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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76화 (176/227)

제 176 화 격변

엽운의 말을 듣고 난 뒤, 여명홍의 얼굴에서 다급한 기색이 별안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여명홍은 조용히 몇 명의 제자 뒤에 서 있는데, 거대한 변화를 맞이한 듯 평온해졌다.

엽운의 눈에 저도 모르게 놀라운 기색이 스쳤다.

곧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수위 시험의 첫번째 관문은 사실 지나가는 시험일뿐이다.

자격시험을 통과한 제자가 어찌 연기경의 수위에 도달하지 못했겠는가?

여명홍은 가볍게 손을 올려놓고, 다시 천천히 땠다.

연기경 1중, 내문 제자 심사 표준에 이르렀다.

이 순간 모든 것은 물처럼 평탄하고 가볍게 스쳐 지나갔으며 누구의 주의도 끌지 않았다.

엽운의 얼굴에 띈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여명홍은 큰 변화를 맞이했고, 이는 그의 머릿속에 세 글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깨달음!”

수선의 길은 부지런히 수련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할 때도 있다.

천도에 대한 깨달음은 때로는 순식간에 이루어지며, 어느 날 갑자기 간파하게 되고, 곧 이해하게 되어 그렇게 수위가 상승하는 것이다.

이것이 수선의 매력 중 하나이다.

재능이 뛰어나서, 혹은 자원이 풍부해서 천도의 총애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한 명 한 명의 제자들이 걸어 나갔고, 다시 돌아왔다.

연기경 1중에서 4중까지 전부 나왔는데, 모두가 시험을 통과해 자격을 얻게 되었다.

엽운도 천천히 다가가 시진의 거울을 보았는데,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고,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진기를 손바닥에 주입시켰고, 가볍게 거울을 건드렸다.

시진의 거울이 밝게 빛났고, 가장 바깥쪽에 있는 고리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진기가 이 정도로 강대하게 응련 되었을 줄이야. 쉽지 않은 일인데.”

목 장로의 눈에 의아한 기색이 역력했다.

참고로 연기경 1중 응기경은 진기를 응련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이다.

하지만 엽운의 진기는 시진의 거울을 거의 눈도 뜰 수 없을 만큼 밝게 빛냈다.

이는 그의 진기가 믿을 수 없는 지경까지 거대해졌음을 의미한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모두 예상한 바였다.

비록 연기경 1중의 수위에 지나지 않지만 자신의 진기가 얼만큼 강한지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손을 때려는 순간,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시진의 거울 위 두번째 고리가 눈부신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기경 2중?

어떻게 된 거지?

엽운은 경악하며 의혹이 가득한 표정으로 빛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전에 시진의 거울 3번째 고리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연기경 3중?

엽운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체내의 진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와 시진의 거울에 주입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란 장로와 다른 이들도 모두 크게 놀라 넋이 나갔다.

“어떻게 된 일이지? 엽운은 연기경 1중이 아니었나? 어째서 시진의 거울에서 3개의 고리가 빛을 내는 것이지?”

대장로 순우연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저 아이가 고작 연기경 1중이라고? 맞아. 좀 전에 그의 기운을 살펴보니 연기경 1중이었지. 하지만 시진의 거울에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가 있나?”

옆에 서 있던 목 장로는 이 말을 듣고 마찬가지로 경악했다.

“모두들 보십시오. 네번째 고리에서도 빛이 나고 있습니다. 빛이 약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아요.”

란 장로가 시진의 거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연기경 4중, 이 녀석이 언제 연기경 4중을 돌파한 거지? 경계를 숨긴 것을 우리조차 알아보지 못했단 말인가.”

순우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무영봉주께서 저 아이를 10대 제자 중 하나로 삼으려 하신 것도 이해가 되는군. 어쩌면 의발을 받게 되었을지도 몰라. 보아하니 그 분은 진작 엽운의 진짜 수위를 꿰뚫어 보신 모양이다. 불가사의 하군.”

목 장로는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자신의 머리를 세게 쳤다.

옆에 서 있던 모용무흔만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의 수위는 모용무정이 직접 지도한 것이기 때문에, 안목은 보기 드물 정도로 훌륭했다.

하지만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봐도 엽운의 경계는 연기경 1중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시진의 거울 네번째 고리가 점등 된 것일까?

너무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모용무흔은 시진의 거울 앞에 서있는 엽운을 조용히 바라봤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한 기색이 스쳤고, 곧 서서히 냉엄한 눈빛으로 돌아왔다.

엽운의 시험은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었다.

심지어 목청이 큰 단진풍 조차 입을 쩍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른 외문 제자들은 더욱 크게 놀랐는데, 그 중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제자들은 별안간 무언가 깨달은 듯 했다.

이것이 엽운의 진짜 수위이니, 진화성과 종응을 죽일 수 있었으리라.

오직 여명홍 만이 조용히 엽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에는 그저 약간의 여유와 안정만이 느껴졌다.

그저 그렇게 엽운을 바라보다 짙은 미소를 지었다.

네 개의 빛이 눈부시게 빛나 모두가 눈을 뜰 수 없었다.

다섯번째 고리가 빛나기 전에 엽운의 시험은 끝이 났다.

엽운은 천천히 손을 떼었다.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자기 자신도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해 자신의 경계를 잘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연기경 1중 이었다.

