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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67화 (167/227)

제 167 화 경매

양화룡.

엽운이 이 이름을 듣는 것은 두번째였는데, 첫번째는 종응에게서 들었다.

듣자하니 내문에 비바람을 몰고 온 이 녀석은 무려 내문 제일의 세력인 군자당의 우두머리라고 한다.

한때, 내문은 까마득히 먼 곳이었고, 평생토록 발 한 번 들이지 못할 것 같은 곳이었다.

외문 제자가 되는 것만 해도 이미 벼슬에 올라 사람들 위에 서는 일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기우가 운명을 바꿨다.

선마지심이 나타난 뒤로 엽운의 육신은 열배, 아니 백배는 강해졌고, 그 길로 수위가 급격히 상승해 막아낼 수 없게 되었다.

수선의 길에서는 운이 가장 중요하다.

좋은 운수를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위험에 처해도 상관이 없었다.

엽운은 감히 자신의 운이 좋다 말할 수는 없었지만, 늘 제법 괜찮은 운을 가지고 태어났다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선마지심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며, 대묘에서 맞닥뜨린 여러 위험에서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대묘에서 온갖 진귀한 보물을 긁어모았고 하마터면 금단수사인 화운을 죽여 그의 혼을 소멸시킬 뻔했다.

별안간 마음속에 세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첫번째는 야윈 모습의 심묵이었다.

두세 살 더 어린 녀석은 영석을 흡수하는 속도가 엽운보다 몇 배는 빨랐다.

그때 엽운의 몸은 이미 선마지심을 통해 변화한 뒤였고 영석을 흡수하는 속도는 평범한 제자들의 열 곱절은 빨랐음에도 심묵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심묵과 엽운은 떨어진지 이미 수개월이 지났다.

그는 란 장로를 통해 천촉봉의 고위층에게 끌려간 뒤로 줄곧 소식이 없었다.

지금은 어떤 수위를 가지게 됐을까?

두번째로 떠오른 것은 한 소녀였는데, 엽운의 머릿속에는 마치 제비같이 가벼운 몸놀림을 가진 여자 아이가 떠올랐다.

그녀는 흰 치마를 펄럭이며 절벽 위에 몇 개의 점을 찍더니 순식간에 백 장 위로 올라가 버렸다.

군약란!

소녀는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잠재력 또한 어마어마했다.

외문 제자 시험에서 그녀는 제일 먼저 절벽에 올라 유유히 가버린 뒤로 종적을 감추었다.

곧장 천촉봉의 내문으로 보내졌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이 소녀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훗날 적지 않은 성취를 얻게 될 것이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세번째로 떠오른 사람은 한 소년이었다.

거만하지만 재능만큼은 확실한 소년, 그의 재능과 신분은 란 장로조차 곤란하게 만들 정도로 드높았다.

바로 모용무흔, 천검종 청년 세대의 지도자인 모용무정의 친동생이다.

모용무흔이 했던 말까지 기억하고 있었는데, 만약 자신의 수위가 연기경에 도달하면 찾아와 서로를 도와주기로 했었다.

엽운은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모용무흔은 당시 연체경 5중의 수위에 불과했지만 연기경 이하에서는 최강이라 할 수 있는 기량과 실력을 가졌다.

지금은 몇 달이 지났으니 그의 수위는 이미 연기경을 돌파하였을지도 모르고, 그의 형인 모용무정의 도움을 받는다면 얼마나 강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세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자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곧 그는 세 사람이 떠오름은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무언가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묵, 이 녀석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히 종율전의 사람들에게 대들었으며, 엽운과 함께 죽음을 각오할 만큼 의로운 녀석이다.

군약락은 당시 외문 제자 시험에서 모든 이들을 경악하게 만든 인물이다.

그녀의 수위와 혈맥은 대부분의 제자들을 아득히 뛰어 넘었으며, 한순간에 모두가 마음속으로 뒤쫓는 목표가 되어버렸다.

모용무흔은 조만간 엽운과 다시 만날 것이다.

엽운의 수위가 연기경에 달하면 찾아와 도와주겠다는 말이 사실이던 아니던 말이다.

그리고 그의 형 모용무정은 엽운이 가까운 목표로 삼기에 충분했다.

취봉의 시험에서 엽운은 종응과 진화성을 모두 죽였고 그들의 영패를 얻었다.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니 이곳에 위험이 될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시험은 이미 무의미해졌고, 엽운의 독무대가 되었다.

진화성이 죽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엽운이 연기경 5중의 자포 제자였던 진화성을 죽였다는 사실은 모두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시험에 참가한 거의 모든 외문 제자들은 엽운의 수위를 꿰뚫어 봤는데, 분명 고작 연기경 1중에 불과했다.

연기경 1중이 진화성을 죽일 수 있다니, 그렇다면 훗날 성과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내문 제자의 시험은 그에게 소꿉놀이처럼 간단할지도 모른다.

엽운이 사람들의 앞에 나타나자 모두 경외가 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들 가운데 마지막에 내문 제자가 되는 건 누굴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엽운 사형에게 내문 제자 시험은 애들 장난일 거야.”

“우리도 참 나이를 헛먹었군. 남들보다 몇 년이나 일찍 들어왔는데 실력 차이가 이렇게나 크다니.”

“엽운을 사형으로 모시기 싫은 거냐? 수선의 길에 먼저가 어디 있겠어. 강한 사람이 형이다. 엽 사형이 어제 입문했다 해도 그의 수위가 우리보다 높다면 그냥 사형인 거야.”

