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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93화 (193/227)

제 193 화 예상을 벗어나다

엽운은 이치에 어긋나는 것을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선마지심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당장 몸 속 세 개의 영기와 뇌음화룡계 속 보물들만 해도 시 장로에게 빌미를 주기 충분하고 그렇게 되면 그가 지닌 보물을 전부 회수해 갈지도 모르며, 그 뿐 아니라 어떻게 여러 종류의 영기를 동시에 수련했는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연구하려 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그래도 엽운은 일망의 희망이라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소호와 자 장로가 변호해 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선마지심이 발각 된다면 소호와 자 장로 뿐 아니라 종주가 나서서 그를 보호하려 해도 모두들 반대할 것이다.

선마지심이 얼마나 강력하고 무서운 존재인지는 오직 엽운만이 알았다.

“종주님, 모든 제자들에게는 비밀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희에게 그 정도 포용력도 없어서야 어찌 진나라를 벗어나 대진제국에 맞서 싸우겠습니까?”

소호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다소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

마음속으로 이번 일은 분명 시 장로가 꾸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 장로와 모용 가문이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분명 모용무흔을 위해 나선 것 같았는데, 그 김에 엽운이라는 녀석이 도대체 어떤 신기한 구석을 가지고 있길래 고작 이 정도 수위로 모용무흔과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실력을 가졌는지 살펴보려는 것이다.

천백년 동안, 천검종에는 하늘의 총애를 받은 제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거듭 된 기우로 보물과 자원을 손에 넣고 공법과 신통을 익혀 수위가 나날이 성장했으며 천하를 종횡무진 누볐다.

하지만 지금껏 고작 운수가 좋은 제자 한명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하여 그를 조사하고 그가 가진 보물을 빼앗는 짓을 해왔다면 천검종의 평판은 진작에 떨어졌을 것이며, 대진제국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진나라에 발조차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천검종 같은 명문대파에게 포용심이란 아주 큰 의미를 가지며, 다른 파벌의 제자를 잡아온다 하더라도 그 수위를 폐기시키고 처음부터 수련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니 기우가 조금 있었다 해서 모든 것을 오롯이 상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천검종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이번 일에 찬성하지 않았지만 종주라 해도 완전히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을 처리할 수는 없었고, 득실을 따져 천검종에 가장 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시 장로의 말쯤이야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었지만, 모용 가문과 시 장로에게 배후에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천검종 내에는 나이가 지긋한 숙로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의 서열은 아주 높았다.

그리고 이번일은 시 장로의 배후에 있는 숙로가 지시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엽운에게 설명하라고 하는 것이 좋겠군. 확실하게 설명할 수만 있다면 됐다. 이미 연심시마단까지 복용했으니 종문에 대한 그의 충성심은 우리가 믿을 수 있겠지.”

천검종주가 천천히 말했다.

“맞소!”

시 장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종주 대인, 감히 말하건데 그 말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엽운이 이미 연심시마단을 복용한 걸 알고 계시고 종문에 대한 그의 충성심도 잘 아신다면 그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던 그것이 종문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아실텐데, 굳이 이러실 필요가 있습니까?”

소호는 열변을 토하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소 봉주, 보아하니 몇 년 사이에 더 대담해지신 것 같소. 감히 종주께 그런 소리를 하다니.”

시 장로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노여움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그저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소호는 조금도 비굴하지 않은 모습으로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소형, 그만 하시지요. 이 일은 저희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구양문천이 별안간 입을 열었다.

“맞다. 소호 네 녀석 확실히 최근 들어 많이 날뛴단 말이야. 방금 전에 알아서 잘 처신하라고 했거늘, 감히 시 장로와 종주 대인에게 그 따위로 이야기 하다니.”

운 장로가 비아냥거렸다.

소호는 구양문천을 훑어보며 빙긋 웃음을 짓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시 장로가 나타난 그 순간 어째서 구양문천의 태도가 변했는지 깨달았다.

구양문천은 시 장로와 한 통속인 것이다.

족보에 따르면 시 장로는 그의 사숙 쯤 될 것이며, 시 장로의 배후에 있는 사람은 아마 구양문천의 사조일 것이다.

구양문천의 사조가 지시를 내렸다면 그와 소호가 아무리 친분이 두텁다 한들 맞설 수밖에 없었다.

“종주 대인, 우리 천검종이 설마 두가처럼 고집불통 일언당이 된 겁니까?”

소호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더니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검종주와 시 장로 일행의 표정이 바뀌었다.

천검종은 본디 명문대파로써 공평함과 공정함을 늘 강조해왔기에 종주 역시 모든 것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고 모든 이들과 의논을 거쳐야 했다.

지금 소호가 천검종을 두가에 빗대며 고집불통이 되었다느니 하는 것은 뺨을 후려치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만약 시 장로가 어떻게든 엽운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한다면, 그 소문이 퍼지는 즉시 천검종의 체면은 구겨질 것이며, 그 날로 다시는 진나라 제일의 종문을 자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소호, 배짱이 두둑하구나.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있느냐?”

시 장로는 펄쩍 뛰며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두들 마음속으로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소호는 조금도 두렵지 않은 듯 콧방귀를 뀌었다.

“좋다. 보아하니 네가 종주 자리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갈아치울 때가 된 것 같군.”

시 장로가 소리쳤다.

소호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시 장로님이 우리 천검종의 종주가 되시려나 봅니다. 마음대로 봉주를 다 정하고 말입니다.”

