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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91화 (191/227)

제 191 화 천신봉

천검종에는 천신봉이라고 불리우는 주봉이 있었는데, 이 곳은 천신이 내려와 세운 종파라 하여 이처럼 패기 넘치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천신봉은 천검종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 이며 천검종의 중앙에 우뚝 솟아 있었다.

주위에는 무영봉, 절검봉, 그리고 적성봉과 남월봉이 달을 에워싼 별들처럼 천신봉을 둘러싸고 있었다.

평소 천신봉은 제자들을 소집하는 일이 없었고 4대 봉주들조차 자주 가볼 수 없는 곳이기에 중대한 사안이 있어 천검전령이 발포되었을 때만 천신봉에 갈 수 있었다.

“어때? 가슴이 두근거리나?”

소호는 옆의 엽운을 바라보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엽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두근거리는 것은 아닙니다만, 뭔가 갑작스럽단 생각이 듭니다. 저의 수위와 재능으로 어찌 천신봉의 주의를 끌은 것일까요?”

천검전령을 받은 뒤, 소호는 엽운을 데리고 구름을 가르며 천신봉을 향해 날아갔다.

“내가 널 제자로 삼으려는 것이 잠깐의 흥미 때문이라 생각하느냐?”

소호는 흥미로운 듯 바라보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 너 자신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게 아니냐? 네가 연기경 1중의 수위로 모용무흔과 승부가 나지 않은 것이 흔한 일이라 생각하는 게냐?”

엽운은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분명 예사로운 일은 아니지요. 저도 제 실력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과연 천신봉의 주의를 끌 정도일까요.”

소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네가 모용무흔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천신봉에서 눈 여겨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엽운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봉주 대인, 이 모든 게 모용무흔의 음모라는 말씀이십니까? 그의 형 모용무정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제가 대인의 제자가 되는 것을 막아서 뭘 한단 말입니까?”

소호는 다소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요 몇 년 동안 모용무정은 확실히 거침없는 성장을 이룩했고, 이미 천검종의 4대 봉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분명 나와 한 번쯤 싸우게 되겠지.”

엽운은 순간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모용무정과 4대 봉주들은 이미 차기 종주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엽운은 자신이 이 싸움에 말려들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보아하니 모용무정 혹은 다른 누군가가 소호가 제자를 거두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분명 모용무정과 4대 봉주들의 경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제가 불씨가 될 줄은 몰랐네요.”

엽운이 자조하며 말했다.

소호는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게 부담 가질 필요도 없다. 만약 모용무정이나 다른 이가 정말 내가 널 제자로 삼는 것을 방해하려는 셈이라면, 너는 그저 보잘 것 없는 장기 말에 지나지 않고, 그들이 진정으로 노리는 것은 나일테니 말이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봉주 대인. 저들이 대인과 전쟁을 벌이려 하고 심지어 천검전령마저 동원하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소호는 그를 보며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천검종의 4대봉에는 저마다 10대 제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

엽운은 고개를 젓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저은 것은 모든 봉우리에 10대 제자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뜻이고, 고개를 끄덕인 것은 절검봉의 10대 제자에 대해서 들어봤다는 뜻이었다.

소호는 개의치 않고 이어서 말했다.

“내가 어째서 마지막 한 명의 제자를 거두어들여 10대 제자를 완성시키지 않았겠느냐. 10대 제자란 내가 거두어들이면 그만인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진법 하나를 배워야 하는데, 그 이름은 십살진 이라고 한다.”

“십살진?”

엽운의 목소리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렇다. 바로 십살진이다. 이 십살진은 반드시 10명이 협동하여 동시에 전개해야만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고, 각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다 다르다. 수위의 높낮이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

소호가 천천히 말했다.

“그럼 무엇으로 구분하죠?”

엽운이 이어서 물었다.

“그걸 말로 설명하자면 길다. 참고로 내가 널 눈독들인 것은 수위 때문이 아니고, 네가 번개의 영기를 가지고 있어 뇌계 기법을 시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뇌계 기법이 진법에 더해진다면 십살진은 질적으로 달라질 것이며 몹시 강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훗날 누군가와 교전을 벌일 때 비장의 수로 사용할 수도 있겠지.”

소호는 숨김없이 모두 털어놓았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소호의 말은 사실이었지만, 그저 엽운의 번개 영기를 진법에 이용할 셈이었다는 그의 말은 너무도 직설적이라 어딘가 납득하기 어려웠다.

“납득하기 어려울 것은 없다. 모든 이들은 다 각자의 쓰임새가 있으니 말이다. 네가 가진 특별함과 너만의 역할을 최대한 발휘해야만 타인의 중시를 받게 되는 것이지. 네가 내 십살진의 핵심이 되어준다면 너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보답을 받게 될 것이며, 그 보상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두둑할 것이다.”

소호는 오히려 더욱 직설적으로 말하며 빙긋 웃었다.

엽운은 그를 쳐다봤다.

마음속으로 소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솔직하게 자신을 이용하겠다 말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조금 어려웠다.

게다가 화운이 부활한 이후의 수련을 위해 천 년 동안 모은 각종 보물을 가지고 있었기에, 소호가 말한 꿈도 꾸지 못할 보상은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소호의 말대로 모든 이들은 각자 자신의 독특한 가치와 역할이 있는 법이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의 눈에 띄어 이용을 당해야만 그 가치가 발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먼지를 뒤집어 쓴 명주나 모래 속에 묻힌 금덩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오늘 천신봉에서 어쩌면 누군가가 너를 제자로 데려가려 할 수도 있다. 너의 재능이나 실력을 높이 사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10대 제자를 꾸려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십살진을 완성시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지. 그때가 되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금부터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게다.”

