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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80화 (180/227)

제 180 화 고전

별안간 수많은 검기가 나타나 하늘을 갈랐다.

검기는 무정했고, 천도 역시 무정했다.

수천 개의 검기는 한 데 모여 천검을 이루었고 무정히 엽운을 베었다.

모든 이들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공격은 그들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고, 란 장로 일행조차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숨을 들이마셨다.

하늘 위에선 수천 개의 검기가 천검을 이루며 희미한 암홍빛을 발하며 연무전 광장 위의 하늘을 온통 암홍빛으로 물들였다.

거대한 압력이 하늘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수천 개의 날카로운 칼날처럼 모두의 마음에 박혔다.

엽운은 조용히 서서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에서는 조금의 당황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종횡무진하는 천검이라, 과연 강력하네.”

엽운은 별안간 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 위압을 마주하고도 웃음이 나온다는 것은 무정천검이 그에게 가하는 압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는 뜻이다.

비록 엽운의 경계는 평범했지만, 그의 영혼과 의지는 몹시 강력했고, 촉기경 이하에서 최강이라는 말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용무흔의 검에 담긴 위세는 분명 비범했다.

하지만 결국 그의 경계는 촉기경의 수위에 달하지 못했으니, 촉기경 만큼 강력한 위압을 뿜을 수는 없었고 큰 압력을 가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 검의 진정한 위력은 너무도 강력하여 엽운의 뇌운전광검 제 3식 신뇌멸세 보다도 한참 강했다.

엽운이 가장 위협을 느낀 것은 검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각도에서도 검을 피할 수는 없었고, 그렇기에 받아치는 수밖에는 없다.

엽운이 하늘을 바라보니 무정검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위세는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허공을 갈라버린 것 같았다.

손에서 보라색 빛이 번쩍이며 물결처럼 일렁였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내야 한다.

진기가 체내에서 솟구쳤고, 순식간에 모두 자영검 속에 주입되었다.

눈에서 빛을 번쩍이며 검을 내질렀다.

천검이 매섭게 날아왔고, 한 줄기 보라색 빛은 마치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처럼 밤의 장막을 갈랐다.

“땡!”

두 검이 부딪히자 엽운은 엄청난 힘이 몸을 날려 보내는 것을 느꼈다.

두 힘이 허공에서 펑펑 소리를 내며 연신 폭발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떨어져 내려오던 암홍빛의 천검이 여세를 줄이지 않고 매섭게 광장의 지면을 때리자 딱딱한 지면에 반 촌 깊이의 균열이 생겼다.

시험에 참가한 제자들은 연무전 광장의 지면이 어떤 재질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란 장로와 대장로 순우연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튼튼한 지요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연기경 수위의 공격을 견뎌낼 수 있게 되어있다.

상품 영기를 사용한다 해도 지요석에 조그만 흠집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무정검의 일격은 엽운을 날려 보낸 뒤 지요석에 반 촌 깊이의 자국을 남겼으니, 그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서로를 마주보는 란 장로와 순우연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 일격에 맞는다면 엽운보다 참혹한 최후를 맞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모용무흔은 싸늘한 눈빛으로 날아가는 엽운을 바라보며 검을 집어넣고 뒷짐을 졌다.

입가에 조롱 섞인 미소가 번졌는데, 함부로 자신에게 덤빈 엽운을 비웃는 것이었다.

이 일격은 대량의 진기가 소모되며 강제로 시전할 경우 그의 체내에 약간의 내상을 남기기까지 하지만, 엽운을 죽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정말 우둔하기 짝이 없구나. 그러니까 그렇게 죽는 거다.”

잠시 어리둥절하던 목 장로는 곧 펄쩍 뛰며 환호를 질렀다.

“어떻게 죽는다고?”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엽운이 있던 방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 그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손에 쥔 작은 청목단병의 뚜껑을 열자 약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입가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도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청목단병 속 약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복용했다.

그리곤 한 걸음을 내딛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무흔 사형, 방금 전 일격의 위력은 정말 예상 밖이었어.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모용무흔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엽운이 그의 검에 맞고도 가볍게 일어나다니, 어떻게 된 일인가?

“좋았어!”

란 장로가 별안간 소리치며 말했다.

“이 일격을 견뎌냈으니, 무흔 너도 약속을 지켜야겠지?”

모용무흔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끼어 들 일이 아니니 썩 꺼져라!”

란 장로는 어안이 벙벙했다.

곧 그의 얼굴이 보랏빛으로 질리고 온 몸이 떨려왔다.

외문의 장로로써, 고위층에서 그를 부를 때에도 모용무흔처럼 꺼지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는 못했다.

“모용무흔, 말이 조금 지나치구나.”

순우연은 그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당신도 저 자와 마찬가지야. 입 다물어.”

모용무흔은 노려보며 더욱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순우연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엽운은 눈을 감았다.

방금 전의 일격에 입은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몰래 자운단을 하나 복용하였고, 칠 장로의 약주도 전부 입속에 털어 넣었기에 체내의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으며 진기 또한 점점 거대해졌다.

“무흔 사형, 약속을 어길 셈이군. 뭐 상관없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봤으니까. 모용 가문의 인간들은 죄다 심성이 그 모양인가보지?”

엽운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모용무흔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엽운이 서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순간 머릿속에 끊임없는 교전이 일어났다.

