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169화 (169/227)

제 169 화 빙영수무

그 모조품, 이리 가져와라. 받겠다!

엽운의 말은 송휘주의 귀에서 천둥처럼 맴돌았다.

절망하던 그는 별안간 멍해졌고, 곧 미친듯이 기뻐하기 시작했다.

엽운이 노점에서 산 화옥용주를 영패와 바꿔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참고로 이 화옥용주는 분명 가짜이며, 진짜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송휘주는 엽운이 뭘 하려는지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눈에는 영패의 그림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영패만 있으면 내문 제자 시험에 참가할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왜? 바꾸기 싫어?”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아...아닙니다. 당연히 바꿔야지요.”

송휘조는 바삐 고개를 끄덕이며 허겁지겁 화옥용주를 건냈다.

그리고는 영패를 건내받고 기뻐하며 웃음을 지었다.

송휘조는 아무도 영패를 빼앗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자리를 뜨지 않았다.

엽운의 뒤에 서서 영패를 받쳐 들고 있고, 마음속 기쁨이 온통 표정에 드러났다.

단진풍은 답답했다.

어째서 엽운이 화옥용주를 원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용주는 가짜일 뿐 아니라, 설령 진짜라 한들 엽운에게는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다.

“엽 사형, 이 화옥용주는 분명 가짜인데, 어째서 영패와 바꿔준 것입니까?”

여명홍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단진풍과 여명홍 뿐이 아니었지만, 다른 제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길에서 산 가짜 화옥용주로 무엇을 한단 말인가?

“어차피 영패는 많으니까, 그냥 바꾸면서 노는 거지. 기분도 좀 내고.”

엽운은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손에 쥔 영패를 들어 올리며 이어서 말했다.

“다음, 이 영패랑 바꿀만한 물건이 있나?”

“있습니다, 있어요!”

엽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열댓 명의 제자들이 미친 듯이 달려왔는데, 각자 손에는 뭔가를 들고 있었고, 그 중 일부는 반짝이며 빛을 뿜었다.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희한한 물건들이 모두의 눈앞에 나타났다.

“서두르지 마라. 너희가 가진 물건이 흥미롭기만 하다면 줄 영패는 여기 많으니까.”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황색 도포를 입은 제자 한 명이 다가와 옥병을 보이며 어딘가 신비로운 말투로 말했다.

“엽 사형, 이 병에는 아주 좋은 물건이 들어 있습니다. 분명 당신을 깜짝 놀래킬 만한 물건이지요.”

엽운은 코를 두어번 훌쩍이더니 말했다.

“뭐지? 뚜껑을 열어봐. 냄새를 맡아보겠다.”

“열 수 없습니다. 뚜껑을 열게 되면 향기가 날아가 버려 효능이 크게 떨어질 겁니다.”

황포 제자의 얼굴에 띈 웃음기는 어딘가 생각이 많아지게 만들었다.

엽운은 미간을 찌푸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도대체 뭔데?”

황포 제자는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대력금강환.”

“대력금강? 복용하면 힘이 끝도 없이 강해지며 금강처럼 분노에 가득 차 가까이하면 안 된다는 그것인가?”

귀가 밝은 여명홍은 이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다급히 물었다.

만약 사람의 힘이 전설 속 금강처럼 강해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대력금강환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귀한 물건일 것이다.

엽운은 마찬가지로 의구심이 들었다.

이 단약이 만약 정말 금강처럼 강한 힘을 주는 것이라면, 엄청나지 않은가?

“꺼져라!”

별안간 분노에 찬 단진풍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황포 제자의 뺨을 매섭게 후려갈겼다.

“으악!”

비명 소리가 들렸고, 황포 제자는 조롱박처럼 데굴데굴 굴러 나가떨어졌다.

“단진풍, 뭐하는 거야?”

엽운은 조금 화가 났다.

단진풍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대력금강환이 무슨 물건인지 알아?”

“복용하면 힘이 강해지고 순간적인 폭발력을 올려주는 약이 아닌가요?”

여명홍이 다급히 대답했다.

단진풍은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네놈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른다 치고, 엽운, 너는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으면서 대력금강환을 모른단 말이냐?”

엽운은 고개를 저었다.

변방의 작은 마을 출신이라 대력금강환이니 어쩌니 하는 것들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이 대력금강환은 경도에서 자주 보이는 약물이다. 효능은 네가 말한 것과 비슷하지. 힘이 강해지며 순발력도 좋아지고 심지어는 지구력까지 대폭 올려주는 약이다.”

“그럼 엄청 좋은 거 아닌가요?”

여명홍이 말했다.

“좋긴 개뿔, 이 대력금강환의 효능은 침상에서의 힘을 올려주는 것이란 말이다. 기생집에 놀러간다거나 할때 시간을 늘려줄 수 있고, 지구력도 높아지며 폭발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 아직도 가지고 싶으냐?”

단진풍은 콧방귀를 뀌며 천천히 말했다.

엽운과 여명홍은 어안이 벙벙했다.

두 사람은 이 대력금강환이 그런 물건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침상에서 금강불패가 된다는 말이다. 이제 대력금강환의 유래를 알겠냐?”

단진풍은 두 사람의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엽운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두 눈에 살의를 품었다.

황포 제자가 감히 그를 희롱하다니,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수선자에게 이런 물건이 필요하겠는가?

