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163화 (163/227)

제 163 화 진기의 방출

엽운에게 이번 시험은 분명 계속할 필요도 없는 것 이었다.

수위가 연기경에 달한 이후로 이미 다른 제자들을 아득히 뛰어넘었고, 심지어 9급 요수의 정점인 신우취왕의 천겁을 상처 하나 없이 반이나 막아냈을 뿐 아니라 큰 이득을 보기 까지 했다.

지금이라면 분명 내문 제자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게다가 잠재력조차 보통의 사람들 보다 훨씬 뛰어났다.

만약 진화성이 아직도 헛된 희망을 품고 건드리려 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가자. 하산하자고.”

엽운은 고개를 돌려 두 사람과 영수 하나를 보며 말했다.

“어디로 갈까? 가서 저 녀석들에게 교훈을 하나 심어주는 건 어때. 이 몸이 너무 오랫동안 얌전히 있어서 저 녀석들이 분명 나를 만만하게 볼거야.”

단진풍이 칼을 뽑아들며 말했다.

“우린 이미 영패를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과 싸울 필요가 없잖아요.”

여명홍은 동의하지 않았다.

엽운은 두 사람을 보았다.

단진풍의 말은 도리어 이해가 간다.

비록 요 며칠간 얌전히 지내긴 했지만, 원래 뼛속까지 오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여명홍은 점점 알 수 없게 되었는데, 이 어린 사제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겸손하고 얌전했는데, 대묘에서 돌아온 이후로 어딘가 성미가 조급해졌다.

그런데 이틀 간, 다시 얌전하고 겸손해졌다.

마치 한 사람의 몸에 두 개의 영혼이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느낄 수 있었다.

“이 녀석들은 영패를 얻었다 해도 내문 제자가 될 자격 따위는 없어. 잠재력과 수위가 너무 형편없잖아. 내문 제자 시험을 볼 때 무슨 속임수를 써서 우릴 떨어뜨리려 하면 어쩌지?”

단진풍은 경도의 왕족 출신인지라 어려서 부터 부족 내의 암투를 많이 보고 자랐기에 저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단 사형, 믿지 못하는 겁니까? 제 생각에 저희 정도 수위와 잠재력이면 내문 제자 시험 정도는 분명 통과할 수 있을 겁니다.”

여명홍은 주먹을 꽉 쥐며 단호하게 말했다.

“당연히 믿지, 단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어선 안 된단 말이다.”

단진풍은 눈살을 찌푸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아무래도 믿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여명홍은 어째서인지 단진풍에게 맞섰다.

“됐어, 고작 저런 녀석들을 우리 형제가 걱정 할 필요 있겠어?”

엽운은 두 사람의 말다툼을 막았다.

곧,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 아래를 향해 내려갔다.

신우취왕의 황금색 깃털은 태양에 비쳐 몹시 아름답게 빛났다.

그는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단진풍과 여명홍을 쳐다봤다.

“염병, 저 대머리 독수리 녀석도 우릴 비웃잖아.”

단진풍은 눈을 부라리며 화를 냈다.

“단 사형, 흥분하지 마세요. 취왕은 그저 영수일 뿐이잖아요.”

여명홍은 그를 잡아당겼다.

단진풍은 신우취왕을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삽시간에 식은땀이 흘렀다.

일행은 산 아래로 내려갔는데, 가는 길에서 적지 않은 수의 제자들을 만났다.

하지만 엽운의 뒤에서 거대한 위세를 뽐내는 취왕을 보고는 겁에 질려 즉시 도망갔다.

심지어 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내문 시험 자격 쟁탈전은 이제 완전히 끝난 듯 했다.

엽운은 전에 들어왔던 곳으로 다가가 몸을 쭉 펴고 일어섰다.

“이제부터 기다리는 건가?”

단진풍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설마 아직도 누군가랑 싸우고 싶은 거야?”

엽운이 힐끗 보았다.

“좋아, 그럼 여기서 수련하자. 하지만 아직 눈도 못 뜬 애송이들이 덤빈다면 봐주지 않는다.”

단진풍은 파일창을 한 쪽에 세워 두었다.

