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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71화 (171/227)

제 171 화 쉬선심법

엽운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고개를 들어 란 장로를 마주했다.

“무엄하다!”

란 장로가 호통쳤다.

엽운이 군중들 앞에서 자신에게 대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이건 대련 시험이니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설마 그들이 저를 죽이려 하면 그저 장렬히 죽음을 맞이하는 게 맞다는 말씀이십니까?”

엽운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의 눈에서 장로에 대한 경외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보아하니 정말로 네가 두 사람을 죽였구나.”

란 장로의 목소리가 점점 싸늘해졌고,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실체를 이루었다.

“당연히 제가 죽였지요. 이런 일로 남의 이름을 훔쳐 쓰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고 언제라도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았다.

엽운은 내문 제자가 되기 전까지 함부로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지금은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그는 종문의 고위층들에게 엽운이 대묘에서 살아 돌아왔을 뿐 아니라 시험에도 합격했으며 연기경 1중의 수위로 자포 제자 진화성을 죽였음을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재능과 이런 실력이라면 종문의 관심을 받기 충분하지 않겠는가?

엽운은 줄곧 너무 나서다간 선마지심의 존재를 발각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마지심은 보통의 물건이 아니기에, 그것이 작정하고 숨으려 한다면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연결되어있는 엽운 조차 선마지심이 나타나고 싶을때가 아니라면 조금의 흔적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중품영기 몇 개쯤은, 소호같은 촉기경 후기의 고수들에게 그다지 귀한 물건도 아니다.

번개, 불, 얼음, 세 종류의 영기 역시 발각된다 해도 상관없다.

사람의 몸속에 들어간 속성 영기를 꺼내 자신이 쓰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종문에서 엽운이 세 종류의 영기를 수련한 사실을 알게 되어도 큰 관심과 키움을 받을 뿐이었다.

엽운이 유일하게 걱정하는 것은 내문 제자들 중의 강자들이었다.

어쩌면 정예 제자들일 수도 있는데, 이들의 수위는 이제 막 촉기경에 들어섰기 때문에 엽운이 가진 영기를 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고작 그들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모용무정이라던지, 금단대도라던지, 선마지심의 이전 주인이라던지, 신병을 마주하고도 태연한 청년 남녀라던지 하는 것들은 논할 수조차 없다.

이런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란 장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연기경 정점의 수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머지않아 그의 실력은 란 장로조차 넘어설 것이다.

“좋다. 오늘 너에게 교훈을 심어주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극상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 알려주마.”

란 장로가 한 걸음 오더니 허공에 떠올랐다.

엽운은 조금도 겁내지 않았고 뒷짐을 진 채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수위로 란 장로와 싸워 이길 수는 없지만 공격에 저항하는 것쯤은 아무 문제도 없다.

“됐소! 란 장로님도 물러서시오. 엽운 네놈 너무 날뛰는구나.”

대장로 순우연의 목소리가 별안간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란 장로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러났다.

비록 그와 순우연은 똑같이 외문을 관리하고 있지만 명분상 순우연이 주인이며 란 장로는 옆에서 보조하는 역할에 가까웠다.

엽운은 란 장로가 물러서는 것을 보며 순우연을 향해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두 발짝 물러났다.

두 사람의 싸움은 광장 전체를 쥐 죽은 듯 조용하게 만들고, 모든 이들이 숨을 참으며 경악하고 있었다.

엽운의 수위가 이미 이 정도 까지 강해졌단 말인가?

감히 란 장로에게 맞서려 하다니.

순우연의 시선은 천천히 군중을 훑어보다 이내 엽운에게 멈췄다.

“엽운, 분명 네가 좀 심하긴 했다. 란 장로는 우리 천촉봉 외문의 책임자 중 한 명인데, 그렇게 대드는 것은 확실히 부적절하지.”

엽운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만, 란 장로님도 역시 기세가 등등하시더군요. 이 제자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두 장로님께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럼 되지 않았는가? 연기경 1중의 수위로 종응과 진화성을 죽였다니, 우리로써도 크게 놀랄만한 일이고 잘 믿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둘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죽었다는 뜻이겠지. 세상 그 어떤 대단한 천재도 죽었으면 그저 죽은 사람일 뿐이며 언급할 가치가 없다. 이제부터 내문 제자 시험을 잘 준비하여 순조롭게 천촉봉의 기둥이 되길 바란다.”

순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엽운의 대도가 제법 마음에 드는 듯 했다.

엽운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순우연을 향해 인사를 한 번 올리고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란 장로는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대장로님.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야 앞으로 이 제자들을 어찌 관리하겠습니까?”

순우연은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마찬가지로 전음으로 말했다.

“란 장로,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너무 성급하고 고집이 세군요. 생각해 보십시오, 진화성과 종응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는데, 그들의 수위로 보호 부적을 깨뜨릴 틈도 없이 죽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란 장로는 순우연의 옆으로 다가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 두 사람은 독취왕에게 당한 것 입니다. 독취왕의 실력은 진작 9급 요수의 정점에 올랐으니 한 대라도 공격을 맞추게 된다면 두 사람 쯤은 순식간에 죽일 수 있습니다. 둘째, 엽운의 말이 거짓이 아니고, 그가 정말 자신의 수위로 두 사람을 죽였다는 것 입니다.”

순우연은 웃으며 나즈막이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란 장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불가능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엽운이 아니라 모용무정이었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까?”

순우연이 되물었다.

