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3 화 암산
빽빽한 핏자국 사이에서 긴 바늘이 튀어나와 단진풍을 뒤덮었다.
8급 요수는 순간에 이처럼 무시무시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공격은 빙설갈사의 주된 공격 수단이 아니었고, 이 새빨간 바늘이야 말로 그가 가진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단진풍은 이 핏방울이 빙설갈사가 부상을 입어 토해낸 피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것은 빙설갈사가 독침에서 뿜어낸 붉은 액체로, 피 따위가 아니었다.
빙설갈사는 8급 요수 중에서도 특출 난 존재인데 어찌 단진풍의 일격에 목구멍이 뚫려 죽음을 맞이하겠는가?
단진풍은 마냥 기뻐하느라 이를 눈치 채지 못했다.
자신이 빙설갈사를 죽인 줄로만 알았고, 새빨간 바늘이 눈에 보였을 때는 이미 늦었다.
빽빽한 핏빛 바늘이 곧장 날아와 순식간에 그의 앞에 다가왔다.
어느 방향으로 피해도 전부 피할 수는 없었다.
모두들 숨을 죽였다.
곧 수위가 연기경 4중에 달한 제자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만약 저런 공격을 당한다면 도무지 막아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순간, 단진풍의 얼굴에서 기쁨이 사라졌고, 충격만이 남았다.
하지만 조금의 놀란 기색도 없이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동시에, 온통 새카맣고 주먹만 한 크기를 가진 물건을 꺼내 허공을 향해 던졌다.
수많은 핏빛 바늘은 순간 부름을 받은 것처럼 그 새카만 물건을 향해 솟구치며 “땡땡” 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수백 개의 핏빛 바늘은 놀랍게도 새카만 물건으로 끌려가 딱 달라붙었다.
단진풍은 고함을 지르며 파일창을 다시 한 번 내질렀다.
모든 진기가 순식간에 창에 주입되어 빙설갈사의 목구멍을 파고들었다.
한 장 가까이 되는 길이의 창은 진기로 강화되어 빙설갈사의 목구멍을 지나 몸통을 찔러 등을 뚫고 나왔다.
선혈이 낭자했다.
단진풍은 빠르게 움직이며 주먹을 내질러 빙설갈사를 날려버렸다.
그리곤 대일장갑이 낼 수 있는 최대의 힘으로 빙설갈사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펑!”
굉음이 울리며 8급 요수 빙설갈사는 박살이 나버렸고, 사방으로 흩날리는 살점이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모든 이들이 크게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고, 심지어 엽운 마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단진풍이 이미 패배했다고 생각했으며, 빙설갈사의 독침에 찔리는 순간 온 몸이 얼어붙어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단진풍이 새까만 무언가를 꺼내 바늘을 전부 빨아들이고 승부를 뒤집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고작 8급 요수인데 뭘 그렇게들 놀라고 그래.”
단진풍은 손뼉을 치며 내려왔다.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뒤집혔다.
이 녀석은 하마터면 죽을 뻔 했으면서도 허풍을 떨고 있었다
“단 사형, 괜찮은 거죠? 아 맞다. 방금 전 그 까만 물건은 도대체 뭔가요? 수백 개의 바늘을 한 번에 끌어당기다니 놀랍군요.”
여명홍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단진풍은 손을 내밀어 좀 전의 까만 물건을 꺼내들었다.
수백 개의 붉은 바늘은 이미 종적을 감추었는데, 아마 저물대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이게 뭐죠?”
여명홍은 호기심에 물었다.
“너희들은 이게 뭔지 모르겠지? 다들 촌구석에서 왔으니 아마 본적도 없을 거다. 근데 명홍 너는...아니 어떻게 너까지 모르는 거야?”
단진풍이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명홍은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본 적도 없어요.”
“이건 인진석이라고 하는 물건이다. 진기와 영기가 담긴 물체를 끌어당길 수 있지. 진기나 영기가 담겨있기만 하다면 어떤 물건도 이 녀석의 흡수를 피할 수 없어.”
단진풍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라고요? 정말 그렇다면 엄청난 보물 아닙니까. 단 사형의 집안은 지위가 높아 이런 보물도 가질 수 있나 봐요.”
여명홍은 어안이 벙벙해져, 크게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헉!”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만약 이 검은 물체가 단진풍이 말한 인진석이 맞다면 그의 앞에서는 영기를 꺼낼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영기와 진기가 담긴 물건은 죄다 빨아들인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영기로 어찌 공격을 하겠는가?
“세상에 저렇게 신기한 물건이 있다니, 정말 불가사의 하군.”
“단진풍 녀석 저런 보물을 숨기고 있었다니.”
“그러게 말이야. 저것도 분명 평소에는 잘 안쓰는 물건인데 오늘에서야 꺼낸 거겠지. 나중에 저 녀석과 붙게 되면 조심해야겠어.”
“너희들 말이 맞아. 만약 훗날 대련에서 우린 본 적도 없는 물건을 꺼낸다면 몹시 불리해질 것이고, 자칫하면 패배 할 수도 있어.”
“다들 저 놈과 붙게 되면 조심해.”
