리 천검종이다. 그 날의 싸움은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고 유혈이 낭자했지.”
그 날의 광경을 떠올리던 칠 장로의 눈이 혼탁해졌다.
그를 보고 있던 엽운은 별안간 마음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칠 장로의 눈이 흐려졌다는 것은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다는 뜻이고,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한 시 빨리 숨는 게 좋다.
“멈춰라. 아직 취하지도 않았고, 혼란에 빠진 것도 아니다.”
칠 장로의 냉랭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눈빛이 다시 맑아졌다.
“이 제자는 그저 술을 좀 가져다 드리려 했을 뿐, 떠나려고 한 게 아닙니다.”
엽운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칠 장로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 전투는 몹시 처참했지. 두 세력 간에 승부가 가려지지도 않았고, 서로 한 발 물러서 20년 뒤 다시 싸우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 20년이라는 시간이 곧 다가오겠군.
“알화종이라 했습니까? 이름만 들어서는 불문 같은데, 20년 뒤에 다시 싸우자니, 지금 그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질 않는군요.”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불문은 개뿔, 놈들은 그저 가난한 산적떼가 모여 만든 종문이다. 그래봐야 이삼백년의 역사가 고작이지.”
칠 장로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
엽운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이었다.
칠 장로가 어째서 별안간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
칠 장로의 정신이 멀쩡한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데 말이다.
엽운은 자신의 사부를 바라봤다.
알화종에 대해 저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혹시 또 정신이 나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의 말대로 알화종이 도적떼에 지나지 않는 잡배들이라면, 그들이 멀리 대진제국에서 쳐들어와 천검종과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유혈이 낭자한 싸움을 벌였다는 건 천검종의 실력이 도적떼들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 아닌가?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자, 이 얘긴 그만하지. 3일 동안 잘 수련 하거라. 네가 천도에 대해 얼만큼 깨우치고 있는지, 어떻게하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지 한 번 봐야겠다. 모르는 게 있다면 얼마든지 물어보도록 하고, 결코 숨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3일 뒤에 내가 많은 것을 깨우치지 못하거든 썩 거지도록 하고, 반 년 동안 영전에는 얼씬도 하지 말거라.”
칠 장로는 엽운을 훑어보며 냉랭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엽운은 그의 성깔에도 태연하게 웃음을 지으며 알겠다고 말했다.
“너는 연기경의 공법으로 쉬선심법을 골랐으니 제법 용감하다고 할 수 있겠군. 쉬선심법은 대량의 자원으로 육신과 진지를 동시에 발전시켜 어느 한 곳도 모자란 것이 없게 만드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새로운 경계를 돌파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칠 장로는 엽운을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엽운은 어리둥절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쉬선심법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자원을 통해 육신을 수련하고 진기를 더 응집시켜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으며, 일단 궤도에 오르면 더 이상 수련하지 않아도 알아서 실행되며 매 순간이 수련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이제 알겠군. 그러니 연기경을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고 싶다면 육신을 더욱 단련하고 진기를 정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기경 2중을 돌파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될 게다.”
칠 장로는 손에 쥔 약주를 전부 들이키곤 술단지를 수십 장 너머로 던져버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런 거였군요. 어쩐지 최근 들어 체내의 진기가 너무 충만해 더 이상 정련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천도의 법결을 깨우치고 연기경 2중에 오르지 못한 것이 제 육신이 충분히 강하지 않아서였군요.”
엽운은 별안간 모든 것이 이해됐다.
어째서 자신이 연기경 2중을 눈앞에 두고도 돌파하지 못했는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자, 이제 저 구석에 찌그러져 잘 수련하거라. 모든 자원을 육신에 쓰도록 하고, 한 단계 더 강하게 만들어라. 그렇게 해야만 연기경 2중을 노릴 수 있다.”
칠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사부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엽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그런 의혹을 가지고 있었고 때가 되면 어련히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문제는 육신에 있었던 것이다.
칠 장로가 콧방귀를 뀌며 손을 들어 점을 하나 찍자 금색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엽운은 서둘러 그것을 받았는데, 손에 쥐니 몹시 묵직했다.
금색 영석 두 개가 그의 손 안에 있었다.
엽운은 순수하고 충만한 영기가 느껴졌는데, 그 영기만으로도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극품 영석인가요?”
엽운은 어안이 벙벙해져 다급히 물었다.
“그렇다. 그게 바로 극품 영석이다. 그 안에 담겨있는 영기는 아주 순수하여 네 수련에 딱 알맞지.”
칠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만족스러운 눈으로 엽운을 바라봤다.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극품영석이 얼마나 진귀한지 잘 알고 있었는데, 극품영석 하나는 상품영석 1만 개에 해당했다.
칠 장로는 그에게 극품영석을 두 개나 주었는데, 이런 사부를 어디서 찾겠는가?
“감사합니다 사부님!”
엽운은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한 뒤 두 개의 극품영석을 들고 한 구석으로 가 바닥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