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177화 (177/227)

제 177 화 이치에 맞는 노력

“뭐라고 했느냐?”

모용무흔은 몸을 돌려 살의가 담긴 눈으로 쳐다봤다.

엽운은 조금도 두렵지 않은 표정으로 담담히 말했다.

“무흔 사형은 절검봉의 제자인데 어찌 무영봉의 제자에게 명령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네가 누구와 얘기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모용무흔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기가 그의 눈에 응집 되었다.

“제가 참가한 것은 천촉봉의 내문 제자 시험입니다. 내문 제자가 되더라도 무영봉의 제자일텐데, 사형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좀 지나치지 않겠습니까?”

엽운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자신이 있었다.

지금 자신의 수위로 모용무흔을 상대한다면 이길 수는 없을지언정 지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모용무흔이 감히 시험장에서 공격을 해올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비록 모용무흔이 당시 시합 중에 항복을 하며 엽운을 감동시켰지만, 감동은 감동일 뿐, 그의 고고한 모습과 이기적으로 명령하는 태도는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지금껏 자신이 주위 사람들 보다 높은 사람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따라서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위에서 명령하는 것 또한 용납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내가 누구인지 잊은 모양이구나. 그때 내가 했던 말도 잊은 모양이고.”

모용무흔은 별안간 웃음을 짓더니 이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문 제자가 될 필요도 없다. 목 장로님, 이 녀석을 탈락시키십시오.”

목 장로는 어리둥절해 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죠? 목 장로님까지 제 말을 듣지 않는 겁니까?”

모용무흔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목 장로는 잠시 망설이다 이를 악 물고 말했다.

“무흔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란 장로와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절검봉에서 온 제자 하나가 목 장로에게 명령을 내리고 심지어 제자의 내문 시험 자격을 마음대로 결정한 것이다.

이 소문이 퍼지면 다른 이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자, 엽운. 어서 떠나거라. 이번에는 내문 제자가 될 수 없게 되었다. 3년이 지나고 다시 기회가 있을 것이다.”

목 장로는 엽운을 바라보았다.

그는 엽운이 무영봉주 소호의 눈에 든 인물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에, 미움을 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모용무흔의 배경은 너무도 깊었다.

형인 모용무정만 해도 천검종 천 년 역사 이래 최고의 천재이며, 다음 종주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이라 그에게도 미움을 살 수는 없었다.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엽운을 희생시키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엽운은 조용히 자리에 서 있었다.

놀라지도 않고, 당황하지도 않았다.

“목 장로님,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번 내문 시험을 주관하시는 책임자는 장로님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다.”

목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첫번째 시험에서 제가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기준에 도달했습니까?”

엽운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도달했다.”

목 장로는 잠시 머뭇거리다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저는 두번째 시험을 치를 자격을 얻은 것인데, 두번째 시험은 아직 진행 되지도 않았습니다. 헌데 대체 무슨 권리로 저를 탈락시키시는 겁니까?”

엽운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물처럼 맑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목 장로는 미간을 찌푸리며 화를 냈다.

“무엄하구나. 내가 시험관이니, 내가 탈락했다고 하면 넌 탈락한 것이다.”

“그럼 너무 잘 됐군요. 목 장로님께서 저의 자격을 취소하실 거라면, 아니면 저를 탈락시키실 거라면 그럴싸한 명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 소문이 퍼졌다간 사람들의 신임을 잃게 될 것입니다.”

엽운은 빙긋 웃었다.

조금도 두렵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목 장로는 파견 된 시험관이었지만 수위가 촉기경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란 장로 일행과 다를 바 없이 연기경 정점에 지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차피 연기경의 수위라면 엽운은 아무 걱정이 없다.

그는 목 장로가 자신을 어쩌지 못할 것이란 자신이 있었다.

“고작 내문 제자 시험에서 한 사람이 탈락하는 게 뭐 그리 대수란 것이냐? 이 이야기가 퍼져나가면 사람들의 신임을 잃게 된다니, 엽운 네 녀석은 너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하는 모양이다.”

어리둥절하던 목 장로는 곧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목 장로님, 엽운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규칙에 어긋납니다.”

란 장로가 별안간 입을 열었다.

란 장로 일행은 목 장로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는데, 높은 수위를 가진 내문의 장로인 줄 알았던 목 장로가 자신들과 수위가 비슷한 존재일 줄은 더욱이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이 같은 말을 들으니 마음속에 불만이 생겨난 것이다.

“란 장로. 외문에서 오래도 계셨는데, 이제부터라도 규칙을 지키겠다는 건가?”

목 장로는 미간을 찌푸리며 칼날같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목 장로님. 비록 이 제자들은 고작 내문 시험에 참가한 외문 제자들이지만, 이들이 시험 참가 자격을 획득한 이상 이는 그들의 권리입니다. 그들이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큰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당신 마음대로 시험을 취소시킬 권리는 없다는 말입니다.”

란 장로는 두려워하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다. 보아하니 외문에서는 하룻강아지들이 우리 내문의 장로에게 이 따위로 말하는 모양이군. 정말 예상 밖이구나.”

목 장로는 화가 치밀어 올라 되려 웃음을 지었다.

비록 수위는 마찬가지로 연기경 정점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문에서 온 이상 일종의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외문에 하룻강아지가 있다면 내문에는 버러지가 있는 모양이군요.”

외문 대장로 순우연이 별안간 싸늘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목 장로는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저도 모르게 점점 어두워졌다.

“순우연 장로, 란 장로. 제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까?”

모용무흔은 이들을 바라보며 앞을 향해 한 걸음 내딛었다.

