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1 화 완전한 흡수
진기가 천천히 몰려왔고, 무정검의 힘은 예상보다 훨씬 강해졌다.
엽운은 굳은 표정으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이 진기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모용무흔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최근 엽운은 어쩌다 기우를 맞닥뜨려 비범한 영기나 보물들을 얻은 모양인데, 전부 다 꺼내게 되면 막아내기 상당히 번거로울 것이다.
하지만 모용무흔이 생각지 못한 것이 있는데, 바로 엽운이 칠 장로의 약주를 복용한 것이다.
약주를 복용한 엽운과 진기의 대결을 펼치는 것은 정말이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모용무흔은 그 약의 냄새를 맡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한편으론 이 약의 향기에 비범한 힘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놀랐다.
무영봉 전체에서 이런 향기를 가진 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는데, 칠 장로가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비록 모용무흔이 천촉봉을 떠나긴 했지만, 엽운 등의 인물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약 냄새를 맡는 순간 곧 바로 칠 장로를 떠올렸다.
모용무흔은 저도 모르게 냉소를 지었다.
칠 장로의 수위는 확실히 아주 높은데, 소문에 의하면 금단경까지 반걸음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 정신이 불안정한 노인네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고, 엽운이 칠 장로의 친전 제자가 된다 한들 아무렇지도 않았다.
결국 형인 모용무정에 비견 될 수 있는 사람은 천검종 전체에 두세 명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물 안 개구리 주제에, 감히 하늘을 넘보는구나.”
모용무흔은 냉소를 짓곤 손에서 진기를 뿜으며 강하게 짓눌렀다.
엽운은 엄청난 힘이 거대한 파도처럼 세차게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얼굴은 온통 붉어졌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한 가득 맺혔는데, 금방 증발해버렸다.
“엽운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군. 수위를 빠르게 올리긴 했지만 결국 혈통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이를 바라보던 대장로 순우연은 저도 모르게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서 있던 란 장로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엽운은 근본이 부족하긴 하지만 절대 무모한 녀석은 아닙니다. 모용무흔과 진기의 대결로 승부를 내려 한 이상, 분명 계획이 있을 겁니다.”
“무슨 계획이 있겠는가? 칠 장로의 영약을 마시면 빠르게 진기를 회복해 무흔을 쳐부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정말이지 유치하군.”
목 장로는 기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순우연과 란 장로는 눈살을 찌푸리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다른 쪽에선 제자들이 숨을 죽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엽운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모용무흔은 너무도 제멋대로 날뛰었고, 시험에 참가하는 제자들은 안중에도 없었으며 마치 하인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모용무흔이라는 녀석 정말 엄청나군. 진기와 수위로 엽운을 찍어 누를 수 있다니.”
단진풍이 조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당장 달려 나갈 수 없음이 한스러웠다.
“단 사형, 조급해 할 것 없습니다. 엽 사형이 가장 간단하고도 위험한 방식을 선택한 이상, 무언가 계획이 있는 게 분명해요. 우린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여명홍은 엽운에게 조언을 받은 이후 마음속의 초조함이 전부 사라지기라도 한 듯 어딘가 평온해졌다.
“지켜보긴 개뿔, 만약 엽운이 막아내지 못한다면 결과는 딱 하나야. 안개가 되어 사라지는 거지. 그런데 어떻게 조급해하지 않을 수 있어? 저 녀석이 죽으면 너와 나에게도 좋은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모용무흔 녀석이 절대로 우릴 놓아주지 않을 거라고.”
단진풍은 눈살을 찌푸리며 잔뜩 성을 냈다.
“천검종은 모용무흔의 기만을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또 엽운 사형이 지금처럼 당하고 있는 것은 분명 무언가를 대비하려는 것 같습니다. 판도를 뒤집을 만한 무언가가 있을 거에요.”
여명홍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는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단진풍은 콧방귀를 한 번 뀌곤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연무전 광장 위, 두 명의 소년이 조용히 서 있었다.
무정검과 자영검은 서로 교차하였고,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진기가 모용무흔의 손에서 빠르게 뿜어져 나와 전부 무정검에 주입되며 엽운을 거세게 짓눌렀다.
모용무흔은 자신의 진기에 당해 오장육부가 박살난 엽운을 이미 보기라도 한 듯 냉소를 지었다.
엽운은 굳은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별안간 두 눈에서 빛을 번쩍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전부 흡수해.”
두 눈 사이에서 은은한 흑백의 빛이 번쩍이더니 눈에서 소용돌이가 생겨났고, 이내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모용무흔은 엽운의 저항이 약해진 것을 느끼고 크게 기뻐했다.
엽운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증거였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진기가 순식간에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 두 종류 각기 다른 진기가 마치 물과 불처럼 기승을 부리며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다.
엽운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한 걸음 물러났다.
순간 모용무흔은 더욱 강력한 진기를 내뿜었고, 진기는 자영검을 타고 엽운의 손바닥으로 들어갔다.
진기의 대결에는 두 가지 결과 밖에 없다.
하나는 두 사람이 대등하여 서로를 어찌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한 쪽의 몸에 진기가 주입되어 죽거나 중상을 입는 것이다.
모용무흔의 진기는 고삐가 풀린 야생마처럼 엽운의 경맥을 타고 들어가 온 몸의 진기를 모조리 파괴하고 오장육부와 뼈와 살을 모두 갈기갈기 찢어버리려 했다.