수위가 연기경을 돌파한 뒤로 아직까지 제대로 실력 발휘도 못하고 얻어맞기만 해서 영 찝찝할 따름이었다.

엽운은 더 이상 그를 보지 않았고, 책상다리를 한 채 바닥에 앉았다.

연기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기를 응결시키는 것인데, 진기의 응집은 연기경에 도달한다고 해서 찰나의 순간에 완성 되는 것이 아니었다.

연기경까지 올라오면 체내의 영력은 가장 간단하고 기본적인 진기를 만들어 내는데, 그 진기를 응결시켜야만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연기경에 오른 직후 진기를 응결시킬 시간이 없었는데, 지금은 금치대붕의 후예인 신우취왕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으니, 이 틈에 제대로 한 번 수련해 본다면 수위는 더 높아질 것이다.

엽운은 조용히 앉아 체내에서 진기를 뿜었다.

마치 성난 파도가 둑을 두드리듯 진기가 요동쳤다.

진기는 빠르게 응집되고 압축되었으며 더욱 긴밀해져 폭발적인 힘을 가지게 되었다.

육체가 선마지심에 의해 변한 뒤로 몸은 일반적인 제자들 보다 적어도 열 배 이상의 진기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진기의 질마저 열배, 아니 백배는 뛰어났다.

따라서 지금 연기경 5중의 고수를 만난다 해도 정면으로 싸워 이길 수 있었다.

자영검을 포함한 영기들까지 있으니 진짜 전투력은 이미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 해가 지고 달이 떠올랐다.

모두 바닥에 앉아 진기의 수련에 매진했다.

얼마인지도 모를 시간이 지나 아침 햇살이 동쪽의 지평선을 뚫고 대지에 빛을 가져다 줄 무렵, 엽운은 천천히 눈을 떴다.

두 눈에서 빛이 뿜어져 실체를 이루며 전방의 나무 한 그루에 구멍을 뚫는 것이 보였다.

진기가 방출 된 것이다!

놀랍게도 진기가 눈을 통해 쏘아져 나왔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수위가 연기경에 도달하게 되면 육신은 진기로 단련되어 한 층 더 강해지게 된다.

진기를 밖으로 방출시킬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보통 연기경 3중에 도달해야 하며 하루 종일 진기를 회전시켜야만 비로소 진정한 공격력을 가지게 된다.

얼마 전 단진풍 역시 진기를 방출시킬 수 있었지만, 그 위력은 별 볼일 없었다.

그러나 방금 전 눈에서 뿜어져 나온 힘은, 연체경 제자의 몸에 닿는다면 곧바로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며칠이나 된 거지?”

엽운이 담담히 물었다.

“9일 입니다.”

바로 옆에서 여명홍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엽운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 아직 하루 남은 거야? 여 사제는 진기를 응결시키지 못한 모양인데.”

여명홍이 말했다.

“저는 진작에 끝냈습니다. 반나절 만에요. 사형처럼 꼬박 3일이 걸리지는 않았다구요.”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벌써 마지막 하루가 됐는데, 보아하니 이번 시험에서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은 없는 것 같네. 아, 단 사형은?”

여명홍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단 사형은 진기의 응결은 이미 끝냈고, 바로 어제 너무 답답하다며 나가셨습니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거야?”

엽운이 미간을 씰룩였다.

여명홍은 고개를 끄덕이고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엽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진풍 이 녀석은 애초에 적막함을 견딜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그는 천성부터가 오만하고 충동적이며, 가끔 자세를 낮출 때도 있지만 여기저기 날뛰며 일을 벌이는 본성은 어디 가지 않았다.

“녀석, 진짜 귀찮게 하는군.”

새우잠을 자고 있던 신우취왕을 가볍게 건드렸다.

“누구냐, 누가 감히 나를 건드리는 것이냐? 살고 싶지 않은 것인가?”

취왕은 깜짝 놀라 잠에서 깨며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신우, 위로 가서 단진풍 녀석을 찾아보자.”

엽운이 말했다.

