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6 화 연심시마단
위쪽 연단에 흑백의 두 장로는 보고 있자니 몹시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이분들은 무영봉의 양대 호법장로, 흑운자 장로님과 백송자 장로님이시다. 실력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며 무영봉주님을 제외하면 이 두 분 보다 강한 자는 없다.”
진양이 나지막이 말했다.
엽운 일행이 혹여나 두 장로에게 실수할까 걱정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몹시 귀찮아질 것이다.
“봉주님의 수위는 아마 축기경 6중 이었죠?”
선임으로 임명 된 오신융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진양은 싸늘한 눈초리로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감히 그걸 묻는단 말이냐? 기억하거라. 흑백 장로님들의 어떤 지시를 하던 너희는 그에 따라 행동할 뿐, 다른 건 너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걸 말이다.”
오신융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입운전 안쪽의 연단 아래에는 심성 시험을 받으러 온 외문 제자들이 양쪽으로 서 있었는데, 그들은 각자 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고개를 숙인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호법장로님께 아뢰니, 시험에 참가할 모든 제자들이 도착했습니다.”
아랫쪽에서 흰 옷 제자 한 명이 몸을 굽혀 인사를 올렸다.
흑백의 장로는 서로를 한 번 쳐다보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흑운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시험을 시작해 볼까.”
“네!”
흰 옷의 제자가 대답했다.
그리곤 돌아서서 손을 흔들었다.
“삐걱!”
입운전의 대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너희는 이제 심성 시험을 치르게 된다. 심성 시험은 사실 전혀 복잡할 것이 없다. 너희들이 천검종에 얼마나 충성하고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이며, 훗날 천검종의 영예를 우선시 할 것인지를 보는 것이다.”
흰 옷을 입은 제자는 뒷짐을 지고 서서 제자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시험을 치르러 온 제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충성심을 어떻게 시험한다는 말인가?
충성심이란 각자의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것인데 어찌 이를 확실히 가려낸단 말인가?
“아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충성도 따위를 어떻게 시험한다는 거지? 헌데 너희가 모른다고 종문 역시 모르는 건 아니지. 사실 이는 아주 간단한 문제다. 여기에 시험 약환이 있다. 이를 복용하면 종문의 비법에 따라 마음속에서 종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각자 충성할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흰 옷의 제자의 낭랑한 목소리가 모든 제자들의 귓가에 울렸다.
엽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흰 옷을 입은 제자의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약을 복용하면 종문의 비법에 의해 종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 종문에 충성할지 말지를 결정한다니.
비록 종문에 충성하지 않는다 한들 그걸 어찌 알겠는가?
“장로님들, 이제 시작하는 겁니까?”
흰 옷을 입은 제자는 품속에서 옥병 하나를 꺼내더니 뒤로 돌아 윗쪽의 흑백 장로들에게 인사를 올리며 물었다.
“시작!”
흑송자가 손을 내저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흰 옷의 제자가 눈에서 빛을 번쩍이자 손에든 옥병에서 수십 개의 노란 콩만한 단약이 천천히 나오더니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시험에 참가한 모든 제자들의 몸 앞에 떨어졌다.
“이것은 연심시마단이다. 한 사람당 한 개씩 복용 하거라.”
제자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는데, 어떤 제자들은 손에 약을 올리고 즉시 복용하는가 하면, 어떤 제자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참을 들여다보다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또 어떤 제자들은 아예 약을 받지도 않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는데, 이 연심시마단을 믿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엽운은 콩만한 크기의 노란 단약을 손바닥에 올려두었다.
그는 이 단약에 분명 문제가 있다 생각했고, 안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반드시 먹지 말아야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먹지 않는다면 어찌 시험을 통과하여 내문 제자가 되겠는가?
저 위에 앉아있는 흑백의 장로들은 목 장로 같은 부류가 아니다.
그들은 축기경 후기에 달한 절세강자이며 숨 한 번 내쉬는 것으로, 아니 손가락 하나만 가지고도 엽운같은 이들을 손쉽게 세상에서 없애버릴 수 있다.
“엽 사형, 어떻게 하죠?”
여명홍은 눈살을 찌푸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맞아, 먹을 거야 말거야?”
단진풍 역시 바보가 아니기에 당연히 이 단약이 어딘가 잘못 되었음을 알았다.
순간 다른 천촉봉 제자들이 그들을 애워 싸며 형형한 눈빛으로 엽운을 바라봤다.
그들은 엽운의 실력이라면 잘 알고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 저도 모르게 그의 행동을 본보기 삼으려 하였으며, 연기경 4중의 오신융은 한 편에 내버려두었다.
오신양은 오히려 조금도 불만스럽지 않아 보였다.
비록 그가 진양에게 선임으로 발탁되긴 했지만 그 역시 마음속 깊이 자신의 수위가 엽운보다 한참 모자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고 그들을 따라왔다.
엽운은 잔뜩 기대하고 있는 열명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빙긋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무슨 선택권이 있겠어? 먹지 않는다면 수위를 전부 폐기당하고 천검종에서 쫓겨날 수도 있어. 어쩌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고.”
한 무리의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엽운의 말이 조금 과장되었다 생각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잠시 머뭇거렸다.