“죽어라! 미련한 우물 안 개구리 자식!”
모용무흔이 손바닥을 한 번 밀자 무정검의 칼날이 빛을 번쩍이며 하늘 전체를 뒤덮었다.
칼날이 번쩍이는 순간 모용무흔은 엽운이 조금의 공포나 억울함도 없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음을 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그에게 이런 믿음을 주는 것인가?
아니면 운명을 받아들인 것인가?
모용무흔은 이런 것들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오직 자신의 진기가 엽운의 몸을 파고 든다면 죽음뿐임을 생각했다.
솟구치는 진기는 마치 포악한 용처럼 엽운을 찢어발기려 했다.
하지만 모용무흔의 진기가 엽운의 몸에 주입 된 뒤, 놀라운 일이 생겼다.
엽운의 몸은 텅텅 비었고, 그 어떤 진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진기가 모두 소모되었다 해도 조금의 실낱같은 흔적은 남기 마련인데, 지금 그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고, 마치 수련이란 걸 해본 적 없는 육체로 변한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지? 이상하군.”
모용무흔은 어안이 벙벙했다.
손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던 진기가 멈췄다.
바로 그때, 모용무흔은 엄청난 흡입력이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곤 체내의 진기가 통제를 잃은 듯 무정검에 주입되는 것을 느꼈고, 진기는 자영검을 통해 엽운의 손바닥으로 흘러들어가 그의 몸에 주입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모용무흔은 마음속에서 불길한 느낌이 떠올라 진기를 전부 거두려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진기는 그의 통제를 벗어나 두 자루의 검을 통해 엽운의 몸속으로 끊임없이 주입 되었고,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엽운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눈에서 흑백의 빛이 다시 한 번 번쩍였고, 이어서 기승을 부리는 진기 위에 떨어졌다.
선마지심은 하나의 소용돌이가 되어 눈 깜짝할 사이 하늘을 가득 메운 진기를 남김없이 흡수했다.
선마지심은 이따금 꿈쩍도 하지 않을 때가 있었고, 엽운 조차 그것을 불러내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엽운이 진정한 위험에 처했을 때면 선마지심은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 그를 지켰다.
잠깐 사이 엽운의 몸속으로 주입 된 진기가 깨끗이 흡수 되었다.
이어서 엽운은 순수한 힘이 선마지심에서 흘러나와 그의 몸속으로 자연스레 흡수되는 것을 느꼈다.
엽운은 상쾌함을 느꼈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던 진기가 전부 회복되었고, 오히려 진기의 품질은 전보다 더 좋아졌다.
자영검에서 빛이 번쩍였고, 거대한 진기가 그 속으로 주입되자 순식간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흔 사형, 네 진기로는 아무래도 날 죽일 수 없는 모양이군.”
엽운은 검을 거두고 자리에 서서 옷자락을 펄럭이고 있었다.
무정검 속의 진기가 사라졌고, 조금의 위력도 남지 않았다.
모용무흔은 무정검을 거두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싸늘한 눈빛으로 엽운을 노려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한 것이냐?”
모용무흔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엽운은 어깨를 으쓱이며 조롱을 담아 말했다.
“무흔 사형,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네. 모든 이에게는 각자 비밀이 하나씩 있지 않겠어? 그리고, 네 수위도 별 볼일 없네. 촉기경에 도달하면 다시 날 찾아와 물어보던가. 이제 볼 일 없으면 가도 돼. 내문 제자 시험을 방해할 생각 말고.”
모용무흔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너와 나의 원한은 이쯤에서 잠시 내려놓고, 네가 내문 제자가 되면 알려주마. 내게 미움을 사면 어떻게 되는지 말이다.”
“무흔 사형. 그 말은 이미 여러 번 했잖아요. 창의력을 좀 가져보는 게 어때요?”
단진풍은 비웃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먼 곳을 향해 소리쳤다.
모용무흔은 자리에 멈춰서더니 몸을 돌려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단진풍, 네가 나서려는 샘이냐?”
단진풍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장난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시죠. 털어놓고 싶으면 엽운을 찾아가십시오.”
단진풍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조롱이 가득했다.
모용무정의 동생씩이나 되어, 높은 자리에서 란 장로 등도 쩔쩔 매게 만들고, 고고한 자세로 모두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니.
“너도 죽고 싶구나!”
모용무흔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
“무흔 사형, 맨날 때리겠다느니 죽이겠다느니, 품격이라곤 하나도 없군요. 평생 형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모용무정이 어디서 시비 거는 것 본 적 있습니까? 잘 보고 배우시죠.”
단진풍은 어깨를 으쓱이며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모용무흔의 표정이 순간 싸늘해졌다.
차가운 눈빛으로 단진풍을 노려보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흔 사형, 무영봉에서 다시 만나자고.”
엽운은 뒷짐을 지고 서서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으로 모용무흔을 쳐다봤다.
모용무흔은 그의 목표가 아니다.
심지어 모용무정도 그의 목표가 아니었으며 금단 대도 역시 아니다.
그의 목표는 흐릿한 꿈속에서 본 두 청년 남녀이다!
수천의 금갑신병에게 쫓기던 남녀!
선마지심의 주인이었던 그 남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