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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78화 (178/227)

제 178 화 전의의 충돌

모용무흔의 눈에서 빛이 번쩍였고, 얼굴은 서리가 낀 듯 싸늘했으며, 기세가 크게 변했다.

만약 이전의 그가 한 자루의 긴 칼 같았다면, 지금은 하늘로 솟아 산을 가르는 신검 같았다.

지금 어떤 방해도 용납하지 않았고, 눈앞의 엽운은 이미 죽은 거처럼 보였다.

란 장로와 나머지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모용무흔이 지금 보여준 기세는 이미 그들을 뛰어넘었다.

비록 그들이 연기경 정점의 수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의 모용무흔과 비교하자면 기세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만약 모용무흔이 촉기경에 도달했더라면 영혼을 정련할 수 있었을텐데, 만약 지금 이 기세가 영혼을 통해 만들어 낸 기세였다면 엄청난 살상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만 해도 그의 기세는 란 장로 일행조차 엄청난 압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모용무흔의 진짜 수위는 너무도 놀라웠다.

모용무흔은 싸늘한 눈빛으로 엽운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왔다.

한 걸음 한 걸음에는 신비로운 마력이 담겨있는 듯 마치 북 소리 같이 모두의 심장을 매섭게 두들겼다.

모용무흔의 발걸음은 심장이 떨려오게 만들었고, 란 장로 일행마저 마음이 흔들렸다.

수위가 낮은 제자 몇 명은 도무지 서 있을 수조차 없어 뒤로 물러났다.

여명홍과 단진풍 역시 얼굴이 붉어지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지만, 두 사람은 뒤로 물러나지는 않았다.

그들은 엽운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만약 엽운이 모용무흔에게 살해당한다면 그들에게도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모용무흔의 발소리는 모두의 마음을 두들겨 통제를 잃게 만들었다.

그런데, 란 장로는 엽운의 얼굴에서 조금의 당황한 기색도 느껴지지 않음을 발견했다.

다른 제자들처럼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다.

엽운은 그저 뒷짐을 지고 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매우 편안해 보였으며 모용무흔의 발걸음에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 했다.

“무흔 사형, 보아하니 머지않아 촉기경에 도달하겠군요. 당신의 형 모용무정보다 빠를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당신이야말로 천검종 천 년 역사에서 제일가는 천재일 수도 있겠네요.”

엽운은 어깨를 으쓱이곤 웃으며 말했다.

목소리는 아주 담담했고, 조금도 격앙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모든 이들의 마음 속 압력을 사라지게 만들어 주었다.

목소리는 마치 일종의 마력처럼 모용무흔의 발걸음에서 느껴지는 방대한 기세를 말끔히 지워버렸다.

모용무흔이 다음 발걸음을 땠지만 그의 발은 다시 땅을 밟을 수 없었다.

모든 장단이 흐트러졌고 두 번 다시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서로를 쳐다보는 란 장로와 순우연의 눈빛에 충격이 스쳤다.

그들조차 맞설 수 없는 강력한 기세를 엽운이 단 한 마디 말로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이 엽운이라는 녀석은 대체 어떤 수위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란 장로는 엽운이 시험에서 돌아온 뒤 감히 자신에게 도전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 이 녀석이 죽고 싶은 모양이라 생각했다.

자기가 진화성과 종응을 죽였다면서 감히 란 장로에게 대드는 것은 너무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엽운은 정말 그와 맞설 수 있는 실력이 있었던 것이다.

목 장로는 온 몸에 식은땀이 흘렀고, 마음속에서는 뒤늦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방금 전 모용무흔이 뿜어낸 기세는 그가 막아내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엽운은 조금도 그 기세에 짓눌리지 않았고, 단 한 마디 말로 이를 없애버렸다.

이러한 영혼의 의지만으로도 이미 그가 당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과연 무영봉주 소호가 눈여겨 볼 만 했다.

그리고 이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무영봉주의 제안을 거절했으리라.

별안간 그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이 두 명의 천재 사이에서 둘 중 누구를 도와도 틀린 일이 되니, 우선 전혀 관여하지 않고 나중에 모든 것이 밝혀지면 그때 가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와 모용무흔은 이미 한 배를 탄 셈이다.

“엽운, 무흔의 형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이렇게 건방을 떠는 것이냐?”

목 장로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했다.

그를 쳐다보는 엽운의 눈에는 조롱과 연민이 가득했다.

무려 장로씩이나 되는 사람이 고작 내문 제자 한 명에게 굴복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심지어 한 마리 개처럼 꼬리를 살랑거리는 꼴이라니, 정말 가엾을 따름이다.

엽운은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목 장로는 비록 윗선에서 내문 제자 시험 주관을 위해 보내진 장로이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미 그는 그저 날뛰는 어릿광대일 뿐이며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았다.

모용무흔이야말로 진정한 시험이다.

만약 이번 내문 제자 시험이 모용무흔을 상대하는 것이라면, 엽운에게 있어 진정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저희 형님은 형님이고 저는 저일 뿐 입니다. 저 놈의 신분으론 형님에 대해 듣는 것조차 그분에 대한 모독입니다. 목 장로님, 말씀을 조심하십시오. 음식 좀 잘못 먹는다고 사람이 죽지는 않지만, 말을 잘못했다간 죽을 수도 있습니다.”

모용무흔은 고개를 돌려 목장로를 보며 눈을 번득였다.

순간 멍해진 목 장로는 곧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얼굴이 파랗게 질렸고, 몹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무흔, 알겠다.”

시험에 참가한 제자들이 참지 못하고 떠들썩거렸다.

