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9 화 천검무정
“입은 그만 놀리고 덤비거라. 너에겐 딱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
모용무흔은 싸늘하게 말했다.
“아, 무흔 사형이 먼저 들어오는 거 아니었나? 한 번에 승부를 내자고.”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모용무흔은 냉소하며 말했다.
“나는 너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마지막 한 번의 공격을 해볼 수 있게 말이다.”
엽운이 말했다.
“무흔 사형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사양하지 않겠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엽운의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곧 사라졌다.
보라색 빛이 손바닥에 흐르더니 천지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며 번개가 요동쳤다.
“신뇌멸세!”
엽운은 꾸물대지 않고 곧바로 최강의 일격을 꺼냈다.
모용무흔이 자신을 깔보는 이상 뇌운전광검 제 3식을 보여주는 수밖에.
구름이 모여들었고 번개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사람 팔 만한 굵기의 번개가 구름에서부터 매섭게 떨어져 내려와 모용무흔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모용무흔은 엽운이 이토록 과단성 있게 공격해 올 줄은 몰랐다.
말이 끝나는 순간부터 번개가 떨어지기까지는 고작 호흡 한 번의 시간이었다.
사람 팔만 한 굵기의 번개는 몹시 강력했고, 번개 속에 담겨있는 위력은 모용무흔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순식간에 모용무흔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참고로, 수위는 연기경 6중이긴 하지만 이 자리에 모든 이들 가운데 그에게 대적할 수 있는 상대는 없었다.
목 장로나 란 장로 같은 사람들만 해도 수위가 진작 연기경 정점에 이르렀지만 그를 상대한다면 열 수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엽운의 공격은 놀라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눈에서 빛을 번쩍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머리 위에 응집되어 물결처럼 일렁이는 거울을 만들어냈다.
쾅!
천둥 번개가 내리쳤고, 번개는 거울 위를 매섭게 때렸다.
물결 같은 거울은 순식간에 부서졌고, 번개는 몸에 적중했다.
모용무흔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재빠르게 수십 장 너머로 물러났다.
전혀 다치지 않은 것 같았지만, 그가 방어 영기를 지니고 있지 않았더라면 번개는 그에게 큰 부상을 입혔을 것이다.
“어떻게 된 거지?”
모용무흔은 매섭게 엽운을 노려봤다.
이 일격의 위력은 그의 예상을 아득히 벗어났다.
연무전 대문의 입구에 있던 란 장로와 그 일행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눈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눈치였다.
“방금 내가 잘못 본 게 아니겠지. 엽운의 일격이 모용무흔을 물러나게 만든 건가?”
대장로 순우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맞습니다. 방금 전의 일격은 뇌운전광검 제 3식 신뇌멸세 입니다.”
란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불가능해. 뇌운전광검은 번개의 영기를 깨우쳐야만 수련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지극히 평범한 검법에 지나지 않고 간신히 선기의 행렬에 낄 수 있는 수준이다. 우리 천검종의 천백 년 역사 동안 번개의 영기를 깨우친 선조는 다 해봐야 몇 명 되지도 않고, 수백 년 동안 이를 깨우친 제자가 없었다. 그런데 이 검이 어찌 뇌운전광검의 3식이란 말이냐.”
목 장로가 소리쳤다.
란 장로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만약 뇌운전광검이 아니라면 목 장로가 보시기엔 무엇인 것 같습니까?”
“제대로 보지 못했다만, 손에 쥔 저 장검의 능력일 수도 있지. 어쩌면 검에 번개의 힘이 담겨있을 수 있다. 상품영기라면 이종 영기의 진법을 배치해 번개, 화염, 얼음 등의 공격을 쓸 수도 있다.”
목 장로가 정색하며 대답했다.
“아, 그렇습니까? 설마 목 장로님은 엽운의 손에 쥔 저 장검을 노리는 것입니까?”
란 장로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너....”
목 장로는 눈살을 찌푸렸고, 금방이라도 발작을 일으킬 것 같았다.
“자자, 목 장로님은 아마 모르실 겁니다. 엽운은 확실히 뇌운전광검을 수련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분명 번개의 영기를 가지고 있지요.”
대장로 순우연이 한 걸음 다가가 중재했다.
세 장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연무장을 바라봤다.
다른 한 편에서는 단진풍과 여명홍 제외한 모든 제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용무흔의 수위는 비록 확실하지 않지만, 목 장로가 그의 말에 따르는 것과 란 장로와 대장로 순우연의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미루어 보자면 적어도 그들보다 낮지는 않을 것이다.
형인 모용무정의 영향력에만 기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모용무흔의 수위가 란 장로 일행과 비슷하다면, 연기경 정점일 것이다.
그런데 엽운의 수위는 어떠한가?
비록 그가 시험 중 진화성과 종응을 죽였다지만, 그래봐야 연기경 3중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방금 전의 신뇌멸세는 모든 이의 상상을 한참 벗어났다.
“방금 내가 잘못본 거 아니지. 저 번개 엽운 사형이 날린 거 맞지?”
“나도 제대로 못 봤어. 아마 그럴 거야.”
“불가능해. 이 정도 공격이라면 우리 정도는 순식간에 먼지가 되어버릴 거라고.”
“다들 저 보라색 검 봤지, 아마 저건 상품영기일 거야.”
“이 멍청한 녀석들, 식견이라곤 전혀 없구나. 잘 들어라. 엽운 사형의 수위는 이미 연기경 정점에 오른 거야. 우리가 그의 실력을 전혀 꿰뚫어 볼 수 없는 거 못 봤어? 아직도 엽 사형이 연기경 1중의 햇병아리인 줄 알다니.”