한 무리의 제자들 사이 의견이 분분했는데,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히려 란 장로 일행은 잠시 놀라긴 했지만 곧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엽운 역시 마찬가지로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엽 사형, 왜 웃는 거에요?”
여명홍은 엽운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물었다.
“별 거 아니야. 시험이 끝날 때 까지 조심하도록 해. 8급 요수를 만나도 당황하지 말고. 너는 방어에 능하고 진기의 지속력이 기니까 분명 통과할 수 있을 거야.”
엽운은 웃음을 지으며 그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렸다.
“엽 사형의 지적 감사합니다.”
여명홍은 고개를 끄덕이며 엽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명홍은 걸어가 두 명의 제자 뒤에 줄을 서 두번째 시험에 참가할 준비를 했다.
“엽운, 너 이 자식 몰래 웃기나 하고 말이야. 뭐가 그렇게 우스워?”
단진풍이 걸어와 나지막이 물었다.
엽운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인진석이라는 물건 말이야, 정말 그렇게 쓰는 거 맞아?”
“물론이지. 효과는 너도 봤잖아. 감탄스럽지?”
단진풍은 입가를 씰룩이며 살짝 머뭇거리다 말했다.
“내가 볼 땐 전갈 독침처럼 약간의 영기를 가진 물건에만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 아주 가벼운 것들 말이야.”
단진풍은 그의 어깨를 덥석 잡아끌며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너 이 자식, 알았으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라. 목소리를 낮추란 말이야.”
이 인진석이 정말 단진풍의 말대로 영기와 진기를 가진 보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물건이라면 그 가치는 가늠할 수도 없을 것이며, 단진풍이 가문에서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다 한들 이 정도 보물을 하사받지는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신비한 효과를 가진 물건을 어찌 진나라 왕실이 가지고 있겠는가?
따라서 이 인진석의 효과는 한계가 있고, 빙설갈사의 꼬리처럼 가볍고 작으며 적은 영기를 가지고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면 끌어당기지 못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이를 한 동안 깨닫지 못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리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인진석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쓸모없는 물건은 없다는 속담처럼, 인진석은 평소 수선의 길에 있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지만 오늘 단진풍은 이 인진석 덕분에 8급 요수 빙설갈사가 가진 최강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중상을 입었을 것이고, 자칫하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시험은 계속해서 진행되었고, 이어서 두 명의 제자가 아주 평범한 8급 요수를 뽑았다.
한 명은 완강히 맞섰지만 다른 한 명은 패배하여 탈락하고 말았다.
무대에서 걸어 내려오는 두 사람의 모습은 아주 달랐는데, 한 사람은 기뻐 날뛰었고 한 사람은 처량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것은 내문 제자 시험이기에, 모든 이가 통과할 수는 없었다.
성공한 이가 있다면 실패하는 이도 있다.
“다음, 여명홍.”
목 장로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울려 퍼졌다.
여명홍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고개를 돌려 엽운을 한 번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요.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별안간 엽운의 목소리가 천천히 울렸다.
그의 목소리는 덤덤했고 조금의 반항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엽운, 무슨 짓이냐? 순서대로 나오라고 하지 않았느냐?”
란 장로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쳤다.
비록 엽운의 수위가 자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이고, 어쩌면 그들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외문의 장로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위엄이 있었다.
“맞다. 소란 피우지 말거라 엽운. 이번 시험은 통과한 셈치고 내일 무영봉에서 있을 심성 시험을 기다려라. 이런 8급 요수쯤은 너에게 한 주먹 거리 밖에는 안 된다.”
목 장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게도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엽운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목 장로님. 이번 내문 제자 시험은 공정한 것입니까?”
“물론이다. 내가 있는데 누가 감히 부정행위를 하겠느냐?”
목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그저 공정한 것인지 아닌지를 물었습니다. 누가 부정행위를 한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고요. 그렇게 흥분하실 것 없습니다 목 장로님.”
엽운이 천천히 말했다.
목 장로은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뭘 묻고 싶은 게냐?”
엽운은 손을 들어 목 장로가 데려온 제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여 사제는 아직 요수를 뽑지도 않았는데 저 자는 어째서 벌써 우리 안의 요수를 풀어주려고 하는 겁니까?”
“그런 일이 있었나? 섭림, 뭘 하는 게냐?”
목 장로는 입가를 두어 번 씰룩이더니 다급히 소리쳤다.
제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목 장로님, 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옆에 서 있었을 뿐 입니다. 여 사제가 번호를 뽑으면 요수를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엽운, 보았느냐. 섭림은 그저 옆에 서 있기만 했다. 번호를 뽑기도 전에 요수를 풀어주려 한 게 아니란 말이다.”
목 장로는 웃으며 설명했다.
엽운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귀찮은 일 만들 필요 없겠네요. 섭림 사형께서 우리 안의 요수를 풀어주시지요. 제가 시험을 치르겠습니다.”
목 장로는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내가 말했 듯 넌 시험을 볼 필요가 없다. 그만 물러나고 여명홍을 이리로 데려와라.”
엽운은 갑자기 큰 소리로 몇 번 웃더니 곧 눈에서 살기를 번뜩였다.
“목 장로님. 보아하니 당신과 모용세가의 관계가 아주 좋은 모양입니다!”
순간 그의 두 눈에서 빛이 번쩍이며 기세가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