“당연하지요. 모용무정은 천검종 천 년 이래 최고로 걸출한 천재가 아닙니까. 듣자하니 연기경 5중일 당시에 촉기경 초기의 고수를 쓰러뜨렸다는데, 정말 괴물 중에서도 괴물이지요.”

“모용무정은 가능한데, 엽운은 어째서 불가능합니까? 혹시 모르지요, 우리가 모용무정과 맞먹는 괴물을 보고 있는 것 일지도요.”

순우연은 기대가 가득한 눈으로 천천히 말했다.

분명 지금까지 엽운과 모용무정을 연관시켜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이 말이 맞다면 훗날 엽운의 수위는 한계를 가늠할 수도 없을텐데, 만약 그런 자에게 미움을 사는 것은 너무도 현명하지 못한 짓이다.

“흥!”

란 장로는 콧방귀를 뀌고는 두 걸음 다가가 천천히 말했다.

“엽운, 이런 실수는 처음이니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만, 훗날 또 하극상을 벌였다간 가만 두지 않는다.”

엽운은 웃으며 공수를 하고는 말했다.

“란 장로님께서는 아량이 넓으시군요. 이 제자가 너무 건방졌습니다.”

‘당신이 내 체면을 살려준다면, 나도 그렇게 하면 그만이다. 이 일은 여기서 끝내는 것으로 하고, 두 사람은 더 이상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란 장로는 눈을 번쩍이며 영패를 얻은 30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냉엄한 얼굴에 마침내 미소가 번졌다.

“훌륭하다. 이번 시험에서 30명의 정원이 꽉 찰 줄은 몰랐군. 보름 뒤 있을 내문 제자 시험에서 너희들의 진짜 실력과 잠재력을 발휘하여 천촉봉의 기둥이 되길 바라마.”

30명의 사람들은 일제히 대답하였고, 함성 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다.

빠르게 30명의 이름이 책자에 기록되었다.

보름만 지나면 내문 제자 시험이 시작된다.

그때야말로 진정한 시험이라 할 수 있으며, 내문 제자가 되어야만 종문의 자원과 육성을 한 몸에 받을 수 있게 된다.

“엽 사형, 단 사형, 보름 동안 어디에 가서 수련하실 생각입니까?”

여명홍이 다가왔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명홍, 아직 보름이나 남았는데, 너네 집에 가서 한 이틀 정도 노는 거 어때?”

단진풍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곤 웃으며 말했다.

여명홍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천촉봉에서 대진제국까지는 수십만 리 거리입니다. 저희의 각력으로는 적어도 십수일이 걸릴텐데, 시험이 시작 될 때 까지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데요.”

“너 이 자식 어쩜 그렇게 치사하냐. 우리를 대진제국에 데려가 시야를 넓혀주기가 싫은 거냐?”

단진풍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닙니다.”

여명홍은 두 손을 마구 흔들며 다급히 말했다.

“분명 왔다 갔다 하기에는 너무 멀어서 내문 제자 시험을 놓치고 말거에요. 아니면 시험이 끝나고 같이 가시죠. 제가 잘 구경시켜 드릴게요.”

단진풍은 큰 소리로 하하 웃으며 말했다.

“명홍 너 장난기라곤 없구나. 농담인거 모르겠어? 어찌 그리 정색을 하는 건지 원.”

“아!”

여명홍은 어리둥절했다.

곧 그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단 사형도 정말, 저를 놀리시는 거였군요.”

엽운은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며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자, 이 보름의 시간은 우리한테 아주 중요해. 각자 돌아가서 열심히 수련하고, 잘 준비하면 내문 제자는 따놓은 당상이야. 종응이 했던 말 다들 기억하지, 내문에는 수많은 파벌이 있고, 그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종응이 말한 양 사형, 양화룡이야. 우리가 내문에 들어가면 반드시 각각의 세력과 만나게 될 테니, 수위를 올려두는 건 분명 나쁘지 않을 거야.”

단진풍과 여명홍은 곧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엽운 네 말이 맞다. 며칠 동안 우리가 진기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진기에 대해서 아직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지. 이 보름 동안 자세히 한 번 살펴보자고. 수위가 한 층 더 높아지면 좋고 말이야.”

단진풍이 맞장구치며 말했다.

여명홍도 고개를 끄덕였다.

단진풍의 말대로 이 보름의 시간은 아주 중요한 기회였다.

연기경 초기의 오묘하고 신기한 비밀을 찾아내 세심히 체험해 본다면 수위는 분명 크게 오를 것이다.

“자, 그럼 각자 돌아가서 열심히 수련하고, 보름 뒤에 보자고.”

엽운은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란 장로와 순우연을 보며 다시 인사를 올리곤 몸을 돌려 떠났다.

수위가 연기경에 도달하기 위해 엽운은 취봉에서 며칠을 수련했지만, 단지 진기에 대해 조금 익숙해지며 이루어 낸 것일 뿐이고, 아직 진기의 비밀을 완전히 알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보름이라는 준비 기간은 마침 진기의 심오함을 깨닫기 딱 좋은 기회였다.

무엇보다, 엽운이 장무각에서 얻은 쉬선심법은 수위가 연기경에 도달해야만 수련할 수 있는 공법이며, 이 보름의 시간은 딱 적당한 시간이었다.

엽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쉬선심법이 머릿속에서 번쩍 떠오르더니 만 장 너머를 비추는 밝은 빛이 되어 그의 머릿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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