“맞아,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거구나. 모용무흔조차 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니, 믿을 수 가 없어.”
“아직 모르는 일이야. 어쩌면 방금 전의 번개는 정말 엽운 사형의 선기일 수도 있어. 내 기억으론 뇌운전광검이라는 선기가 있는데, 번개의 영기를 깨우쳐야만 시전 할 수 있다고 하더군.”
“번개의 영기는 천지에서 가장 신기한 영기 중 하나인데, 그게 아무나 깨우칠 수 있는 것 같으냐.”
“난 엽운 사형을 믿어. 그라면 분명 번개의 영기를 깨우쳤을 거야.”
한 무리의 제자들 사이 의견이 분분했다.
그들의 마음속 놀라움은 이미 더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연무장 위에는 엽운이 조용히 서 있었고, 가벼운 바람이 불자 옷깃이 펄럭이며 소리를 내었다.
“내가 널 얕봤구나.”
모용무흔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여전히 믿을 수 없는 듯한 목소리였다.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무흔 사형, 이제 당신 차례야. 내가 한 번만 막아내면 날 놔주는 거다.”
모용무흔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만약 방금 전의 일격이 엽운의 진짜 수위라면 그의 일격을 받아내는 것쯤은 너무도 쉬운 일일 것이다.
모용무흔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눈을 번쩍였다.
마치 무언가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그래. 네가 한 수만 받아낼 수 있다면 우리의 원한은 잠시 묻어두는 거다.”
모용무흔이 별안간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단호한 눈빛을 하고 말했다.
모용무정의 동생으로, 늘 남들이 우러러보는 존재였기에 누구도 그에게 대들지 못했고, 감히 도발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가 이런 신분으로 엽운에게 자신의 공격을 한 수만 막아내면 두 사람의 원한을 잠시 묻어두겠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옆에 있던 이들이 듣기에는 모용무흔이 엽운의 체면을 살려주려는 것 같았다.
모두들 엽운이 모용무흔의 일격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묻어 두겠다는 말은 이제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었다.
방금 엽운이 보여준 공격력이라면 모용무흔이 일격에 엽운을 격파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쩌면 반대로 그에게 당할지도 모른다.
지금 잠시 묻어둔다는 얘기를 한다면, 우스운 소리가 되지 않겠는가.
순간 이를 지켜보던 외문 제자들 사이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치 모용무흔이 아직까지 시치미를 떼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말이다.
하지만 란 장로 일행의 표정은 심각했다.
그들은 모용무흔에게서 믿을 수 없는 기세를 느꼈고, 단호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모용무흔이 그 정도로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이미 그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다.
이어지는 일격은 분명 비범할 것이며, 결코 란 장로 일행이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엽운은 막을 수 있을까?
모용무흔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은 엽운이었기에, 누구보다 먼저 상대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단호한 기세가 사방으로 퍼져 그를 뒤덮었다.
엽운은 모용무흔의 공격이 평범한 선기는 아닐 것임을 알고 어쩌면 그가 시전하고 싶지 않았던 비법 신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보라색 검이 살짝 흔들리며 물결처럼 살랑였다.
“너도 느꼈구나. 맞다. 이 공격은 우리 형의 살수 중 하나인 천검무정이다!”
모용무흔은 무표정이었다.
방금 전 엽운에게 당한 치욕은 깔끔하게 잊어버린 듯 아무런 감흥이 없어 보였다.
고풍스러운 장검 하나가 손바닥에서 부터 한 뼘 씩 천천히 나타났다.
“이 검은 시전하고 싶지 않았다. 내 수위로 이 검을 시전 하는 것은 아직 무리이고, 역으로 내가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
모용무흔은 음산한 눈빛으로 손에 쥔 장검을 바라봤다.
“아, 말해주는 것을 깜빡했군. 이 검의 이름은 무정으로, 상품 영기이지. 이 검에는 우리 형이 배치한 공격 진법이 걸려있다. 이 천검무정의 위력은 촉기경 초기의 수위로도 막아내기 힘든 수준이니 엽운 네놈도 남길 말이 있다면 어서 하거라. 이제 기회가 없을 테니 말이다.”
엽운은 무표정으로 말했다.
“거 참 대단하네. 맞다, 나도 당신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군. 나의 검은 보라색 물결이 치고 있지만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평범한 철로 만든 물건이야. 그리고 방금 날린 번개는 제법 괜찮았지? 그건 뇌운전광검이니 뭐니 하는 것인데, 9품 선기로 위력은 한계가 명확하지. 무흔 사형이라면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쉽게 막아낼 수 있을거야.”
담담한 그의 목소리 뒤에는 짙은 비아냥과 조롱이 묻어났다.
“하하, 맞아 맞아. 그 검은 그냥 쓰레기일 뿐이야. 우리가 길에서 주워 온 물건이지.”
단진풍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여명홍은 입을 씰룩였다.
하마터면 그도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두 사람 뿐 아니라 란 장로 일행도 살며시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지었다.
엽운의 손에 쥐어진 보라색 장검이 평범한 물건이 아니며, 일반적인 중품 영기와 비교해도 한참 차이가 난다는 것쯤은 누구라도 알 것이다.
방금 전 그의 신뇌멸세의 위력은 너무도 강력했고, 이는 결코 9품 선기가 보여줄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으며,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쉽사리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엽운이 모용무흔을 조롱하는 것이 분명했다.
모용무흔의 표정이 순간 칼처럼 싸늘해졌다.
고풍스러운 모습의 무정검을 살짝 들어 올리자 칼끝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하늘을 찔렀다.
“죽고 싶다면, 그렇게 해주마! 천검무정!”
순간, 검기가 가로질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