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190화 (190/227)

제 190 화 천검전령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그의 옆에 있던 두 사람도 마찬가지로 어안이 벙벙해졌고, 심지어는 다른 제자들마저 멍해졌다.

흑백이로가 어떤 수위를 가졌는가?

대겁을 지나 천인경에 도달한 고수들이다.

이는 무영봉주와 같은 수준이며, 게다가 연배도 몹시 높았다.

따지자면 8대 신전의 전주들 모두 두 사람을 사숙이라 불러야할 정도이다.

심지어 소호조차 항렬로만 따지자면 두 사람보다 한참 아래였다.

이치대로라면 두 장로가 뽑은 제자는 분명 실력이 다소 뛰어나거나 나이가 어리면서도 절륜한 재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뜻밖에도 단진풍과 여명홍을 골랐다.

두 사람은 나이가 어린 편은 아니었고 수위 역시 낮았다.

단진풍은 고작 연기경 2중이며 여명홍은 1중이었다.

그런데 어찌 흑백이로의 선택을 받은 것일까?

이 두 녀석이 도대체 뭐길래?

어떤 계략이 있는 것일까?

다른 제자들은 당연히 이해할 수 없었고, 심지어는 단진풍과 여명홍 두 사람마저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서 찾아가지 않고 뭐해.”

엽운이 나지막이 말했다.

두 사람은 꿈에서 깬 듯 다급히 앞으로 나가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제자 단진풍, 사존께 인사드립니다!”

“제자 여명홍, 사존께 인사드립니다!”

흑백의 두 장로는 서로를 바라보다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일어나서 저 옆에 서 있거라. 좀 이따 전례가 끝나면 나와 함께 돌아가면 된다.”

“네!”

두 사람은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가득했고, 더욱이 기쁨이 가득했다.

“장로님들, 저 운 좋은 두 녀석을 선택하신 이유가 뭡니까?”

낙천성 역시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의 수위라면 단진풍과 여명홍의 경계는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러게요, 정말 예상 밖입니다.”

열행운 역시 몹시 놀란 듯 했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장로님들, 저들에게 저희가 보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것입니까?”

능청원이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흑백 장로는 웃었다.

흑운자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너희들은 평소에 자기 일만 하다 보니 눈썰미가 많이 퇴보했구나. 이 두 녀석은 고작 연기경 1중 2중 이지만 진짜 실력은 연기경 3중 4중보다 약하지 않으니, 재능이 출중하다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여기 단진풍이라는 연기경 2중의 녀석은 체내의 진기가 아주 사납기 짝이 없다. 그러니 나의 패천신결을 수련하기 아주 적합한 인물이지. 그리고 여기 여명홍이라는 애송이는 진기의 유지력이 아주 좋고 끊임이 없어. 분명 방어에 능할 것이고 내구력도 좋을 것이니 백장로가 거두기 딱 좋지.”

“그렇습니까?”

8대 전주들은 어리둥절했다.

곧 그들은 일제히 시선을 돌려 여명홍과 단진풍을 살펴봤다.

머지않아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는데, 보아하니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것 같았다.

“괜찮다. 너희가 대겁을 넘기고 천인경의 수위에 도달하면 다른 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게다.”

흑운자는 손을 내저으며 사람들을 바라봤다.

“사실, 재능이 더 뛰어난 제자가 한 명 있긴 한데, 그는 이미 선택을 받았기에 우리가 나서지 않은 것이다.”

능청운은 어리둥절하며 다급히 물었다.

“재능이 더 뛰어난 제자가 있다는 말입니까? 누구에게 선택을 받았죠?”

“누가 있겠어? 두 장로님들마저 포기할 녀석이라면 당연히 봉주 대인께서 선택하신 자겠지.”

낙천성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크게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제자를 말하는 건가?”

열행운이 급히 물었다.

흑백 장로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는 흑운자가 웃으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봉주 대인께서 선택하신 자 이니, 대인께서 직접 말씀하시지요.”

순간 모든 이의 시선이 소호를 향했다.

소호는 빙긋 웃으며 화려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엽운, 이번에도 거절할 샘이냐?”

“엽운?”

순간 모든 천촉봉 제자의 시선이 엽운을 향했다.

그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전에 천촉봉에서 시험을 치르던 때 모용무흔은 엽운이 소호의 영입 제안을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만 해도 거짓말이라 생각했고, 잘 쳐줘도 반신반의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소호의 말을 들어보니 놀랍게도 이는 사실이었고, 이에 모든 제자들은 크게 놀라고 만 것이다.

이 녀석은 도대체 어디서 온 녀석이길래, 무영봉주 소호에게 선택을 받았을까.

그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듣자하니 그 제안을 한 번 거절하기까지 한 듯 했다.

엽운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번에는 그에게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됐다.

부러워하는 이도 있었고, 질투하는 이도 있었고, 충격을 먹은 이도 있었으며 믿을 수 없는 이도 있었다.

모두들 연기경 1중의 제자 하나가 소호의 총애를 받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진양은 옆에 서서 저도 모르게 온 몸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일전에 목 장로를 만났을 때, 그에게 엽운을 손봐주라고 암암리에 말했었다.

원래 즉시 행동하려 했으나, 시간이 부족했기에 다음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어차피 엽운이 선택을 받아 입문한다 한들 그저 기명 제자에 지나지 않으니, 굳이 말할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엽운이 소호의 눈에 들었고 더구나 소호의 말대로 그의 호의를 거절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무영봉주는 총 아홉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는데, 소문에 따르면 그는 줄곧 열 번째 관문 제자를 물색하여 10대 제자를 이룩하길 원한다했다.

