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166화 (166/227)

제 166 화 양 사형

보탑은 아주 높고 투명했으며 은은하게 빛이 흐르며 반짝이고 있었다.

불꽃과 푸른얼음이 이를 비췄지만 놀랍게도 보탑에는 붉은색이나 푸른색이 반사되지 않고 온통 새하얀 수정만이 보였다.

중생전혼탑이다!

이는 금단대수사인 화운이 환생을 위해 준비한 보물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으로, 영혼을 회복시킬 뿐 아니라 물건을 보관할 수도 있었다.

탑은 지극 진귀한 재료로 만들어져 몹시 튼튼하며, 그 재료만으로도 중품영기에 필적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탑이 모습을 드러내는 찰나 진화성은 순간 정신을 잃을 뻔했다.

곧이어 엄청난 기세가 중생전혼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끼고 크게 놀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작은 탑은 순식간에 땅에 우뚝 솟아 그 높이를 가늠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일종의 경의를 느끼게끔 만들었다.

진화성은 억지로 수위를 연기경 6중까지 끌어올려 체내의 진기를 진강으로 응결시켰고, 공격력이 강해졌을 뿐 아니라 육체의 감각 또한 몇 곱절은 높아졌다.

비록 잠시 중생전혼탑의 위세에 압도되었지만 곧바로 정신을 되찾고, 하늘을 가득 메운 불꽃과 새파란 얼음 사이에서 중생전혼탑이 매섭게 떨어져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중생전혼탑이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하자 오히려 느껴지는 압력이 줄어들고, 빠르게 날아오던 작은 탑에서는 그 어떤 거대한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허세인가? 모두 눈속임이라고?”

진화성은 저도 모르게 넋이 나갔다.

곧 앞으로 한 발짝 다가가며 연기경 6중의 수위를 오른쪽 주먹에 모아 중생전혼탑을 매섭게 때렸다.

“쾅!”

주먹과 탑이 거세게 부딪히며 거대한 힘이 마치 공간 전체를 찢을 듯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열염폭운환이 뿜어내는 불꽃이 모든 것을 뒤덮지 않았다면 중생전혼탑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진화성은 자신의 온 힘을 담은 주먹으로 흔들리지 않는 태고의 신병을 때린 거처럼 격렬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엄청난 힘이 반격 해 매섭게 가슴을 쳤다.

진화성은 비명을 지르고 피를 뿜으며 뒤로 나가 떨어졌다.

엽운이 꺼낸 탑이 이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녔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수위가 연기경 6중이 되었음에도 이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아니, 아마 공격도 아닌 그저 반동이었을 것이다.

진화성은 뒤로 날아가며 하늘을 뒤덮은 화염 속에서 투명한 보탑이 계속해서 날아오는 것을 봤는데, 탑은 여세를 조금도 줄이지 않고 가슴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엽운, 넌 날 죽일 수 없다.”

진화성은 계속해서 피를 토하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엽운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 중생전혼탑에서 옅은 푸른색의 빛이 나와 진화성의 가슴을 거세게 쳤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진화성의 생기가 빠른 속도로 사라졌고, 다시 한 번 날려 보냈다.

그는 손을 간신히 들어 부적을 꺼냈지만 이를 깨뜨릴 힘이 남지 않았다.

엽운은 불쑥 다가가 검으로 그의 미간을 찔렀다.

미간에 보잘것없는 붉은 점 하나가 생겼는데, 마치 모래알로 콕 찍은 것 같았다.

바로 다음 순간 진화성의 얼굴이 온통 붉어지더니 새파랗게 핏줄이 올라왔고, 곧이어 숨을 한 번 내뱉더니 축 늘어져 바닥 위로 쓰러졌다.

진화성은 연기경 6중의 수위를 회복해 손쉽게 엽운을 쓰러뜨릴 줄만 알고,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줄곧 자신이 시험에 참가한 제자들 중 최강이라고 생각했고, 비록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 흑포 제자로 돌아오긴 했으나 이번 시험을 통과하여 쉽게 내문 제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자포 제자 중에서도 정예 제자에 속하는 이들만이 훗날 내문에서도 정예 제자가 되겠지만, 진화성은 자신이 동문들보다 먼저 내문 제자에 도달해 내문에서 그들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때가 되면 원수를 갚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번 시험에 참가한 제자들 중 엽운처럼 믿을 수 없는 힘을 가진 존재가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분명 연기경 1중에 지나지 않는 수위로 끝도 없이 보물을 꺼내고, 진기 역시 몹시 강력하여 자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진화성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고, 얼굴에 절망이 떠올랐다.

수선의 길은 하늘의 뜻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원래부터 위험천만한 것이며,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어둠 속에 숨어 힘을 기르다 완전한 대성을 이루는 날엔 천도를 가르고 천지와 하나가 되어 장수하는 것이다.

진화성은 이곳의 제자들 중 자신은 무적의 존재라 생각했고 누구도 안중에 없었다.

그런데 엽운의 수위가 이 정도 까지 강할 줄은 생각지 못했고, 그저 억울할 뿐이었지만 이미 소용없었다.

손에 쥔 보호부적을 깨뜨릴 힘도 남지 않았다.

하늘을 뒤덮은 불과 눈부신 얼음이 그를 배웅했고, 중생전혼탑은 가슴에 부딪히더니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없었던 것처럼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불빛이 사그라들고 얼음이 사라지자 하늘은 다시 맑아졌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변한 것은 조용히 바닥에 누워있는 진화성, 그리고 절망과 억울함이 가득한 그의 얼굴 뿐 이었다.

자포 제자였던 진화성은 죽음을 맞이하여 형신이 소멸했다.

엽운은 조용히 있었고, 벌벌 떨고 있던 두 명의 흑포 제자를 바라보며 별안간 웃음을 지었다.