“모두들, 먹어보자고.”
엽운은 손을 들어 단약을 입에 던져 넣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단약의 이름이 연심시마단이라 했으니까, 먹고 나면 분명 심마가 튀어나와 수작을 부릴거야. 다들 본심을 지키도록 해. 절대로 잃어선 안 돼.”
오신융과 단진풍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엽운의 말처럼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으니 연심시마단을 먹는 수밖에는 없었다.
연심시마단을 먹는단 결정이 맞는지, 혹은 잘못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세상 일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행동이 아니라 결정이며, 정확한 결정을 내리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엽운같은 천촉봉 제자들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고, 먹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엽운 일행이 연심시마단을 전부 삼키자 곧 70명의 제자들 역시 단약을 삼켰다.
오직 두 사람 만이 죽어도 먹을 수 없다는 듯 거부했고, 심지어 약을 땅 위에 던지고 두 발로 매섭게 밟기까지 했다.
“우린 천검종에 충성합니다. 약 따위로 통제 할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흑백 장로님들,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 정말이지 너무도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그들 중 한 제자가 분노에 차 소리쳤다.
흑백 장로들의 얼굴에는 조금도 화난 기색이 보이지 않았고, 이런 장면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별안간 한 줄기 검빛이 번쩍이더니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순간 분노에 차 소리치던 제자의 목 위에 붉은 선 하나가 생기더니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곧이어 “푸” 하는 소리와 함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고, 머릿통이 목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넌?”
흰 옷을 입은 제자의 손에 쥔 장검 끝에서 새빨간 핏방울이 떨어졌다.
다른 한 명의 제자를 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자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는 듯 크게 놀랐다.
흑백 장로는 자신들이 약을 먹으려 하지 않는단 이유로 흰 옷을 입은 제자에게 그를 죽이라고 명령한 것이다.
“먹겠습니다. 당연히 종문의 결정에 따라야지요. 저는 두 장로님의 명령에 어떤 이의도 없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며 손에 쥔 단약을 입에 넣었다.
“암, 그래야지.”
흰 옷의 제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냉소했다.
엽운 일행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심성 시험은 흉악하기 짝이 없으며 처음과는 하나도 말이 맞지 않았고, 곧장 제자를 베어 죽였다는 것은 도무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이렇게 되니 엽운 일행은 더욱이 이 연심시마단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71명의 제자들은 이미 전부 약을 먹었기에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다.
천검종에서 이 많은 제자들을 함부로 떨어뜨릴 리는 없으니 이 단약은 분명 곧바로 발작을 일으키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운기조식을 취한다. 약효가 점점 퍼지기 시작할 것이며 때가 되면 너희들은 수련의 길에서 마주치기 힘든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만약 이를 버텨낼 수 있다면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고 천검종 무영봉의 내문 제자가 될 것이다.”
흑운자의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졌다.
모든 이들은 조금의 반항도 하지 않고 즉시 바닥에 앉았다.
엽운은 조용히 앉아 쉬선심법을 시전 했다.
진기가 맑은 시냇물처럼 천천히 체내에서 흐르며 맴돌았다.
“뭐가 보일까? 뭐가 느껴질까?”
엽운은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하며 자세히 살펴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득 몸 안의 진기속에서 알 수 없는 맑은 흐름이 싸늘한 기운을 내뿜는 것이 느껴졌다.
음산한 기운은 진기를 거슬러 올라가 그의 심장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했다.
순간 엽운의 귓가에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는데, 소리는 마치 마귀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 같았고, 여자의 비명소리 같기도 하였으며, 숲속의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온갖 소리가 한데 섞여 몹시 귀에 거슬리는 울림소리를 내었다.
동시에 엽운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은 웅장하고 위용이 느껴졌는데, 모습만으로도 왕의 기세가 느껴져 범접할 수 없었다.
엽운은 마음속에서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머릿속에 나타난 그 남자는 천하에 다시는 없을 왕이며, 기꺼이 그의 발밑에 영원토록 복종할 수 있었다.
엽운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고, 그저 눈앞의 왕에게 절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별안간 깜짝 놀라며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만약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면, 왕의 발밑에서 평생 충실한 종으로 살았으리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좋지 않군, 어째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엽운은 마음속으로 분노했다.
이 남자를 머릿속에서 떨쳐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가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써도 이 남자는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남자를 머릿속에서 떨쳐내려는 순간 알 수 없는 복종심이 느껴졌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엽운은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당해낼 수 없음을 느꼈다.
머릿속의 왕은 점점 더 위용을 떨쳤고, 거역할 수 없는 왕의 의지가 천천히 강림하여 영혼 깊은 곳에 떨어졌다.
“아니, 안돼!”
엽운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
온 몸이 떨려왔고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다.
하지만 아무리 거역하려 애를 써도 왕의 의지는 여전히 강림했고, 온 몸에 힘이 빠지며 의지력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바로 그때, 그의 미간에서 별안간 흑백의 빛이 나타나더니 “펑” 하며 터졌다.
엽운은 희미한 정신 속에서 익숙한 광경을 보았다.
하늘 가득한 금갑신병이 파도처럼 솟구쳤고, 젊은 남녀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손을 맞잡고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