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4 화 한 방에 끝내다
엽운은 기세등등해졌고 살기를 번뜩이며 싸늘한 표정으로 목 장로를 바라봤다.
게다가 한 치의 거리낌도 없이 모용세가를 입에 올렸다.
란 장로 일행은 어리둥절했고, 곧 그들의 안색도 변했다.
모용이라는 두 글자가 천검종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알고 있었다.
비록 모용무정의 현제 실력이 어느 정도 까지 성장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명의 외문 장로로써 그에 대한 얘기쯤은 익히 들어왔다.
모용무정은 일찍이 촉기경을 돌파하여 수위가 나날이 성장했고, 근 몇 년 동안 종문에 큰 공로를 하여 은연중에 차기 종주로 유력한 후보라 전해졌다.
모용무정은 현재 천검종의 실세라 할 수 있었으며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엽운과 모용무흔의 충돌은 개인적 원한이기에 훗날 다시 만난다 해도 이는 두 사람 사이의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엽운은 좀 전에 목 장로와 모용세가의 관계를 언급했는데, 이 말의 숨겨진 뜻은 목 장로가 모용세가에게 영향을 받아 내문 시험의 심사를 하는 것은 아니냐는 말이며, 과연 이 모용세가의 영향이란 것이 공평성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말은 수많은 제자들의 면전에서 하기엔 부적합한 말이었다.
일단 소문이 퍼져나가게 되면 천검종에서 모용세가의 명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는 가늠도 할 수 없다.
엽운은 그저 아무렇게나 말한 것 일수도 있지만, 란 장로와 대장로 순우연의 귀에 이 말은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엽운은 천촉봉 출신의 제자이기에 만약 모용무정이 그를 벌하려 한다면 두 사람도 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엽운, 말을 함부로 하지 말거라.”
란 장로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다급히 제지했다.
“그래, 목 장로님은 무영봉에서 내문 제자 시험 주관을 위해 지목 된 인물일 뿐이고 모용세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순우연의 목소리가 공중에서 울려 퍼졌다.
목 장로는 오히려 여유로운 표정으로 담담히 엽운을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엽운,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게냐?”
엽운은 뒷짐을 지고 서서 그를 살짝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좀 전에 장로님께서는 마치 모용무흔이 시험의 감독이라도 된 듯 그의 말에 따르셨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엽운, 명심해라. 내가 시험관이다!”
목 장로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의 말이 사실이라면 모용세가의 평판에 분명 약간의 영향을 끼칠테지만, 그 결과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무영봉에서 조사가 벌어질 수도 있으며, 그와 모용무흔의 이전 행적까지 전부 밝혀질 것이다.
이런 일은 사실 천검종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선 안된다는 것쯤은 모두들 알고 있으며, 누구도 엽운처럼 비난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렇습니다. 장로님이 시험관이니 제가 먼저 시험을 보겠습니다. 우리 안의 저8급 요수를 풀어주십시오.”
엽운은 뒷짐을 진 채 서서 싸늘한 눈빛으로 섭림을 바라보았다.
섭림은 고개를 살짝 떨구고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아직 네 차례가 아니다.”
목 장로는 엽운의 도발로 체면이 말이 아니어서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왜죠? 제 말이 이해가 안 됩니까?”
엽운은 목 장로의 체면은 안중에도 없는 듯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 장로는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네가 먼저 시험을 보거라.”
엽운은 빙긋 웃으며 조롱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요 몇 년 동안의 엽운은 나서길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선마지심이 육체를 바꿔놓은 후 수위는 더욱 높아졌고, 경계와 수선의 길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마음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특히 화운비장을 거쳐 오면서 수위가 부족했다면 자신은 한낯 버러지나 다름없는 존재였을 것이라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외문 제자란, 종문의 고위층에게는 마치 포탄처럼 언제든 내다 버릴 수 있는 존재였다.
종문의 눈에 띄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빠르게 수위를 올리고 그것을 드러내 고위층의 관심을 사는 것뿐이었다.
엽운에게는 선마지심이 있었고, 더불어 대묘에서 얻은 수많은 보물들이 있었다.
빠르게 수위를 올리려 한다면 주위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조금 더 날뛰는 것이 좋다. .
예전의 모용무흔처럼 실력을 더욱 드러내어 동문들의 두려움을 한 몸에 받고 고위층의 관심을 사 하늘로 오르는 것이다.
엽운은 수위가 고위층의 인정을 받게 된다면 주위 사람들은 앙심을 품을 것이며, 또 어떤 이들은 양성하려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빠르게 수위를 올리기만 하면 된다.
수위가 어느 정도 올라가면 모든 불만의 목소리는 조용해 질 것이며, 그 순간 모용무정과 같은 존재가 된다.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엽운이 원하는 것이었다!
목 장로가 시험관으로써 공정한 심사를 할 수 없다면, 엽운은 이 불공평함을 목 장로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것이다.
섭림은 목 장로를 바라보았다.
목 장로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는 그제서야 두 손을 뒤집었고, 한 줄기 빛의 점이 날아와 우리를 봉인하고 있던 금제를 깨버렸다.
동시에 투명한 빛의 덮개가 떠올라 엽운과 우리를 뒤덮었다.
“쾅!”
거대한 우리가 순식간에 날아가고, 온 몸이 녹색 털로 뒤덮인 원숭이 같은 모습의 요수가 걸어 나왔다.