그럼에도 수 년 간 찾아내지 못했는데, 10대 제자의 마지막 한 사람이 진양의 소대에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진양은 뒤늦게 두려움이 몰려왔고, 목 장로의 말에 따라 엽운을 손봐주지 않았음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랬다면 진양은 훗날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목 영감, 감히 나를 해치려 하다니. 당신하고 나하고 끝장을 보자고.”

진양은 마음속으로 크게 분노했다.

엽운은 고개를 들어 의자에서 일어나는 소호를 보며 인사를 올렸다.

“봉주 대인께 인사드립니다. 또 뵙는군요.”

“그래, 또 보는구나. 저번에는 내 제자가 되라는 제안을 거절했었지. 이번엔 어떤가?”

소호는 빙긋 웃으며 이어서 말했다.

“아 참, 소령 이 계집애가 매일같이 너를 찾아간다고 떠들더군. 너희 수 이모도 네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고 하니, 좀 이따 나와 함께 가서 두 사람을 만나자꾸나.”

소호의 말은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보아하니 엽운은 소호의 영입 제의를 거절했을 뿐 아니라 소령과도 몹시 친한 모양이다.

게다가 봉주 대인의 부인을 엽운이 수 이모라고 부른다 하니, 그 관계는 충분히 알만하다.

진양은 넋이 나간 채 엽운을 바라봤다.

지금 이 순간 엽운을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머릿속엔 온통 목 장로를 향한 원한이 가득했다.

“분명 봉주님께서 소령의 외출을 금하셨겠지요. 그렇지 않고서는, 그녀의 성격이라면 진작에 천촉봉에 와서 저를 찾았을 겁니다. 그런데 수 이모께서 제가 마음에 걸린다 하셨다니, 좀 이따 반드시 봉주 대인을 따라가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엽운은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목소리로 빙긋 웃으며 말했다.

8대 전주들은 엽운을 노려봤다.

그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고작 소년 하나가 봉주 대인의 눈에 들었다는 것은 불가사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들의 눈에 엽운은 단지 연기경 1중의 소년일 뿐이었고, 수위는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듣자하니 모용무흔과 붙었다고 하던데?”

소호는 엽운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모용무흔은 절검봉의 제자이면서 저희 무영봉의 내문 제자 시험에 간섭하려 하길래 이 제자는 순간 참지 못하고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승패는 어찌 되었지?”

소호가 물었다.

“그저 몇 수 주고 받았을 뿐, 승패는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쉬익!

찬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용무흔의 명성은 어쩌면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내문 제자들은 모를 수도 있고, 어쩌다 들어보았다 하더라도 깊게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8대 전주와 흑백 장로 정도 되는 존재들은 모용무흔이라는 네 글자를 진작에 잘 알고 있었다.

모용무흔의 수위는 고작 연기경 5중이고, 어쩌면 최근에 6중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진짜 수위는 축기경 이하에서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모용무흔은 형인 모용무정에게 몇 가지 신통기법을 배웠고, 거기다 상품 영기까지 가지고 있으니, 진정한 전투력은 적어도 축기경 1중의 제자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엽운이 방금 뭐라 말했던가?

놀랍게도 모용무흔과 몇 수 주고 받았고 승패가 가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엽운의 진짜 실력이 축기경 1중의 고수에 필적하는 모용무흔이 아닌 연기경 7중 쯤 되는 제자는 아무런 부담없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란 뜻이었다.

연기경 1중 응기경과 연기경 7중 진화경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엽운은 연기경 1중의 수위로 모용무흔과 승부가 나지 않았다고 하니, 훌륭하지 않은가?

어쩐지 소호가 그를 눈여겨보는 것 역시 재능이 이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순간 엽운을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고, 질투와 부러움은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경외만이 남았다.

그들은 천검종에 또 한 명의 빛나는 샛별이 떠오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잘못본 게 아닌 모양이군. 엽운, 잘 생각해 보았느냐?”

소호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엽운은 미소로 보답하며 대답하려했다.

별안간 한 줄기 빛이 입운전의 바깥에서 날아왔고, 곧 흰 옷을 입은 청년 한 명이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봉주 대인. 그리고 두 호법장로님들.”

흰 옷의 제자는 몸을 굽혀 인사를 올렸다.

“손침, 무턱대고 쳐들어오다니, 무슨 일인가?”

흑운자는 조금 짜증이 난 듯 싸늘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흰 옷을 입은 제자 손침은 두 손에 두루마리 하나를 받쳐 들고 말했다.

“장로님께 아뢰니, 방금 막 천검종에서 전령을 받았는데, 봉주 대인께서는 식을 잠시 중단하시고 엽운과 함께 천신전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천신전에? 무슨 일로?”

호법장로 백송자는 어리둥절해하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저는 모릅니다. 그저 방금 전에 전령을 받아 서둘러 달려왔을 뿐입니다.”

손침은 몸을 굽히며 손에 쥔 두루마리를 높이 들었다.

흑운자는 콧방귀를 뀌며 이를 집어들었다.

두루마리가 그의 손바닥에 떨어지자마자 휙 펼쳐졌다.

순간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는데, 몹시 화가 난 듯 했다.

백송자가 다가와 이를 한 번 보더니 곧바로 콧방귀를 뀌었다.

소호는 조금 불쾌했지만 그다지 격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두루마리를 가져다 살며시 훑어보았다.

“엽운 네가 벌써 다른 3대 봉주와 우리 천검종의 고위층을 놀라게 만들었을 줄은 몰랐다 예상 밖이구나. 이렇게 된 이상, 어서 준비하고 나를 따라 천신전으로 간다.”

소호가 손을 살짝 떨자 두루마리가 순식간에 한 줄기 빛이 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엽운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했지만, 표정만큼은 조금도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소호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제자는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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