모용무흔이 한 말은 마치 목 장로가 그의 하인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심지어는 그보다 더 낮은 노예 같았다.

그는 무영봉에서 내문 제자 시험을 주최하기 위해 파견 된 장로가 아닌가.

그런 그에게 모용무흔이 저렇게 큰소리를 치는 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무흔 사형,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아니죠. 목 장로님은 어쨌든 이번 시험의 주관자이신데, 면목 좀 세워드려야지.”

엽운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닥쳐라.”

목 장로가 분노에 차 소리쳤다.

엽운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왔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 엽운 너는 날따라 오거라. 연무전의 광장에서 승패를 가리자. 아, 그게 아니지. 내가 널 죽이는 것이겠구나. 다음 생에는 너무 날뛰지 말거라. 얌전히 있는 자가 오래 사는 법이다.”

모용무흔은 엽운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곤 연무전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만약 폄범한 제자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다면 웃음거리만 되었을 것이며, 엽운 역시 전혀 개의치 않으며 웃어넘겼을 것이다.

상대가 도발해 온다 해도 그저 일순간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용무흔이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만약 엽운이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마음속에 심마가 남아 훗날의 수위에 거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수선에 있어 먼저 수련해야 하는 것은 마음이다.

만약 마음이 안정되어있지 않다면 심마가 내습하여 몹시 위험해진다.

모용무흔은 천천히 시험장을 벗어나더니 연무전 밖으로 걸어나가 연무전의 광장에 도달했다.

엽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두렵지도 않았고, 당황하지도 않았다.

모용무흔은 비록 사람을 몰아붙이는 기세를 가지고 있고 영혼의 의지도 강력하지만 엽운의 영혼 역시 강했기에 겁낼 것은 없었다.

모용무흔의 수위는 아무리 강해봤자 연기경의 정점일 것인데, 엽운은 며칠 사이 진기를 응련해 냈을 뿐 아니라 칠 장로에게서 천 리를 얼릴 수 있는 선기도 배웠다.

연기경 정점의 상대라면 분명 여유롭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엽운, 충동적으로 굴지 마라. 저 녀석의 수위가 엄청 높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뛰어난 품질의 영기와 좋은 선기를 많이 가지고 있을 거야.”

단진풍은 엽운이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곤 저도 모르게 다급해졌다.

“맞다. 흥분하지 말거라 엽운. 이번 시험은 내가 윗선에 전달해 그쪽에서 해결하도록 하겠다. 우리 천촉봉은 비록 무영봉 아래의 작은 당에 불과하지만 그렇다 해서 개나 소나 도발할 수 있는 건 아니란 말이다.”

란 장로는 살기가 서린 눈으로 목 장로를 쏘아보곤 고개를 돌려 말했다.

“모용무정은 보통 일이 아니야. 흥분하지 마라.”

대장로 순우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목 장로는 그저 엽운을 바라보며 조롱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감히 승부에 응하다니’ 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란 장로님, 단 사형. 만약 엽 사형이 승부에 응하지 않는다면 아마 심마가 낄 거에요.”

여명홍이 별안간 걸어와 나지막이 말했다.

“심마가 뭐 어쨌다는 거야? 심마가 목숨보다 중요하단 말이야?”

단진풍은 콧방귀를 뀌며 소리쳤다.

“심마는 천천히 걱정해도 되지만, 모용무흔의 실력은 보통이 아니야. 나도 상대가 안 될 거다.”

란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엽운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장로님 말씀대로, 우리 천촉봉이 비록 무영봉 휘하의 작은 산봉우리이긴 하지만 아무나 도발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들이 도전해온 이상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 줘야죠.”

“엽운...”

단진풍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붙잡았다.

“뭐야? 그 건방지던 우리 단 사형은 어디로 간거야? 수선의 길은 원래 전심전력해야하는 법이고, 용맹하게 나아가야 하는 법이야. 그렇게 이것저것 따지는 건 우리 수선자들의 소양이 아니라고. 혹시 단 사형은 내 영기의 품질이 부족할까봐 걱정하는 거야? 아니면 내 신뇌멸세의 위력이 부족할까봐?”

엽운은 웃으며 단진풍의 손을 뿌리치더니 대전의 문 밖을 향해 빠르게 나갔다.

란 장로와 일행들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긴 한숨을 내뱉으며 엽운의 뒤를 따라 나갔다.

“내가 널 잘못본 건 아닌 모양이군. 수위는 평범하지만 용기는 제법 있구나.”

광장 위에 서 있던 모용무흔이 엽운을 등진 채 뒷짐을 지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흔 사형, 제대로 봤어. 그런데 말이야,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 하는 거 아니야?”

엽운은 빙긋 웃으며 모용무흔의 뒤에서 열 장 떨어진 곳에 섰다.

모용무흔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눈에 싸늘한 살기가 가득했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엽운을 한참 바라봤다.

“나를 위해 일하게 되면 훗날 비단길을 걷게 해주려 했거늘, 감히 내 의지를 거역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살 수 없게 만들어주마.”

“무흔 사형, 매번 싸우기 전에 그렇게 한참 입을 놀리십니까?”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모용무흔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고, 곧 눈을 가늘게 떴다.

“난 딱 한 번 공격하겠다. 만약 네가 받아낼 수 있다면 우리 사이의 원한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는 걸로 하고, 시험을 통과해 내문 제자가 된 것으로 해주마!”

“무흔 사형, 또 자신을 과대평가 하는군!”

엽운은 뒷짐을 지고 서 옷자락을 펄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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