그런데 이 시진의 거울에 어째서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인가?

네 개의 고리가 눈부신 빛을 발했다.

네 개의 고리가 빛났다는 것은 경계가 연기경 4중에 도달했다는 의미인데, 1중과 4중의 차이는 도저히 계산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컸고, 한 마디로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수 있었다.

엽운은 천천히 내려왔다.

시험장 전체가 조용해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지경이었다.

“엽운, 네가 수위를 숨기는 비법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란 장로는 참지 못하고 엽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널 너무 얕본 모양이다. 진화성과 종응이 시험 자격을 얻지 못한 것도 이상하지 않군.”

순우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목 장로는 한 걸음 다가와 엽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훌륭하구나 엽운. 보아하니 무영봉주님의 안목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모양이다.”

엽운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조차 무슨 일이 생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경계는 진기나 영력과는 달리 단순한 수련을 통해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계는 바로 천도이기에 천도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야만 수위를 올릴 수 있다.

엽운은 분명 1중인 응기경 밖에는 깨우치지 못했고, 체내의 팔맥을 뚫어 주천을 이루지도 못했다.

그런데 어찌 연기경 1중이 아닐 수 있는가?

이 순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뒤에서 제자 두 명이 더 걸어 나와 측정을 시작했는데, 한 명은 연기경 2중이고 한 명은 연기경 3중이 나왔다.

이는 시진의 거울에 문제가 없음을 뜻했다.

목 장로와 나머지 사람들은 이 현상이 그저 엽운이 진짜 수위를 숨길 수 있는 비법을 익혔거나 어떤 보물을 지녀 수위를 감춘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흔이 네가 시험에 참가할 필요가 없다 한 이유를 알겠다. 내문 제자 시험은 너에게 소꿉장난 같겠구나.”

목 장로는 웃음을 가득 머금고 엽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목 장로님, 과찬이십니다.”

엽운은 부인할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의 수위가 연기경 1중임을 솔직하게 말한다면 목 장로가 더 큰 흥미를 느낄 것이며, 결국 천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져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엽운은 더 이상 얌전히 지내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이 이야기가 퍼져나간다면, 그저 죽음을 자초하는 꼴이었다.

수많은 고수들이 그를 구경하러 올 것이며 어쩌면 시험체로 삼아 연구를 할 수도 있다.

“모두에겐 각자의 비밀이 있는 법이지. 우리 천검종의 고위층 역시 많은 것을 묻지는 않을 게다. 네가 천검종의 제자로써 종문을 지키는 영광을 자신의 소임으로 여긴다면 종문은 너에게 많은 것을 따지지 않을 것이고 그저 중점적인 육성을 하겠지.”

목 장로는 엽운의 걱정을 알아차린 듯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안심이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목 장로님.”

잘못된 일임을 알면서도 그저 몸을 굽혀 인사를 할 뿐이었다.

목 장로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 내문 제자 선발에 나서 엽운같은 괴물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고,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엽운이 어떻게 수위를 숨긴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엽운이 잡역 제자의 출신으로 고작 3년 정도의 짧은 시간 만에 연기경 4중의 경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는 보통의 천재가 아니며, 모용무흔 같은 천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엄청난 재능이다.

참고로 모용무흔은 천검종 천 년 이래 제일가는 천재인 모용무정이 친히 지도하였고, 어렸을 때부터 수행을 시작했으며 자원은 차고 넘쳐 마르지 않을 정도로 풍족했다.

지금 그의 수위는 연기경 5중인데 물론 그의 5중은 일반적인 제자들과는 달랐다.

연기경 7중 정점에 선 고수들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엽운은 어떤 신분인가.

그에게 어떤 자원이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연기경 4중까지 수련을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무영봉, 아니 천검종 전체의 관심을 끌기 충분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천재를 그가 시험에서 발굴해내 훗날 종문의 대들보가 된다면 그의 공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모용무흔은 싸늘한 눈빛으로 엽운을 보며 말했다.

“엽운 사제, 수위가 그렇게나 빠르게 오를 줄은 몰랐네. 축하한다. 지금의 수위라면 우리 파벌에서도 쓸만하겠군. 내문 제자 시험이 끝나면 절검봉으로 와 나를 찾거라.”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모용무흔은 척 보기에 온화한 편은 아니었으며 목소리 역시 담담했지만 그의 고고한 태도는 어딘가 불편하게 만들었다.

“일단 시험이 끝나고 나서 얘기합시다. 여기서 통과하더라도 무영봉에 가서 심성을 심사 받아야 하니 내문 제자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니까요. 무흔 사형의 요청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죠.”

모용무흔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엽운이 이렇게 대답할 줄은 몰랐기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하긴, 네가 고작 내문 제자 시험도 통과하지 못한다면 다 소용 없는 이야기이지. 이렇게 하자. 일단 너는 안심하고 시험을 치르고, 내문 제자가 된 후 제일 먼저 절검봉으로 와서 나를 찾거라. 난 먼저 가 있도록 하마.”

모용무흔은 차가운 눈빛으로 엽운을 바라보다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떠나버렸다.

“나중에 얘기합시다! 제가 절검봉에 갈 시간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엽운은 모용무흔의 말투와 고고한 태도에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모용무흔이 별안간 몸을 돌리더니 눈에서 빛을 번쩍이며 엽운을 바라봤다.

“뭐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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