황포 제자는 엽운의 살기를 느끼고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엽 사형, 희한한 물건을 찾으신다길래.. 저는 딱히 다른 물건은 없고 그래서 이 대력금강환을 사형께 드린 겁니다.”

엽운은 냉엄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휘둘렀다.

맑은 소리가 들렸고 황포 제자의 얼굴에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찍혔다.

“내가 말한 희한한 물건은 대력금강환 따위가 아니야. 또 이딴 물건을 꺼내 나를 속이려는 놈이 있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물론입니다. 이 녀석은 감히 엽 사형을 희롱하였으니 우리 형제들이 놈을 죽이겠습니다. 정말 창피하군. 이 자리에 어떤 형제가 대력금강환 따위를 원한단 말인가?”

흑포 제자 한 명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

마치 희롱을 당한 사람이 자신인 양 노발대발 하였다.

“오 사형의 말씀이 맞습니다. 누구라도 저딴 엉터리같은 물건을 내놓는다면 가만 두어서는 안 됩니다.”

“맞습니다. 좋은 물건이 없으면 다들 비켜라. 우리가 영패를 얻는 것 까지 방해하지 말고.”

제자들은 연신 화를 냈다.

마치 엽운이 자신들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인 것처럼 말이다.

엽운은 뒷짐을 지고 선 채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지금 영석이 부족하지도 않았고, 영기가 부족하지도 않았으며, 수련에 필요한 단약이나 약초 등의 보물도 적지 않게 가지고 있었다.

참고로 화운이 천 년 동안 준비한 보물은 엽운이 촉기경까지 수련하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그가 잘 모르는 물건들도 있으니, 어쩌면 촉기경 후기, 아니 금단경 까지도 충분할지 모른다.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은 각종 영기와 관련 된 물건들이었다.

예를 들어 불의 영기, 번개의 영기, 얼음의 영기 등과 연관이 있는 보물들 말이다.

만약 이 세 종류의 영기를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수위와 실력이 한 층 더 높아질 것이라 믿었다.

영패는 그에게는 아무짝에 쓸모없지만, 만약 이 영패들로 재미있는 보물들을 얻을 수 있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고, 불, 번개, 얼음 세 영기의 보물을 얻는다면 큰 이득인 샘이다.

“엽 사형. 저에게 보기 드문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이걸 얻은 지는 3년 정도 되었는데, 다루기 너무 까다로워 아무리 애를 써도 수련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사형께 드리고 영패와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흑포 제자 한 명이 군중 속에서 천천히 나오더니 오른손에서 짙은 푸른색의 안개를 꺼내들었다.

분명하다. 안개다!

그의 손바닥에 올려져 있는 것은 안개였다.

아무런 실체도 없는 그저 한 덩어리의 안개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게 뭐냐?”

단진풍이 궁금한 듯 물었다.

안개는 아직 그에게 가까워지지도 않았음에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빙영수우 입니다!”

흑포 제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에는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빙영수우는 천지의 얼음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고, 속에는 얼음의 영기가 담겨있습니다. 삼 년 동안 숨겨왔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늘 만약 영패를 받아 내문 제자 시험에 참가할 자격을 얻지 못한다면, 제 나이로는 다음 시험에 참가할 자격도 없을 겁니다. 영원히 외문 제자로 남거나 천촉봉을 떠나 속세에서 종문의 사업을 도울 수밖에 없습니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빙영수우라는 안개를 바라봤다.

이미 얼음의 영기를 수련했지만, 어째서인지 이 빙영수우에서 그다지 큰 얼음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만약 이 안개가 얼음의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분명 강한 얼음의 영기가 느껴져야 할 터이다.

하지만 어째서 조금 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엽운의 마음속에 의혹이 가득했다.

그가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이 빙영수우에는 분명 다른 물건이 들어있지 않았고, 완벽히 뭉쳐 흩어지지 않는 안개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비록 속에 든 얼음의 기운은 희박하지만 없는 것 보다야 나을 것이고, 어차피 영패는 쓸모가 없다.

“좋다. 바꿔주마.”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다가가 손에 쥔 영패를 건냈다.

흑포 제자는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오른손에 쥔 빙영수우를 건냈다.

엽운이 손을 뻗어 건내 받는 순간 그의 눈에서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엽운은 빙영수우를 받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순간 자신이 크게 틀렸음을 깨달았다.

이 빙영수우에 담긴 영기는 좀 전에 느꼈던 것처럼 희박하지 않았다.

몹시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고, 얼음의 기운이 빙영수우 안에서 요동쳤다.

원한다면 순식간에 몸속에 집어넣어 자신이 쓸 수 있는 영기로 연화시킬 수 있었다.

빙령수우가 흑포 제자의 손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만약 엽운이 얼음의 영기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얼음의 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좋아, 이득이다.”

엽운은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했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고 그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손에 쥔 빙영수우를 천천히 뇌음화룡계에 집어넣었다.

흑포 제자는 영패를 손에 들고 다시 한 번 엽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불편한 표정이었다.

“엽 사형, 만약 빙영수우를 흡수할 수 없다면, 훗날 제가 내문 제자가 되었을 때 저를 찾아오시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엽운은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이미 내 것이니 다시 널 찾아가는 일은 없을 거다. 이 빙영수우는 내가 쓸 곳이 있으니 걱정 말거라.”

그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군중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비치던 설렘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또 좋은 게 있다면 어서 가지고 나와라. 영패는 아직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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