소호는 엽운을 바라보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에게 내 제자가 되라고 강요하지는 않으마. 하지만 난 네가 잘 생각해보고 섣불리 결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 제자가 되는 것 역시 잘 고려해보도록 하고, 충동적으로 결정하지 말거라.”

엽운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곤 고개를 끄덕였다.

소호의 말은 확실히 다른 이들과는 느낌이 달랐고, 무영봉주의 드높은 기개가 느껴져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하게 만들었다.

“앞이 바로 천신봉이다. 늘 구름에 가려져있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

소호는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구름 속에 산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였는데, 마치 한 자루의 날카로운 검 처럼 구름을 뚫고 하늘을 찔렀다.

엽운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천검종 최강의 세력이 이 산봉우리 안에 있었다.

천검종의 종주는 어떤 인물이며, 수위가 드높은 장로들은 또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었다.

“긴장할 것 없다. 사실 종주 어르신은 아주 온화 하시단다. 요 몇 년간 딱히 간섭하신 일도 없었고. 중요한 실무는 전부 4대봉과 상의를 거친 후 실시되고 있다. 종내에는 또 최고로 높은 태상 장로들이 몇 명 있는데, 그들은 각자의 득실을 따지지 않고 종문의 이익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네가 내 제자가 되어 10대 제자에 힘을 보태준다면 우리 무영봉의 실력은 한층 더 강해질 것이고, 그건 종문에게도 좋은 일이겠지.”

소호는 엽운의 어깨를 두드리며 속삭였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록 소호는 별 일 아닐 것이라고 말했지만, 태상 장로들도 그렇게 생각했다면 천검령을 통해 그와 소호를 천신봉으로 불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소호의 안내에 따라 두 사람은 아무런 제지나 검사도 없이 바로 천신봉의 정상으로 뛰어올랐다.

천신봉의 정상에는 호화로운 대전 따위는 없었고, 그저 지극히 간결한 정원이 있었다.

날카로운 검처럼 생긴 몇 장 높이의 산석이 정원의 중앙에 우뚝 솟아 있었는데, 마치 하늘을 가리키는 칼날 같았다.

“소호가 제자 엽운을 데리고 종주님과 태상 장로님들을 뵈러 왔습니다.”

소호는 건물에 대고 살짝 인사를 했다.

그러자 정원의 한 가운데에 검처럼 우뚝 솟은 돌산에서 빛이 번쩍였고, 이어서 꼭대기에서 흰색 도포를 입은 노인의 그림자가 나타나 조금씩 흔들렸다.

“소호가 왔다. 다들 나오거라.”

목소리 하나가 산봉우리에서 들려와 허공에 한참을 맴돌았다.

곧 산봉우리에서 여러 개의 빛이 내려왔고, 6명의 사람이 엽운과 소호의 눈앞에 나타났다.

첫번째로 보인 사람은 눈처럼 새하얀 옷을 입었는데, 그는 절검봉주 구양문천이었다.

그의 옆에는 수려한 모습의 젊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귀밑머리가 구름처럼 드리워져 있었는데, 마치 물처럼 온화하고 담담한 모습의 남월봉주 정여수였다.

다른 한 쪽에는 청년 한 사람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는 칼같은 눈빛으로 엽운의 얼굴을 훑었는데, 바로 적성봉주 우광원이었다.

가장 엽운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 옆의 나머지 세 사람이었다.

두 명은 보라색 옷을 입은 노인이고 나이가 들어 동작이 몹시 굼뜬 모습에 조금의 힘도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혼탁한 두 눈동자에서는 불시에 빛이 번쩍였는데, 엽운은 그들을 잠시 마주 본 것만으로 영혼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고, 온몸에서 피로가 느껴져 하마터면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나머지 한 사람은 몹시 익숙한 얼굴이었는데, 칼날같은 두 개의 눈썹이 조금 희끗하다는 점이 아니었다면 엽운은 모용무흔이 이 자리에 온 줄 알았을 것이다.

스물 여서 일곱 쯤 되어 보이는 이 청년은 모용무정의 형이자 천검종 제일가는 재능의 모용무정이 분명했다.

“운 장로님, 만나자마자 연혼의 술을 사용해 저의 제자 영입을 방해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소호의 목소리는 어딘가 싸늘했다.

엽운은 그제야 방금 전 쓰러질 뻔한 것은 장로들이 소호가 말한 연혼의 술을 시전 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이것은 축기경 고수들이 시전 할 수 있는 신혼 공격인데, 다행히 엽운은 아직 신혼을 수련하지 못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공격은 엽운의 영혼을 산산조각 내어 수위를 크게 낮췄을 것이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다음번에 당신의 제자를 만났을 때 이렇게 해야겠군요.”

소호는 냉소했다.

눈빛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소호, 무영봉주가 된지 고작 10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조금 얌전히 구는 게 좋을게다.”

운 장로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줄곧 너무 지나치게 얌전히 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아직까지 10대 제자를 다 모으지 못한 것이겠지요. 이제서야 간신히 다 모았거늘 당신들이 함부로 간섭을 하려 하다니, 도대체 뭘 하려는 것입니까?”

소호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운 장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유를 알았다면 썩 물러가거라!”

“물러가라고? 하하, 물러가지 않으면 어쩌실 셈입니까?”

소호는 큰 소리로 웃으며 한 걸음 다가갔다.

그의 몸 주위에서 빛이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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