“모용무흔, 너는 평범한 내문 제자에 지나지 않고, 이런 일은 네가 끼어 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란 장로는 차가운 눈빛으로 모용무흔의 얼굴을 훑었다.

모용무흔의 얼굴에서 분노는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웃음을 지어보였다.

“우리 모용가가 힘을 안 쓴지 오래되어 몇몇 사람들이 모용가문의 명망을 잊은 모양입니다.”

“모용무정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그 역시 결국 천검종의 제자이니 법도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란 장로는 콧방귀를 뀌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담도 크십니다. 감히 우리 형님의 이름을 부르다니. 란 장로님, 정말 진절머리가 나는군요.”

모용무흔의 표정이 곧바로 싸늘해졌다.

엽운은 경악했다.

란 장로와 대장로 순우연이 자신을 위해 나설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란 장로는 다소 엄격한 성격이며 원칙을 따르는 편이라 생각했고, 순우연은 있으나 없으나 한 역할이며 아무런 일도 처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 사람이 일제히 나서 내문에서 온 목 장로의 말에도 굴하지 않았고, 심지어 천검종 천 년 동안 제일가는 천재 모용무정의 동생이란 모용무흔의 배경을 보고도 엽운의 편을 들어준 것이다.

“무흔 사형, 이번 시험은 당신이 주관하는 것 입니까, 아니면 목 장로님이 주관하시는 겁니까.”

엽운은 천천히 말했다.

“당연히 목 장로님이 주관하시는 것이지. 이런 작은 일은 내 힘을 낭비할 가치도 없다.”

모용무흔은 눈에서 살기를 번뜩이며 엽운을 쳐다봤다.

“그렇다면 좀 닥쳐주시죠.”

엽운은 빙긋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담하구나.”

목 장로가 분노에 차 소리쳤다.

단박에 엽운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눈에서 살기를 뿜어댔다.

“뭐죠? 무흔 사형은 아직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당신이 먼저 나서는군요. 목 장로님, 이렇게 되면 영 좋지 않은데요.”

엽운은 잔뜩 조롱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늙은이는 내문의 장로씩이나 되어서 모용무흔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자신의 상전이 모욕을 당하자 먼저 뛰쳐나오기까지 했다.

“오늘 누가 감히 너를 내문 제자가 되게끔 두는지 봐야겠구나.”

목 장로는 화가 치밀어 올라 엽운에게 삿대질을 했다.

“내문의 장로씩이나 되어서 모용무흔의 개 노릇이나 하고 있다니, 참 아쉽습니다.”

엽운은 냉소했다.

목 장로는 화가 나 정신을 못 차리면서도 무언가 두려운 듯 망설였다.

이 정도 했으면 이제 되지 않았을까.

목 장로는 분명 엽운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모용무흔의 개라고 부를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장로로써 그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는가?

순간 크게 분노하였고, 엽운을 가리킨 손가락은 덜덜 떨려왔다.

“좋다. 하극상은 둘째 치고 감히 시험 장로에게 개라는 욕설을 하다니, 이제 네 시험 자격을 취소한다 해도 할 말이 없겠지.”

목 장로는 예상 외로 그렇게나 분노에 가득 찼음에도 공격해오지 않았다.

“그럼 제 시험을 취소하시죠. 시험 말고 내문 제자가 될 다른 방법이 없을 리 없잖아요.”

엽운은 어깨를 으쓱이며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

“좋다. 그럼 지금부터 네 시험 자격을 박탈하겠다. 고작 외문 제자가 내문의 장로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은 죽을 죄다. 그 누구도 널 구해줄 수 없을 게다.”

목 장로의 입가에 냉소가 번졌다.

천천히 걸어와 엽운을 공격하려 했다.

“그렇습니까? 제 시험 자격은 취소되었으니, 그렇다면 제겐 무영봉주 밖에 없겠군요. 다시 소호의 관문 제자가 되러 가야겠습니다.”

엽운은 빙긋 웃으며 한 걸음씩 다가오는 목 장로에게 천천히 말했다.

목 장로가 들어 올린 왼발이 별안간 허공에서 멈췄고, 마치 혈 자리를 찔리기라도 한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관문 제자라니, 무영봉주의 관문 제자가 된단 말이냐?”

그는 고개를 돌려 모용무흔을 바라봤다.

모용무흔은 미간을 찌푸렸다.

엽운이 무영봉주의 영입 제의를 거절했다고만 들었지, 무영봉주가 엽운을 자신의 마지막 제자로 삼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10대 제자나 보통 제자나 전부 내문 제자일 뿐이지만 그 신분과 지위의 차이는 몹시 컷다.

모용무흔의 신분으로 내문 제자를 죽인다면, 큰 처벌을 받게 되진 않겠지만, 만약 무영봉주의 10대 제자를 다치게 하거나 죽인다면 몹시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목 장로님, 아직도 안 덤비고 뭐하십니까? 설마 제가 먼저 공격하길 기다리시는 겁니까? 어서 덤비십시오. 저는 노인을 공경하고 싶으니까요. 제가 먼저 공격했다간 후회하실 겁니다.”

엽운은 빙긋 웃으며 조롱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목 장로의 낯빛이 보랏빛으로 질렸다.

엽운의 말이 사실일 것이라 믿었다.

감히 누가 무영봉주의 마지막 제자라는 이름으로 허풍을 떨겠는가?

“목 장로님. 이번 시험은 절차에 따라 마치도록 하시지요.”

모용무흔의 목소리가 별안간 냉랭해졌다.

곧 엽운을 향해 돌아서더니 한 마디를 던졌다.

“엽운, 앞날이 창창하구나!”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부족할까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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