만약 지금 떠난다면 신용을 지키는 셈이고, 체면도 살게 된다.

그러나 만약 다시 공격한다면 신용이라는 두 글자는 오늘부로 그에게서 멀어지게 되며,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소문이 천검종 전체에 돌 것이다.

하지만 지금 죽이지 않고 놓아준다면 훗날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가서 다시 대한다면 귀찮은 일만 더 많아질 것 같았다.

“네가 내 공격을 한 번 받아냈으니 나도 네 공격을 한 번 받아주마. 그럼 공평하겠지.”

모용무흔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방이 시끄러웠다.

공개적으로 뻔뻔하게 약속을 어긴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지적할 수 없었다.

엽운은 그와 맞설 수 있었지만, 다른 이들의 수위는 아직 한참 부족하기에 모용무흔이 분노하여 공격해온다면 아무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순간 광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래? 보아하니 내가 널 제대로 본 모양이군.”

엽운은 빙긋 웃었고, 손에 쥔 자영검에서는 물결이 일렁였다.

“그렇다면 덤벼라!”

모용무흔이 음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렇게 하지. 좀 더 간단한 게 좋겠네.”

엽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자기 손에 쥔 자양검을 내질렀다.

어떤 화려함도, 기교도 없이 간결하게 검을 내질렀고, 속도 역시 아주 느렸다.

그러나 피할 수는 없었다.

모용무흔은 이미 이 일격을 받아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금 엽운의 체내에선 진기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칠 장로의 약주 잔액은 아직 완전한 효능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만약 지금 체내의 진기가 모두 사라진다면 약주의 힘이 진기를 빠르게 보충해 줄 것이다.

따라서 그는 가장 간단한 수를 선택한 것이다.

모용무흔은 엽운이 뭘 하려는지 분명히 알고 저도 모르게 눈썹을 살짝 씰룩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도 망설이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무정검에 진기를 주입시키며 내질렀다.

검 끝이 부딪히자 가벼운 소리가 울려퍼졌는데, 상상하던 것처럼 거대한 힘이 느껴지진 않았다.

검 끝과 검 끝이 아주 정확히 부딪혔다.

두 사람은 조용히 광장 위에 서 있었다.

엽운과 모용무흔의 손에 쥐어진 검이 서로 엇갈렸고, 승패는 갈리지 않았다.

“비긴 건가?”

“위 아래가 가려지지 않는 것 같은데,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군.”

“방금 모용무흔이 보여준 수위는 이미 연기경 정점의 힘을 넘어섰어. 거의 촉기경에 가까운 힘이었다고.”

“맞아, 그래서 방금 전 엽운이 날아간 거지. 지금은 저 둘의 전투가 더 험악해졌고, 진기가 서로 맞부딪히고 있어.”

“보아하니 두 사람 사이의 원한은 한 사람이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정도인가 봐.”

“어차피 우린 그냥 구경이나 하는 거잖아. 저 두 녀석의 수위는 이미 우리 상상을 한참 벗어났으니까, 둘다 다치면 제일 좋겠군.”

“쉿, 입 다물어. 넌 살고싶지 않을지 몰라도 난 살고싶다고.”

광장 위에는 두 검이 교차했고, 엽운은 엄청난 힘이 상대방의 칼끝에서 전해지며 오장육부를 모조리 부숴버리려 하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진기 공격의 기묘한 점이다.

진기는 확실히 상대의 몸에 침투해 모든 것을 찢어버린다.

이 지경에 이르면, 이미 화려함 따위는 없어지며, 오직 진정한 실력만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낸다.

만약 막아내지 못한다면 중상을 입게 되며, 심지어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진기의 대결에서 상대방의 진기가 몸속에 들어오면 상대방의 진기에 의해 폭발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진기의 대결을 펼칠 때는 누구도 상대방의 진기가 몸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가능한 몸 밖에서 소모되게끔 한다.

이것은 가장 위험한 전투이자, 가장 화려하지 않은 전투이다.

하지만, 이 역시 엽운이 계획한 수였다.

지금 이 순간 그는 두 사람의 진기를 동시에 쓰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칠 장로가 요구한 신비한 점이다.

엽운은 믿지 않았다.

지금 그의 진기와 수위는 모용무흔보다 조금 약했다.

하지만 두 명 분의 진기라면 모용무흔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모용무흔은 엽운이 이처럼 가장 기본적이고 간단한 방법으로 승부를 가리려 하는 것을 보고, 무정검과 자영검이 교체하는 순간 입가에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모용 가문의 제자에게 진기를 빠르게 보충할 수 없는 상황이 오겠는가?

그럴 리 없다!

모용무흔은 손을 들어 단약 한 알을 꺼내 입 속에 집어넣었다.

순간 엽운은 무정검에서 전해져 오는 힘이 더 이상 당해낼 수 없을 만큼 강해졌음을 느꼈다.

“이건 무슨 단약이지? 순식간에 모용무흔의 진기를 이 정도 까지 끌어올리다니.”

엽운은 조금 놀랬다.

모용무흔이 진기를 회복시켜주는 단약을 분명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 신기한 약을 꺼낼 줄은 몰랐다.

순간, 두 사람의 진기가 맞부딪혔고, 엽운은 조금 뒤쳐졌다.

만약 모용무흔의 진기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진기가 몸 안에 들어와 모든 것을 부숴버릴 것이다.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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