“단진풍이 누구냐? 고작 연기경의 햇병아리를 내가 날아가서 찾아야 한단 말이냐? 게다가 취봉에서 내가 나설 필요가 있나? 유치하기 짝이 없군!”

취왕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이어서 휘파람 소리가 밀림을 뚫고 하늘을 가르며 한참 동안 허공에 맴돌았다.

“취왕, 뭐 하는 거야?”

여명홍이 궁금한 듯 물었다.

취왕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애송이들에게 그 단진풍이라는 햇병아리 놈이 어디서 뭘 하는지 살펴보라 할 생각이다.”

다음 순간, 날카로운 독수리 울음소리가 다급히 들려왔다.

신우취왕은 흉악한 눈빛으로 싸늘하게 말했다.

“정말 귀찮게 됐군, 그 하룻강아지 녀석은 뭇매를 맞고 있어.”

엽운은 미간을 찌푸리곤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날 데려다 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엽운은 곧바로 신우취왕의 등에 올라탔다.

취왕은 아무 말도 없이 콧방귀를 한 번 뀌더니 날아올라 날개를 펴고 공중에서 빙빙 돌았다.

취왕과 엽운의 눈은 놀라울 정도로 좋았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동남쪽으로 수십 리 떨어진 곳에서 포위당한 단진풍을 찾을 수 있었다.

엽운은 수십 장 높이의 고목위로 뛰어내려 몸을 숨겼다.

단진풍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파일창으로 흑포 제자 한 명을 가리키며 떨었다.

천성적으로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는 사람인지라, 진기의 응결을 끝낸 지 반 나절 만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방을 돌아다녔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그와 엽운이 한 패임을 알고 있었기에 감히 덤비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진풍은 결국 세 명의 흑포 제자들을 마주쳤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예전에 갈등이 있었던 진화성이었다.

진화성은 본디 속이 좁아 사사로운 원한도 모두 갚아줘야 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자포 제자에서 떨어져 내려와 잔뜩 화가 난 상태였기에, 단진풍을 만나 이 사실을 폭로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망설이지만 않았더라면 단진풍은 지금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단진풍은 그를 마주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이게 누구야, 자포 제자에서 흑포 제자로 내려온 진화성 사형이 아니신가!”

진화성은 한달 전 까지만 해도 높디높은 자포 제자였으며, 종문의 비호와 만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흑포 제자로 내려와 단진풍 같은 신입 제자에게 비웃음이나 당하는 꼴이니,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를 공격해 부상을 입힌 것이다.

그런데 그의 눈에 단진풍의 수위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단진풍에게 부상을 입혔고, 곧이어 옆에 있던 두 명의 연기경 3중 제자들이 힘을 합쳐 공격했다.

단진풍의 수위는 분명 범상치 않다.

연기경 1중의 실력으로 연기경 3중의 제자 두 명을 상대하면서 두 시진이나 버텼고, 진기를 모두 바닥내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만들었다.

“진화성, 이렇게까지 날 몰아세울 샘이냐. 그렇다면 이 몸은 그냥 부적을 깨뜨려 여기서 나가면 된다.”

단진풍은 파일창으로 가리키며 숨을 헐떡였다.

진화성은 냉소를 지으며 경멸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해봐라, 보호 부적을 깨뜨리고 여기서 나가면 없던 일이 될 것 같나? 오늘 널 죽이지 못해도 이 곳에서 나가면 어차피 넌 죽는다.”

“네가 감히 날 죽이면 종률전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텐데. 이미 자포 제자에서 흑포 제자로 내려온 걸 보면 종문 내에서 세력을 잃은 것 같은데, 그렇게 마음대로 해도 괜찮겠어?”

진화성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살기는 마치 칼처럼 날카로웠다.

자포 제자에서 격하된 것은 영원히 그의 마음을 괴롭힐 것이며,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용의 역린이었다.

“담이 크구나. 종률전이 여기 있다 한들 오늘 너는 죽는다!”

말이 끝나자마자 한 발짝 다가오며 빛을 번쩍여 기이한 형태의 무기 하나를 꺼냈다.

“정말이지, 입만 살았구나. 종률전은 안중에도 없다 이거지!”

0