요수는 약 두 장 정도의 키에 온 몸이 녹색 털로 뺵빽히 뒤덮여 있었다.
사람처럼 두 발로 서 있었고, 얼굴은 원숭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이 녀석은 금정벽원이다. 8급 요수 중 가장 강력한 존재이지. 힘이 몹시 세고 육신은 창이나 칼로도 뚫을 수 없지. 움직임 역시 아주 빠르며 두 눈은 금빛을 내뿜는데, 이 녀석의 신통력이 담긴 시선에 맞게 되면 순식간에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섭립은 시험관의 조수로서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금정벽원이란 이름은 엽운이 일찍이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녀석은 8급 요수의 정점에 있는데, 원숭이의 모습을 한 요수는 영지를 더 쉽게 깨우칠 수 있으며 수행의 속도도 다른 요수들 보다 빠르다고 한다.
이 금정벽원은 8급 요수들 가운데 가장 9급 요수가 될 가능성이 높은 녀석이다.
천검종의 요수들 가운데 금정벽원은 확실히 무서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연기경 4중의 실력은 있으며 심지어 5중의 제자들도 넘볼 수 있는 수준이다.
이곳에서 녀석을 쓰러뜨린다는 것은 가히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여 사제, 이 금정벽원을 상대할 수 있겠어?”
뒷짐을 지고 서서 가볍게 훑어보더니 물었다.
잠시 어리둥절하던 여명홍은 솔직히 대답했다.
“불가능합니다. 제 경계가 한 단계 높아지지 않는 이상은요.”
엽운은 웃으며 목장로를 향해 말했다.
“목 장로님. 이 시험은 제가 치르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엽운은 번개처럼 달려 나갔다.
왼주먹에서 은은한 보라색 빛을 뿜으며 금정벽원을 향해 매섭게 휘둘렀다.
금정벽원은 우리에 갇혀있을 때부터 포악하기 그지없었는데, 자그마한 인간이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것을 보고 크게 분노해 연신 포효했다.
하지만 울음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뚝 끊겼다.
복부에 핏빛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보였는데, 크기는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리고 엽운은 왼손에서 핏방울을 떨어뜨리며 그의 뒤에 서 있었다.
“쿵!”
금정벽원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8급 요수의 정점에 선 존재가 주먹 한 방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일이었다.
엽운의 주먹에 담겨있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란 장로 일행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있었다.
연기경의 정점에 달한 그들의 수위라면 금정벽원 쯤이야 간단히 죽일 수 있지만, 엽운처럼 주먹 한 방으로 강철같은 금정벽원의 배에 구멍을 내어 죽이는 짓은 할 수 없다.
엽운은 이미 란 장로를 뛰어넘었으며, 촉기경의 힘에 한 걸음 다가섰다고 할 수 있었다.
여명홍의 눈에도 놀라움이 가득했고, 평온하던 그의 심장이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엽운이 보여준 힘은 그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는데, 대진제국에서도 연기경 1중의 무인이 연기경 정점의 힘을 내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첫번째 시험에서 보여준 수위는 결코 연기경 1중이 아니었지만, 여명홍은 분명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이며 엽운의 수위는 여전히 연기경 1중일 것이라 생각했다.
대진제국에서 와서 수선의 천재를 알아보는 안목만큼은 진나라에 갇혀있던 단진풍 같은 이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런데 그런 그 조차 연기경 1중의 수위로 이 정도 강력한 주먹을 날릴 수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단진풍은 진작에 넋이 나갔다.
8급 요수 금정벽원의 실력은 그 역시 당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만약 엽운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면 주먹 한 방에 금정벽원을 죽이긴 커녕 단단한 육체에서 전해지는 반동에 의해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젠장, 저 녀석 언제 수위가 저 모양이 된 거야. 숨도 못 쉬게 하네 정말.”
단진풍의 표정에는 충격이 가득했다.
다른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경악을 금치 못했고,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장면을 믿을 수 없는 것 같았다.
“목 장로님. 저 통과한 거 맞죠?”
엽운은 주먹을 거두고 손에서 보라색 빛을 번쩍이며 자영검을 꺼냈다.
자영검으로 금정벽원의 요핵을 꺼내 뇌음화룡계에 집어넣었다.
목 장로는 놀란 표정으로 엽운을 보더니 입가를 두어번 씰룩이며 말했다.
“물론이다. 너는 내일 곧장 무영봉에 출두해 심성 시험을 보면 된다.”
엽운은 껄껄 웃으며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목 장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여 사제, 지금부터 네 실력을 보여 봐. 이제 그 누구도 허튼 수작을 부리지 못 할테니까.”
여명홍의 얼굴에 감격이 스쳤다.
만약 조금 전 자신이 금정벽원을 상대했다면 결코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을 알고 있었다.
“엽운, 너 이 자식 언제 이렇게 수위가 강해진 거야? 사람이 맞기는 한 거냐.”
단진풍이 다가와 눈살을 찌푸리며 엽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단진풍. 확실히 넌 수위의 상승이 너무 느려. 더 노력하지 않는다면 내문에서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될 거야. 양 사형 기억나지? 그리고 모용무흔 같은 사람도 있으니, 내문은 외문처럼 쉽지 않을 거야. 자칫하면 누군가의 계략에 빠질지도 모른다고.”
엽운은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
“이제 네가 우두머리니까, 네가 우릴 지켜줘야 해.”
단진풍은 헤헤 소리를 내며 웃었는데, 오만방자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