다리를 후들거리며 서 있던 두 사람은 무릎을 꿇고 사시나무 떨듯 온 몸을 떨었다.

“엽 사형,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대인께서는 소인의 잘못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 않습니까. 저희를 제발 보내주십시오.”

“이제 와 용서를 구한다고? 분명 강직하기 짝이 없던 놈들이 아니던가? 이 몸을 하마터면 죽일 뻔 했잖아.”

단진풍이 번쩍 뛰어와 파일창에서 한기를 번뜩였다.

“단 사형, 저희가 못 알아 뵈었습니다. 큰 결례를 범했음을 사죄드립니다.”

두 사람은 흑포 제자의 품격이라곤 없이 단진풍과 엽운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단진풍과 엽운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 두 사람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 줄은 생각지 못했다.

떠나고 싶다면 부적을 깨뜨려 떠나면 그만인데, 이렇게 까지 비천하게 굴 필요가 있을까?

두 사람은 엽운과 단진풍의 생각을 읽은 듯 서로를 보다가 말했다.

“두 사형께서 잘 모르시는군요. 두 분의 실력이라면 이번 시험이 끝나고 분명 내문 제자가 되실 겁니다. 헌데 내문과 외문은 법도와 지위가 아예 다르기 때문에 내문 제자가 외문 제자 한 명에게 징벌을 내려도 장로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엽운은 즉시 두 사람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들은 두 사람이 내문 제자가 되어 돌아올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흥, 자신을 과대평가하는군. 우리가 내문 제자가 되면 너희 같은 녀석들이 눈에 들어올 것 같아?”

“엽 사형 말씀이 맞습니다. 사형께서는 앞날이 창창하고 수위도 강하니 분명 우리 같은 이들을 맞닥뜨릴 일은 없겠군요. 저희가 멍청했습니다.”

두 사람은 즉시 아부를 하며 안색이 붉어졌다.

“됐다. 너희에겐 원한도 없고 진화성은 죽었으니 스스로 부적을 깨뜨려 시험에서 떠나라. 맞다. 영패는 내려놓고 가는 거 잊지 말고.”

엽운은 손사레를 치며 두 아첨꾼의 아부에 불쾌함을 표했다.

“엽 사형께서는 정말 대인이십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군요.”

두 사람은 일제히 주먹을 감싸 쥐더니 몸을 일으켜 발길을 돌렸다.

단진풍은 콧방귀를 뀌었다.

두 사람은 그 소리에 놀라 떠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너희 두 사람 엽운의 말을 못 들은게냐? 영패를 내놓고 가라고 하지 않았느냐? 갈 땐 가더라도, 이런 식으로 간다고? 그냥 부적을 깨뜨려서 바로 떠나려고 한 모양인데.”

단진풍이 싸늘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아첨했다.

“역시 단 사형께서는 가슴에 천하를 품으셨군요. 사려도 깊고 기억력도 아주 훌륭하십니다.”

두 사람은 말하던 중 영패 두개를 꺼내들었다.

“저희에겐 총 일곱 개의 영패가 있었는데 그 중 다섯 개는 진화성이, 아니 그 개자식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녀석이 두 사형께 맞선 것은 사마귀가 마차에 맞서는 것처럼 주제 넘는 일이었죠.

엽운이 손을 올리자 두 개의 영패가 손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단진풍은 진화성의 몸에서 다섯 개의 영패를 꺼냈으니 도합 9개의 영패가 생긴 것이다.

이미 전체의 절반이 넘는 영패가 엽운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너희 두 사람, 뭐하고 있어? 남아서 저녁이라도 같이 먹고 가려고?”

단진풍은 싸늘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비아냥거렸다.

“아뇨 아닙니다. 저희 두 사람의 미천한 신분으로 어찌 두 사형과 저녁을 먹겠습니까. 단지 밟히는 일이 하나 있어서 두 분께 주의를 드리고자 했습니다.”

흑포 제자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뭔데?”

단진풍이 물었다.

“내문에는 양 사형 이라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수위는 지극히 높고, 무슨 군자당의 수장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두 사형께서 내문에 들어가신다면 부디 그를 조심하십시오. 진화성은 늘 자신이 양 사형과 친하다고 허풍을 떨었습니다. 그와 함께 자주 고전 서적을 연구하고 심득의 연마에 대해 교류를 나누며 선기와 심법에 대해 토론을 나누곤 했답니다.”

“양 사형? 몇 년 전에 이미 연기경의 정점에 달했다는 양화룡 사형을 이야기하는 건가?”

엽운은 여유로운 얼굴로 천천히 물었다.

“네 맞습니다요. 바로 그 양화룡 사형 말입니다. 진화성 그 개자식이 말하길 양화룡의 수위는 이미 불가사의한 수준에 도달하여 언제라도 연기경을 돌파하고 촉기에 오를 수 있다고 합니다.”

두 사람 중 한 명의 흑포 제자가 다가와 모기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촉기경 이라고? 그거 정말 대단한데.”

엽운은 담담한 표정으로 웃어보이곤 몸을 돌려 가버렸다.

일찍이 진화성이 지니고 있던 모든 물건을 긁어모은 단진풍은 엽운이 떠나는 것을 보곤 진화성을 발로 차버린 뒤 따라갔다.

“너희 두 사람, 얘기 끝난거지? 끝났으면 꺼져라.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너희 두 놈이 눈치껏 행동한다면 우리도 굳이 시간을 낭비해가며 너희를 죽이지는 않겠다.”

단진풍은 두 사람을 노려보곤 엽운을 따라갔다.

엽운은 하늘을 바라보며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양화룡이라, 보아하니 군자당은 내문에서 내력이 제법 있는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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