“맞아. 우린 앞으로 엽 사형에게 협력해야해. 모두들 동문의 제자들이니까 서로 도와야지.”

“서로 돕는다고? 부끄럽지도 않냐? 훗날 엽 사형이 살짝 지적만 해줘도 우리 앞길이 창창해질 거라고.”

“맞아 맞아. 내 입 좀 봐. 말도 제대로 안 나오네.”

“괜찮아. 엽 사형은 훗날 우리 천검종의 기둥이 되실텐데, 너랑 식견이 비슷할리 없지.”

군중들은 엽운의 앞에서 열 장 남짓 떨어져 아첨을 떨었다.

진화성 마저 엽운의 손에 죽었으니, 이 녀석이 얼마나 흉포한 놈인지는 말 할 것도 없었다.

참고로 이번 시험에서는 보호 부적을 깨뜨려 나갈 수 있었는데, 진화성과 종응 이라는 두 명의 고수들조차 부적을 깨뜨릴 새도 없이 죽어버렸으니, 엽운의 수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엽운은 무표정으로 담담하게 그들을 바라봤다.

“여명홍 넌 잘 모르겠지만, 이 녀석들 아첨도 떨 줄 몰랐다면 진작 몇 번이고 죽었을 테지. 오늘까지 살아있지도 못했을 거야.”

단진풍이 비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솔직히 누가 아부를 싫어하겠어. 내가 엽운이었다면 저 녀석들 말을 듣고 기분이 아주 상쾌했을 거라고.”

여명홍은 진땀을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엽운은 사람들을 바라보다 별안간 손을 들어올렸다.

순간 온 세상이 조금의 소리도 없이 조용해졌다.

모든 이들은 숨을 죽였고 숲속은 온통 고요해져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영패가 있는 자는 앞으로 나와라.”

엽운을 포함한 세 사람에게는 총 열여섯 개의 영패가 있었으니, 다른 이들에게 열네 개가 있을 것이다.

인파 속에서 몇 명이 나와 영패를 꺼내 손바닥에 올려두었다.

엽운이 보니 총 열 사람이 앞으로 나왔는데 각자 손에 영패가 하나씩 밖에 없었다.

즉 아직 네 개가 남은 것이다.

“아직 네 개 남았는데? 뭐야? 내놓기 싫다는 건가?”

단진풍은 한 걸음 다가가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명홍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물었다.

“단 사형, 영패는 이미 충분하지 않습니까? 더 가져서 뭐하겠습니까?”

“이 멍청아. 영패를 더 가져서 뭘 하느냐고? 영패를 통제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내문 제자 시험에 참가하는 인원을 조절할 수 있어. 완전히 우리 손 안에 있는 거라고.”

“하지만, 우린 분명 내문 제자 시험을 통과 할텐데, 굳이 다른 사람들의 자격을 박탈시킬 필요가 있나요?”

여명홍은 인상을 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저들의 자격을 박탈하려는 게 아니야. 영패를 다시 분배하려는 것뿐이지.”

엽운의 담담한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모든 이의 귓가에 울렸다.

순간 모두가 떠들썩해졌다.

참고로 영패는 총 30개가 있고 시험에 참가한 제자는 아주 많았기에 결코 한 사람당 하나씩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실력 있는 제자들이 더 많은 영패를 가져가 수위가 평범한 제자들은 어떤 기회도 얻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엽운은 영패를 모두 거둬들이고 다시 분배한다 하니, 제자들은 떠들썩해진 것이다.

“아직 네 개 남았는데? 정말 내가 못 찾아 낼거라고 생각하나?”

엽운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서늘한 칼날처럼 모두의 귓가에 울렸다.

“엽...엽 사형. 제가 하나만 남겨도 괜찮겠습니까?”

마침내 흑색 도포를 입은 제자 한 명이 앞으로 나왔는데, 손에는 네 개의 영패를 쥐고 있었다.

그의 수위는 이미 연기경 4중에 도달했으니 영패를 4개씩이나 가지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영패를 다시 분배한다는 말, 못 들은 거냐?”

엽운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거역할 수 없는 의지가 느껴졌다.

흑포 제자는 입가를 씰룩이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곤 이어서 물었다.

“엽 사형께서 어찌 분배하신단 말씀입니까?”

엽운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간단해. 경매를 해서 가격이 맞는 사람한테 나누어 줄 거야. 하지만 함부로 가격을 제시하지 않는 게 좋을거야. 그러다가 나중에 사기 힘들어지면 내 탓은 하지 말고.”

경매?

제자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은 엽운이 영패를 다시 분배하는 방법이 경매가 될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좋습니다. 경매 좋지요. 이거라면 공평하겠어.”

황색 도포를 입은 제자 한 명이 별안간 소리쳤다.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맞아. 20년 동안 보물을 모았는데, 오늘 드디어 유용하게 쓰겠군.”

“이렇게 되면 영패를 얻는 일은 내게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 쉬워진다고.”

“엽 사형. 긴 말 말고 바로 시작하시죠.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가져가는 걸로.”

한 무리의 사람들은 이에 동의했다.

오직 영패를 얻었다 다시 내놓은 외문 제자들만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영패 하나 찾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지금 엽운의 말 한마디에 모두 다시 분배가 되는 것이다.

몇 놈들은 부적을 깨뜨려 떠나고 싶었지만, 일단 떠나게 되면 영패를 얻어도 내문 제자 시험 자격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곳에 남아 가격 경쟁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여명홍과 단진풍은 멍하니 엽운을 바라봤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역시 알 수 없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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