시 장로는 어리둥절했다.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그만!”

천검종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누구라도 한 종문의 종주씩이나 되어서 아랫사람에게 이런 조롱을 받는다면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시 장로의 배후에 있는 인물을 껄끄럽게 여기긴 했지만, 그렇다 해서 그들을 두려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렇게 비웃음을 당한다면 그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

“시 장로님. 말씀이 좀 많으시군요.”

천검종주는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이어서 말했다.

“소 봉주. 자네는 한 봉우리의 봉주이니 말을 조심해서 하게.”

“예, 종주님의 가르침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소호는 공수를 하며 인사를 올렸다.

시 장로는 감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화가 잔뜩 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저 옆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천검종은 결코 일언당이었던 적이 없다. 큰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모두와 상의를 해야만 하지. 이번에 내가 모두를 부른 것도 너희들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소 봉주 말고 또 동의하지 않는 이가 있는가?”

천검종주는 두 사람을 찍어 누르곤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다.

“시 장로의 말씀이 맞습니다. 엽운의 수위는 너무도 빨리 성장했습니다. 당시의 무정 사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확실히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구양문천은 진작에 입장을 굳혔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검종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광원과 정여수를 쳐다봤다.

“무슨 큰일이 났나 했더니 이런 일이었군요. 전에 처리한 대로 처리하시면 되겠습니다. 달리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우광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생각에는 시 장로님과 소 사형 두 사람의 말이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만, 종주 대인이 결정 하시지요.”

정여수는 고작 스물 몇 살 밖에 되지 않아 보였지만 사실 마흔이 넘었는데, 몹시 신중한 성격을 가졌기에 함부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천검종주는 눈살을 찌푸리며 조용히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엽운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자 장로를 향해 몸을 돌렸다.

“자 장로님, 마침 천신봉에 오셨군요. 자 장로는 엽운을 알고 계시니,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보시지요.”

자 장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천백 년 동안 우리에게 설명이란 것을 해야 했던 이들은 요마의 술법을 수련한 자들 밖에 없었습니다. 엽운은 지금 모든 것이 정상인데 그에게 무슨 설명을 듣겠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자 장로님은 소 봉주와 마찬가지로 그 어떤 조사나 설명도 필요 없다는 뜻입니까?”

천검종주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담담히 물었다.

“맞습니다. 바로 그 말입니다. 종문에는 종문의 규칙이 있는 법이니 누군가가 뒤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며 법규를 어길 수는 없습니다.”

자 장로는 콧방귀를 뀌며 딱 잘라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시 장로의 눈에 분노가 가득했다.

천검종주는 모든 의견을 들었고, 그의 시선은 다른 이들을 지나 모용무정에게 향했다.

“무정,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모용무정은 줄곧 고개를 떨군 채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있었는데, 마치 이번 일은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천검종주의 질문을 받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소호와 엽운 등 몇 사람의 얼굴에 걱정이 스쳤다.

모용무정은 모용무흔의 형이고 소호와 종주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상대이니, 어떻게 봐도 엽운의 편을 들어줄 리는 없었다.

만약 모용무정 역시 조사를 해봐야 한다고 얘기한다면 그의 옆에 있는 운 장로와 다른 한 사람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본래 유도리 있는 성격을 가진 천검종주는 엽운을 구속하고 자세히 조사를 할 것이다.

“저는 고작 10년 전에 수행을 시작했고, 2년 안에 연체경 정점에 오르고 연기경을 돌파했으며 다시 2년 반의 시간이 지나 연기경의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 축기경을 돌파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근 5년 동안 제 경계는 축기경 6중 천인경 까지 올라섰으니, 아마 3개월이면 단박에 정상에 오르겠지요. 엽운 네가 말해 보거라. 내 수행 속도가 어떠한가?”

모용무정은 엽운을 바라보며 별안간 질문을 해왔다.

엽운은 어리둥절해하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당연히 아주 빠르다 생각합니다.”

“듣자하니 너는 1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연체경 3중에서 연기경 1중에 올랐다고 하더군. 네 수련 속도는 나보다도 빠르다. 체내의 진기도 거대하고 그 품질도 훌륭하니 분명 길어야 3년 안에 축기경을 돌파할 것이다. 그 정도 수련 속도라면 나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지. 너는 확실히 보기 드문 천재다. 천재라면 천재답게 강직하거라. 시시콜콜한 일에 방해받지 말고 전력을 다해 수행하란 말이다.”

모용무정이 냉랭하게 말했다.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정 사형의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모용무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은 당시 제 수행 속도가 몹시 빠르다며 난리를 쳤었지요. 그러나 아무도 저를 조사하겠다는 이는 없었습니다. 다들 저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계신 듯 말입니다.”

모든 이가 크게 놀랐다!

소호와 구양문천, 그리고 천검종주와 시 장로를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모용무정이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말을 들어보니 그는 엽운을 조사하는 것에 반대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시 장로와 구양문천의 눈빛에서 답답한 마음이 느껴졌다.

“무정, 네 뜻은 잘 알겠다. 그렇다면 내 의견을 이야기 해보도록 하지.”

천검종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가려 했다.

“엽운의 생각을 들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차라리 스스로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모용무정은 천검종주의 말을 끊고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검종주는 어리둥절했다.

그의 표정에 불만이 스쳤지만 곧 사그라들었다.

“그것도 괜찮겠군. 엽운 네 생각을 말해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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